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로 가득찬 27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 흥사단 건너편 골목길. 이천수(20·고려대)가 담쟁이 넝쿨 우거진 통일문제연구소에 들어서자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던 재야운동가 백기완씨(68)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몇분 뒤 신문선 SBS 축구해설위원이 도착하자 "선수 때부터 신선생을 지켜봤다"며 따스하게 손을 잡았다.
백기완과 신문선, 그리고 이천수. 거침없는 말솜씨와 독특한 개성으로 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축구와 월드컵을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5일 백씨가 goodday와 인터뷰할 때 제안했던 축구 대담이다.
이천수는 백씨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궁금하다"며 달려왔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다는 백씨는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축구화를 사준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14세에 월남해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천수가 온다고 해서 연구소를 깨끗이 청소했지."
▲백기완 선생(이하 백)=세상을 안다고 껍죽대는 사람들만 보다가 진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나를 돕고 있는 채원희 간사도 안동여고 체육부장이었고 축구선수가 꿈이었을 정도로 축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신문선씨와 (이)천수가 온다고 했더니 아침부터 청소를 한다고 분주하더라구요. 연구소가 이렇게 깨끗해 본 적이 없는데 귀한 손님이 온다니 깨끗하게 치워놓았습니다. (모두 웃음)
▼신문선 위원(이하 신)=한 번쯤은 만나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백=신문선씨는 선수생활 때부터 지켜봤고 이천수는 대학교 축구경기장에서 처음 본 뒤 일전에 대표팀 체력테스트에서 1위를 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축구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을 만나니 힘이 부쩍 납니다.
▼신=그동안 선생께서는 통일일꾼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축구에서도 과거 경평전이 끝나면 서울과 평양 시민들이 함께 어깨춤을 췄고 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와 같이 남과 북이 하나가 된 적이 있는 데 과거의 기억은 어떻습니까.
▲백=90년 통일축구대회 당시 군사독재 시기였지만 함께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정치적인 대립관계에 있다보니 초청하지 않더군요. 서운합디다. 솔직히 축구장에 가보면 자신을 잊어버리고 축구밖에 안보이지 않습니까. 축구는 좋고 싫고가 없이 단지 즐기는 것인데 나한테 구경 좀 하자고 하면 어때요. 에이 빌어먹을 놈들. 그때 생각하면 이런 소갈머리 없는 생각도 해보기도 합니다.
▼신=무섭고 두려워서 부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나를 무섭고 과격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백=아픈 상처가 있는 질문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 잡혀가 보니 "왼발이 무척 세 축구선수가 되려고 했냐"면서 왼발을 꺾어버리더군요.
그리고는 "북이 남쪽으로 쳐들어오는 다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 아니냐"며 오른쪽 무릎 마저 꺾어 코앞에 갖다 대더라구요.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권투선수도 10초만에 깨어나는데 10시간만에 깨어났습니다.
일생을 정부가 잘못하는 것을 비판하고 살다보니 무섭고 과격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최루탄을 4·19 때부터 요즘까지 맡고 있고 통일 해방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매를 가장 많이 맞은 기록을 갖고 있어요.
고문을 했던 형사들도 내가 깨어나니 심장이 강해서 고맙다, 당신이 죽었으면 일이 커졌을텐데 깨어나서 고맙다고 하더라구요.
▼신=축구선수가 되려면 심장도 강해야 한다고 하는 데 어릴 때 축구실력은 어땠습니까.
▲백=한마디로 대단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물속에서 숨 안쉬고 2분을 버틸만큼 폐활량이 좋았어요. 순발력도 좋아서 유도 선수들과 씨름을 해도 여간해서는 진 적이 없었죠. 이천수가 뛰는 걸 보면 예전 나를 보는 것 같아 맘에 듭니다.
▼신=축구선수가 되지 못한 사연이라도 있나요.
"시골 촌놈이었지만 왼발 하나는 기가 막혔죠."
▲백=시골 촌놈이었지만 왼발 하나는 기가 막혔죠. 하루는 운동장에서 돼지 오줌통을 차고 있는데 아버지가 서울 가면 축구선수 시켜준다고 해서 맨발로 서울로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먹고 잘 곳도 없는 데 축구를 한다는 것은 호강이었죠.
하루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축구선수들이 있어서 따라갔는데 거지가 쫓아온다고 몰매를 맞았습니다. 축구가 얼마나 좋았는지 축구선수들에게 몰매 맞는 것만으로도 아프지 않더라구요. 끝까지 쫓아가서 교장을 만나 걸상 하나만 내주면 축구부를 최고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더니 거절하더군요.
교문 앞에서 울고 있는데 수위아저씨가 만원(당시 물가로 쌀 한가마니 반 가격)을 가지고 오면 학교를 다니게 해준다고 해서 그 길로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3,000원까지 만들었는데 급성폐렴에 걸리고 말았어요.
당장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데 축구를 하고 싶어 병원 한번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병 때문에 학교에 들어가지는 못했죠. 그런 면에서 신문선씨는 참 영광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신=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결국 학업을 포기하셨나요.
"초등학교 축구팀 하나만 소개해 주면 축구를 가르쳐 줄 수 있어."
▲백=나이가 하나 둘 먹어가면서 때를 놓쳤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전쟁에 끌려갔죠. 축구에 한이 맺힌 사람이라 지금도 노동자 대회같은 대규모 집회를 치르다가도 축구경기가 있으면 집에 와서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문익환 목사가 살아있을 때 한번 변장을 하고 축구장에 가자고 한 적이 있는데 결국 가지는 못했어요. 이건 비밀인데. 신문선씨에게 부탁이 하나 있는데 축구에 맺힌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축구팀 하나만 소개해주면 시간강사로라도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축구를 정식으로 해보지 않았지만 슈팅할 때 디딤새를 어떻게 하는 지 정도는 지금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꼭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도 좋지만 아줌마 축구단은 어떻겠습니까. 대표선수들도 선생님 강연을 한번 들었으면 좋겠네요. 예전에 축구를 하셨던 대선배들에게 들어보면 축구가 공만 가지고 노는 행위가 아니라 한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당시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기가 세고 깡다구도 있어 일본에 대한 항일의식도 높았구요.
▲백=내가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축구는 공을 지르는 게 아니라 한을 지르는 거지요. 저 역시도 미국놈들에게 한이 맺혀 17살때 영어사전을 다 외우기도 했어요. 한이 맺힌 사람들은 축구공을 통해 한을 질러버릴 수 밖에 없었고 장벽을 질러버리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던 거죠.
"공은 둥글고 만인에게 평등한 것. 삶 속에 축구가 있고 축구 속에 삶이 있는 기본 정신 이해해야."
▼신=축구가 민족의 아픔과 쓰라림을 대변해 왔는데 선생님은 축구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살아오신 것 같군요.
▲백=우리 집안이 여덟 식구인데 북쪽에 4명(어머니, 큰 형님, 큰 누님, 할머니), 남쪽 4명(아버지, 작은 형님, 작은 누님, 나)이 분단 때문에 나뉘어 있어야 했습니다. 큰 형님은 간첩혐의를 받아 돌아가시고, 작은 형님은 육군 일등병으로 전사했죠. 누가 우리를 이렇게 갈라 놓았나 생각했고 그 의문과 책임감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었습니다. 축구를 누구보다도 좋아했지만 나는 축구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게 가슴이 아팠고, 이제야 생각하는데 내 삶의 내용이 축구에 대한 생각도 바꿔 놓은 것 같아요. 축구를 좋아했던 것은 이 땅별(지구)을 몰고가서 내가 원하는 곳에 골을 넣고 싶어서였어요.
▼신=70년을 살아오시면서 결론을 얻으셨나요.
▲백=여전히 우리나라를 갈라놓는 놈들은 안되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축구에 대한 생각은 여전합니다. 예전 몽양 여운형 선생도 축구를 좋아하셨고 나 역시도 축구장에 자주 나가곤 했어요.
▼신=당시 좋아하던 선수는 누구였나요.
▲백=김용식 선생을 좋아했죠. 같은 북한 출신인데다 정열적이고 성실한 삶의 자세도 좋아보였어요. 그 뒤로는 최정민 우상권 이회택 차범근 허정무 신문선 정도랄까.
▼신=백범 김구 선생도 축구를 좋아하셨나요.
▲백=축구는 잘 몰랐고 한때 택견을 하셔서 그런지 권투를 좋아하셨어요.
"백범 김구 선생은 축구는 잘 몰랐고 한때 택견을 하셨지."
▼신=일생을 통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축구경기가 있다면.
▲백=4·19 직후로 기억하는데 효창운동장에서 한국대표팀이 외국팀과 경기를 했어요. 당시 선수들이 차태성, 최정민, 조윤옥 정도가 기억 나는데 전반 시작부터 우리가 계속 몰리다가 조윤옥이 머리로 차넣은 것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더라구요. 먹이를 보고 온 몸을 드리미는 것을 '목꽂이'라고 하는 데 조윤옥의 골 장면을 보니 정말 축구라는 것은 온 몸으로 풀어제끼는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됐어요.
▼신=공격수를 좋아했던 것 같군요.
▲백=축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공격수를 먼저 보죠. 하지만 축구는 전체를 볼 수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나는 축구를 뜯어 보는데 전체 몰이가 잘되는 가를 우선 살펴봅니다.
▼신=축구의 힘은 무한하다는데. 축구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백=축구공은 둥글고 태양계를 포함한 세상 만물이 둥글죠. 둥글다는 것은 높고 낮음도 없고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둥근 우주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축구의 기본정신은 모든 사람을 잘 살 수 있게 하는 데 있을 겁니다. 자기만 앞장서서 떵떵거리는 사람이 없도록 삶속에 축구가 있고 축구에 삶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페인팅을 얀사이, 센터링을 한복판 넣기, 패스를 넘새, 슛-골인을 꽈이 탕으로"
▼백=신문선씨에게 부탁할 게 하나 있습니다. 영향력이 큰 해설가인 만큼 축구해설할 때 만이라도 축구 용어 좀 바로 잡았으면 합니다. 상대를 속인다는 말을 페인팅이라고 쓰고 있는데 우리 말로 먹을 것을 사줄 듯 사주지 않고, 마음을 줄듯하면서 주지 않는 것을 얌체라고 부르죠.
예술성 있게 표현하면 얀사이(얌사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센터링이란 말도 멎적은 영어표현인데 우리 말로 한 가운데, 복판, 한복판 넣기 등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신=북한에서도 축구용어를 바로잡자는 운동을 벌어져 현재 센터링을 문전올리기로 쓰고 있는데 한복판 넣기도 괜찮은 표현 같네요. 방송할 때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백=북한에서 패스를 연락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해서 연락은 한문이라고 봐야 돼요. 순수한 우리말로는 넘새(넘긴다)라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 슈팅도 옛날 어르신들은 "때려, 쏴"라고 말하곤 했죠. 우리말로는 '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의미로 뭐든지 뚫는 것을 꽈이라고 하고 골인을 '탕'이라고 했죠.
그래서 요즘 흔히 쓰는 "슛-골인"을 "꽈이 탕"이라고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중계를 볼 때마다 생각을 합니다. 패스, 슛, 골인 같은 외래어가 들어온 지 40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아나운서나 해설가들, 그리고 기자들이 신경써서 고치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하나 덧붙이자면 '파이팅'라는 용어는 싸우자는 뜻으로 외국에서도 쓰지 않는 용어로 알고 있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한 모욕감이 들곤 하는데 우리에게는 '아리아리'라는 적절한 말이 있습니다. 아리아리는 없는 일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서 간다는 뜻이에요.
축구에서 상대 수비진을 뚫고 탕을 하기 위해서는 막힌 길을 뚫으러 가는 것이니까 아리아리처럼 좋은 응원 구호가 없을 것 같네요. 여기에다 옛 어른들이 며칠간 줄다리기를 하며 "영차 영차"라고 했잖아요. 수만명의 관중들이 함께 "아리아리, 영차영차"를 외친다면 외국 사람들도 흥에 겨워 따라할 겁니다.
"붉은 악마 대신 붉은 쇠뿔이라고 하면 어떻까"
▼신=붉은 악마에게 건의해 아리아리 영차영차를 외쳐보면 좋겠네요.
▲백=붉은 악마에게도 건의할 게 있는데. 악마라는 말은 우리 전통에 없어요. 두옥신(관이 벌떡 일어나 떠벅떠벅 걸어나오는 것)같이 원한풀이를 위한 귀신은 있어도 사람들에게 해꼬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붉다는 의미는 원래 진달래꽃 빛깔, 사랑이 타오르는 빛깔을 의미하는데 악마와는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말로 쇠뿔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주 화가 난 사람을 뜻하는 겁니다. 말뚝이 춤을 아시죠. 덩실덩실 추는 춤인데 말뚝이는 발목과 목이 사슬로 묶여 있어 끈을 끊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어요. 그 억압을 끊었을 때 쇠뿔이라고 합니다. 없는 길을 낸다는 아리아리처럼 쇠뿔이도 가로 막힌 것을 뚫어버리는 것이니까 '붉은 쇠뿔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박정희대통령 시절 남산터널을 뚫는다기에 터널보다는 맞뚜레라고 쓰자고 건의했더니 조국 근대화 정신에 맞질 않아서 채택을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야 이놈들아. 미국말 꿔다 쓰는 것이 조국 근대화냐"하고 성을 내기도 했습니다. 붉은 쇠뿔이들이 어깨 동무하고 '영차영차 어기야 영차'하고 더 흥이 나면 '옹헤야'를 불러 제끼고 목이 쉴 때는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며 10만명이 무리춤을 추면 어떨까요. 우리 노래를 편곡을 해서 월드컵 응원가로 쓰면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한 노래가 될 겁니다.
"꿈을 크게 키워야 얻는 것도 크게 마련. 축구선수가 쩨째하게 16강이 뭔가, 지구를 몰아야지 지구를…."
▼신=이야기를 나눠보니 백선생은 상당한 이론가입니다. 해설가가 됐으면 잘 하셨을 것 같은데요. 해설가라고 생각하시고 한국축구가 아직까지 월드컵에서 1승을 못한 이유를 분석해 주십시오.
▲백=우선 선수를 뽑는 과정이 틀렸어요. 마을, 직장 단위 팀들이 활성화돼야 좋은 선수가 나오는 법인데 그만큼 저변이 없다는 말이죠. 2002년 월드컵을 때참(계기)으로 삼아 축구를 정신적인 국민체육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마치 아편처럼 좋아하는 사람들만 축구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축구야말로 전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16강, 16강 노래를 부르는 데 그 말처럼 싫은 게 없어요.
한번 도전할 거면 16강에 올라갈 생각보다는 꼭대기(정상)에 도전해야죠. 지금 당장은 안된다고 해도 꿈을 크게 키워야 얻는 것도 많은 법입니다. 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 아쉽게 2-3으로 진 뒤 홍명보가 시간만 좀 더 있었으면 이겼을 것이라고 분해하는 게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런 자신감 갖고 한번 이기면 두번 이길 생각을 하고, 두번 이기면 세번 이길 생각을 해야죠. 축구선수가 쩨째하게 16강이 뭐야. 지구를 몰아야지 지구를... 이천수에게도 욕심을 가지고 꼭대기에 드리대보자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꼬마들이 볼을 차면 가슴이 쿵쾅거려 글을 못쓰지"
▼신=히딩크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체력, 기술, 전술을 고루 갖춘 만능선수가 되라고 강조하는 점이 맘에 듭니다. 이제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믿고 맡겨 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우리가 여태까지 해온 한국축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문단을 구성해서 지원을 하면 될테구요.
▼신=텔레비전 말고 축구를 접하는 매체가 있습니까.
▲백=동네 꼬마들이 축구를 해도 창문을 열고 바라볼 만큼 어릴 때 추억이 떠오릅니다. 가끔 경기장에 나가 직접 축구를 지켜봅니다.
▼신=지난 11월 상암경기장 개장경기를 직접 보셨는데.
▲백=관중과 선수들이 호흡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1승을 거두려면 나를 부르면 돼요. 내가 경기장에 가면 대표팀이 꼭 이겼거든요. 99년 3월 브라질전과 지난해 한중전서 각각 1-0으로 이겼고, 이번 상암경기장 개장경기에서도 크로아티아를 2-0으로 눌렀지 않았습니까.(모두 웃음)
▼신=월드컵 조직위원회가 공동위원장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야단 한번 치시죠.
▲백=집단지도체제든 단일지도체제든 월드컵을 꼭 성공시켜야겠다면 정치색이 배제돼야 합니다. 성대하고 거룩하게 치를 수 있게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우선 두 사람 모두 사심을 버려야 해요.
"쌀 한되박을 모아 7천만이 나눠 먹고 북한 동포 30만명 초청운동을 벌이자"
▼신=그동안 방송을 해오면서 해설 도중 두 번 울어봤습니다. 한번은 98년 프랑스월드컵 한국-벨기에전에서 이임생이 눈이 찢어지는 속에서도 필드로 뛰어 들어갈 때였고, 또 한번은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서독이 우승한 뒤 마치 통일을 이룬 것처럼 동독 선수, 관계자들과 부둥켜 안고 기뻐할 때였는데요. 우리도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야겠는데 어떤 운동을 펼쳤으면 좋겠습니까.
▲백=우선 FIFA에게 아쉬운 점이 많아요. 한일 공동개최보다는 남북한 단독개최를 했다면 세계사에 길이 남을 평화에 일조할 뻔 했는데 말입니다. 한일 공동개최라지만 이왕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만큼 남북한 7,000만 대잔치가 되려면 경기를 함께 치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4,000만이 쌀 한되박씩 모으고 가래떡을 만들어 남북 7,000만이 함께 나눠 먹고 60억 인구에게도 가래떡을 하나씩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또 북한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30만명 가량 초청하는 '30만명 초청운동'을 벌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난해 한국에서 골프치러간 사람이 1,200만명이었답니다. 야구장과 축구장에도 280여만명이 몰렸구요. 30만명 중 10분의 1만 온다고 해도 얼마나 기쁘고 벅찬 일이겠습니다. 그야말로 민족의 대축제가 되는 것이지요.
▲백=축구가 너무 상업적인 오락성으로 타락하고 있지 않나 걱정됩니다. 상업성을 너무 쫓지 말고 축구가 국민체육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도 축구에서 배울 점이 많아요. 한을 내지르고 잘못된 지구를 내지르자는 축구의 철학성에 따라서 전 분야도 큰 깨우침을 주는 것이 축구 아닙니까. 이런 깨달음을 모든 사람들이 고심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신=지역갈등, 이념갈등, 정쟁 혼란의 20세기가 지나가고 화해와 용서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한때 고통을 줬던 전두환 전대통령하고도 축구를 할 생각이 있는지요.
▲백=전두환씨는 진짜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함께 축구를 하기가 싫습니다. 축구장에 나선다고 모두 축구를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를 질러버릴 줄 알아야 진짜 축구를 좋아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전두환씨는 준비가 덜 됐어요. 진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을 때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김영삼, 김대중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축구는 한을 내지르는 겁니다. 잘못된 세상을 내지르고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진짜 축구를 하려면 전두환씨가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차야 합니다. 그러면 나랑 축구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14년간 14번이나 입원을 했습니다. 한번 입원하면 몇달씩 걸렸는데 그 때마다 수억원이 들었을 겁니다.
"이천수는 손으로는 절대 잡지 못하는 미꾸라지 같아, 넘새를 세번 넘기지 말고 속도축구에 적응하길."
▲백=전문가 앞에서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 미안하지만 왜 이천수를 좋아하느냐고 하면 꼭 미꾸라지 같더라구요. 조그만 놈이 잡을 수가 없어요. 축구란 모름지기 두 세놈에게도 잡히질 않아야지. 미꾸라지는 절대 손으로는 잡지 못합니다. 그물로 잡아야 합니다. 그만큼 이천수에게 기대가 큽니다.
▼신=미꾸라지라고 별명을 지어주면 되겠네요. 방송에서도 써야겠습니다.
▲백=방송할 때 축구는 그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천수는 잡히지 않는 선수라는 설명 좀 달아주세요.
▼신=근성이 있고 지기 싫어하는 것이 백선생과 천수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악착같다는 의미의 다른 별명을 하나 더 지어주신다면.
▲백='이강산 낙화유수'가 어떨까요. 예전에 동숭동에 미군부대가 있었는데 철조망에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매일같이 울곤 했어요. 미군들은 그 여학생이 울 때마다 머리를 빡빡 밀거나 헌병대에 맡기기도 했는데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꾸 울더라구요. 그런데 어느날 웬 젊은이가 미군 중 가장 덩치가 큰 놈하고 맞짱을 뜨자고 하는 거에요. 단 조건은 자기가 이기면 미군부대 앞에서 매일 우는 여학생에게 용서를 빌라는 것이었지요.
눈이 펄펄 내리던 날 창경궁 빈터에서 싸움이 났는데 미군의 우악스런 힘에 젊은이가 버티지를 못하다가 박치기로 한번 박으니까 미군이 퍽하고 쓰러졌어요. 주위 사람들이 "얘야 네가 그 여자애 오빠냐. 이름이 뭐냐"고 묻자 그 젊은이가 하는 말이 "내 이름은 돌멩이에 부딪혀도 꺾이지 않고 언제나 흘러가는 이강산 낙화유수요" 하더랍니다. 어때요. 어떤 시련이 있어도 끊임없이 흐르는 '이강산 낙화유수'가 이천수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천수에게 '이강산 낙화유수'라는 별명을 지어주자."
▼신= '이강산 낙화유수' 정말 좋네요. 백선생께서 추천하신 별명으로 제가 쓰고 있는 칼럼에 꼭 소개하겠습니다.
▲백=이천수에게 바라는 것은 볼을 잡으면 상대편 11명이 혼비백산하게 만들어야 해요. 혼란스럽게 해야 됩니다. 갖고 뛰던지 넘새를 세 번이상 넘지 말고 꽈이 탕 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어요. 네번 넘으면 상대 실수 없이는 꽈이 탕 할 수 없죠. 이게 히딩크감독이 말하는 속도축구 아닙니까.
▼신=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붉은 악마 젊은이들. 축구지도자들이 백선생의 넓은 식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습니다. 참 용기를 얻고 갑니다.
저도 글을 쓰고 있지만 사회 지도층의 생각을 축구에 대입시켜서, 풀어줄 수 있는 분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 축구와 정신, 역사, 꿈까지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천수가 오늘 만남의 최대 수혜자일 것 같네요. 선생의 꺾이지 않은 기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긴 시간동안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신선생. 너무 내 얘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내년 월드컵에도 직접 경기장에 나가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수야. 세계적인 선수가 되서는 안된다. 세계에서 으뜸이 되는 선수가 되렴. 세계에서 으뜸이 되는 선수….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