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不滅의 英雄! 매헌윤봉길義士 일본殉國地 參拜행사를 마치고
본인은 지난 11월20일(금)부터 22일(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사)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회장 김진우)에서 주관하는 “매헌 윤봉길의사 일본순국지 참배행사”에 기념사업회 理事로서 참석하였는데, 금번행사는 행사단 단장 황길수 부회장(전 법제처장관)등 29명의 참배행사단(자문위원,부회장및 이사진)이 일본 이시가와현 가나자와시에 위치한 “윤봉길의사 殉國記念碑와 暗葬地”를 방문하여 參拜와 獻花등 행사를하면서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짧고 굵게 사시다”가 일본땅에서 의연히 殉國하신 윤봉길의사님의 崇高한 殺身成仁의 業績을 기리는 참배행사를 가졌다.
김진우회장님께서는 꼭 참배행사에 참석하려고 출국준비까지 해놓은 상태였으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배행사에 함께 하지 못하였으나, 이른새벽 인천국제공항까지 손수 나오셔서 참배단일행에게 출영인사까지 하였다.
참배단 일행 29명은 20일(금)인천국제공항에서 06:30에 집결하여 반갑게 상호인사를 나누면서 가이더(김정희)의 안내에 따라 출국준비를 마치고 09:05에 KAL775기 편으로 이륙하여 일본 고마쓰국제공항에 10:50경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1층 대합실에 나와 보니 재일본 대한민국 이시카와현 거류민단 단장 김기수씨와 (사)월진회 재일본 가나자와시 지부장 박현택씨(윤의사 암매장지관리인으로 평생 헌신봉사하시다가 2009년 별세하여 암매장지인근에 안장되어있는 故 박인조씨의 친조카로 代를 이어 헌신봉사하고 계심)께서 일본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윤봉길의사님 선양활동 및 순국지(암장지)관리 등을 하고 계시는 재일교포대표단이 환영 및 영접을 하기 위해 공항까지 나와 있었는데, 그분들의 행적을 듣고 보니 敵地라고 할 수 있는 일본땅에서 일본 우익단체와 부딪히면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윤봉길의사님을 위해 한평생 헌신봉사하고 계신데 대하여 마음속으로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일행은 그분들과 인사를 나눈후 버스에 탑승하여 고마쓰공항을 출발하여 순국지를 향하여 이동하다가 잠시 점심을 들고서 14:00경에 가나자와 일본 전몰장병 묘역 한컨에 위치한 “윤봉길의사 순국기념비”앞에 도착하여 이성섭사무처장의 사회로 국민의례와 황길수 단장의 윤의사님의 숭고한정신을 기리는 추도사와 재일본 대한민국거류민단 김기수단장의 인사말,그리고 임명장수여,그리고 김백경여류시인에의한 추도시 낭송등 참배행사를 하면서, 윤의사께서 상해의거직후부터 당시에 이곳까지 끌려오셔서 순국하시기까지 일본군에 의해서 온갖 고초를 받으시던 생각이 가슴속으로부터 떠올라서 눈물이 나기까지 하였으며,일본땅에서 대한민국 태극기를 높이세우고 우렁찬 목소리로 애국가를 유난히도 힘차게 불렀다.
그리고 순국기념비에서 200여M거리에 있는 8평규모의 “윤봉길의사 暗葬地묘비”를 찾아가서 1932년12월19일 이른아침에 순국하신뒤 암매장되셨던 당시 일본군의 잔학상을 더듬어 보면서 주과포등을 정성껏차린 뒤 황길수단장등 참석한 일행모두가 큰절을 올리면서 엄숙히 참배를 하였다.
또한 이곳 암장지를 한평생관리하시다가 지난2009년 별세하신 故 박인조선생의 뒤를 이어서 친조카되시는 박현택지부장께서 암장지를 관리해오면서 느꼈던 그동안의 경위를 소상히 잘 들었으며, 지근거리에 위치한 故 박인조선생의 묘소도 참배하면서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같은 참배행사를 엄숙한 가운데 마무리하고서 가나자와 시내로 이동하여 잠시 시내관관광을 한후에 저녁만찬 식사가 있었는데,식사를 하면서 부회장및 이사들께서 연달아 인사말과 건배제의가 있었으며, 본인도 인사말을 할 기회가 주어젔다.
본인은 인사말을 통하여 “윤봉길의사께서 23세의 젊은 청년으로서 ‘丈夫出家 生不還’이란 말씀을 남기시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부인 그리고 강보에 쌓인 어린 두아들과 작별하고 나라와 겨레의 독립을 위해 홀연히 중국땅으로 건너가서 김구선생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중국땅의 어려운 환경속에 한국독립을 위하여 고군분투하시다가 1932년 4월29일 중국상해 홍거우공원에서 일본군 전승절행사시에 삼엄한 경계를 뚫고 들어가서 단상 지근거리까지 침착하게 접근하여 수통형폭탄을 단상으로 던저서 상해의거를 일으켜서 상해주둔군사령관 시라카와대장등 단상에 있던 일본고위관료다수를 살상시켜서 혼비백산 하는 모습을 보고, 당시 중국장개석총통께서도 ”중국인민군100만명도 하지 못한 큰일을 대한청년 한사람이 장하게 이루어 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그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도와주었을뿐만 아니라 ,특히 1943년 카이로회담시 미국루스벨트대통령,영국처칠수상,쏘련 스타린,중국의 장개석총통등 강대국 정상들이 일본의 전후처리에 관한 의제로 회의를 하는과정에서 장개석총통께서 대한민국을 독립시켜야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시하여 마침내 대한민국이 일본패망으로 해방과 동시에 독립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말하면서,“이와같은 것은 바로 윤의사님의 중국땅에서 상해의거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더욱이 윤의사님께서는 상해의거 직후 일본군헌병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어 일본군의 끔찍스러운 고문으로 수모와 신체적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그해 12월19일 이른 아침에 이곳 가나자와시 육군묘지한컨에서 총살형으로 순국시까지 일본군의 회유등을 의연하게 뿌리치시고 구차한 삶보다는 의연한 죽음을 택하여서 짧지만 굵게 사셨던 윤의사님의 의거로 우리대한민국이 자주독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신것을 우리모두는 잊어서는 아니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곳 가나자와 육군묘역한컨에 암매장되어 오던중 재일본 거류민단등에서 故 박인조선생과 친조카 박현택 지부장에 이르면서 代를 이어서 윤의사 암장지관리에 헌신봉사하고 계신데 대하여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끝으로 “특히 윤의사님의 크나큰 업적을 고려할때에 안중근의사,김구선생등에 비하여 현재 상대적으로 너무나 과소평가된 것 같다면서, 다행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국정교과서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집필중에 있기 때문에, 우리 기념사업회에서는 윤의사님의 선양사업을 보다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한마음으로 지혜를 모아서 국사편찬위원등에 자료를 잘 준비하고 제출하여 윤의사님께서 제대로 된 역사적평가를 받을 수 있고, 또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숭고한 살신성인의 매헌 윤봉길의사의 업적을 알릴 수 있어야겠다“고 인사말을 통해서 말하였다.
그리고 뒤늦게 다른 행사를 마치고 도착한 이시가와현 모리시의원께서 인사말을 하였는데,모리시의원께서는 일본국적의 사람이지만 우리 한국사람 못지않게 윤봉길의사의 숭고한 업적을 선양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며,때로는 일본우익단체로부터 신변위협이 있었다는 경험담도 말하면서, 앞으로도 윤봉길의사의 선양활동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할때에, 본인은 한국사람으로 미안한 감도 있었으며,참으로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하면서 금번 순국기념비 참배행사를 통하여 많은것을 보고 느끼게 하였다.
숙박은 유명하다는 산토카료칸(山由花 호텔)에서 연박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일본식 온천욕을 즐기면서 일본현지식 으로 식사를 하였다.
2일차 및 3일차는 유적지및 관광지방문행사로서 가와자와시에 있는 공원,가와자와성,특히 윤의사님께서 순국일 하루전 밤에 7시간동안 머물렀다는 거처(현재는 공중화장실로 사용)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가와자와 무사마을과 21세기미술관 관람을 거쳐 일본군 대동아전쟁기념비를 둘러보면서 비문에 새겨진 내용에 일본군국주의로서 인접국가에 피해를 준 사실들은 교묘하게 은폐하고 역사적 사실조차 미화하여 기록한 것을 보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검인정교과서에 오히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폄하하여 마치 북한을 찬양하는 듯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우리 어린학생들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갖게 하고 있어서 금번에 정부가 불가피 올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여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북좌파단체나 전교조들이 정부를 향하여 폭력시위등을 하면서 방해.저지하는 모습들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일본에 와서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객기가 운항중 추락했을 당시에 일본인 기자들과 한국인 기자들의 상반된 신문기사내용이 생각이 났었는데, 즉 일본JAL기가 후지산 상공에서 산에 부딪치어 추락사고가 발생시에, 일본언론사 기자들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면서 “기체결함으로 추락했다”고 기사를 써서 마치 제조사인 미국보잉사에 더큰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떠 넘긴다고 하며,반면에 만약 우리KAL기가 한라산상공에서 추락사고라도 있었다면 우리언론사 기자들은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조종사과실로 추락했다”라고 기사를 써서, 우리 KAL측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그릇된 여론을 확산시킨다고 합니다. 즉 국익을 위하는 마음자세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일본인들은 JAL기가 후지산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하였때에도 탑승객들은 그 짧은 추락하는 긴박한 시간에도 죽어가면서까지도 추락하는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을 남기려고 글을 쓴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들은 우리국민들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금번 순국지참배행사를 아무런 탈없이 성공적을 마치기까지 준비와 계획을 잘 세워서 열과 성을 다해주신 김진우회장님을 비롯한 이성섭사무총장과 사무처직원 모두에게 感謝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11월25일
(사)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이사 이 화 영 배상
첫댓글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찾고 바르게 전하려는 기념사업회 여러분의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12.15일에 종친회에서 양재 윤봉길의사 기념관으로 역사답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