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이천년 전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였다.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인가? 벌써 구원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인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구약성경에서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 바쳐진 동물의 피는 예수님에 대한
모형이다. 그런데 성전은 처음 성전과 둘째 지성소로 구분되었고,
하나님은 지성소에 계셨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처음 성전을 통과하여 지성소까지
이를 때에 가능하다. 처음 성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종의 자리이고,
두번째 지성소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녀의 자리이다.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한다. 이는 구약 때 바쳐진 동물제사의 실상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동물제사의 실상으로 오신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 주셨다. 즉 성전의 하나님께 바쳐지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그 몸을 바쳐주셨는데 그 게 십자가상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 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초림 때 피를 바치신 곳은 어디인가 이다.
처음 성전에 바쳐진 어린양으로서 다 이루심인가?
두번째 지성소에 바쳐진 어린양으로서 다 이루심 인가? 처음 성전에
바쳐진 어린양으로서 "다 이루었다!" 이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첫째,
예수님은 종의 값 은 삼십에 팔려서 십자가에 돌아가 주셨음을
기억하자. 자유인은 팔릴 수도 없지만, 예수님은 자유인으로 오셔서
죽어주신 분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종의 값 은 삼십에 팔려서 바쳐진
어린양이다. 종의 자리로 오셔서 종의 피를 뿌리신 분이므로 그 피가
바쳐진 곳은 처음 성전이다.
처음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은 아직 구원이 없는 종의 자리인데, 예수님의 육체의 혈액은
그러한 처음 성전에 바쳐진 피였다.
둘째,
예수님이 주신 복음은 모두 비유였음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신령한
분이므로 말씀을 형이상학의 신령한 말씀(로고스 이성)으로 주셔야만 했는데
예수님이 초림 때는 그리하지 아니하시고 모두 형이하학의 물질적인 것과
육체의 예법으로 알려주셨기 때문에 비유라고 한다.
예수님이 세워주신 신앙제도는 물로 받는 물세례, 음식물을 금하는
물질금식, 물질로 바치는 십일조,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유월절식사 등이
모두 비유였으며 무엇보다 복음의 중심을 이루는 예수님의 피가
육체의 피로써,
복음은 모두 육체의 예법으로 가르치신 비유였다.
신령한 하나님을 육체의 예법으로 알려주셨으므로 비유라고 한다.
하나님을 명백히 알지 못하고 비유로 알았다면 아직 구원이 없다.
비유란 하나님에 대해 수수께끼를 내주신 것이므로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스스로 더듬어 찾아 올 수 있는지, 찾아오지 못하는지 그 여부를
알기 위한 시험이요, 시험이기 때문에 율법일 뿐이다.
따라서 율법으로는 아직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처음 성전에 바쳐진 육체의 피였다.
셋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 처음 성전과 지성소 사이에
막혔던 휘장이 둘로 찢어졌음을 기억하자.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 성전에 어린양의 피가 바쳐짐으로 해서
마침내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종이었으나,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종의
자리로 오셔서(은 삼십에 팔린 종), 그 곳에서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이끌어 내시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의 품속에 우리를 완전히 안겨드린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휘장을 찢어내어,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루신 것 뿐이다.
"다 이루었다!" 는 바로 이러한 구원의 가능성의 이루심이다.
다시 말해 처음 성전에서 율법을 세우는 일에 대한 이루심이다.
결코 율법을 완성시켰다는 의미의 다 이루심이 아니다.
율법을 세우셨다는 의미의 이루심임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지성소의 구원이란 반드시 처음 성전의 율법의 세워짐이 먼저 있어야 한다.
먼저 율법을 세워서 그 율법으로 우리가 죄인임을 드러내신 연후에
마침내 구원을 주시게 되어 있는 게 성경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는 것은 율법의 피를 흘려주셨다는 뜻이고
율법의 피에 의해 우리의 죄가 드러나게 되면 그 때에 마침내
죄인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이므로 이는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놓은 것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곧장 사함이 아니고 우리의 궁극적
죄사함에 대한 절차와 수순 밟기에 들어선 것 뿐이다.
기독인들은 예수의 피가 곧장 우리죄를 사하여 천당간다고 깨춤추고 있으나
그것은 사단의 속임수이며 멸망의 길이다.
한 마디로 초림 예수님은 율법주로 오셨다. 이렇게 구원 앞에는 반드시
율법이 먼저 있게 되는데, 초림주가 율법주로 오셨다함은 초림주가 구원의
초석을 놓은 일이 된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구원의 초석을 놓는 일을 이루었다가 된다.
즉 천국의 시작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면 구원(천국)의 완성은 언제 이루시는가?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의 품속에 우리를 완전히 안겨드리는
구원주의 일은 재림 때에 하신다.
왜냐면 어린양의 피는 처음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진 두개의 성전에
바쳐졌는데,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초림 때에는
처음 성소에서 육체의 피(육적 십자가)를 뿌리시고, 재림 때에는
지성소에서 말씀의 피(영적 십자가)를 뿌려 우리를 완전히 구원으로
완성하시기 때문이다.
재림주가 말씀(형이상학의 신령한 말씀, 즉 로고스)의 피를 뿌리신다는
기록은 계19장 13절에 나오며, 계11장 8절에서는 영적 십자가를
지신다고 기록되었다.
초림주가 흘려주신 육체의 피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려주신 신령한
피가 아니다. 육체의 피는 여타 육체의 계명처럼 육체의 예법일 뿐이므로
신령한 하나님을 육체의 예법인 비유비사로 희미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오시는 재림 예수님은 일곱인으로 봉한 성경의 인을
떼어 우리로 하여금 명백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신다고
했다(계5:1~).
이는 예수님이 초림 때는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려주신
육체의 피를 흘려주셨으나, 재림 때에는 하나님을 명백히 알려주시는
말씀의 피를 흘려주신다는 뜻이다(계19:13).
비유로 희미하게 알려주신 초림 때는 처음 성전의 율법이고
그 비유의 성경을 낱낱이 풀어서 명백하게 알려주시는 재림 때는
지성소의 구원이다. 처음부터 곧바로 지성소의 구원을 주시지 않고
반드시 율법을 먼저 세우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는 죄인임을 입증시키기
위함이다. 처음은 율법이요, 나중은 구원이다. 처음부터 구원이 오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 성전에서 예수님의
육체의 피로써 세우신 율법(복음)을 받지 아니한 자가 지성소의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는
그 이루심이야말로 참으로 값진 구원의 수순이요 구원의 기초가 된다.
구원의 기초로써 다 이루신 것이고 구원의 완성은 아니다.
즉 천국의 기초를 놓으신 것이고 천국의 완성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악한 세상을 살아왔으며, 사망을 당해왔던 것이며, 그것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되며, 처음 성소가 된다.
하지만 재림 때는 하나님을 명백히 알려주시는 말씀의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마침내 구원의 완성과 천국의 완성을
이루시게 되며, 그것이 새하늘과 새땅이 되며, 둘째 성소(지성소)가 된다.
이와 같이 천국의 완성을 이루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전에
우리가 죄인됨을 알려주시기 위해 먼저는 육체의 피를 흘려주시게 되는
것이니 그것이 곧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가 된다.
육체의 피로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으므로 우리가 그 복음에
나아간다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벌거벗은 죄인의 몸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받은 것이며, 예수님의 육체의 피는 율법을
이루신 것이다. 결코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육체의 피를 흘린 초림때는 구원을 이룬것이 아니고
율법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즉 대망의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셔야 하기 때문에 운명하실 때 맨 마지막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비통함을 토하셨던 것이다. 구원은 오늘날 재림때 이루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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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시들은 꽃은 또 피지만 한번 꺽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합니다.
병 없는 것이 제일가는 이익이요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제일 가는 부자입니다.
오늘도 몸도 마음도 따뜻한 기분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