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으로 접은 종이학]
1
아이는 운동장 가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안녕..” “안녕..”
아이의 눈 아래에는 개미들이 조그마한 구멍을 들락날락거리며서로 더듬이를 부딪치며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여어~친구..저쪽에 싱싱한 파리 한 마리가 있어.”
“어~ 파리? 이번에도 날지 못하는 건가?”
“응..게다가 우리가 잡기 쉽도록 잘 뛰지도 못해.”
“요즘 꿈자리가 좋더라니..잠깐 기다려..다른 친구들도 불러올 테니.”
잠시 후 개미들이 삼삼오오 모여 파리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파리는 개미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고 통째로 개미집 속으로 끌려들어갔습니다. 그제야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털고 일어섰습니다.
“거기서 뭐 하고 있니?”
아이는 선생님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다소곳이 서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아야지..”
선생님은 아이의 보름 넘게 감지 않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운동장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둘로 나뉘어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축구 잘 못해요..”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께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랑 종이접기 할까?”
선생님은 양털구름보다 하얀 미소를 보이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2
“학을 천 마리 접으면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이룰 수 있단다.”
교실에 들어와 선생님은 아이에게 학 접는 방법을 알려주며 말했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을 따라 색색별로 학을 접어 보였습니다.
“야~ 너 종이접기 잘 하는 구나.”
아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순식간에 몇 개의 학을 더 접어 보였습니다.
“대단한 걸..너 종이접기 누구한테 배웠니?”
아이는 대답 대신 얼굴을 자두처럼 붉혔습니다. 아이는 집나간 엄마에게 배웠다는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무 말 않고 햇살 같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3
아이는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림을 그려도 노래를 불러도 글짓기를 해도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선생님이 준비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선생님과 나누어 먹었으니 말입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웬만한 잘못을 해도 언제나 다정하게 다가와 아이의 편이 되어주었습니다.아이는 수업이 다 끝나고 선생님과 나머지 공부하는 시간이 더 좋았습니다. 일부러 어렵지도 않은 산수 문제를 틀려 선생님 옆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꿈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들 집에 가져가서 보아라.”
어느 날엔가는 선생님들이 보는 교사용 전과들을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는 그 날부터 선생님이 주신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아이의 한 쪽 어깨가 기울어질 정도로 무거웠지만 말입니다.
4
“여러분들..다음 주말에 3박 4일로 극기 훈련에 가야 하는 것 알고 있죠?”
종례시간에 가정통신문을 나누어 주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예!”
아이들이 합창하듯 우렁차게 대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교실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상태가 되더니 곧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를 제외하곤 말입니다.
“저..선생님..저는 극기 훈련에 가고 싶지 않은데요.”
아이는 무겁게 젖은 말투로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이름 벌써 올렸는걸. 선생님은 너도 함께 가는 걸로 알고 있어.”
선생님은 유리창처럼 투명한 미소를 아이에게 띠우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뭐라 말을 하려는 데 선생님은 예의 따스한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5
"여러분들 눈을 감고 부모님을 떠올려 보세요.여러분들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 때 언제나처럼 여러분들 곁에 계셔주지 않았나요? 그동안 여러분들은 부모님이 늘 가까이 있기에 그런 사랑이 어떤 건지 몰랐을 겁니다. 자..지금쯤 부모님이 뭘 하고 계실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려보세요. 아마 부모님께서는 밥은 제대로 먹나, 어디 아픈 데는 없나 하고 걱정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자..그런 부모님을 위해 그동안 잘못한 일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이후 어떻게 잘해드려야 할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극기 훈련을 마치고 난 후, 캠프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회자가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엄..마..아..”
곧이어 친구들의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친구들의 볼에는 촛농처럼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뭔가 차오르는 것이 있긴 했는데 애써 그걸 억누르며 참아냈습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입술을 사려 물었습니다. 아이는 주체할 수 없이 가슴에 차오르는 이것 때문에 극기 훈련에 오지 않으려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조금은 선생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전세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아이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장실에서 주은 면도칼로 개미집에서 나오는 개미들을 반토막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선생님이 싫어진 까닭이었습니다. 갑자기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까닭이었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겨우 집결장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선생님의 가벼운 꾸지람을 듣자 아이는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쳤습니다. 돌아서 있는 아이에게 몰래 다가가 면도칼을 들이밀며 놀리는 장난이었습니다. 친구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어느 정도 기분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아이가 내미는 것에 놀라 아이가 쥐고 있는 면도칼을 손으로 내려쳤습니다. 금세 친구의 손바닥에서는 새빨간 피가 흘렀습니다.
6
출발시간을 미룬 버스 앞에서 언제나 웃으시던 선생님이 울면서 아이의 등짝을 때렸습니다.
“왜 이런 장난을 쳤어! 이런 못된 녀석..이런 못된 녀석..!”
아이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펑펑 울었습니다. 너무 울어 선생님과 아이의 눈두덩이 감자덩이처럼 오도동 부어올랐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이 더욱 자신을 때려주었으면 했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선생님이 불러도 다가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과 아이간에 적당한 거리만큼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종이학 천 마리를 모아 놓은 상자를 선생님 책상에 몰래 올려둘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종이학 한 마리, 한 마리 속에는
“선생님 죄송해요”
라는 글씨가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엄마라고 불러도 되요?”라는
아이의 소망과 함께.
- 끝 -
* 김경희 선생님! 너무 보고 싶습니다!
* 2006년 스승의 날에.
첫댓글 아름다운 글.
어린시절을 되돌아보게합니다..고맙습니다
음....
자신의 히스토리를 이렇게 담백하게
표현 했네요...좋아요~
지금이라도 김경희 선생님 찾아 보세요
요즘은 교육청에 싸이트에 들어가면
은사 찾아주는 챕터가 있어서 현직에
계시다면 찾을수 있을거예요~
저도 어제 은사님들께 찾아뵙지는 못하고 문자만 드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