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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 calculus)
미적분학에서 기초(foundations)는 정확하고 엄밀한 공리와 정의들의 발전을 말한다.
초기 미적분학에서 사용한 무한소는 엄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어졌기에 많은 작가들에게 특히 미셸 롤과 비숍 버클리(Bishop Berkeley)에게 맹렬하게 비난 받았다.
버클리는 그가 1734년에 출판한 《해석학자》(영어: The Analyst)라는 책에서 무한소를 ‘사라진 값들의 유령’(영어: the Ghosts of departed quantities)이라고 묘사했다. 미적분학의 엄밀한 기초를 도출해내는 일은 그 세기 동안 뉴턴과 라이프니츠를 따르는 수학자들을 제공했고 오늘날까지도 연구활동이 있는 분야다.
콜린 매클로린(Colin Maclaurin)을 포함한 다수의 수학자들이 무한소의 사용이 정당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은 150년이 지나서야 오귀스탱 루이 코시와 카를 바이어슈트라스에 의해서 증명됐고 무한소의 의미가 극히 작은 값이라는 관념을 막을 방법을 찾았다 이것이 미분과 적분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
코시의 필기에서 무한소의 형태로 적혀진 연속의 정의와 극한의 (ε-δ) 정의의 원형 등의 기초에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코시의 업적에서 바이어슈트라스는 극한의 정의를 공식화 시키고 무한소의 개념을 없애버린다.
바이어슈트라스의 작업에 따라서 미적분학은 무한소가 아닌 극한에 기초하는 것이 일반적이게 됐다. 베른하르트 리만은 바이어슈트라스의 개념을 사용해서 적분의 정확한 개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발견의 기간 동안 미적분학의 아이디어들은 유클리드 공간과 복소평면에서 일반화됐다.
현대 수학에서 미적분학의 기초는 미적분학의 정리에 대한 완전한 정의와 증명들을 포함하는 실해석 분야에 포함되어 있고 미적분학의 범위는 엄청나게 확대됐다. 앙리 르베그는 측도론을 만들어서 거의 모든Pathological function에서 적분을 가능하게 했다. 로랑 슈와르츠는 어떤 함수도 미분시킬 수 있는 분포 이론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극한의 개념을 미적분학의 기초로 두지만 극한이 유일한 미적분학의 기초에 대한 엄밀한 접근법은 아니다.
에이브러햄 로빈슨(Abraham Robinson)의 비표준 해석학(영어: nonstandard analysis)이 대안책이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로빈슨의 접근법은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사용했던 개념인 무한소와 무한수로 실수체계를 늘린 체계를 사용한다. 그 결과로 나온 수를 초실수라고 부른다. 초실수는 미적분학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라이프니츠의 방식처럼 이끌어 낼 수 있다.
한편, 적분을 이끌어내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들은 고대에서부터 시작됐지만 이 시대의 방법들은 수학적으로 엄밀하지도 않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모스크바 수학 파피루스(Moscow mathematical papyrus)에서 적분의 목표 중 하나인 부피계산법들이 나와있으나 이것들은 방법으로서 설명이 부족하고 몇 가지는 틀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크니도스의 에우독수스(Eudoxus)가 극한의 개념과 비슷한 문제의 철저 검토법을 사용했고 아르키메데스는 이 방법을 발전시킨 발견적 교수법이라는 적분과 비슷한 방법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유휘가 3세기에 원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크니도스의 에우독수스와 같은 방법을 발명하였다.
중세 시대에는 인도에서 미적분학의 기초가 다져졌다. 14세기 인도 수학자 마다바(Mādhava of Sañgamāgrama)와 케랄라 학파(Kerala school of astronomy and mathematics)가 테일러 급수, 무한 급수의 근사법, 수렴에 대한 적분판정법, 미분이 초기형태, 비선형 방정식 풀이를 위한 방법, 곡선 아래부분이 차지하는 넓이가 적분값과 같다는 이론 등 미적분을 위한 많은 요소들을 기술하였다.
조선의 미적분학의 기초가 다져진 것은 정약용의 논문이다. 정약용은 부피와 넓이는 무한히 작은 부피와 넓이의 합으로 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방법은 아르키메데스의 아이디어와 비슷했지만 이 결과는 20세기 초반까지 거의 평가되지 못했다. 그가 만든 무한소의 개념은 잘못된 결과를 이끌어 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정약용의 무한소에서의 미적분과 유한차에서의 미적분에 대한 정식 연구는 유럽에서 거의 같은 시대에 시작됐다. 페르마는 무한소 오차항이 있어도 등호가 성립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adequality 개념을 소개했다. 무한소 미적분과 유한차 미적분의 결합은 두 번째 미적분학 기본정리가 증명되고 2년이 지나서 존 월리스(John Wallis), 아이작 배로(Issac Barrow)와 제임스 그레고리(James Gregory)에 의해 1670년 정도에 완성됐다.
아이작 뉴턴은 그가 수리물리학 문제를 풀 때 사용했던 이상한 형태의 곱의 미분법, 연쇄법칙, 고계도 미분계수의 개념, 테일러 급수와 해석함수를 공개했다. 하지만 그가 출판물로 낼 때에는 그 시대의 수학적 표현방법에 맞게 그의 아이디어와 동등한 의미를 지니는 기하적 표현으로 그의 아이디어를 적어냈다. 뉴턴은 그의 책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거론한 행성의 운동, 회전하는 유체 표면의 모양, 지구의 편평도, 사이클로이드에서 미끄러지는 물체의 운동 같은 문제들을 푸는데 미적분을 사용했다. 뉴턴은 미적분과 함께 함수의 급수를 실수의 범위로 확장시켰고 테일러 급수의 원칙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이뤄낸 모든 발견들을 출판하지는 않았고 이 시대에 무한소를 이용한 방법은 여전히 평이 좋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어들은 뉴턴이 자신을 표절했다고 고소한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참된 무한소 미적분으로 체계화됐다. 뉴턴은 그를 표절자로 여겼지만 현재는 그도 독립적인 미적분의 발명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무한소를 다루는 규칙들을 명확하게 정리했고 2계도 이상의 미분을 가능하도록 해줬으며 곱의 미분법과 연계법칙을 미분 적분 형태로 모두 만들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모두 미적분의 발명가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둘의 미적분의 성격은 다르다. 뉴턴은 미적분을 물리학에서 미적분을 활용한 첫 번째 사람으로 라이프니츠는 오늘날 사용하는 미적분 표기법의 대부분을 만든 사람으로 여겨진다. 또 라이프니츠는 뉴턴과는 달리 형식을 중시해서 알맞은 표현법을 만들어내는데 며칠을 쓰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미적분에서 규정한 기본적인 사항들로는 미분과 적분의 법칙들, 2계도 이상에서의 미분, 다항 함수 급수의 근사에 대한 개념들이 있다. 그런데 이 시대에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라이프니츠가 그의 결과를 발표하고 뉴턴이 그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하자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사람을 미적분학의 발명가로 인정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큰 논란이 일었다. 뉴턴이 최초로 결과를 이끌어 낸 사람이지만 출판을 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라이프니츠가 자신이 출판하지 않고 왕립학회에서 공유한 노트들에서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이 논란 때문에 영국 수학자들과 유럽 대륙의 수학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갈라지게 되고 이는 영국 수학에 큰 손실을 초래했다. 현재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논문에 대한 면밀한 조사 덕분에 그들이 독립적으로 결론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 밝혀졌다. 라이프니츠는 적분에서부터 뉴턴은 미분에서부터 시작해서 결과을 도출해냈다.
이 시대 이후에 수 많은 수학자들이 미적분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첫 번째로 가장 성공적이었던 업적 중 하나로 마리아 아녜시가 1748년에 쓴 무한과 유한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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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학의 역사
물체 운동의 법칙과 만유인력 발견 등으로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과학자 중 한 명인 영국의 아이작 뉴턴(1642∼1727)과 이진법을 고안해 컴퓨터 탄생의 씨앗을 뿌린 독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 동시대를 산 두 거물이 비슷한 시기에 각자 발명한 미적분은 수학은 물론 과학사와 인류 역사에도 새로운 장을 열었다.
17세기는 수학의 발전에 있어서 괄목할 만큼 풍요로운 시기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이 바로 미적분학의 발견이다. 고등학교에서는 미분을 먼저 배우고 적분을 나중에 배우는데 역사적으로는 미분보다 적분이 먼저 발달되었다.
적분은 넓이나 부피, 호의 길이 등을 구하는 것과 관련되어 시작되었고, 미분은 곡선의 접선과 함수의 최대,최소에 관한 문제 로 인하여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 적분과 미분의 관계가 더하기와 빼기 또는 곱하기와 나누기처럼 서로 반대되는 과정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적분학의 발견은 뉴턴과 라이프니쯔가 해낸 일이다.
17세기의 수학-근대 수학의 여명기(미적분학의 발견, 해석 기하학 창시 로그의 도입)
해석기하학의 발견
데카르트와 페르마가 좌표법을 이용하여 기하학의 문제를 대수적으로
창시. 18C 오일러에 의해 발전됨.
데카르트-「방법서설」진리 탐구의 보편적 방법 추구(수학이 절대적 진리임을 전제)
곡선을 점의 집단이 아니라 점의 운동으로 파악(점의 자취의 방정식의 문제)
페르마-현대 정수론의 실질적인 창시자. 대수적 방정식에 의해 정의된 새로운 곡선을
제안. 페르마의 쌍곡선(χm yn=a), 포물선(yn=aχm ),나선(rn=aθ)
페르마의 소정리: p가 소수이고, a와 p가 서로소이면 ap-1은 p로 나누어진다.
페르마의 대정리(=마지막 정리): n>2일 때 xn + yn = zn 을 만족하는 양의 정수
x,y,z,n은 존재하지 않는다.
쿠머의 연구와 컴퓨터를 이용하여 현재 n<100,000인 모든 n및 다른 여러 특별한
n에 대해서도 성립함이 알려져 있다.
호이겐스와 확률론
수학적 기대값의 개념 소개
미적분학의 발견
뉴우튼과 라이프니츠가 각각 독립적으로 발견(해석기하학의 도움)
미분법의 기원
페르마와 데카르트의 곡선 위의 점에서의 점선의 문제에서 유래
적분법의 기원-카발리에리의 불가분량법(면적, 체적을 계산하는데 유용한 2가지 원리)
그리스 시대의 제논의 역설, 유독 소스의 착출법(실진법, 짜내기법). 아르키메데스의
평형법등이 현대 수학의 극한법의 기원이며 오늘날의 미적분학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1. 월리스
「무한의 수론」, 데카르트와 카발리에리 방법의 체계화. 적분론 공헌. 무한대
기호(∞) 최초도입.
2. 배로
「기하학 강의」곡선의 점선의 작도에 현대적인 미분법과 매우 흡사한 방법 이용
미분론에의 공헌, 미분과 적분의 역산 관계를 최초로 인식.
3. 뉴우튼
「프린카피아」, 일반화된 이항정리. 미분학으로 알려진 유율법의 창시. dx/dt=x 로
표현. 미분방정식(미적분학의 기본정리)에의 연구등 수학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
라이프니츠-「일반특성」. 미분과 적분의 현대적 기호 창안. 카발리에리의 불가분량의
합을 나타내는 라틴어 summa의 s를 길게 늘어∫ydx, ∫ydy사용. dy/dt 를 사용.
두함수의 곱의 n계도함수를 구하는 라이프니츠의 공식. 적분을 합분법이라 부름.
18세기의 수학-미적분학의 발전
(삼각법, 해석기하학, 정수론, 방정식 론, 확률론, 미분방정식의 발전, 형식주의의 추구)
1. 베르누이
극좌표의 최초사용. 베르누이 분포, 정리(확률론,통계학), 방정식
(미분방정식) (정 수론),수, 연수형(미적분학)
라이프니츠와 함께 적분이란 용어를 최초 사용. 「추측술」
2. 드무아브르
확률론, 통계학, 해석적 삼각법에 기여. 드무아브르의 공식
*확률적분와 정규 도수 곡선 을 처음 취급.
3. 테일러
테일러급수. (후에 오일러가 미분법에 적용. 라그랑누가 임여량을 첨가하여 만든
급수로 사용)
4. 매클로린
매클로린급수. 뉴튼의 유율법에 관한 최초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해설을 줌.
5. 오일러
eix=cosx+isinx공식 고안, 함수f(x),e,π,i 삼각형의 세변 a,b,c 삼각형이 내접원의
반지름r 외접원의 반지름R, 둘레의 반 s, ∑기호 등을 관례화. 방정식 론, 수론,
미분방정식 미적분학 등 수학의 모든 분야에서 업적과 집필. 18C의 형식주의
즉, 수렴성. 수학적인 존재성에 관한 문제, 무한한 과정을 포함하는 방식의 문제에
신중치 못하여 오류도 범함. 음수에 대한 로그의 계산.
6. 클레로
미분방정식론, 특이해의 연구. 클레로의 미분방정식.
7. 달랑베르
편미분 방정식 론의 개척자. 해석학의 기초에 관한 연구(극한이론), 달랑베르의
판정법
8. 람베르트
π가 무리수임을 최초로 엄밀하게 증명. 쌍곡선 함수이론에 대한 최초의 체계화.
함수의 현대적 표기법 고안.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준 고찰(비유클리드 기하학
발견의 선구자
9. 라그랑즈
「미분의 원리를 포함하는 해석 함수론」. 해석학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미적분학의 엄밀성을 추구한 최초의 수학자.f', f'' 등을 최초로 사용. 실변수
함수 이론의 개척. 정수론과 방정식 론에 기여. 라그랑즈의 정리. 1(수학의 큰 양심)
10. 라플라스
확률론, 미분방정식론에의 지대한 공헌. "수학은 단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이며 결국 확률론은 수로 표현된 상식에 불과하다." (수학의
과정에 무관심)
11. 르장드르
정수론, 타원함수론(개척자적 연구), 미분 방정식론. 르장드르 함수, 다항식,
르장드르
12. 몽주
미분기하학의 아버지(3차원 공간에 있는 곡면의 곡률선의 개념 소개) 화법기하학의 창시
13. 카르노
19C에 일어날 기하학과 수학 기초에 관한 연구
(*) 18C에는 변분법, 고차함수, 편미분방정식, 화법기하학, 미분기하학등 새로운 분야가
창조되었으며 여성의 수학분야에로의 등장(암에스, 제르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