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0일 일요일
[녹]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대영광송신경교중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가 아닌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시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고아들과 과부들의 아버지, 떠돌이들의 피난처, 억눌린 이들의 정의이시니, 하느님 사랑에 의탁하는 불쌍한 이들을 지켜 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유와 빵을 넉넉히 얻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진 것을 형제들과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제1독서<과부는 밀가루로 작은 빵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7,10-16
그 무렵 엘리야 예언자는 10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11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12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13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16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46(145),6ㄷ-7.8-9ㄱ.9ㄴㄷ-10ㄱㄴ(◎ 1ㄴ)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제2독서<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9,24-28
24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25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26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마태 5,3
◎ 알렐루야.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알렐루야.
복음<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연중 제32주일 복음묵상
(마르12,38-44)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의 위선, 즉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적하시면서 이어서 렙톤 두 닢을 넣는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보시고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고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시대 당시 과부에게 있어서 남편을 사별했다는 것은 단순히 수입원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그렇게 자신의 생활비를 바치고 나면 사는 것 자체가 힘들 수도 있는 봉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과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정성을 다해 자신의 것을 봉헌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봉헌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많은 경우 봉헌이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하느님께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것을 봉헌한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아까운 마음을 갖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봉헌이라는 것은 자신의 것을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봉헌의 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성과 의지와 저에게 있는 모든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 받아주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도로 바치나이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오니 완전히 주님의 뜻대로 주관하소서 저에게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소서.”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노래를 잘한다고 했을 때 물론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그만큼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좋은 목소리를 주셨고, 음악적인 재능을 주셨고, 또 열심히 노력하는 열정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그렇게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탈렌트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사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우리가 평신도 사도로서 충실하게 주님께서 주신 사도직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며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도직을 이루어간다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주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봉헌의 삶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리면서 우리가 가진 것을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고, 하느님의 일을 함께 이루어가고, 하느님의 사랑을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고, 하느님의 나라를 함께 이루어가는 충실한 사도가 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