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하면 사람마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다르다.
먹물이 좀 든 사람들은 선비의 고장으로 알고 있을 것이고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동 간고등어를 연상할 것이고
술꾼들은 안동소주를 염두에 둘 것이다.
어제 저녁 식사때 반주로 마시던 와인통이 비어 할 수 없이 찬장 속에 있는 하얀 두루미로 된 안동소주병을 꺼냈다.
병 모가지를 잡고 흔들어 보니 속에서 잘랑잘랑 소리가 났다. 소주가 조금 남아 있다는 표시였다.
야무지게 막혀 있던 인조코르크 마개를 겨우 뽑아내고서 소주잔에 조금 따루고서 잔을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코 밑에쯤 오면 냄새가 풍겨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 암튼 '오래 처박아 두어서 김이 나가서 그렇겠지!' 라고 치부했다.
잔을 더 들어 입술에 갖다 대어도 불술의 향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번에는 입 안으로 잔을 조금 부어 혀로 맛을 봤다. '어라! 이건 또 뭔가?' 아무리 오래 내팽개쳐 뒀다고 해도 알콜성분이 다 빠져 나가진 못했을텐데 이건 술이 아니라 그냥 맹물이 아닌가?. 예전에 내가 안락동 살 때 테니스회원중에 한 명이 처가가 안동이라서 안동 처갓집에 갔다가 오면서 내게 선물로 한 병 갖다 준 것을 술을 다 마신 후에 병이 아깝다고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둔 것인데 누군가 속에 물을 넣어 둔 모양이었다.
요근래 서울에 있는 대학이면 서울대라 하듯이 안동에서 나오는 소주를 안동소주라 한다.
안동에서 나오는 소주에는 예전에 금곡소주가 있었다. 그 전에는 각 지역마다 소주공장들이 제법 많았다. 그땐 고구마를 고와서 주정을 만들어 소주를 만들때였다. 지금은 대부분 외국에서 주정을 들여와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다. 당시엔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25도짜리였는데 금곡소주는 30도였다. 그래서 술꾼들한테는 인기가 있었는데 생산량이 많지 않아 그 지역에서만 소비되었다.
일반적으로 안동소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안동소주는 원래 무형문화재인 조옥화씨가 전통적인 증류식 방법으로 소주를 내린 것이다. 우리는 소주 단지에 불을 때서 내린 소주를 불술이라 했는 데 입으로 잔을 가져가면 멀리서부터 화긋내가 물씬 났다. 입 안으로 한잔 탁 털어 넣으면 목구멍에서 금세 불이 났다. 화끈하면서도 정신이 얼얼 했다.
안동소주에는 조옥화가 만든 것 외에 안동농협에서도 나온다고 들었다. 며칠전 산에 갔을 때 한 친구가 안동소주라고 파리약병 처럼 생긴 병에 담긴 소주(40도,일품)를 갖고 와서 한잔 권해서 마셔보니 예전에 마셨던 안동소주 맛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