돔보따는 남자
야생화
오곡(五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 오곡백과는 더더욱 그렇다. 오곡(五穀)은 다섯 가지 음식의 재료가 되는 곡식을 말하는 것으로 쌀, 보리, 콩, 조, 수수(기장)를 말한다. 어제가 옛날인가. 농경사회에서 우리의 주곡을 자급자족하던 때가 먼 옛날 이야기란 말인가? 그 뿐인가 여기에 백과(百果)가 붙으면 온갖 곡식과 여러 가지 과실(果實)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누구나 쌀, 보리, 콩까지는 쉽게 말하는데 팥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고 강낭콩을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요즈음 우리들 생활이 상식이 출장 나가고 흙 사랑 문화와는 너무 먼 거리에 있음 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은 농약 주는 농산물이 싫어서 작은 텃밭만 있어도 손수 씨를 뿌리고 내 손으로 채전 밭 일구는 사람들이 많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나는 평생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한 탓인지 이런 흙 사랑 문화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르치어 수확의 기쁨과 땀의 값진 의미,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두는 땅의 거짓 없는 노력의 대가를 맛보게 하는 교육의 한 장이 있었으면 하고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19종, 3,000본의 우리 풀꽃을 심어놓은 지가 5년여에 이르는데 군락을 이룬 풀꽃도 있고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많이 쇠약해진 것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부지가 20,000 여 평이 넘는데다 학생 수는 농촌 인구의 자연 감수로 인해 가장 많을 때의 1/10 로 줄었고 요즈음 입시교육에 바쁜 학생들이 우리 풀꽃 하나를 제대로 알 리가 없다. 뿐더러 최종 관리자는 인부를 사서 풀 뽑는 것에는 인색하니 풀밭 겸 풀꽃 밭 일세 하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의 말이 맞지 않은가.
유홍초,
항상 학생들에게 우리학교에만 군락지를 이룬 꽃이라고 목소리 높여 자랑하는 꽃. 그렇게 아름다운 꽃일 수 없는 일년생 초화, 100 여 평이 넘는 공터에 핀, 손에 손 잡고 허리를 서로 감싸 안으며 수없는 넝쿨로 기어올라 붉은 꽃밭의 초원을 이룬 꽃, 그 꽃 유홍초가 기가 막히게 수난을 당한 일도 있었다. 더욱이 가관인 것은 무식하면 용감하더라고 행정실 기능직 직원이 토요일 오후에 유홍초 군락지에다 잡초 제거 한답시고 제초재 농약을 몽땅 뿌린 적이 있었다. 참으로 창피하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사후 약방문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모두가 내 탓이야 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홍초가 무슨 꽃인지도 모르는 그 직원을 탓하면 무엇하랴 싶어 조용히 내년에는, 하고 덮어 주었다. 다행이 살아남은 것들이 그런대로 군락을 이루었는데 시방은 때가 가서 넝쿨이 시들기 시작하며 꽃잎들도 몇 개 안 남아 마지막 교정이 더 쓸쓸하기만 하다. 때가 되면 다 저렇게 말없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을---
빈 공터에 돔보 씨를 조금 뿌려 놓은 지가 삼년이 넘었다. 덕택으로 해마다 이 맘 때면 나는 돔보 따는 재미가 남달리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빈 그릇 하나를 들고 익은 것만 골라 따도, 시기를 놓치어 저절로 터져 땅에 떨어진 것이 상당수 있었다. 아깝기도 하지만 그래야 내년에 또 나오지 하고 이내 마음을 바꾼다. 더러 전주에서 문학하는 사람들이 야생화 보러 오시면, 으레 비닐봉투 하나씩을 내주며 한 줌씩 따 가도록 이야기 하면 무척 좋아하신다. 무공해 식물이니까 꼭 밥해서 한 그릇 주셔야 됩니다를 덧붙이지만 그 사람들도 농담인줄을 알며 수확하는 기쁨으로 무척 좋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보람을 느낀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결실의 기쁨이 이런 것이지만 농사 몇 다랑치 지어 대학에 보내주신 부모님 고생 하신 것 생각하면 나는 내 뼈가 으스러져도 부모님을 섬기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결심을 돔보 속에 홀로 흘려보낸다. 하지만 마파람 불어오는 날 소 풀 뜯어 먹이는 일에는 정신없고 죽마고우(竹馬故友)들하고 자치기하다 그만 때를 놓치고 소를 물 먹여서 집에 끌고 왔다가 아버지한테 벼락 맞은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을 보면 또 내 결심은 하늘가를 흘러가는 흰 구름처럼 금방 지워지는 모래성이 아니기를 몇 번이나 생각하고 고쳐 먹으며 다짐한다.
작년에 돔보를 따고 있는데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느 여교사가 교감 선생님 뭐 하셔요? 하고 묻길래, 응 돔보 따. 했더니 돔보가 뭐예요? 하지 않는가. 아 참 돔보는 우리 동네에서 부르는 토속적인 이름이고 응 팥, 팥은 알지? 했더니 그 여교사도 슬리퍼 신은채로 한 주먹을 따 담길래 가져다 밥에 섞어서 해 먹어봐 라고 말하며 듬뿍 집어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더니 좋아라 하며 내일 또 따로 와도 돼요? 하고 묻는다. 내일은 이르고 모레나 글피 쯤 와 봐 하고 대답하는 내 마음도 괜히 풍년이 든 기분이다. 나이 들면 누구나 이렇게 수확의 기쁨이 좋은 것을. 그것도 잠깐 피로하지 않을 만큼만 해 보면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농사짓는 우리네 농부들은 새 숨 쉬고 속 가랑이 까지 다 젖는 비지땀 흘리며 엄청난 고생을 해서 지은 농산물이 제 값도 못 받는 것이 얼마며 중간상인만 배불리는 현실이 빈속에 술 마시고 오바이트 하는 것 보다 더 매스껍지 않은가. 매스껍기로 말하면 세상 살며 어디 이뿐이랴.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알고도 모른 체하며 시집온 새색시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하는 친정 집 어머니 삼년 타령 말씀을 따르며 사는 생활처럼 모두를 모르는 체 하고 사는 지혜가 세상 편하게 사는 방편이 아니던가.
작년에는 돔보를 따서 노부모 모시는 직원들에게만 한 중발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귓속말로 “엄니랑 밥 한 끼 해 먹어”했는데 그 노부모가 한 분은 금년에 먼 길 떠나시고 또 한 분은 보육시설로 가셨다. 입담 좋은 한 직원은 저는요 처부모 모시고 사는디요 하면서 농 할양으로 시비를 걸어온다. 아이고 아믄요. 요즈음은 처부모 모시고 사시는 분이 정말 효자십니다. 내 이따가 배로 갖다 드릴께요. 쪼까만 기다리시오이잉. 하니 참말로요? 한다. 그러믄요. 언제 지가 그짓말 하는 것 보았어요?
그 돔보를 나는 오늘 첫 수확했다. 한 되 정도의 양이 나올 만큼 땋는데, 그 팥을 따며 팥죽 같은 비지땀을 흐리고 내 이 무슨 고생이람. 내가 먹고 살 것도 아니면서 하고 생각하니 괜히 심통이 난다. 나는 학교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단 한 번도 집에 가져온 일이 없다. 학교에서 뭐 달랑달랑 들고 다니면 모양새 안 좋고 오해 받기 십상이어서 이다. 그리고 아래 직원들 나누어 주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은가? 어느 땐들 찬 서리 내리는 철이면 호박 한 두 덩이씩 안 받은 직원이 있으며 고추 농사며 상추 심어서 식당에서 쌈질 안한 선생 어디 있는가 말이다.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이라도 한 식구라는 직장의 소속감을 무언중 심어주려 했던 내 작은 마음을 아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일심으로 근무하며 내 젊은 시절의 뼈를 묻으며 열심히 살았던 정든 근무처를 3개월 후면 떠난다고 생각하니 말이 안 나오고 기가 막힌다. 나 없으면 학교가 문 닿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심난한지 모르겠다.
다만 퇴역하는 어느 군인의 변명처럼“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의 말에 새삼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 주제 : 노동의 신선한 마음
* 제제 : 돔보를 따면서 내 뒤를 돌아 봄
# 습작노트 : 처음으로 수필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 보았습니다. 많이 미흡하니 혜량하옵소서.
첫댓글 "정든 근무처를 3개월 후면 떠난다고 생각하니 말이 안 나오고 기가 막힌다." - 야생화님의 말씀처럼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알고도 모른 체하며 살아온 세월이 정년까지 잘 데려다준 것 같습니다. 정년을 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어느 선배님께서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전문직이시니 덜 하겠습니다만 일반행정직에서는 영광스럽게 여기는 정년이랍니다. 부가적인 이야기는 많습니다만 슬픔보다는 영광으로 생각하십시오. 시집온 새색시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이란 말은 사회에 나가시면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돔보심으면 돔보난다는 교훈과 그걸 나누어 소속감을 심어주려는 마음 너무 좋습니다.
야새화님의 식물 사랑과 지식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퇴임이 더 가치있는 삶으로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늘 부지런하시고 밝은 웃음으로 화답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세상 걱정이 없는 듯 보이십니다 돔보도 심고 많은 야채를 심어 울타리 안에 있는 식구들의 입 맛을 즐겁게 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잊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 입니다 선생님의 본보기를 보여주신 따듯한 사랑을 그분들은 알고 먼훗날 이야기로 아름답게 남아 전해올 것입니다 우리 본가에서도 돔보라고 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토속적인 언어 정겹기만 합니다 세월이 유수같이 잘도 흐르는 것을 정년이란 언어에서 더욱 허전하고 쓸쓸하게 느낄실 거예요 선생님 너무 서운해 마시고 즐겁게 노래하며 사시길 빕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학교사랑, 직원사랑, 식물사랑을 실천하신 야생화님의 삶이 녹아난 수필 잘 감상하였습니다. 언제나 밝은 얼굴이 이런 사랑에서부터 익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애정은 언제고 떠나는 것이지만 그리움으로 남아, 정년이후에도 가시는 곳곳마다 청량음료 같이 마음을 적시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베푸는 삶이 존경스럽습니다. 글이 평야에 굽이굽이 자유 곡류하는 하천의 흐름같이 막힘이 없고 부드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저도 한줌 주시면 찰밥해서 드릴텐데. 어디서 만남담? 퇴직 후는 무엇을 하실것인지요? 어디 농토가 있는곳에 야생화를 심으시고 배추니 고추니 심으시면 저희 문학방 식구들 찾아뵈올텐데...
야생화님...저도 돔보는 확실히 무슨콩인지 모르겠는데....저도 한줌 따주시면 안되나요?...ㅎㅎㅎ~글을 읽으며 야생화님의 동보따시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찬서리 내리기전에 저도 한줌 따주세요..네?..^^
돔보를 딸 때 쯤이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을 때입니다. 야생화님의 인생도 돔보를 딸 때처럼 깊어가고 있습니다. 비와 바람과 천둥과 벼락이 돔보의 줄기를 강하게 하고 뿌리를 깊게 내리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가을 한 남자가 돔보를 따고 있습니다. 돔보는 자기 인생의 결실입니다. 이제 정년을 몇 개월 남겨두지 않은 야생화님의 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담담하게 지나온 인생을 들려주는 듯하여 감회가 새롭습니다. 베풂이 무엇인지, 교직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숨은 글로 보여줍니다. '뽕 따는 여자'를 생각하면 '돔보 따는 남자'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처음 쓰는 수필이 아니라 인생의 경륜이 넘치는 글을 보고 갑니다
시인이 쓴 수필은 뭔가 확실히 다름을 봅니다. 시에서 수필, 그 다음이 기대됩니다. 그런데 세상에 원~참, 돔보가 팥이라니. 돕보를 콩으로만 알았습니다. 새삼 부끄럽습니다. 그러면서 팥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다니. 나눔의 기쁨을 누리시는 야생화님! 3개월 후엔 참된 제2의 나만의 시간으로 가꾸시어 행복을 만땅 하시기 바랍니다.
네손으로 꽃을 심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또야생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야생화님 어떠한글이 어떠한 시가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요? 자연은 가장 위대한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