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7. 화요일. 날씨: 좋다
통화-집안-단동
[고구려 국내성에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과 장수왕을 만나다]

5시면 잠이 깬다. 민주와 권진숙 선생은 더 잔다고 아침을 안 먹는다더니 식당에 오지 않는다. 7시 30분 집안으로 가는 길에 게르마늄 판매점에 들려 상품관광을 하는데 살 게 없다.
집안은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라 고구려 유적지가 반, 사람이 반인 산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400년 넘게 고구려의 중심 도시였으니 집안 땅만 파도 유물이 쏟아져 나온단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중국 소수민족정권으로 규정해 역사 제국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중국 당국인지라 한국 사람들이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할 때 민감하게 반응해서 감시원들이 따라 붙는다. 많은 소수 민족이 있는 나라라는 사정이 있다 해도 너무 중국 중심으로 역사를 왜곡해 다른 민족 역사까지 자국화 하는 것은 아시아를 위해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심하게 말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위안부 만행을 사죄하지 않는 일본과 견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시아를 이끌어가는 나라의 정책으로는 너무 자국 중심이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싶다.
고구려 유적지가 모두 중국 땅과 북한에 있으니 발굴과 연구가 어려운 현실이라 북한이 제 몫을 다하고 남북한이 함께 역사 연구를 해야 할 까닭과 필요가 절실해간다. 나아가 아시아 나라들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평화의 역사가 필요하다.
광개토왕비와 동양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장수왕릉을 만나러 간다. 예전에는 모두 편하게 둘러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다 따로 돈을 더 받고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놓았다. 한민족 역사로 돈을 버는 중국이 역사는 철저하게 중국 역사로 엄격하게 관리를 한다.
아침 먹고 아이들이 켜놓은 텔레비젼을 보니 연변케이블방송에서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유심히 보니 당과 인민을 중심에 놓는 공산당 회의와 사업지도를 다루고 있는데 빈곤 탈출을 북돋는 지원과 사업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들 억양과 말투가 모두 서울 말씨다. 북한 사람들 말투와 비슷한 조선족 특유의 말은 없고 남한 말투로 뉴스를 보도 하고 있다. 남한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진 게다.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그렇게 바뀐 지가 3년쯤 됐단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비가 있는 유적지 가는 길이 온통 시계풀이다. 성범이가 네잎클로버를 찾아 행운의 연속이다. 광개토대왕비 1면은 건국신화, 2면 3면은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업적, 4면은 비를 지키는 사람들이 쓰여 있다. 3면 위쪽은 일본군이 지운 흔적이 남아있다.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되는 릉을 둘러보고 릉 위를 올라가 안에 들어가 보는데 5세기 천하를 호령한 무덤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흔적이 보여 씁쓸하다. 나오는 길에 2010년에 왔을 때 따먹은 오디가 이번에도 달려있다. 워낙 큰 뽕나무라 오디가 많이도 달려있다. 사람은 바뀌어 왔는데 뽕나무 오디는 그대로 사람을 맞아주는 셈인가.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쉬는데 성범이는 기념품을 산다. 동네 아이들 준다며 광개토왕비 열쇠고리를 사는데 들고 온 용돈을 다 쓴다. 원서는 고구려짬뽕이 생각난다며 삼족오 손수건을 샀다. 민주는 현서 준다고 기념품을 고른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장수왕릉을 보러 간다. 저 멀리 아버지 광개토대왕 무덤이 보이는 곳에 피라미드처럼 올라간 장수왕릉은 네 면에 아주 길고 큰 돌이 피라미드를 받치고 눌러주는 것처럼 서 있는데 한 면에 그 돌이 없다. 누군가 가져간 거란다. 균형이 깨졌으니 언젠간 균열이 가지 싶다. 그런데 장수왕릉을 가까이서 보니 고구려 건축 기술을 볼 수 있다. 아래돌 끝을 길게 판 뒤 그 위에 돌을 얹어 밀려나오지 않도록 하고 다시 길게 판 뒤 다시 돌을 올려가며 쌓는 식이라 대단히 튼튼해 보인다. 고구려 사람들은 평지성과 산성을 같이 연결하는 방식으로 성을 쌓아 공격에 대비했다는데 졸본성과 국내성터, 장수왕릉에서도 그 흔적을 보는 셈이다. 훌륭한 축조 방식으로 자랑할 만하다. 그러면 무엇하랴 그 강력한 성도 분열과 정세 판단의 잘못으로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긴 전쟁으로 국력이 소모된 것도 있지만 지배층의 분열과 배신, 둘레 나라들의 흐름을 잘못 읽는 순간 나라가 사라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노예가 되었다. 역사에서 현재를 살아갈 교훈을 얻으면 좋으련만 늘 역사는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옆쪽으로 능을 지키는 사람들 무덤으로 북방식 고인돌이 있다. 봄에 전라남도 화순에서 남방식 고인돌을 실컷 보고 공부를 한 아이들이라 아는 체를 한다. 고인돌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은 뒤 호태왕민속촌이라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단동으로 떠난다. 긴 버스타기 끝에 단동에 닿아 전에 밥을 먹은 식당에서 저녁으로 삽겹살을 구워 먹는다. 얼마나 잘 먹는지 함께 간 분들이 아이들 더 먹으라며 고기를 더 얹어준다. 아이들이 잘 먹어서 좋다.
중국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졸업여행 첫 날 묵은 단동철도호텔 그 방에 짐을 풀었다. 앗 그런데 호텔에 닿아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원서가 급하다며 화장실을 찾는다. 로비에는 화장실이 없어 방으로 서둘러 가야 해서 성범이랑 부리나케 타고 올라가는데 급하다보니 9층을 눌러 한참이 더 걸려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에 실수를 했다. 그러면 또 어떤가. 우리 원서 씩씩하게 옷을 갈아입고 잘 짜서 방에 널어놓는다. 쑥스러움을 감추면서 성범이 때문이라며 싱글벙글 웃는 원서 때문에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그런 실수는 어른들도 있는 일이라 모두 아무렇지 않다.

드디어 마지막 밤, 일찍 호텔에 와서 시간이 여유로워 압록강으로 간다. 첫 날 들린 압록강 철교가 보이는 곳까지 5분 거리다. 중국 사람들은 저녁 먹고 모두 공원에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다양한 문화를 즐긴다.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공산주의나라 사람들이 누리는 노동 시간과 저녁 문화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우리도 저녁이면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가듯이 중국 사람들도 그런 것이고 다른 거라면 모두 춤을 추든지 다양한취미 활동을 선보이며 즐겁게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뭐 하기야 우리도 공원에서 색스폰을 불거나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있다. 그래도 이런 모습이 저녁 문화가 되어 사람들이 웃고 춤추는 게 참 보기 좋다. 중국 사람들을 따라 춤을 추고 태극권도 따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데 압록강 건너편 북녘 땅은 어둡기만 하다. 조명이 비추는 압록강 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왼쪽 이어진 철교와 오른쪽 끊어진 철교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읽는다. 밤이라 철교 조명이 순간순간 네 가지 색깔로 바뀐다.
6.25 전쟁
6학년 장원서
남한과 북한이 싸웠다.
남한과 북한을 통일하고 싶다.
남한과 북한 같이 축구하고 싶다.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군옥수수도 사먹고 가는데 우리랑 같이 여행하는 어른들을 만났다. 역시 우리처럼 구운 옥수수를 들고 압록강 공원을 산책하고 들어가는 게다. 마지막 밤이라고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자고 한다. 중국말로 나오는 텔레비전이 뭐 재미있을까 싶어 보라고 했더니 축구하는 채널을 찾아본다. 그것도 잠시 피곤한지 금세 잠이 들었다. 이제 돌아갈 날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