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알고 있었고 일본은 독도를 노렸다
97년 12월의 겨울 어느날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주 「아카뎀 고로독(Akadem Gorodok; 과학단지)」내 러시아과학원 소속 무기화학연구소(Institute of Inorganic Chemistry) 소장실. 이 연구소의 블라디미르 쿠즈네초프(Vladimir Kuznetsov)소장은 한국에서 건너온 한 과학자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소장은 창밖으로 영하 30도를 밑도는 시베리아의 강추위와 허벅지까지 쌓이는 눈밭을 바라보면서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문을 열었다.
『프로페서 박(Professor Pak), 우리 연구소는 당신의 연구 성과를 인정해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문을 연 지 40년만에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학문적으로 우리와 동반자가 됐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귀국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천연가스 연구와 개발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입니다』
그러면서 쿠즈네초프 교수는 서랍에서 부피가 그리 크지 않은 서류 뭉치를 꺼내더니, 한국의 과학자인 백우현교수(진주 경상대 화학과)에게 건네주었다. 서류를 펼쳐본 백교수는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러시아측이 파악한 전 세계 「가스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s;이하 하이드레이트로 통칭)」에 대한 기초 자료였고, 놀랍게도 한국의 동해바다 한 지점에 붉은 색으로 하이드레이트 분포 추정지역임을 분명히 표기하고 있는 지도도 들어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하이드레이트. 그러나 에너지 자원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만한 21세기의 신에너지자원으로 주목받는 물질이다. 화학적으로는 물분자들 내에 메탄분자가 포획된 일종의 셔벗(sherbet)과 같은 결정체인데,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를 가리킨다.
화학자인 백교수는 하이드레이트 세계 분포도와 함께 건네받은 또 다른 서류에서 말로만 듣던 러시아산 하이드레이트 결정체에 대한 중요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나지막한 신음을 뱉고 말았다. 그것은 화학자로서도 도전해볼 만한 자극제였다.
90년 9월 한러수교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러시아에 진출, 학자들과 학술적 교류를 맺어온 백교수는 처음으로 러시아측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물을 받았던 것.
하이드레이트 있으면 천연가스 존재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같은 영구 동토(凍土)지대와 심해저의 퇴적물 또는 퇴적암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 하이드레이트는 온도가 매우 낮고 압력이 높은 고압 상태에서 얼음과 비슷한 고체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30년대의 일. 그러나 당시는 원유나 천연가스가 충분했고, 하이드레이트 개발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 그러다 최근 석유(원유와 천연가스를 통칭) 등 에너지자원이 고갈되고 있고, 세계각국의 환경보호 정책에 따라 연소시 환경을 오염시키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은 청정에너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하이드레이트에 대한 관심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천연가스처럼 95% 이상이 메탄으로 이루어진 하이드레이트는 기존 천연가스의 매장량보다 수십배 많은 데다가, 연소시 이산화탄소 발생으로 인한 공해가 거의 없기 때문.
게다가 하이드레이트는 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자원이면서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시 자원」이기도 한 특성이 있다. 과기처 산하 한국자원연구소 석유·해저자원연구부 류병재박사의 말.
『바다 밑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 곳의 지질을 보면 맨 위쪽에 셔벗처럼 얼어붙은 하이드레이트 층이 있고, 그 아래에 천연가스와 원유층이 있다』
말하자면 동해상의 한 지점에 하이드레이트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 바로 밑에 천연가스나 원유가 있을 확률이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탐사자료 상에서 하이드레이트의 부존을 지시하는 BSR의 확인은 석유자원 탐사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자원연구소 허대기 책임연구원은 21세기 에너지로 주목받는 하이드레이트는 그 매장량이 막대한데도 개발 기술이 초보단계여서 전세계적으로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상업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다른 말로 하이드레이트에 대한 개발 및 연구는 러시아가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는 뜻. 그 뒤를 이어 미국, 일본, 캐나다 정도가 이 분야에 매달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 러시아측이 한국의 과학자에게 개략적이나마 한국과 관련한 하이드레이트 매장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이듬해인 98년 5월, 백교수는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을 위해 다시 영화 『닥터 지바고』의 무대인 노보시비르스크로 갔다. 백교수는 박사학위증보다는 하이드레이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캐고 싶었다. 사실 자세히 검토해본 결과 쿠즈네초프 소장이 건네준 자료는 감질만 나게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
일본이 독도를 주장하는 이유
그는 학위수여식이 끝난 다음 소장이 좋아하는 유럽산 포도주를 구해 축하 파티를 열었다. 서로 취기가 오르자 백교수가 노골적으로 운을 뗐다. 『전번에 주신 자료는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동해와 관련한 하이드레이트 정보가 너무 개략적입니다. 좀더 자세한 자료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얼굴이 불콰해진 쿠즈네초프 소장이 한참 동안 백교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백교수, 그건 우리 연구소 규칙상 공개할 수 없는 자료입니다. 백교수, 그런데 일본이 동해의 독도 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지요?』
소장은 그러면서 다른 주제로 말머리를 돌렸으나 백교수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러시아 무기화학연구소는 캐나다, 일본 등과 합작으로 하이드레이트에 대한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소에는 일본 부근의 하이드레이트 매장에 관한 자료가 축적돼 있을 수밖에 없다, 쿠즈네초프 소장은 자료를 제공할 수는 없는 대신 하이드레이트층이 동해상의 독도를 기준으로 한 지역과 연관돼 있음을 슬쩍 흘려준 것이다.
러시아 학자의 의미심장한 발언은 한마디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우겨온 중요한 이유가 동해상의 풍부한 해양자원 확보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근거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 그것도 당사자가 아닌 제3국에서 자원을 연구하는 학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은 신빙성을 더해준다.
백교수는 무기화학연구소가 그나마 호의로 건네준 일본의 하이드레이트 개발 위원회 조직표를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는 일본정부 산하 일본지질연구소의 오쿠다(Okuda)박사를 주축으로 「하이드레이트 개발을 위한 위원회」가 조직돼 있었으며 구성원으로는 일본 굴지의 석유회사들, 대학 연구소, 탐사 기술팀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이 위원회의 활약으로 일본은 이미 열도 주변에서 하이드레이트층에 대한 매우 축적된 탐사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6월 백교수는 학회 논문발표를 위해 일본으로 간 김에 일본측 하이드레이트 연구팀 접촉에 나섰다. 일본 내에 영향력 있는 지인을 통해 은밀히 그들과 만나 정보를 수집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논문 수준 이상의 자료 획득에는 「높은 벽」만 실감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백교수의 말.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앞선 1989년에 홋카이도(北海島) 서쪽 근해에 하이드레이트가 부존돼 있음을 확인했고, 90년에는 시코쿠(四國) 근해에서 또다시 하이드레이트층을 발견했고, 이밖에 혼슈(本州)를 비롯해 대여섯 군데서도 하이드레이트를 찾아냈다. 일본측이 추산한 바로는 일본령 내에 매장된 하이드레이트층이 현재 일본에서 쓰이는 천연가스의 100년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년 11월에는 시즈오카현 오마에자키 앞바다(난카이 해구)에서 하이드레이트 시험생산체제에 들어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일본의 친분있는 환경학자로부터 깜짝 놀랄 이야기도 들었다. 일본이 하이드레이트 연구 및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에너지 확보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오염을 방지하고 더 나아가 일본 열도의 지반 침하와 관련된 국가 생존 문제가 걸려 있다는 점이다』
이는 또 무슨 말인가. 환경과학자들의 학술단체인 한국환경과학회 회장이기도 한 백교수의 환경과학적인 풀이는 이렇다.
최근 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현상은 바다 밑에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하이드레이트의 해리(解離)를 야기하고, 해리된 하이드레이트는 그 주성분인 메탄을 대기로 방출해 지구의 온실효과를 더욱 증대시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지구의 온도는 더욱 상승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메탄은 연소시 대기를 오염시키는 이산화탄소를 적게 방출하는 대신 대기의 온실 효과 증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기 때문.
또한 지구의 온도가 높아진 상태에 하이드레이트가 계속 분출될 경우 지반을 침하시키고 해저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일부 하이드레이트 연구학자들은 미국의 버뮤다 삼각해역에서 발생한 대량의 배 침몰 사건(일명 버뮤다 미스터리)이 하이드레이트 해리에 의한 해저침하 작용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뜩이나 잦은 지진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이드레이트 연구 및 개발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
백교수는 "백우현교수임" (경상대교수, 화학박사)
- 베낀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