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 ‘대전근현대사전시관’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촬영지로 주인공들 몸담은 경찰서로 그려져
아치형 천장, 대리석 중앙계단 등 건물 곳곳에 세월의 멋이 물씬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게 매력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대전도 그렇다. 대전은 언뜻
보면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직접 발을 딛고 이곳저곳 누비다보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특히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Life on Mars)>의 촬영지인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매력이 있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다.
KTX를 타고 대전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니 노란 석조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이다. 이 건물은 1932년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당시엔
충남도청으로,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한국전쟁 중에는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됐다. 이어 휴전하고 나서부터 2012년까지
다시 도청으로 쓰였다.
전시관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시공간을 과거로 되돌렸다. 아치형 천장과 화려한 샹들리에,
문고리와 창틀 등 로비는 현대 건축물에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대리석으로 만든 중앙계단은 오르내린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곡선으로 닳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세월이 빚은 멋. 이는 전시관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전시관은 극에서 1980년대의 경찰서로 쓰인다. 어느 날 갑자기 1988년에 깨어난 과학수사대 한태주 형사(정경호 분).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던 태주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자신이 근무하던 경찰서다. 그러나 원래 근무지와는 다른 외관의
경찰서를 보고 이내 자신이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기에 과학수사는커녕 주먹구구식 수사만 하는 동료
경찰의 행동까지 모든 것들은 태주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태주는 그곳에서 동료 형사들과 범죄자를 쫓고, 윤나영
순경(고아성 분)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1988년의 삶에 녹아든다. 결국 그는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현실”이라는 주변인의 말에 2018년 삶을 버리고 1988년에 남는다.
드라마는 말한다. 결국 내가 어디에 있건 내가 보는 것,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가 가장 즐거운 곳이 곧 현실이라고.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지’ 다짐하며 계단을 올라 2층의 옛 도지사실로 향했다. 이곳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관람객에게 개방된다.
도지사실에 들어서자 친절한 문화해설사가 천천히 둘러보라며 반겼다. 안내실을 지나 접견실로 들어가니 그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31명 도지사의 사진들이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사진을 둘러보는데 문화해설사가 접견실과 연결된
테라스에 가보길 권했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백미란다.
테라스로 나가보니 대전역부터 걸어왔던 직선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몇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 테라스는 거리를 감상하는 곳이지만 일제강점기엔 달랐을 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권력의 상징이자 식민통치를 위해 모든 것을 관찰했던 장소. 그 생각에 이르니 갑자기 씁쓸함이 몰려와 테라스를
벗어났다.
전시관에서 나와 오른쪽 길로 10분 정도를 걸었다. 두번째 목적지인 대흥동 문화예술거리를 가기 위해서다. 거리를
몇걸음만 걸으면 과거가 나오고, 다시 몇걸음 더 걸으면 현재가 나타났다. 낡은 건물 사이사이 최신식 건물이 들어선
탓이다.
도보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니, 퍽 흥미로웠다. 여기에 나들이 가는 가족, 옷걸이에 걸린 티셔츠 등 허름한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보물찾기 게임에서 보물을 한아름 얻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몰랐던 대전의 매력을
한가득 찾은 덕이다.
대전=최문희, 사진=김덕영 기자 mooni@nongmin.com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1988년 감성을 녹여낸 차원 다른 복고 수사물
2018년 6~8월까지 케이블 채널 OCN에서 방영됐다. 2018년을 살던 형사 한태주가 1988년으로 시간여행해 그곳의 형사
들과 사건을 풀어나간다. 영국 BBC에서 방영된 동명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O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