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물머리에서 만난 봄눈별님이예요, 저는 자연의 신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런 자연의 신들이 두물머리에는 많아요, 아마도 두물머리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의 신들이 되어 갈지도 모르죠, 이 자연의 신들은 처음에는 대금소리에 가까운 피리소리로 다가왔어요, 첫날 밤, 밤 늦게까지 담소를 나누며 술자리를 나누는 우리에게, 내일있을 행정대집행을 상기 시키며, 피리를 불었어요, 부드러운 종용의 의미같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PVC파이프로 만든 아프리카피리였어요, 소리는 대금하고 비슷했는데, 더 부드럽고, 맑았어요, 지금 만들고 있는 악기는 역시 아프리카악기인데, 이름은 어려워서 모르겠고,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해서 엄지손가락악기예요, 행정대집행 한고개를 넘고 낮더위에 널브러져 있는데, 봄눈별님이 이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느낌, 다음날 아침 산책때 부터는, 이 악기를 들고 행진했어요, 아무렇게나 연주해도 소음이 되지 않는 악기예요.

봄눈별님이 그려준 두물머리, 이때부터 두물머리가 제게 말을 걸어 오는 걸, 조금씩 자각 할 수 있었어요, 봄눈별님은 그냥 색연필을 들고 쓱쓱 그려 나갔을 뿐인데, 두물머리에는 생명의 나무와 생명의 강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두물머리 사령탑 아래 뜨거운 더위에 지쳐 잠시 눈감은 소년, 스물살이래요, 어머니 뱃속에 있던 태아시기에 개인적인 이유로 방사선사고를 입은 듯, 영화 'elephant man'을 생각나게 했어요, 어머니 두물머리가 가장 애처롭게 생각하는 아들같아요, 그래서 그를 불렀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는 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 경북 영주에 사는 권진성 녹색당원이예요,

텐츠촌에서 미사터까지 밥먹으러 걸어 가는 길에 만난, 두물머리 하우스위로 빛나는 저녁하늘이예요, 그냥 아름다워서 찍었는데, 하늘인 아버지는 두물머리 하우스를 이렇게 빛나게 하네요,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우스를 마치 치워 버려야 할 쓰레기처럼, 촬영한 사진들을 보았는데, 가슴 아프더군요,

두물머리에는 이곳의 소리없는 영웅들 수만큼이나 강 가에 드문 드문 이런 갯버들이 자라나 있어요, 아마도 이 나무들이 소리없는 영웅들을 불렀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느껴지는 분도 이 나무 아래서 만났어요, 나무 아래 혼자 앉아 계셨어요, 강을 바라보며, 초록빛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고독해 보였지만, 아름다웠어요, 詩론에 절대 고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이런 고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종교에서는 독대獨對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막힌 운동화를 신고 간 아이 발등에 땀띠가 나서, 먼저 실험 삼아 맨발 벗고 땅을 걷는 저를 보시더니, 고개를 돌려, 뜨거울 텐데, 한마디 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무한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느낌, 마치 미니 스커트입고 외출하는 딸에게, 너무 짧은 거 같은데, 한마디에 존중과 신뢰와 염려를 담아, 밖으로 나가던 딸이 도로 들어와 옷을 갈아 입고 나가게 할, 그런 힘을 가지신 분!
저도 마흔이 넘었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가끔 누군가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을 때 있어요, 남편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사는 게 너무 불안스러울 때, 이때 아버지가 계셨으면, 하고 서럽게 울고 싶을 때, 있어요, 그런 제가 안쓰러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보내 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몇 미터 앞에 두고, 시공을 초월해 아버지가 느껴 지시는 분!

이시돌아재예요, 전생에 우리 옆집에 사신 아재, 처음 뵜을 때, 삿갓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오다 가다 스쳐 지나가시는데, 정말 옆집에 늘 함께 사시는 분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한번도 만나 적이 없는 분인데, 그래서 전생에 우리 옆집에 사신 아재, 이렇게 말을 건넸어요, 소리없는 영웅들 중 한분인 거 같아요, 다른 분들은 너무 로맨틱하셔서 꼭 꼭 숨겨 놨어요, 금방 사랑에 빠질까봐, 등짝에 붙은 ,유기농지보존띠를 안보이게 찍을 려고, 너무 전쟁 분위기가 나서, 요리 조리 애써 봤는데, 결국 함께네요, 언제가 저 띠를 훌훌 벗어 던진 곳에서 다시 아름답게 해후하겠죠, 시공을 초월해 함께 사시는 분!

안개꽃을 닮은 개망초꽃 숲풀 속의 나무 십자가, 미사터에는 여러 개의 마른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어요, 마치 6.25전쟁 당시, 급박한 전쟁 속에 전우의 주검을 기리기 위해 세운 나무 십자가를 연상케 해요, 저 십자가 나무 아래에는, 제가 살고 있는 아흔이 넘은, 병원에 요양 중인, 이 집 주인할머니의 농약 먹고 자살한 아들도 잠들었을까요, 그래서 술과 도박의 삶을 연명하는 그 아들의 아들을 위해 부활 하실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두물머리의 회의 모습이예요, 행정대집행 고비를 넘긴 바로 다음날, 아침 산책을 마치고, 미사터에 모였는데, 아재들이 이제 우리 식구들만 남았네, 하셨어요, 왠지 기분이 좋았어요, 유영훈님이 몇 마디 하시자, 모두 자연스럽게 의자를 둥글게 놓고 회의가 시작되었어요, 또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렇게 민주스러운 회의를 만나다니!

나무에 기대 쉬고 있는 지게, 내 어릴적 옆집 아재, 동네 아재들이 무겁게 지고 다니던 지게예요, 이 지게엔 나뭇짐도, 쌀가마도, 볏단도, 똥장군도, 실렸어요,
똥장군, 우리집은 아버지가 아파 누워 계셔서, 늘 동네 아재들 손을 빌려야 했는데, 재래식 변소가 가득 해지면, 아재는 그걸 서양의 포도주 만드는 통같이 생긴 통에 가득 담아, 들에 옮겨 삭혀 그름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어요, 두물머리에는 로맨스조라는 자연의 신이 만든 생태 화장실이 있어요, 저도 쳐다만 보고 앉아 보진 못했는데, 언젠가는 서양의 포도주처럼 잘 숙성된 아름다운 거름이 태어 날 거예요,

두물머리 사람들 중, 다른 곳으로 이주해간 분이 쓰시던 농사 막사에 놓인 탈곡기예요, 제가 어렸을 땐, 집집 마다 하나씩 있던, 지금은 모두 쇠로 만든 것을 써요, 어디 박물관가면, 무슨 물건이던 박제된 것처럼 유리벽안에 갇혀 있어 슬픈데, 우리의 아이들이 이 기구를 돌려 보며, 농사의 신비를 체험하기를, 그래서 아이들이 대대손손, 農者天下之大本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이 두물머리가 이 세상의 잃어 버린 노동의 신성을 회복하는 세상의 머리가 되어 날아 오르길, 간절히 바래요,

두물머리야생화예요, 두물머리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래서 두물머리야생화예요, 얘는 그냥 이곳을 대표해서 인사하는 거구요, 더 많은 친구들이 인사가 하고파 어쩔 줄 몰라 한답니다, 두물머리에는 농사와 자연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었어요, 그 사잇길로 아재들이 여행을 시켜 줬어요, 앞으로 이 세상이 가야 하는 길!

미사터에서 미사를 마치고, 알수 없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고 돌아 서는데, 눈 앞에 아프리카가 펼쳐 졌어요, 바로 봄눈별님 때문에, 친구들이 직접 물들인 머플러를 두르고 모델이 되어 있었는데, 마치 제가 아프리카로 초대 받은 듯 했어요, 지금은 여름이라 아프리카지만, 가을이나 다른 계절에 가시는 분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겠죠, 저는 연한 쑥빛 머플러를 선물 받았어요,

텐트촌과 식사 농막을 오가다, 바이올린 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 졌어요, 초록 바이올린, 아직 연습이 덜되었다며, 연주가의 연주를 문화제 시간에 들을 수는 없었지만, 두물머리는 느닷없이 제가 보고 싶은 풍경들을 펼쳐 보여 주어서, 감동의 물결이 밀려 오게 해요, 저 지게도 얼마나 행복할까요, 자연과 음악과 예술과 함께하는 농사의 삶!

미사터와 식사농막 사이에 놓여 있는 초록 긴의자, 전날 저녁 이 자리에 누워 바라본 별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음 날 만난 두분께 앉아 보라고 했어요, 한 분은 이현주전국녹색당원, 한분은 경기도녹색당원이세요,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저 양수대교위를 지나는 문명과의 거리가 느껴져요, 잠시 아득하게 슬퍼졌다가, 사라져요,

이제는 헤어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연과 인간과 삶이 공존하는 그런 길로 모두 걸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존재들이, 애증으로 서로에게 낸 상처가 아물고, 내가 만난 이제 2개월된 듯한, 어머니 두물머리의 잉태가 유산되는 슬픔은 없기를, 쑥쑥 자라 아름다운 출산을 하기를!
끝
첫댓글 아름다운 영혼만큼이나 아름다운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