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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밤 서울 양재동에 있는 횟집 ‘광어9900’. 총 74개의 테이블은 꽉 찼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입으로 회를 가져가고 있었다. 접시가 바닥나자 서슴없이 “회 한 접시 더요!”를 외친다.
광어(표준어는 넙치) 1마리에 9900원. 요즘 이런 9900원짜리 횟집이 성업 중이다.
광어 도매가만 해도 1kg에 1만~1만2000원인데, 한 마리당 9900원이라니? 싼 가격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중국산이라는 말부터 죽은 광어를 파는 것이라는 소문까지.
부경대학교 조영제 교수는 “광어는 우리나라 연근해의 수온에서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양식을 통한 광어 생산량도 4만3852톤이 될 정도로 양식 기술도 우리가 가장 앞선다”며 “따라서 시중 유통되는 9900원짜리 광어는 국내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6개월 자라면 500g짜리… 도매價 5000원
죽은 생선을 팔 수도 없는 일이다. 생선은 죽은 뒤 2~3시간만 지나면 내장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회를 떠도 비린내가 심하고 맛도 변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왜 유독 광어가 싸게 팔릴까. 양식기술이 뛰어나고 환경도 적당해 다른 어종보다 생산량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한 마리당 얻을 수 있는 횟감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광어는 몸집에 비해 머리와 지느러미가 작아 횟감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값이 싼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싼 광어를 파는 횟집은 500g 정도의 작은 광어를 팔기 때문이다.
9900원 광어의 유통은 양식장에서 시작된다. 광어는 6개월 정도 자라면 500g정도가 된다. 횟감으로 인기 있는 3kg 정도 크기로 자라려면 3년 이상이 걸린다. 치어를 대량으로 양식하는 양식장에서는 다 자라지 않은 광어들도 내다 판다.“작은 광어를 적당히 솎아 주어야 다른 광어들이 더 크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이 양식장을 운영하는 안일호씨의 말이다. 이는 저렴한 광어회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수요와 맞아떨어지고, 이렇게 해서 ‘작은 광어’들이 유통되는 것이다.
양식장에서 나온 광어는 직판장으로 모인다. 현재 9900원짜리 500g 광어 1마리의 도매시세는 5000원 정도. 5000원짜리 광어 1마리가 횟집에서 9900원에 팔리는 셈이다. 고급 횟집이나 일식당의 경우 전채에서 후식까지 수 많은 밑반찬과 추가 음식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9900원 횟집’에선 약간의 야채와 조금의 밑반찬이 나올 뿐이다. 최소한의 경비만 들어가기 때문에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7년째 ‘광어9900’을 운영하는 이권식씨는 “지난 7월 매출은 2억원”이라며 “하루에 100마리 정도 팔리는 광어 가운데 70%가 9900원짜리였다”고 말했다. 결국 9900원짜리 광어가 소비자 유인 효과를 거둬 다른 해산물이나 더 큰 광어를 팔게 되면서 이익도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광어는 무게의 30~40% 정도를 회로 얻을 수 있다. 500g짜리 광어 1마리에서 나오는 회는 200g 정도라는 얘기다. 손님 김영숙씨는 “친구 한두 명과 소주 한잔하기 딱 좋은 정도의 양과 부담 없는 가격 때문에 자주 찾는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수산시장에선 광어는 800g이 넘어야 횟감으로 팔려나간다. 고급 일식당의 경우 2.5kg 이상의 광어를 사용한다. 큰 광어일수록 더 많은 살이 나오고 맛도 좋다고 한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이승기씨는 “과일과 마찬가지로 생선도 일정 크기가 돼야 쫄깃하고 고소한 회 고유의 맛이 우러나온다”고 설명했다.
“양식기술 좋고 생산량 많아… 국내산”
고급 일식당의 경우 1조각의 무게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정통 일본식당 주방장인 한상호씨는 “1조각에 12g, 1인분에 10조각이 나오도록 한다” 고 말했다. 크기 또한 일정하다. 인터컨티넨탈호텔 일식당의 주방장 김동주씨는 “두께 2~3mm, 길이 6cm, 폭 2cm로 유지해야 광어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9900원 횟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박준언씨는 “미식가가 아닌 이상 일반인은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활어유통업에 종사중인 이주선씨는 “싼 것도 있어야 돈 없는 서민들도 회를 먹을 수 있다”며 “김치에 소주를 마시던 서민들도 광어회를 안주 삼아 마실 수 있는 시대를 ‘9900원 횟집’이 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