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오디가 검붉게 익어가는 무렵, 아름다운 갈참나무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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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있는 경북 영주시에는 단산면 병산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소수서원을 지나 부석사 방향으로 가다가 부석사 조금 못미처에서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이어진 조붓한 도로 변의 한적한 농촌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낮은 동산이 있고, 동산 너머로는 오래 전에 아이들의 발길이 끊긴 초등학교의 나즈막한 교사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름 한낮의 햇살이 따사로운 동산 가운데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우리 옛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온 나무로 첫손에 꼽히는 ‘도토리나무’ 혹은 ‘참나무’입니다. 그러나 식물도감에서는 ‘도로리나무’나 ‘참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참나무는 어느 한 종류의 나무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나무를 뭉뚱그러 일컫는 과(科)의 이름이어서, 정작 ‘참나무’라는 나무는 없는 거죠. ‘도토리나무’라는 이름도 참나무과의 나무들에서 맺히는 열매가 도토리여서 부르는 이름이긴 하지만, 역시 식물도감에 등록된 이름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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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병산리 마을 어귀의 동산에 우뚝 서 있는 도토리나무는 참나무 종류의 나무 가운데 하나인 ‘갈참나무’입니다. 신갈나무 상수리나무를 비롯해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와 함께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의 한 종류이지요. 갈참나무는 물론이고, 참나무과에 속하는 대개의 나무들이 우리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 온 나무입니다. 하지만 너무 친한 탓일까요? 크고 오래 된 나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특징을 돌아본다면 병산리 갈참나무는 흔히 볼 수 없는 큰 나무입니다.
게다가 나무의 생김생김이 참 아름답습니다. 병산리 갈참나무를 처음 만났던 십여 년 전부터 여태까지 저는 갈참나무 가운데에 이만큼 크고 잘 생긴 나무를 보지 못했습니다. 마을 어귀의 동산 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탓이어서인지, 실제 크기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보이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오로지 나무 한 그루만을 위해 마련된 동산인 것처럼 나무가 서 있는 동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산은 그저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와 함께 숨을 고르며 평화로이 쉴 수 있는 자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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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참나무과 나무 가운데에는 오래된 나무는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쓰임새가 많아 적당히 자란 나무를 베어내 쓴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게다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보니, 굳이 보호해야 할 필요를 느껴야 할 만큼 희소성도 없었을 겁니다. 또 소나무를 극진히 보존하기 위해 금송령(禁松令)까지 내렸던 조선시대에는 산에서 땔감을 구하는 백성들에게 소나무 대신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을 베어 쓰라고까지 했으니까요.
결국 참나무과의 나무들이 오래도록 큰 나무로 자라기에는 참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생명력이 강한 나무들이어서, 여전히 우리 산과 들에서 넉넉히 볼 수 있는 나무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처럼 자연 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만큼의 크고 오래 된 나무를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영주 병산리 갈참나무는 갈참나무로서는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유일한 나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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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에서 지정한 보호수 가운데에는 물론 갈참나무도 있습니다. 2013년 7월 현재 18그루가 갈참나무 보호수로 지정돼 있지요. 그 가운데에는 키가 25미터나 되는 큰 나무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갈참나무 보호수는 키가 15미터 안팎의 크기로 기록돼 있습니다. 은행나무 느티나무에 비하면 조금 작은 규모이지만, 소나무 종류에 비하면 그리 작은 건 아닙니다.
나이로 치면 대략 백오십 살에서부터 사백 살 정도 되는 나무들입니다. 규모로 보아서는 그리 작다고 할 수 없?지만, 나이로 치면 분명히 적은 나이입니다. 앞에서 짚어본 것처럼 오랫동안 귀하게 여기며 보호할 만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싶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갈참나무 가운데에서는 지금 말씀 드리는 ‘영주 병산리 갈참나무’가 가장 오래 된 나무에 속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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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 살 정도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285호 영주 병산리 갈참나무의 키는 14미터가 채 되지 않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3.5미터에도 못 미칩니다. 키나 굵기 등 모든 면에서 분명 큰 나무라고만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병산리 갈참나무는 여느 천연기념물 나무에 비해 매우 아름다운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동산 위에 다소곳이 서있는 아담한 자태는 다른 어떤 큰 나무에서도 볼 수 없는 깔끔한 인상입니다. 나무가 서있는 주변 환경과 어울린 분위기 또한 그지없이 평화롭습니다.
병산리 갈참나무는 2.5미터쯤 높이에서 굵은 가지가 하나 길게 뻗어나갔는데, 이 가지는 땅 쪽으로 늘어져 내려 버팀목을 해주었지요. 이 가지가 뻗어나간 자리의 옆으로 부러져나간 다른 가지의 흔적도 보이지만, 나무의 현재 생육상태는 건강한 편입니다. 욱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젊은 나무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건강함을 유지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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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이 나무를 지정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 가운데에는 무엇보다 나무가 지난 아름다운 자태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 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한번 본 사람들이라면 언제까지라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병산리 갈참나무의 단아한 인상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저로서는 영주를 떠올리면 ‘부석사’ ‘소수서원’보다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병산리 갈참나무입니다.
나무 옆의 널찍한 공간은 오래 전에 나무 동산 아래의 작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아이들이 요즘처럼 무더운 날 나무 그늘에 모여 이른바 ‘야외수업’을 하기에 알맞춤합니다. 또 학교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나무가 서 있는 동산에 들러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던 곳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나무 곁에 가만히 서있을라치면, 이 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나무 곁에서 뛰어다니거나 나무에 매달리기도 하고, 또 나무 줄기에 기어 올라갔을 개구쟁이들의 즐거운 아우성이 살아오는 듯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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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리 갈참나무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의 황전(黃纏)이라는 사람이 통례원(通禮院)의 봉례(奉禮)라는 벼슬을 하던 조선 세종 8년(1426)에 심었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나무의 나이를 육백 살 가까이 된 것으로 짐작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나무는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마을 어귀를 지켜왔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나무에 동제(洞祭)를 지내왔습니다. 동제를 소홀히 하면 마을에 흉한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전해올 만큼 나무는 오랫동안 극진히 보호된 것입니다.
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길을 빼앗긴 채 한 나절을 보내고 나무가 서 있는 동산을 돌아 내려오는데, 갈참나무 곁에서 빼곡히 매달린 오디가 검붉은 빛깔로 익어가는 뽕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갈참나무 동산을 오르는 길목에 새로 심어 키우는 나무이지요. 한 그루의 오래 된 갈참나무를 중심으로 평화를 지어가는 아름다운 농촌 마을의 한낮 풍경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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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나무 편지]에서 ‘나무 편지 추천 이벤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벌써 몇 분은 주변의 아름다운 벗들에게 나무편지를 추천해주시는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달 말까지 통계를 내서 이미 말씀드린 대로 다섯 분께 제 책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나무편지를 추천해주시려면, 홈페이지 솔숲닷컴의 왼쪽 메뉴 가운데 [나무편지 추천하기]에 들어가셔서 글을 남겨주셔도 되고, 홈페이지 접속이 불편하시다면 제게 이메일(gohkh@solsup.com)로 직접 알려주셔도 됩니다.
많은 분들의 ‘나무 편지 추천’과 관련한 관심과 성원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