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일수록 힘든 사람 먼저 살펴야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주장마다 일리는 있다. 죽음 앞에 놓인 여러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만 구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누구를 우선 살려야 할까. 많은 사람에게 도움되는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고 답하기 쉽다. 모든 생명이 고귀한데, 그렇게만 판단할 수 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타이타닉’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2000여 명을 태운 초호화 여객선이 침몰하자 생지옥 같은 참상이 벌어진다. 구명보트를 먼저 타려고 다투지만, 탑승 순서는 어린이와 여성이 먼저다. 모두가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약자부터 구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상황이 악화할수록 더 위험해지는 분들은 빈곤층이다. 확진자의 10.66%가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취약계층이라는, 건강보험공단 자료 분석 결과도 있다. 인구비율로 보면 이들의 코로나19 감염률이 평균보다 3.6배 이상 높다. 노숙인이나 홀몸노인은 이보다 더 높을 게다.
“노숙인들은 겨울이 더 위험해요. 안전사고도 자주 나죠, 추우니까. 더 잘 드셔야 합니다.” 전국노숙인시설협회 유승하 사무처장의 말이다. 코로나 이후, 방역을 위해 무료급식소에서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못한단다. 도시락이나 컵라면, 주먹밥, 김치, 마스크를 담은 꾸러미를 나눠 드리고 있다.
힘든 시기에 돋보이는 분들이 있다. 오더 오브 몰타 코리아(Order of Malta Korea)’ 박용만 실바노 회장은 소외된 이웃에게 각별하다. 2018년에는 상자를 깔고 신문을 덮고 자는 지하철 노숙인들에게 천여 벌의 슬리핑백을 드렸다. ‘명휘원’이란 노숙인 쉼터에서 식사제공도 해왔다. 지난 11월에는 서울 창신동 산동네에 ‘프란치스코의 이웃’ 회관을 열었다. 봉사자들과 함께 홀몸노인과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며 도시락을 배달해드린다.
“밥도 필요하지만, 사람이 그리운 것 같아요. 쪽방의 문간에 겨우 나와 도시락 받고는, 사람 반기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봉사에 참여했던 ‘사랑의 열매’ 경기도 부회장 권인욱 안젤로의 말이다. 숨어 있는 취약계층이 너무 많아, 거기까지 손을 뻗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도 한다.
김하종 신부는 경기도 성남에서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운영한다. 코로나19 이후 275일 동안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드리며 겪은 이야기를 담아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을 최근에 펴냈다. 3월 28일 일기에 나오는 60대 자매 사연이다.
“저는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식당 설거지, 청소 같은 궂은일 하면서 살아왔어요. 은행 계좌 하나 없어 돈이 생기면 금을 사 모았지요.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저 자신만 생각할 수 없어서 가져왔어요. 이 금을 팔아서 신부님의 가난한 친구들을 위해 쓰세요.”
모두가 어려워지자 착한 분들이 더 많이 나타나서, 우리 사회에 희망을 전하려고 책을 냈단다. 확진자가 급증해서 식사 배급이 위험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위험하다고 포기하면 말이 안 돼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위험해서 그만두면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아요. 대한민국은 순교자의 땅,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
코로나19로 모두가 예민해 있다. 자신과 가족의 염려가 앞선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위험해지는 소외된 이웃도 함께 살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