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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 |
2002년11월28일 제436호 |
똥꼬 살려!
인간들의 부당한 대우에 무진장 참기만 해왔던 항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저예요. 당신의 똥꼬. 비속어 쓰지 말라고요 그럼 항문이라고 해두죠. 저도 알아요. 사람들이 저를 드러내기를 꺼린다는 것. 그래서 '밑’이라든지 '뒤’라는 식으로 부르기도 하죠.
아무튼 오늘은 제가 주인님께 불평을 좀 하려고 해요. 사실 그동안 저, 주인님이 엄청 부당하게 대우했어도 무지 참아왔거든요. 오늘은 우리 똥꼬들이 인권선언하는 날이에요.
입하고 차별대우하지 말라
사진/ 회식은 치질환자의 적? 장시간 앉아 고기와
술을 지나치게 먹은 다음날 치질 환자는 '피'를 보기 쉽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죠. 주인님, 왜 저를 멸시하는 겁니까 차별대우를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요 당신이 입에게 하는 것하고 저에게 하는 것하고 한번
견줘보세요.
입을 위해서는 하루 몇번씩 양치질하고 가그린 같은 구강청결제도 뿌리죠. 또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맛난 음식을 찾아다니잖아요. 게다가 그놈은 종종 특별 서비스로 '키스’ 세례도 받죠.
하지만 저는 뭡니까 잘 씻어주지도 않고…. 평생 동안 당신의 냄새나는 똥을 말없이 받아낸 대가가 겨우 이겁니까 입이 들어가는 문이라면, 저는 나오는 문이에요. 저도 문이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대우가 달라도 되는 겁니까 제가 하는 일이 주인님에게 얼마나 큰 편안함(大便)을 주는지 신경도 안 쓰시죠
주인님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요, 봄 소풍간 날 하도 많이 먹어대서 집에 오던 길에 제가 참지 못하고 실례를 한 적이 있었잖아요.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던 주인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 정말 찝찔하셨죠
그런 기분을 전 날마다 경험하고 산다 이겁니다. 상수도가 끊기면 물을 사 마시면 되지만 하수도가 막히면 어떻게 될까요 왜 석달 전인가 화장실 하수구가 막혀서 하수돗물이 거실로 흘러넘치는 아찔한 경험을 해놓고도 모르세요
주인님, 건강의 제1 수칙이 뭔지 아세요 ;잘 먹고 잘 싸라’입니다. 이거 아주 훌륭한 말입니다. 섭생만큼이나 배설도 중요하다는 진리를 확인해주니까요.
우스갯소리지만 잘난 체하는 사람에게 '니 똥 굵다’고 쏘아붙이는 것도 사실은 똥이 굵은 사람이 건강도 좋고, 힘깨나 쓴다는 뜻이 함축돼 있는 것이라고, 이 연사 강력히 주장합니다.
주인님, 2000년 현재 우리나라 병원 입원 기록 1위(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자료)를 누가 차지했는지 아세요 흑흑흑…. 바로 저예요.
그놈의 지긋지긋한 치질 때문이죠. 제 친구 10명 가운데 4명이 이 병에 걸려 있다지 뭐예요. 성인 여자와 50대 이상은 절반가량이 치질환자랍니다. 글쎄, 10년 이상이나 치질을 참고 사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대요. 특히 여자는 55.8%나 된다네요.
제 친구는 주인이 방귀만 뀌었는데도 피를 흘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병원엘 가지 못하고 있대요. 정말 환장하겠습니다.
병원에 가길 꺼리는 까닭을 보면 더 가관입니다. 귀찮아서(29%)가 가장 많고요, 다음이 아플까봐(21%), 재발할까봐(16%), 창피해서(11%)라고 하네요(서울 대항병원 조사자료). 제발 부탁인데요, 치질이다 싶으면 제발 망설이지 말고 병원에 가세요.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별로 아프지 않게 수술할 수 있대요. 아, 그리고 병원 갈 때 씻고 가는 거 잊지 말고요. 그렇다고 향수는 뿌리지 마세요. 의사들이 그러는데, 아주 ‘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네요.
찢어지는 아픔을 참아야 하나요
사진/ 패스트푸드는 변비를 부르는
주범 중 하나다.
치질이 왜 생기냐고요 문짝도 오래
쓰면 떨어지잖아요. 치질도 그런 거예요.
어려운 말로 하면 혈액의 흐름에 이상이 생겨 피가 고여 생긴다는 정맥류설이 있고요, 항문관의 충격완화 조직이 늘어나 생긴다는 내융기탈출설이 있어요.
저는 아주 약한 피부로 돼 있어요. 되게 민감하죠. 그래서 쉽게 망가지기도 해요. 사람이 70년 동안 하루에 한번씩만 똥을 눈다고 해도 약 2만5550번을 누는 셈이거든요.
기계도 그 정도 쓰면 고장 날 거예요. 게다가 제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 주변엔 너무나 많죠. 만성 변비나 설사도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들이에요. 옛말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있죠. 그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아세요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 먹을 게 없으면 솔잎이나 소나무를 죽으로 끓여서 먹곤 했는데, 그게 변비에 딱이었다네요. 그래서 그 말이 생겼답니다.
요즘엔 식습관이 서구식으로 바뀌면서 섬유소 섭취가 부족해 변비가 생기곤 하죠. 변비에 걸리면 잘 안 나오는 똥을 억지로 누려다 보니 힘을 많이 주게 되고, 그 압력으로 항문 주위의 혈관들이 밀려나오죠. 종종 찢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변비는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데, 여성의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이 장 운동을 지연시키기 때문이에요.
똥을 억지로 참는 것도 변비를 일으키는 원인이고요. 또 아이를 가지면 위장관의 운동성이 떨어지고 전이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쉽게 변비에 걸린대요. 자궁이 커지면서 아래쪽의 혈액순환이 나빠지고, 변비 때문에 항문 주변에 피가 몰리면서 치질에도 쉽게 걸리죠.
녹황색 채소를 많이 먹으면 변비도 예방할 수 있고, 대장암도 예방할 수 있는 거 다 아시죠 일전에 나온 뉴스 보니까 우리나라 암환자 가운데 대장암이 두 번째로 많더라고요(국민건강보험공단 11월13일 발표자료).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다 됐죠. 이거 전형적인 선진국병이거든요. 육식하고 패스트푸드 많이 먹으면 생기는 병이죠.
사진/ 녹황색 채소를 많이 먹으면 변비와 대장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채식 전문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먹을거리를 고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치질에 가장 안 좋은 건 쪼그려앉는
자세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보다 치질에 더 잘 걸리는 것은 방바닥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래요.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좋지 않지만 아무래도 방바닥에 앉는 게 더 안 좋거든요. 치질의 치(痔)자에 절을 뜻하는 ‘寺’가 들어 있는 것도 참선을 위해 방바닥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스님들이 치질에 많이 걸리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치질을 ‘고시병’이라고도 하죠.
원래 치질은 스무살 이상의 어른들에게 많이 생기는데, 요즘엔 고2, 고3 학생들이 병원을 자주 찾는 것도 너무 오래 앉아 있기 때문이래요. 수험생 여러분, 무조건 오래 앉아 있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저희도 숨 좀 쉬자고요. 틈틈이 일어나서 맨손체조도 하고 산책도 좀 하세요.
주인님은 올해 망년회 때도 열심히 폭주를 하시겠지요. 아니, ‘빠라바라바라밤’ 하는 폭주말고요, 알코올 말이에요. 특히 방바닥에 앉아 줄기차게 마시는 건 제겐 아주 죽음이죠. 항문 주위 혈관에 피가 몰려 압력이 올라가고 혈액순환이 잘 안 되거든요.
스트레스도 무서운 놈이에요. 왜 ‘밑빠지게 일한다’는 말 아시죠 그건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에 민감한지를 잘 아는 우리 조상님들이 만들어낸 말이에요. 참 현명한 분들이죠. 치질환자들이 과로하고 나면 다음날 어김없이 밑으로 피를 쏟아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사실 등산이나 보디빌딩, 골프처럼 뒤에 힘이 들어가는 운동도 치질에 좋지 않다는데,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수 있나요. 치질 있는 분은 얼른 고친 다음 운동을 하면 되죠 뭐.
치질이 유전이냐 아니냐는 아주 고전적인 논란거리죠. 아버지가 치질이면 자식도 대체로 치질인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유전적 요소가 아주 없지는 않은데요, 그보다는 생활공동체로서의 가족적인 성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먹는 음식이나 화장실 습관 같은 게 비슷하기 때문이죠.
아, 제가 가끔 트림하는 것 있죠 방귀 말이에요. 그건 장속의 소화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가스가 몸에 흡수되지 않고 저를 통해 배출되는 것이거든요. 방귀가 나올 때 괄약근이 진동하면 특유의 ‘뽀~옹’ 하는 소리가 나는 거죠. 방귀 가스는 질소(N), 산소(O), 이산화탄소(CO), 수소(H), 메탄(CH) 등 다섯 종류가 전체의 98%를 차지해요. 질소와 산소는 주로 입으로 들이마신 공기고, 이산화탄소·수소·메탄 등이 장속에서 만들어져요.
이산화탄소는 십이지장이나 소장에서 생산되지만, 수소나 메탄은 대장 속 세균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죠. 장속 세균이 소화되지 않은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600㎖ 정도의 방귀를 뀌어요. 작은 생수병만한 양이죠. 그런데 200㎖에서 2000㎖까지는 정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원래 방귀를 이루는 5대 가스는 냄새가 없는데, 인돌·스카톨 등 아미노산 변환물질이 메르캅탄·황화수소 등 황화물질과 함께 대변의 ‘대장정’에 동참할 때 대변 고유의 냄새가 나죠. 방귀냄새의 주범은 따로 있는 셈이죠. 유난히 냄새나는 방귀를 많이 뀌는 분들은 고기나 햄·치즈·우유를 피하셔야 할 거예요.
힌트 하나, 비데…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뭐요 아, 털이요 그거 울다가 웃으면 생기는 거냐고요 아니에요. 다 제가 중요해서 저를 보호하려고 있는 거예요.
털 있는 곳치고 중요하지 않은 곳 있어요 털은 퇴화한 조직인데,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쓸모가 있기 때문이죠.
보온을 위해서든 보호를 위해서든. 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예를 하나만 더 들까요 사람이 죽었는지를 확인할 때 가장 중요한 절차가 항문의 긴장성이 없어졌는지를 직장수지검사로 확인하는 거예요. 이제 제가 얼마나 중요한 몸인지 아셨죠
이제 신경 좀 써주세요. 저는 한번 고장나면 무척 골치아프거든요. 주인님께만 살짝 먼저 알려드리는데요, 저희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철회되지 않으면 온 나라 똥꼬들이 모여 항의시위를 할 작정이에요.
요즘 서양에서 유행하는 알몸시위 있죠 그 가운데도 엉덩이에 뭐라고 뭐라고 써서 하는 것 있잖아요. 우리도 그런 걸 준비 중이라고요. 협박이냐고요 그래도 주인님이니까 알려드리는 거예요. 타협책이 있으면 미리 준비하세요. 힌트 하나 드릴까요 그 비데라는 거 참 좋더라고요. 비싸서 사기 힘드시면 날마다 한번씩 씻어주겠다고 약속하던가요. 아셨죠 그럼, 전 이만 물러갑니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또 생문방(生門方)부터 알아 두라. 사문(死門)은 입구멍이요, 생문(生門)은 똥구멍이니라. [증산도 道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