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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개봉 & 2015 재개봉 / 148분 / 12세 관람가>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로만 폴란스키
출연 : 애드리언 브로디 & 토마스 크레취만
75회 아카데미시상식(2003)
수상: 각색상(로날드 하우드), 남우주연상(애드리언 브로디), 감독상(로만 폴란스키)
후보: 촬영상(파웰 에델만), 작품상
60회 골든 글로브시상식(2003)
후보: 작품상-드라마, 남우주연상 - 드라마(애드리언 브로디)
55회 칸 영화제(2002)
수상: 황금종려상(로만 폴란스키)
전쟁의 포화도 그의 선율은 앗아가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그것은 인류 존엄에 대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한창 타올랐던 바로 그때, 스필만이 연주하던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당한다.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생활하던 스필만과 가족들은 얼마 가지 않아 나치 세력이 확장되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게된다. 기차에 오르려는 찰라, 유명한 피아니스트 스필만을 알아본 군인들은 그를 제지한다. 가족을 죽음으로 내보내고 간신히 목숨만을 구한 스필만.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치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된다.
전쟁과 평화, 동지와 적군의 경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선율이 울려퍼지다!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까지 생존을 지켜나가던 스필만. 나치의 세력이 확장될수록 자신을 도와주던 몇몇의 사람마저 떠나자 완전히 혼자가 되어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끈질기게 생존을 유지한다.
어둠과 추위로 가득한 폐건물 속에서 먹을 거라곤 오래된 통조림 몇 개뿐인 은신생활 중, 스필만은 우연찮게 순찰을 돌던 독일 장교에게 발각되고 만다. 한눈에 유태인 도망자임을 눈치챈 독일 장교. 스필만에게 신분을 대라고 요구하자 스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였다고 말한다. 한동안의 침묵속에 스필만에게 연주를 명령하는 독일 장교. 어쩌면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그 순간, 스필만은 온 영혼을 손끝에 실어 연주를 시작하는데...
{“스필만은 2000년 7월 6일 8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바르샤바'에서 계속 살았다. 그 독일 장교의 이름은 ‘Wilm Hosenfeld’였으며 소비에트 포로 수용소에서 1952년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제작 노트
<피아니스트>는 거대한 스케일과 완벽한 역사현장의 재현을 자랑하는, 근래 보기 드문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역사상 거대했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독일, 폴란드, 영국 등 전 유럽대륙의 노련한 노하우와 장인정신이 완성시킨 대서사시이다. 총 제작비 3천5백만달러(약 420억원), 1천명이 넘는 스텝과 연기자,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촬영세트가 이 영화를 위해 준비되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를 수상한 세계적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란 스타스키는 수개월의 사전조사와 준비를 통해 1930~40년대의 유럽을 21세기에 다시 세웠다.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단지 대작 영화의 장점만을 지녔다면 유사한 다른 영화가 주는 오락적 재미만을 선사했을지 모른다. 이 영화는 CG나 얄팍한 영상스타일을 배제하였다. 감독 폴란스키는 거짓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영화가 아닌, 제작부터 진솔한 인간의 땀을 사용함으로써 강요된 감동이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격정적인 눈물을 이끌어내고자 했고 그것은 성공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폴란스키 감독은 주연 배우를 찾기 위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샅샅이 다녔다. 그는 스필만과 외모적인 흡사함이 아닌 이미지의 일체를 가져다주는 배우를 원했다. 영국에서의 대규모 오디션도 폴란스키에게 만족스런 배우를 가져다주지 못했으나 미국까지 배우영역을 확장시킨 폴란스키는 마침내 애드리언 브로디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빵과 장미>, <씬 레드 라인>에서 연기력을 펼친 브로디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공포에서 살아남는 폴란드 예술가 스필만의 감정을 세심하게 연기해내었다. 한편, 폴란스키는 주연뿐만 아니라 잠깐 스치는 보조연기자에도 완벽함을 원했다. 그는 반세기 전 폴란드, 유대인, 독일인들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보조연기자들을 수 천명의 인터뷰와 사진촬영 등을 통해 캐스팅하였다. 특히 독일나치군을 연기한 배우들은 감독조차 다시 한번 유년시절의 공포를 경험하게 할만큼 섬뜩한 분위기를 던져내었다.
◆ 감독 및 배우 소개
감독 : 로만 폴란스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하나인 그는 파리에서 유태계 폴란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모님의 고향인 폴란드로 이주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 일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폴란스키는 크로코브 미술학교와 로즈 영화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14살 때 연기경력을 시작, 대인기를 누린 라디오 쇼 "The Merry Gang"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성인이 된 후 폴란스키는 < Three Stories >를 비롯 다양한 폴란드 영화들에서 작은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 A Generation >도 이 당시 출연작이다.
그는 계속 학업을 하면서 <Two Men and A Wardrobe>(58),<When Angels Fall>(59), <The Fat and the Lean>(61) 등의 수많은 단편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의 단편영화 <Mammels>(62)가 세계 유수영화제의 상을 휩쓸면서 폴란스키는 본격적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의 장편 <물속의 칼>(62)은 베니스 비평가상 수상과 함께 오스카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다. 까뜨린느 드뇌브 주연의 <반항>(65)은 그가 처음으로 영국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다음 작품 (66)은 베를린영화제 금곰상(대상)을 수상한다.
폴란스키는 미국으로 건너와 <악마의 씨>(68)를 연출하고 이 작품은 그해 오스카 최우수각본상 후보에 오른다. 하지만 <악마의 씨>를 본 집단 광신도들에 의해 그의 부인이 난자 당한 채 살해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잠시 유럽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폴란스키는 74년 헐리우드로 돌아와 <차이나타운>을 만는다. 이 작품은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오스카에서 최우수작품, 최우수감독상을 포함 11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고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한다.
79년 폴란스키는 <테스>로 다시 한번 오스카를 뒤흔든다. 이 작품은 최우수감독상을 비롯 6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최우수촬영상, 최우수미술상, 최우수의상상 등 3개부문에서 상을 거머쥔다. 또한 이 작품은 프랑스영화제인 세자르에서 최우수감독,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84년에는 < Roman by Polanski >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후 폴란스키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출한다. 코믹 어드벤쳐 < Pirates >, 해리슨 포드 주연의 스릴러 < Frantic >, 휴 그랜트 주연의 <비터문>, 조니 뎁 주연의 <나인스 게이트>, 킹 벤슬리, 시고니 위버의 스릴러 <시고니 위버의 진실> 등이 그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들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극을 연출한 폴란스키는 1999년 Academy of Beaux-Arts 에 선출되었다.
[필모그래피]
감독 :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 감독
2002 피아니스트 (Pianist, The)
1999 나인스 게이트 (Ninth Gate, The)
1994 시고니위버의 진실
1988 해리슨 포드의 실종 (Frantic)
1986 대해적
1979 테스 (Tess)
1974 차이나타운 (Chinatown)
1968 악마의 씨 (Rosemary's Baby)
1965 혐오 (Repulsion)
- 각본
1999 나인스 게이트 (Ninth Gate, The)
1979 테스 (Tess)
1968 악마의 씨 (Rosemary's Baby)
주연 : 애드리언 브로디
최근 유명 감독들에게 주목받는 배우로 스파이크 리, 배리 레빈슨, 스티븐 소더버그, 테렌스 말릭 등과 작업해왔다. 미국의 라이프 스타일지인 "베니티 페어" 지는 그를 가장 촉망받는 5명의 배우 중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1998년 <레스토랑>으로 독립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한 그는, <씬 레드 라인>(1998)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2000)를 통해 유럽에서 얼굴을 알리게 된다.
폴란드의 유명한 연주가 블라디스와프 지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바르샤바 게토를 다룬 로만 폴란스키의 신작 <피아니스트>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헐리우드에서 한참 떠오르는 신예배우이다.
[필모그래피]
빵과 장미(2000)|샘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2001)|주연배우
피아니스트(2002)|주연배우
빌리지(2004)|주연배우
킹콩(2005)|주연배우
=== 참고 자료 === <2013년 11월 4일 네이버캐스트 / 진회숙 글>
영화 속 클래식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폴란드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스필만은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자 독일군의 눈을 피해 오랫동안 빈 집의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을 것을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가 그만 독일군 장교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런데 다행히 그 독일군 장교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숨어 있는 것을 눈감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기도 했다. 독일군 장교의 도움으로 스필만은 무사히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영화에는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와 마주쳤을 때의 상황이 자세하게 나온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먹을 것을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온 스필만. 빈 방을 이곳저곳 뒤지던 끝에 드디어 뜯지 않은 통조림 깡통을 찾아낸다. 하지만 쇠막대기로 어렵사리 찾아낸 통조림 깡통을 따려고 하다가 실수로 그것을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바닥에 구르며 아까운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는 통조림 깡통을 따라가는 카메라. 그런데 이렇게 깡통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던 카메라에 갑자기 독일군 군화(軍靴)가 잡힌다. 군화를 잡은 카메라는 밑에서 위로 서서히 앵글을 이동시킨다. 발에서 다리, 그리고 허벅지에서 가슴을 거친 카메라는 드디어 화면 가득 독일군 장교의 얼굴을 잡는다. 수려한 용모의 독일군 장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난 순간 숨 멎을 듯한 공포가 온몸을 엄습해 온다. 영화를 보는 내가 이 정도였으니 실제로 일을 당한 스필만은 어땠을까.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할 아무런 도구나 장치도 없이 갑자기 맞닥뜨린 이 상황에서 스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나약한 육신을 간신히 지탱하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어렵사리 찾아낸 통조림 깡통을 생명의 양식인양 부둥켜안고, 어쩌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서 있었다. 몇 달 동안 세수도 면도도 하지 못한 채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모습으로. 스필만의 고백에 의하면 당시 그는 너무나 놀라고 맥이 빠져서 독일군 장교로부터 도저히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교가 그의 직업을 묻는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장교가 그를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한 곡 쳐보라고 한다. 어쩌면 그 독일군 장교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스필만이 피아니스트였다고 하자 그를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안내해 한 번 쳐보기를 권했으니까.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은 스필만의 뇌리에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스필만은 자서전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건반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손가락들이 경련을 일으켰다. 어쨌든 지금 피아노를 쳐서 몸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나는 거의 2년 반 동안이나 연주를 하지 못 했다. 손가락은 뻣뻣했고, 켜켜이 때로 뒤덮여 있었으며 은신해 있는 건물에 불이 나는 바람에 손톱도 깎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유리창도 없는 방 안에 방치된 피아노는 기계 장치가 습기로 팽창되어 건반이 아주 뻑뻑했다.
나는 쇼팽의 [야상곡 C# 단조]를 쳤다. 제대로 조율도 안 된 피아노 줄의 탁한 울림이 텅 빈 집과 계단을 지나 길 건너편에 있는 빌라의 폐허에 부딪쳐 맥빠지고 우울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연주를 끝내자 그 침묵은 전보다 한층 더 음울하고 괴괴했다. 거리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밖에서 총성과 함께 사납게 짖어대는 독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그는 피아노를 쳐야만 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피아노를 쳤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전혀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었다. 먼지에 쌓인 조율 안 된 피아노와 배고픔과 추위에 굳어버린 손가락,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포 속에서 달콤하고 로맨틱해야 할 쇼팽의 [야상곡]이 맥 빠지고 우울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위에는 말쑥한 독일군 장교의 외투와 모자가,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그가 그 긴장된 상황에서도 목숨처럼 부둥켜안고 있었던 초라한 통조림 깡통이 마치 이미지의 콘트라스트를 강조한 정물화처럼 놓여 있다.
이때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쳤던 곡은 쇼팽의 [야상곡 C# 단조]였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발라드 1번]을 치는 것으로 나온다. 오랫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는 사람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스필만은 거의 2년 반 동안 한 번도 피아노를 만져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 난방이 안된 방에서 지낸 탓에 손가락이 동상 일보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손톱도 깎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피아노를 제대로 친다는 것은 무리였다. 더구나 [발라드 1번] 같이 엄청난 에너지와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스필만은 그래서 상대적으로 연주하기 쉽고 멜로디가 무난한 [야상곡 C# 단조]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영화에서 이런 상황에 야상곡을 연주했다면 얼마나 싱거웠을까.
학살을 피해 오랫동안 숨어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독일군 장교에게 적발되었다. 독일군 장교는 그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피아노를 연주하고는 있지만 연주가 끝난 후 곧바로 수용소로 끌려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극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이 [야상곡 C# 단조]를 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극적인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폴란스키는 서정적인 [야상곡 C# 단조] 대신 격정적인 [발라드 1번]을 선택했다.
쇼팽의 나이 스물여섯 살 때 작곡했다고 하는 [발라드 1번]에는 열혈청년 쇼팽의 내면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남성적인 열정과 고뇌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 이처럼 독창적이고 거칠게, 이처럼 격렬하게 남성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작품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쇼팽의 수많은 피아노 곡 중에서 [발라드 1번]을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현실보다 더 그럴듯하게 현실적이어야 한다. 화면 속의 현실은 본래는 현실이 아니기에 그것을 진짜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보다 극적인 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쇼팽의 [발라드 1번]은 바로 이 장면의 영화적 진실이라 할 수 있다.
‘발라드’라는 것은 본래 ‘이야기가 있는 노래’라는 뜻이다. 일종의 서사민요를 말하는데, 이렇게 처음에는 노래로 시작했다가 14,5세기 경에는 무용곡으로, 그리고 18세기 이후에는 기악곡으로 독립해 나갔다. 쇼팽이 이 곡에 ‘발라드’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폴란드의 애국 시인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가 쓴 [콘라드 월렌로드]라는 서사시에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콘라드 월렌로드]는 리투아니아와 프러시아 지방에서 전해오던 콘라드 월렌로드의 영웅적인 전설을 바탕으로 쓴 서사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라드 1번]과 이 서사시 사이에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직접 대응되는 어떤 요소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전설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영웅적인 행위의 잔인성, 그것을 정당화하는 다소 비인간적인 애국심 같은 것은 쇼팽의 [발라드 1번]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곡이 쇼팽의 다른 곡에 비해 남성적 에너지를 충만하게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음악을 듣다 보면 때로는 영웅의 무용담 같은 무게와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 외에 이 곡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없다. 비록 서사민요를 의미하는 발라드라는 제목을 붙이기는 했지만 쇼팽이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음악적으로 번역해 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쇼팽의 ‘애국심’이다. 쇼팽은 스무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나 그 후 다시는 조국 땅을 밟지 못 했다. 그러기에 조국 폴란드는 그에게 늘 그리움과 목마름의 대상이었다. 그는 특히 애국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를 좋아했다. 그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늘 그의 시집을 품고 다닐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국에 있는 그에게 미츠키에비치의 시는 사랑하는 조국 폴란드와 자신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정서적 끈이었을 것이다. 이런 그가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작곡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마 쇼팽은 이 서사시가 지니고 있는 충만한 민족성과 애국심에 감명 받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쇼팽의 [발라드 1번]은 지극히 폴란드적이다. 음악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배경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유태계 폴란드 영화감독이 만든, 유태계 폴란드 피아니스트의 수난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폴란드 애국시인의 서사시에서 영감을 받은, 폴란드 작곡가의 작품이 사용되었다. 참으로 절묘한 조합이 아닌가. 극적인 효과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상징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이 영화를 위해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선택한 것은 정말로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발라드 1번]은 오른손과 왼손이 같은 음을 연주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느린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렇게 특징적인 도입부가 끝나고 나면 아주 독특한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모티브가 연주된다. 처음에 조용하게 시작된 이 모티브는 그 후 형태를 달리하면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표현의 강도가 높아진다. 처음에 피아노는 아주 여리게, 지극히 서정적인 울림으로 무엇인가를 갈구한다. 그 멜로디는 감성의 끝을 어루만지듯 섬세하고, 때로는 지극히 감미롭기까지 하다. 이 시적인 울림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점점 갈증의 강도가 높아져 간다. 스필만은 갈구한다. 자유와 평화를. 이 비극적인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영원한 해방을. 점점 더 격렬하게 원한다. 그러나 그의 애타는 바람은 번번이 절정의 문턱에서 좌절당하고 만다. 이렇게 애타게 문을 두드리기를 여러 차례. 어느 순간 드디어 그토록 열망하던 해방의 순간이 찾아온다. 봇물처럼 터지는 열정, 불꽃처럼 작열하는 분노.
영화 [피아니스트]에는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했다고 하는 [야상곡 C# 단조]도 나온다. 이 영화에서 [야상곡 C# 단조]는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악몽의 ‘전’과 ‘후’, 즉, 악몽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똑같은 음악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본래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의 음악부장이었던 스필만은 방송을 통해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녹음하거나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운명의 그날도 스필만은 평소와 다름없이 스튜디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섬세한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바로 쇼팽의 [야상곡 C# 단조]. 느긋한 손놀림으로 달콤하고 로맨틱한 야상곡을 연주하는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앞으로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는 듯한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
쇼팽의 [야상곡 C# 단조]는 나른한 평화를 상징한다. 이 곡의 멜로디는 너무나 순진무구하게 로맨틱해서 오래 듣고 있으면 약간의 권태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앞으로 닥쳐올 대재앙 앞에 이런 로맨틱한 멜로디가 가당키나 한가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역시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몇 번의 폭발음으로 이 완벽하게 로맨틱한 평화가 일시에 깨지고 말기 때문이다. 대학살의 드라마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그 후, 스필만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의 시간도 결국 끝이 났다. 나치가 물러간 후, 스필만은 바르샤바 방송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예전의 말쑥한 모습으로 돌아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좋은 시절’에 그가 즐겨 연주하던 쇼팽의 [야상곡 C# 단조]. 음악을 연주하며 간혹 옅은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에는 악몽을 겪은 사람답지 않은 여유마저 엿보인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의 연주를 방해하지 않는다. 고통 끝에 다시 얻은 완벽한 평화. 영화 속에서 [야상곡 C# 단조]는 그런 평화를 상징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스필만은 친구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독일군 장교의 소식을 듣게 된다. 소련군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스필만의 이름을 대며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스필만은 그 독일군 장교를 돕는데 실패한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가 소련의 한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그를 구해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영화 [피아니스트]로 인해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처럼 ‘착한 독일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그 독일군 장교의 이름은 ‘빌헬름 호젠펠트(Wilm Hosenfeld)’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운명의 여신은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끝내 미소를 보내지 않았다. 빌헬름 호젠펠트는 그로부터 몇 년 후, 소련의 한 포로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아니스트 - 로만 폴란스키 감독 (영화 속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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