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내 삶의 현실이 하나님 말씀의 약속과 일치하지 않을 때 '과연 하나님은 선하시고 마귀는 악하다(요 10:10)는 기본적인 신학을 붙잡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또 ‘나쁜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라는 진리를 알게 된 이후에는 '그러면 나쁜(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 나라, 이 교회, 내 가정, 그리고 나 개인을 하나님은 구해주실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일하시려면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들이 우리 삶에 풀어지려면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소망하지 못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소망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관련 영상은 여기로)
하나님이 선한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을 모를 때 우리가 소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병이 있을 때도 하나님은 나에게 치유를 주시는 선하신 분이라는 진리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치유하실 것이라고 소망할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치유를 소망하지 못한다는 것은 치유를 바라지 못한다는 뜻인데 바라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치유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바라지 못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으니까요. 재정, 인간관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는 그동안 내 삶 가운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선한 일들을 떠 올리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나라와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제 마음이 낙심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한편, 저에게 나라와 교회에 대한 비전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낙심도 없습니다. 더 멋진 모습이 될 것을 바라고 있는데 내가 바라보는 모습과 현실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낙심되는 것이지요. 바라지 않으면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낙심이 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상태이기도 합니다.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앞으로 될 모습만 생각하다 보면 현재의 모습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기 때문에 소망이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면 믿음을 행사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여기서 여러분들께서는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대입해 보세요. 꼭 교회와 나라, 이렇게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내 몸의 치유, 재정 문제의 해결, 가족 문제의 해결 등)
그럴 때 제가 하는 것은 우리나라 근대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은혜로 이 나라 가운데 역사하셨는지를 생각합니다. (이것을 개인의 삶에 적용할 때는 과거에 각자 개인의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역사로 귀신 섬기던 조선을 멸망시키시고 이승만 박사를 통해 기독교 진리 위에 대한민국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건국의 기적을 생각하며 거기에 집중합니다. 너무나 놀라운 은혜로 이 나라를 복음화하시고 짧은 시간에 영적, 경제적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신 기적 중의 기적, 한강의 기적을 자꾸만 생각합니다. 그러면 '과거에 우리 민족에게 그렇게 역사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반드시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다.'라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즉, 지금의 막막한 현실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선을 돌리는 것이지요.
저 자신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소원이 강한 만큼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하면서 앞으로 되고 싶은 그 사람은 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럴 때, 나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빠져 나왔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그분께로 인도하셨는지 그것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과거에 나를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토록 인도해 주실 것이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어떠함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게 되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적인 소망이 생기게 되며 그 소망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들이 내 삶에 풀어집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사탄 마귀가 한 짓들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한탄만 나올 것입니다. '과거에도 나에게 질병을 주신 하나님, 과거에도 나로 하여금 주식을 날리게 하신 하나님, 과거에도 나로 하여금 이혼을 하게 하신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면 과거를 돌아보면 볼수록 더 낙심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복음 10장 10절을 우리의 기본 교리로 삼아서 굳게 뿌리 내리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 "생명"으로 번역된 단어는 영어로 life입니다. 라이프에 "인생, 삶"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헬라어 원어에도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인생, 또는 삶으로 번역한다면 예수님은 나에게 살 만한 인생, 뜻 깊은 삶, 부족함이 없는 한 평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쪼들리고, 부족한 게 많고, 결핍과 결여가 많은 삶을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 원인 제공을 내가 했더라도, 즉 나 때문에 빚을 지고, 나 때문에 이혼을 하고, 나 때문에 병에 걸리고, 나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하나님은 내가 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닌 예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것으로 나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은혜와 긍휼의 뜻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아, 그래! 내가 잘못한 경우라도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시니 나에게도 소망이 있구나!'하고 마음속에서 소망이 싹 트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망과 하나님의 선하심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은혜에 대한 믿음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발휘하려면 소망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아야만 바랄 수(소망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나의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함을 더욱 바라보려고 합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벌 받아 마땅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계시가 저와 여러분에게 더 풀어져 나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