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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날마다 더 가까이 비로 날씨가 덥습니다만, 날마다 더 가까이 예수님 섬기는 우리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뭇 머뭇하지 않습니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받는 귀한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의 연약함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름 잘 믿겠다, 열심히 잘 믿겠다 다짐하면서도 때로는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머뭇거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때가 언제입니까?
지금 이 순간도 결단하지 못해서 머뭇머뭇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삶의 머뭇거림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 머뭇거림이란 무엇일까요?
머뭇거림이란 마음이 나누어져서 결단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상태가 머뭇거립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머뭇거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주저하거나 망설이고 있는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결단이 서지 않아서 계속해서 시간을 끌거나 제자들이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이 신앙의 머뭇거림이란 그런 차원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마음이 분열되어서 나누어진 찢어진 상태가 머뭇머뭇거리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영적으로 보면 우상 숭배와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속에서 정확히 머뭇머뭇거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갈멜산 정상에서 머뭇머뭇하는 백성들에게 엘리야 선지자는 이 백성들을 함께 이 백성들에게 피를 토하듯이 머뭇거리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2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1절 말씀 시작,
여호와가 말을 하나님이며 하고 아이 말을 하나님이며 하다. 백성이 말한 하나로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아멘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울이 만일 하나님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마디도 뭐하지 아니한지라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오늘 엘리야 선지자가 이 백성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이 백성이 한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침묵 침묵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몰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이 결단을 요구받는 이 시간이 너무 부담스러운 순간이어서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저 그 대답을 회피하고 모멸하려는 비겁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종종 입을 다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세계에서 대답을 미루는 침묵은 중립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침묵과 이 머뭇거림은 다시 말하면 세상을 선택하겠다는 또 다른 거절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 시간도 혹 그런 분이 있을 줄 모르겠습니다. 아예 귀를 닫아버리거나 혹 안 들으려고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하나님 앞에서 자주 머뭇거리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름의 자신의 경험과 공식을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도 하지만 세상에서 여러 가지 경험도 하게 되고 나름 인생의 공식을 쭉 찾다 보니까 때로는 하나님 앞에 머뭇머뭇하는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성급한 결정으로 실패했던 아픈 기억도 생길 수가 있고요. 너무 서둘러서 손해를 보았던 경험이 우리를 때로는 방어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세상의 경험은 우리에게 신중하게 생각해라 미루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급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여러분 신앙의 결단을 미루는 또 하나의 핑계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배운 계산법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대로 적용시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론 결단을 해야 되는데 결단하지 못하고 뭐 뭐 뭐 뭐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일 성수를 온전히 해야 되는데 내가 봉사의 자리로 가야 되는데 내가 하나님께 물질을 올려드려야 되는데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기로 결단해야 되는데 그 앞에서도 머뭇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조금만 더 상황이 좋아지면 할 거예요. 조금만 더 내가 물질이 많이 모아지면 할게요. 조금만 더 내 모습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이해하고 용서할게요. 이런 모습이 혹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에 한 명인 머뭇거림의 늪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진리를 갈망했습니다만 여전히 세상의 쾌락과 성공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이런 기도를 드렸다는 겁니다.
주님 저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시옵소서 그러나 지금 당장은 마시옵소서.
주님 저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시옵소서.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계산법이 하나님의 은혜를 지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 왜 우리가 머뭇거리면 안 되는 것일까요?
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머뭇거리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머뭇거리면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머뭇거림의 결과는 우리 영적 기근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11기사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땅에 기건이 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울이 비를 내려주어서 풍요를 줄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과 바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울을 믿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양다리를 걸치면서 누가 하시든지 비만 내리면 된다는 식으로 그런 영적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든지 무조건 복만 받으면 된다.
이 길로 가든지 저 길로 가든지 무조건 목적지로만 가면 된다는 시골에 이런 결과도 영적 기가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우리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심으로 바울이 가짜임을 철저하게 밝히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이런 고민에 빠져 있는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에는 분명한 영적 기근이 찾아온다는 것을 여러분 꼭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때로는 관계 기관이 찾아올 수도 있고 또 물질의 기관도 찾아올 수가 있고, 또 마음의 평안에 메말라버린 영적인 경헌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한번 여러분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혹시 내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계산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상태가 아닌지를 이제 와서 순종해 봐야 예전에 내 생각 크게 다를 게 뭐가 있겠어 그냥 지금처럼 적당하게 하면 되지 뭐 여러분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사탄은 거짓말의 명수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적 기근이 계속되도록 방치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계략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독한 머뭇거림을 끌어내고 어떻게 하면 결단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가 즉시입니다. 뭐라고요?
즉시.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혹 내 마음에 부딪혀 올 때 성령께서 작은 감동을 주실 때, 그때 여러분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다음에 나중에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 시간 되거든 해라. 너 돈 모아지거든 해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에는 지금 주시는 것이지 다음에 이후에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오더라도 지금 와야지 다음에 올게요.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지금 즉시 그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지금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18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을 벗어 다시 보게 되니 일어나 세대들
아멘 즉시 사울의 눈에서 사도서 행전 17장 10절의 말씀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다리아로 보내, 그들이 이르되 유리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아멘 밤에 형제들이 곧 지금 바울과 실라를 베리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장 31절 말씀에 시작
가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즉시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아멘 마태복음 14장 27절 말씀도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아멘 풍랑 만난 제자들에게 주님은 즉시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는 데 주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기를 머뭇머뭇하신다고 한번 생각해 보시면 우리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지금 말고 내가 다음에 구해줄게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성경은 머뭇머뭇거림을 가르치시지 않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지금 즉시를 말하는 것이지 이후에 다음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또한 신앙은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21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21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뭐뭐 뭐뭐 하랬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아들이 만일 하나님은 그를 따르리라 하니 백성의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 지리라
아멘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까? 따르라 히브리어로 할라크라고 말합니다. 따르라는 이 말은 함께 동행하다, 함께 발을 맞추어 걷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함께 발을 맞추어 걷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앞에 가고 하나님의 뒤에 따라오는 것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내 발을 묶고 함께 걸어가는 이 삼각 경기입니다. 내가 세상에 한 발을 두고 또 다른 한 발은 하나님께 발을 묶어둔 채 내 마음대로 걸으라고 하면 넘어지고 자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머뭇거림을 멈추고 온전히 하나님과 발을 맞추어 걸어가는 할라크의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랜 시간 굳어진 신앙을, 이 머뭇거림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머음거림을 이기는 싸움은 아주 작고 사소한 시대에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열왕기상 18장 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이대로 행하여 오라 백성이 다 되게 하려 하네. 나 무너진 여호와의 증인을
아멘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어떻게 하라고요?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감에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재단을 뭐 하되 수축하되 여러분 기적은 갈매산의 하늘에 불이 떨어지는 화려한 기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이 떨어지기 전에 엘리야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여호와께로 가까이 나아와라. 그리고 무너진 여호와의 재단을 수축하라. 고쳐 쌓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진짜 의도가 여기 있습니다. 한 번의 기적, 한 방의 기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방치되어 무너져 버린 예배의 자리에 먼저 가까이 나아오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기 회복의 자리부터 다시 고쳐 쌓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신앙은 좋은 신앙은 한 번의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잘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어제 새벽 기도 시간에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주일에 교회를 가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맞습니다.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성도가 이런 성도가 아니겠습니까? 주일이 그냥 기다려지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고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 영적 재단을 아름답게 수축하는 성도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머뭇거리는 신앙은 오늘 시간 되어서 한번 내가 교회 가볼까?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헌금은 무슨 헌금 다음에 돈이 모아지면 하면 되지 이런 믿음은 다음에도 하지 못할뿐더러 영적 기가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에게 속삭이기를 그냥 적당하게 교회 가면 돼. 뭐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해 헌신은 성도 여러분 좋은 신앙은 어떤 거창한 결단과 기적이 아니라 네 마음부터 고쳐먹어라 하는 것입니다.
니 밤부터 뭐라고요?
고쳐먹어라 여기에 바로 능력 있는 삶의 시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하려느냐 책망할 때 여기 쓰이는 히브리어 단어가 파사어라는 것입니다. 파사이라는 뜻은 쩔뚝거리다는 것입니다.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똑바로 걷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쩔뚝이는 불안한 모습입니다. 이런 신앙을 우리는 절뚝발의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무섭지 않습니까? 교회 감사함으로 오고 기쁨으로 오고, 은혜로 와야지 즐거운 마음으로 와야지. 그렇지 않고 이것저것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오면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때로 연약해서 쩔뚝일 수도 있습니다. 삶의 고난 때문에 비틀거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 하나님과 나 사이에 쩔뚝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단할 수 있을 때는 과감하게 결단하고 그 결단은 먼저 우리의 심령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무너진 예배가 잘 세워지고 우리 주님과 발을 맞추고 잘 걸어감으로 해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