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겨자씨 시나피 - 겨자는 배추과의 일년생 또는 이년생 풀로서, 씨가 많고 향기롭기 때문에 양념과 약재로 사용되며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이용된다. 겨자씨는 다른 모든 씨앗 보다 작은 것이지만 생장력이 대단하여 보통 1m 정도로 크게 자라며, 특히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약 3m 가량 자라 마치 나무처럼 무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 중에는 그것을 정원수로 심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겨자씨를 예수께서 천국에 비유하신 것은 겨자씨가 지니는 몇 가지 특성 때문이다. (1) 은밀성. 겨자씨의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성장해 나간다. 마찬가지로 천국은 확연히 노출되지 않은채 조용히 성장해 간다.
(2) 확장성. 겨자씨와 마찬가지로 천국이 비록 현재는 미약하고 보잘 것 없게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나중은 창대해질 것이다. (3) 변화성. 겨자씨는 크기에 반해 놀랄만한 변화를 남긴다. 마찬가지로 천국은 그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아주 작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크고 놀라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지극히 작은 시작과 성숙한 끝맺음의 유기적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실로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고대하는 바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크고 웅장하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예수의 사역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임하였다.
또한 살아있는 씨앗처럼 생명력을 가진 복음의 결과로서의 교회는 예수 - 12제자 - 120문도에 의해서 발전되어 현재는 온 인류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되었다.
[마 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모든 씨보다 작은 것 - 예수께서 비유로 사용하신 검은 겨자씨는 비교급 '미크로테론'이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작은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 '보다 작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당시 유대 격언에서는 가장 작은 것을 의미할 때 '겨자씨 만큼 작은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그 크기는 매우 작은 것으로 공동 인식하고 있었다
더욱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씨의 크기가 아니라 씨의 결과인 나무의 크기이다. 공중의 새들 - 겔 31:6과 단 4:12에서의 '공중에 나는 새'는 하늘까지 닿은 나무로 상징된 '대제국 앗수르'의 속국들과 '대제국 바벧론'의 속국들, 곧 제국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모여드는 많은 나라와 그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겨자씨 비유에서의 공중의 새들은 겨자 나무, 곧 천국의 실체가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가를 보여 주는 존재들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을 영적으로 좀더 확대 해석하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볼 수 있다. 즉 고통에 지쳐 평안과 안식을 갈망하며 쉴만한 곳을 찾는 인생들.
이들은 참 포도나무요 생명 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깃들이느니라 - 천막을 가리키는 말은 '스케노마'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살다' '거주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스케노오'와 '아래', '밑'을 가리키는 전치사인 '카타' 의 합성어로서,
'장막을 세우다', '장막에 들어가다', '진을 치다'의 의미로 민 14:30; 신 33:12; 시 16:9에 의하면 안전하고도 영속적인 거처를 마련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행 2:25에 인용된 시 16:8에 의하면 부활 이후의 삶을 가리키기도 한다.
겨자씨 비유에서의 새의 깃들임도 역시 새들이 단순히 가지 위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날아가 버리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검은 방울새와 홍방울새와 같이 겨자나무에 떼를 지어 지속적으로 깃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본 누룩 비유는 해석상 여러 견해가 전해진다. (1) 부정적 측면에서, 여자를 악한 존재, 곧 이세벧, 큰 음녀 등으로 이해하여 가루로 표현된 교회의 순수성을 변질시키는 누룩으로 보는 것이다 (2) 긍정적 측면에서, 교회의 지역적 확장 내지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위력 등으로 이해한다.
물론 두 견해 모두 그 타당성이 있으나 두번째 견해가 더욱 적절할 것 같다. 여자가(귀네) - 누룩의 헬라어인 '쥐메'와 대구를 이루도록 선택하신 예수의 의도를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단어이다.
한편 남자의 활동이 앞의 겨자씨의 비유에서 처럼 외적 성장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여자는 본문에서의 누룩의 역할과도 같이 집과 교회와 다른 여러 사회공동체 속에서 그 활동이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그 사회를 놀랍게 변혁, 성장시키는 내적(內的)인 변화를 가져온다.
가루 서말- NIV성경은 가루 서말을 '많은 양의 가루'라고 번역하였는데 아마도 가루 서말이란 여인이 하루에 빵을 구울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의미하는 데서 표현된 말일 것이다. 여기서 '말'을 뜻하는 '사타'는 히브리어로는 스아이며 에바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따라서 '서말'은 1에바로서 약 22-23리터에 해당된다.
이것은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사자 세 사람을 대접하기 위하여 준비한 분량이나,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무교전병 만들어 드린 양, 사무엘의 모친 한나가 그를 여호와께 드릴 때 제물로 가져가던 소제의 양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 1오멜로 하루를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하루서말의 분량 1에바는 10오멜에 해당하므로 아마도 가족 9-10명의 하루 세끼 분량의 음식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누룩과 같으니라 - '끓어 오르다', '끓이다'의 뜻인 '제오'에서 유래한 말인 '쥐메'는 누룩, 효모를 가리킨다.
성경에서의 누룩은 보통 교만이나 죄된 욕망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대적자들의 가르침 속에 있는 부패하고 썩게 하는 요소를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의 예수의 비유 속에서의 누룩의 의미는 그것의 부정적, 긍정적 결과의 중요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낳는 놀라운 변화력과 정복 능력에 있다.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말을 모조리 부풀리듯이 보잘 것 없이 시작된 천국 복음은 세상 곳곳을 묵묵히 정복해 들어가 그곳의 많은 사람들을 죄된 욕망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진정한 변화의 요인이 되었다.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비유가 아니면 ...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 말씀하지 않았다는 뜻의 동사 '엘랄레이'는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과거의 단 한 번의 동작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형과는 달리 습관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말이 ' ... 을 제외하고', '밖에'라는 부사 '코리스'와 연결됨으로써 본문이 예수께서 오로지 비유로만 이야기하고 다른 말씀은 전혀 하시지 않았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를 통해 볼 때, 그분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비유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본문은 단지 그날은 '천국'을 이해시키고 깨닫게 하기 위해 특별히 비유로만 말씀하셨다고 하는 해석이 더욱 적절하다.
[마 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선지자로 -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바'라는 의미로, 어떤 사본에 의하면 선지자라는 말과 더불어 '이사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인용문은 시 78:2에서 인용한 것으로 저자는 '아삽'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이 선지자는 이사야가 아닌 아삽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사실 대하 29:30에 의하면 히스기야왕은 아삽을 선견자로 부른 적이 있었다. 한편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의 치하에서 찬송의 책임을 맡았던 베레갸의 아들로서 시편 중 12편의 뛰어난 시를 지었다. 그의 이름은 헤만과 여두둔과 함께 다윗의 세 악사로서 언약궤를 에벧에돔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특별히 여두둔과 아삽은 왕의 선견자라고 불리웠댜. 내가 ... 비유로 말하고 - 이를 원문에 좀더 가깝게 해석하면 '내가 다른 일들과 비교해 가면서 말하고'가 될 것이다. 창세부터 - 이는 '밑으로'의 뜻인 '카타' 와 '던지다'의 뜻인 '발로'의 합성어로서 '기초', '창건', '시작'을 뜻하는 말인 '카타볼레'의 소유격이다.
따라서 '창세부터'라는 말은 '세상 기초가 놓여지던 때부터'의 의미를 나타낸다. 구약에서의 이 말은 '옛부터 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70인역에서는 '태초로부터로 번역되었다. 한편 어떤 학자에 의하면 시 78편의 문맥이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창세부터'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추인 비밀은 바로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의지와 뜻이므로 어느 특정된 한 민족과는 관계없이 인류를 창조하실 때부터 계획되었던 것일 것이다. 감추인 것들 - '수수께끼', '가려진 말'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히도트'와 같은 말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소극적 의미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게 하기 위하여 숨긴 것이라고 하는 적극적 의미가 잇다. '
창세부터 감추인 것' 또는 '옛 비밀한 말'(시 78:2)은 바로 구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위들이며 과거의 사건들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크고 깊은 영적 가르침이다. 이것은 이제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밝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전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시는 계시자인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 이미 예언, 선포되었던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시는 완성자가 되신다.
드러내리라 - 감추인 것을 가리키는 말인 '케크뤼메나'가 본래 사람이 은밀하게 선언한 것을 의미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에르소마이'는 '선포하다', '크게 말하다'의 뜻으로 거칠고 큰 한 마디의 '말을 토해 내다', 강물이 콸콸 소리내어 흐르듯이 열정적인 마음으로 '연설을 하다'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삽이 비유를 통하여 유대의 지나간 역사와 사건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발표했듯이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대제사장,
서기관 등의 교권주의자들에게는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고 하는 '시대'의 비밀을 군중들에게 밝히 계시하셨다. 더구나 이 비밀들은 서기관이 율법을 가르치듯이 말씀되지 않았고 마치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을 받아 그 감동 속에서 진리를 선포하듯이 권위에 찬 음성으로 선언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