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바다 2024년 봄호에서 부분 발췌)
▣ 시평
외눈 밖의 섬
지구는 한 방향으로 외눈이다 외눈의 시야는 편협에 가까워서 겹겹이 베껴 쓴 사막의 모래층, 해독이 난해한 달필의 메모지 같다 태양이 해바라기의 길벗인 것도 손등과 손금의 고독한 연대일 뿐 항상 제자리인 나선형의 경로를 표절한 시간적 궤적을 추적해 보지만 모로 누운 섬의 정원은 점점 황폐해져간다
시차를 달리하는 다변적 달과는 달리 녹슨 흙비에 젖은 외눈의 가시거리 안팎, 빛의 농도는 근시안적 착시로 가파른 해안선 모서리 말리듯 사막을 횡단하는 오아시스의 민낯 같아서 황급히 늙어가는 목주름처럼 수분이 말라버린 미라의 전설일 뿐
테이블 위에 놓인 탄소중립
불가능을 먹고 사는 인공지능 긴급 처방에도
굴뚝의 원성은 지혈을 멈출 재간이 없다
문득 어렵사리 홍해를 가로지른
히브리 백성들 어디에 불을 댕겨야 할지
가나안은 부재중인데
— 송병호 「외눈 밖의 섬」 전문
몰아沒我, 다시 경로를 탐색하다
박성현 / 시인 / 문학평론가
송병호 시인은 인류의 기원인 ‘지구’를 “한 방향으로 외눈”으로 비유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종종 등장하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와 묘하게도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관점에서 지구는 “편협에 가까워서 겹겹이 베껴 쓴 사막의 모래층, 해독이 난해한 달필의 메모지”와 같다.
태양이 해바라기와의 유사성을 강조하면서 ‘길벗’이라 아무리 강조해도, 그것은 결코 대칭되지 않는 “손등과 손금의 고독한 연대”이다. 시간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도 무의미에 가깝다. 외눈의 지구는 이미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46억 년을 한 방향으로 맴돌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폭발하지 않는 한 유한자에게 그 시간은 영겁이고 무한이다.
반면, 항상 외통에 몰리는 지구와는 달리 달은 시차를 달리하면서 끊임없이 모양을 바꾼다. 스스로 이미지를 생성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달이 그 자체로 신비한 이유는 다변의 표정 때문이다. 대낮에도 나타나고 어느 날은 팽팽하게 부풀었다가 또 어느 날은 갈고리처럼 기울어진 채 허공을 꿰맬 때도 있다. 샛노란 구체는 수많은 주름을 가지고 있으며 순간순간 다양한 의미들을 포획한다. 이른바 달은 의미의 다양체다.
시인은 잠시 외눈을 향한 마음의 높이를 지우기로 한다. 지구의 입장으로 세계를 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에포케’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다. 이것은 신의 눈을 가진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매번 해무에 갇힌 등대처럼 “흙비에 젖은 외눈의 가시거리”에 맞닥뜨린다. 시계 제로에 가까운 눈이다. 여기서 ‘빛의 농도’는 무기력해지는바, 차라리 “수분이 말라 버린 미라의 전설”을 읽는 듯한 이 ‘근시안적 착시’가 외눈의 절대적 실존임을, 그래서 지구는 자신을 제외한 체내의 그 어떤 사물도 영원으로서 정립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입장-의-전환’에도 불구하고 외눈박이 지구는 불편한 운행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다. 다시 말하자. 인간은 오로지 인간의 포지션에서 지구를 포획하고 있을 뿐인바, 어쩌면 지구는 인간에 대해 지나칠 만큼 무관심한 것일지 모른다. 자기 외에는 도무지 시야에 두지 않는데, 그것은 마치 바다가 하나의 모래 알갱이가 들고나는 데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과 같다.
물론 그 모래가 바다를 오염시킬 수도 있다. 탄소중립은 절실하고 빙하는 복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뚝의 원성은 지혈을 멈출 재간”은 없어보인다. 인간의 이기利己와 탐욕이 오히려 외곬이다. 외눈이고 편협이다. 때문에 인간이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증발한다 해도 지구는 애도하지 않을 것이며 그 영겁의 운행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구의 시선은 항상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먼 우주로 향한다. 그것이 지구의 마음이다. 인간과는 다른 마음 그 자체의 순수함이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시인은 스스로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어렵사리 홍해를 가로지른 / 히브리 백성들”은 “어디에 불을 댕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나안’으로 명명한 지구는 허상으로서 상시 부재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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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 2009년 <중앙일보> 등단.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