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의 마지막 말은,
우리가 만약 악인이라면 정말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면,
아무리 들어도 소용이 없는,
그런 메시지였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그것이 참으로 옳은 말이지만,
욥에게는 허무한 메시지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한번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 편에 서 있기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길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늘 하나님 편에 서서
스스로를 돌이키고
조심하며
대속의 제사를 드리던 사람입니다.
욥의 괴로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되는 현실이
다만 고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와 같이 여기신다고
느껴지는 고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엘리바스의 말을
그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빌어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욥 23: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욥 23:2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욥 23: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욥 23:4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욥 23:5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엘리바스의 말에 대한 답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으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만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만 있다면,
욥 23: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왜냐하면, 욥은 정말 이것 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욥 23:7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욥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가 들리십니까?
욥은 스스로를 정직하게,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욥의 생애를 통해서,
또 [욥 1-2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직함을 인정하시고
원수와 같이 여기시던 것을 멈추실 것인데,
문제는,
욥 23: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욥 23: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욥은, 엘리바스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숨어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방 팔방 어디를 향해 가도
만나뵐 수 없었습니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단련[בחנני] : ① 조사하다, 시험하다.[시 81:8; 95:9-10, 말 3:10] ② 검증되다.[창 42:15, 욥 34:36]
이 말씀은 지금까지 말씀을 볼 때,
결코 “단련”이라고 해석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욥이, 지금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단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로 대하고 계신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시는 분께서
고난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신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는 것이지요.
단련은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금을 만드는 것인데,
욥이 스스로 느끼는 현실은 그것이 아니라,
원수로 여기시며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이 가고 있는 길을 아시니까,
욥을 시험하고 검사하시면
욥이 정금과 같다, 그 경건함이 순수하다는 것을
확인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말을 보면 더욱 분명하지요.
욥 23: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욥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그러니,
“주께서 지금은 비록 원수처럼 대하시지만,
나를 시험하시면, 나를 검사하시면,
내가 순금과 같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자신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일하심은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욥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신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과연, 보시고 인정하실 것인가에 대해서는
불안했습니다.
욥 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욥 23: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 23:15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하나님의 주권 앞에,
확신할 수 없어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욥의 두려움은,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습니다.
욥 23:16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욥 23:17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고난과 아픔과 형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어둠이나 흑암이 얼굴을 가리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두렵게 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 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원수와 같이 여기시는 것
그것이 사실 욥이 두려워하는 본질인 것입니다.
욥은 엘리바스의 마지막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모두 막힌 현실을 보았습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처럼 대하신다고만
느껴지는 답답함 속에 있습니다.
언제까지 욥은 이런 답답함과
두려움 가운데 있어야 할까요?
그러나, 욥은 알지 못하지만,
아주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욥을 원수와 같이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으로 행하실 때에도,
결코 “억울한 판결”을 내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욥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걸고 일어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이 길은, 사탄의 충동에 의해서 걷게 된 길이지요.
욥을 대적하고, 욥을 원수와 같이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입니다.
욥의 경건이,
그 경건의 실체가
참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있음이
확인되는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끝없는 고난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밝히 드러나는 길을,
사실은 욥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 길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걸어가게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주님 가신 길을 같이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 앞에 기도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욥은, 이 고난의 까닭을 알 수 없기에,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와 같이 여긴다고만 생각되었기에
하나님의 주권 앞에
그 길을 벗어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이 그렇지 않음을
[욥기 1-2장]의 말씀 속에서 그리고
이 길 끝에 서 있는 욥의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 미리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으시는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결국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며
주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실 것을 기대하며,
오늘, 주님께서 걸어가라고 하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그 길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https://jichun83.tistory.com/entry/욥기-23장-1절로-17절 [날마다 성경을 알아가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