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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爻辭>
九四 臀无膚 其行次且 牽羊悔亡 聞言不信
(구사는 둔무부하여 기행차저니 견양회망이로되 문언불신이로다)
구사九四는 볼기짝에 살이 없어서 그 나아감이 주저하니, 양羊에게 끌려가면 후회가 없을 것이나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
[왕필王弼의 주注]
강剛하게 나아가지 않고 자기가 점거할 곳이 아니어서 반드시 침해와 상해를 받아 그 편안한 곳을 잃는다. 그러므로 볼기짝에 살이 없어서 나아감이 주저하는 것이다.
양羊은 들이받고 사나워 옮기기 어려운 물건이니, 구오九五를 이른다.
구오九五가 쾌괘夬卦의 주체가 되어서 아래가 침해할 바가 아니니, 만약 구오九五에 끌려가면 후회가 없을 수 있으나 자기가 강剛하고 높아서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여 남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으니, 이러한 방식으로 행하면 흉함을 알 수 있다.
[注]
不剛而進 非己所據 必見侵傷 失其所安 故 臀无膚 其行次且也
(불강이진하고 비기소거하여 필견침상하여 실기소안이라 고로 둔무부하여 기행차저야라)
강剛하게 나아가지 않고 자기가 점거할 곳이 아니어서 반드시 침해와 상해를 받아 그 편안한 곳을 잃는다. 그러므로 볼기짝에 살이 없어서 나아감이 주저하는 것이다.
羊者 抵狠難移之物 謂五也
(양자는 저한난이지물이니 위오야라)
양羊은 들이받고 사나워 옮기기 어려운 물건이니, 구오九五를 이른다.
五爲夬主 非下所侵 若牽於五 則可得悔亡 而己剛亢 不能納言 自任所處 聞言不信 以斯而行 凶可知矣
(오위쾌주하여 비하소침이니 약견어오면 즉가득회망이나 이기강항하여 불능납언하고 자임소처하여 문언불신하니 이사이행이면 흉가지의라)
구오九五가 쾌괘夬卦의 주체가 되어서 아래가 침해할 바가 아니니, 만약 구오九五에 끌려가면 후회가 없을 수 있으나 자기가 강剛하고 높아서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여 남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으니, 이러한 방식으로 행하면 흉함을 알 수 있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둔무부臀无膚 기행차저其行次且] 구사九四가 아래 세 양陽을 점거하고 자리가 또 바르지 못하며 강剛하게 나아가지 않아서 반드시 침해와 상해를 받을 것이니, 침해와 상해를 받으면 거처가 편안함을 얻지 못하여 볼기짝에 살이 없는 것과 같다.
‘차저次且’는 감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볼기짝에 살이 없어서 거처가 이미 편안함을 잃고 가는 것 또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볼기짝에 살이 없어서 그 나아감이 주저한다.”라고 한 것이다.
[견양회망牽羊悔亡 문언불신聞言不信] ‘양羊’은 들이받고 사나워 옮기기 어려운 물건이니, 고오九五를 이른다.
〈구오九五는〉 높은 자리에 거하고 자리에 합당하여 쾌괘夬卦의 주체가 되어서 아래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니, 〈구사九四가〉 만약 구오九五에 끌려가면 후회가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양羊에게 끌려가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구사九四 또한 강양剛陽이라서 각각 처한 바를 높여서 비록 다시 “양羊에게 끌려가야 한다.”는 말을 들으나 구오九五를 믿고 복종하여 섬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疏]
‘臀无膚 其行次且’者 九四據下三陽 位又不正 不剛而進 必見侵傷 侵傷則居不得安 若臀无膚矣.
(‘둔무부 기행차저’자 구사거하삼양 위우부정 불강이진 필견침상 침상즉거부득안 약둔무부의)
[둔무부臀无膚 기행차저其行次且] 구사九四가 아래 세 양陽을 점거하고 자리가 또 바르지 못하며 강剛하게 나아가지 않아서 반드시 침해와 상해를 받을 것이니, 침해와 상해를 받으면 거처가 편안함을 얻지 못하여 볼기짝에 살이 없는 것과 같다.
次且 行不前進也. 臀之无膚 居旣失安 行亦不進 故曰“臀无膚 其行次且”也.
(차저 행불전진야 둔지무부 거기실안 행역불진 고왈 “둔무부 기행차저”야)
‘차저次且’는 감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볼기짝에 살이 없어서 거처가 이미 편안함을 잃고 가는 것 또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볼기짝에 살이 없어서 그 나아감이 주저한다.”라고 한 것이다.
‘牽羊悔亡 聞言不信’者 羊者 抵狠難移之物 謂五也.
(‘견양회망 문언불신’자 양자 저한난이지물 위오야)
[견양회망牽羊悔亡 문언불신聞言不信] ‘양羊’은 들이받고 사나워 옮기기 어려운 물건이니, 고오九五를 이른다.
居尊當位, 爲夬之主, 下不敢侵, 若牽於五, 則可得悔亡, 故曰“牽羊悔亡.”(注17)
(거존당위 위쾌지주 하불감침 약견어오 즉가득회망 고왈 “견양회망”)
〈구오九五는〉 높은 자리에 거하고 자리에 합당하여 쾌괘夬卦의 주체가 되어서 아래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니, 〈구사九四가〉 만약 구오九五에 끌려가면 후회가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양羊에게 끌려가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17 牽羊悔亡……故曰牽羊悔亡 : ‘견양회망牽羊悔亡’을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은 ‘구사九四가 구오九五에게 끌려가면 후회가 없음’의 의미로 보았다.
그러나 정이천程伊川과 주자朱子는 ‘구사九四가 양羊을 끌 듯하면 후회가 없음’의 의미로 보았다. ‘양을 끌 듯함’에 대하여, 정이천程伊川은 “羊은 떼 지어 다니는 물건이요 견牽은 당기고 끄는 뜻이니, 만일 스스로 강하게 끌어당겨서 여럿을 따라가면 뉘우침이 없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였고, 주자朱子는 “여러 양陽과 다투어 나아가지 않고 편안히 그 뒤에 나오면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양羊을 끌고 가는 자는 그 앞을 가로막으면 나아가지 않고, 풀어놓아 앞으로 가게 하고 그 뒤를 따라가면 갈 수 있다.”라고 하였다.
然四亦是剛陽 各亢所處 雖復聞牽羊之言 不肯信服事於五 故曰“聞言不信”也.
(연사역시강양 각항소처 수부문견양지언 불긍신복사어오 고왈 “문언불신”야)
그러나 구사九四 또한 강양剛陽이라서 각각 처한 바를 높여서 비록 다시 “양羊에게 끌려가야 한다.”는 말을 들으나 구오九五를 믿고 복종하여 섬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볼기짝에 살이 없음은 거함이 불안한 것이요, 감을 머뭇거림은 나아감에 전진前進하지 못하는 것이니, 차저次且는 나아감을 어렵게 여기는 모양이다.
구사九四는 양陽으로 음위陰位에 거하여 강결剛決함이 부족하니, 머물고자 하면 여러 양陽이 아래에서 함께 올라와 세勢가 편안할 수 없어서 마치 볼기짝이 상傷하여 거함이 편안할 수 없는 것과 같고, 가고자 하면 유柔에 거하여 강장剛壯함을 잃어서 강强하게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감을 머뭇거리는 것이다.
‘견양회망牽羊悔亡’은 양羊은 떼지어 다니는 물건이요 견牽은 당기고 끄는 뜻이니, 만일 스스로 강强하게 끌어당겨서 여럿을 따라 가면 뉘우침이 없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柔에 처하여 반드시 능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이러한 말을 듣더라도 또한 반드시 신용信用하지 않을 것이니, 허물이 있음에 능히 고침과 선善을 듣고서 씀과 사사로움을 이겨 의義를 따름은 오직 강명剛明한 자만이 능하다.
다른 괘卦에 있어서는 구九가 사四에 거한 잘못이 이와 같이 심함에 이르지 않는데, 쾌夬에 있어 유柔에 거했으므로, 그 해로움이 큰 것이다.
【傳】
臀无膚 居不安也 行次且 進不前也 次且 進難之狀
(둔무부는 거불안야요 행차저는 진불전야니 차저는 진난지상이라)
볼기짝에 살이 없음은 거함이 불안한 것이요, 감을 머뭇거림은 나아감에 전진前進하지 못하는 것이니, 차저次且는 나아감을 어렵게 여기는 모양이다.
九四以陽居陰 剛決不足 欲止則衆陽並進於下 勢不得安 猶臀傷而居不能安也 欲行則居柔 失其剛壯 不能强進 故其行次且也
(구사이양거음하여 강결부족하니 욕지즉중양병진어하하여 세부득안하여 유둔상이거불능안야요 욕행즉거유하여 실기강장하여 불능강진이라 고기행차저야라)
구사九四는 양陽으로 음위陰位에 거하여 강결剛決함이 부족하니, 머물고자 하면 여러 양陽이 아래에서 함께 올라와 세勢가 편안할 수 없어서 마치 볼기짝이 상傷하여 거함이 편안할 수 없는 것과 같고, 가고자 하면 유柔에 거하여 강장剛壯함을 잃어서 강强하게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감을 머뭇거리는 것이다.
牽羊悔亡 羊者 群行之物 牽者 挽拽之義 言若能自强而牽挽 以從群行 則可以亡其悔
(견양회망은 양자는 군행지물이요 견자는 만예지의니 언약능자강이견만하여 이종군행이면 즉가이망기회라)
‘견양회망牽羊悔亡’은 양羊은 떼지어 다니는 물건이요 견牽은 당기고 끄는 뜻이니, 만일 스스로 강强하게 끌어당겨서 여럿을 따라 가면 뉘우침이 없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然旣處柔 必不能也 雖使聞是言 亦必不能信用也 夫過而能改 聞善而能用 克己以從義 唯剛明者能之
(연기처유하니 필불능야요 수사문시언이라도 역필불능신용야리니 부과이능개와 문선이능용과 극기이종의는 유강명자능지라)
그러나 이미 유柔에 처하여 반드시 능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이러한 말을 듣더라도 또한 반드시 신용信用하지 않을 것이니, 허물이 있음에 능히 고침과 선善을 듣고서 씀과 사사로움을 이겨 의義를 따름은 오직 강명剛明한 자만이 능하다.
在他卦 九居四 其失 未至如此之甚 在夬而居柔 其害大矣
(재타괘엔 구거사 기실이 미지여차지심이로되 재쾌이거유일새 기해대의니라)
다른 괘卦에 있어서는 구九가 사四에 거한 잘못이 이와 같이 심함에 이르지 않는데, 쾌夬에 있어 유柔에 거했으므로, 그 해로움이 큰 것이다.
[주희朱熹의 주역본의周易本義]
양陽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중정中正하지 못해서 거하면 불안不安하고 가면 나아가지 못하니, 만일 여러 양陽과 다투어 나아가지 않고 편안히 그 뒤에 나오면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결단決斷할 때를 당하여 뜻이 위로 나아감에 있어 반드시 능하지 못할 것이니, 점치는 자가 이 말을 듣고서 믿으면 흉凶함을 바꾸어 길吉하게 할 것이다.
양羊을 끌고가는 자는 그 앞을 가로 막으면 나아가지 않고, 풀어놓아 앞으로 가게 하고 그 뒤를 따라가면 갈 수 있다.
【本義】
以陽居陰 不中不正 居則不安 行則不進 若不與衆陽競進而安出其後 則可以亡其悔
(이양거음하여 부중부정하여 거즉불안하고 행즉부진하니 약불여중양경진이안출기후면 즉가이망기회라)
양陽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중정中正하지 못해서 거하면 불안不安하고 가면 나아가지 못하니, 만일 여러 양陽과 다투어 나아가지 않고 편안히 그 뒤에 나오면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然當決之時 志在上進 必不能也 占者聞其言而信 則轉凶而吉矣
(연당결지시하여 지재상진하여 필불능야니 점자문기언이신이면 즉전흉이길의리라)
그러나 결단決斷할 때를 당하여 뜻이 위로 나아감에 있어 반드시 능하지 못할 것이니, 점치는 자가 이 말을 듣고서 믿으면 흉凶함을 바꾸어 길吉하게 할 것이다.
牽羊者 當其前則不進 縱之使前而隨其後 則可以行矣
(견양자는 당기전즉부진이요 종지사전이수기후면 즉가이행의라)
양羊을 끌고가는 자는 그 앞을 가로 막으면 나아가지 않고, 풀어놓아 앞으로 가게 하고 그 뒤를 따라가면 갈 수 있다.
<상전象傳>
象曰 其行次且 位不當也 聞言不信 聰不明也
(상왈 기행차저는 위부당야일새요 문언불신은 총불명야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그 나아감이 주저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음’은 귀가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왕필王弼의 주注]
서합괘噬嗑卦䷔의 귀가 없어짐의 흉함과 같은 것이다.
[注]
同於噬嗑滅耳之凶
(동어서합멸이지흉이라)
[공영달孔穎達의 소疏_왕필王弼의 주注에 대하여]
구사九四가 이미 말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여 구오九五에게 끌려가려 하지 않으면 반드시 침해와 이김을 당하여 흉함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문經文에 흉하다는 글이 없으므로 〈상전象傳〉에서 “총불명聰不明”이라 한 것이니, 이는 서합괘噬嗑卦䷔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와 같으니, 저 서합괘噬嗑卦䷔에서 ‘밝지 못함’으로 흉함을 해석하였는바, 여기서도 흉함이 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疏]
四旣聞言不信 不肯牽係於五 則必被侵克致凶.
(사기문언불신 불긍견계어오 즉필피침극치흉)
구사九四가 이미 말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여 구오九五에게 끌려가려 하지 않으면 반드시 침해와 이김을 당하여 흉함을 부르게 될 것이다.
而經无凶文 象稱聰不明者 與噬嗑上九辭同 彼以不明釋凶 知此亦爲凶也.(注18)
(이경무흉문 상칭총불명자 여서합상구사동 피이불명석흉 지차역이흉야)
그러나 경문經文에 흉하다는 글이 없으므로 〈상전象傳〉에서 “총불명聰不明”이라 한 것이니, 이는 서합괘噬嗑卦䷔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와 같으니, 저 서합괘噬嗑卦䷔에서 ‘밝지 못함’으로 흉함을 해석하였는바, 여기서도 흉함이 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역주]18 經无凶文……知此亦爲凶也 : 서합괘噬嗑卦䷔ 상구上九 효사爻辭는 “상구上九는 차꼬를 메어 귀가 없어진 것이니, 흉하다.[上九 何校滅耳 凶]”인데, 〈상전象傳〉에서 이를 해석하여 “‘차꼬를 메어 귀가 없어짐’은 귀가 밝지 못한 것이다.[하교멸이何校滅耳 총불명야聰不明也]”라고 하여 ‘흉함’과 ‘귀가 밝지 못함’을 연계하였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총불명聰不明] ‘총聰’은 들음이니, 진실로 들음이 밝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 것이다.
[疏]
‘聰不明’者 聰 聽也 良由聽之不明 故聞言不信也.
(‘총불명’자 총 청야 양유청지불명 고문언불신야)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구九가 음위陰位에 처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양陽으로 유위柔位에 거하여 강결剛決함을 잃었기 때문에 강强하게 나아가지 못하여 그 감을 머뭇거리는 것이다.
강剛한 뒤에 밝을 수 있으니, 유柔에 처하면 옮겨가서 바른 성性을 잃는다. 어찌 다시 밝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음은 그 들음이 밝지 못해서이다.
【傳】
九處陰 位不當也 以陽居柔 失其剛決 故不能强進 其行次且
(구처음은 위부당야라 이양거유하여 실기강결이라 고불능강진하여 기행차저라)
구九가 음위陰位에 처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양陽으로 유위柔位에 거하여 강결剛決함을 잃었기 때문에 강强하게 나아가지 못하여 그 감을 머뭇거리는 것이다.
剛然後能明 處柔則遷 失其正性 豈復有明也 故聞言而不能信者 蓋其聰聽之不明也
(강연후능명이니 처유즉천하여 실기정성이니 기부유명야리오 고문언이불능신자는 개기총청지불명야라)
강剛한 뒤에 밝을 수 있으니, 유柔에 처하면 옮겨가서 바른 성性을 잃는다. 어찌 다시 밝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음은 그 들음이 밝지 못해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