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침저녁 선선하니, 한낮이 더 더운 걸까요?
텃밭 부추, 꽃을 피웁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하얀 막이 터지며 10개 남짓 꽃망울이 드러납니다.
급한 애부터 먼저 꽃 피우고~
사과 대추도 꼬마 사과만큼 켰습니다.
감나무 타고 오른 수세미 언젠가 보여드리지요.
마당 능소화는 내일이 9월인지 모르는 듯, 9월의 능소화꽃, 낯섭니다.
배롱나무에도 다시 꽃이 피니, 누가 더 오래갈까?
마당 감나무, 많아 달린 만큼 많이 떨굽니다.
하루 2~3개, 곱게 떨어진 감, 다 익었나 맛보니, 떫지는 않은데, 달지도 않네요.
지난주 이어 파커 파머의 <가르침> 후반부, 공동체 이야기
퀘이커교의 펜들 힐에 살면서 쓴 책,
“퀘이커 용어로 표현해 보자면, 공동체는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반응할 때 생겨난다.”(160쪽)
‘자기 자신을 알고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아멘~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길에 귀 기울여 고통당하는 세상의 필요에 반응하는 공동체!‘
인상 깊은 공동체의 정의들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어떤가요?
’공동체는 도가니나 불타는 제련소와 같다!‘ 서로에게 다가가면 늘 자아의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
공동체라면 ’코이노니아‘(행 2:42, 사귐, 친교, 교제)는 필수, ’공동생활‘이라는 어려운 훈련을 겪기 마련!
우리 교회는 어떤가요?
’교회는 존재 자체가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원형‘(158쪽)이기에, 교회와 공동체는 뗄 수 없겠지요.
그럼, 진정한 공동체는 ’당신이 가장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항상 같이 사는 곳‘이라는 말은 어떻습니까?
너무 이상적이야? 정제 설탕처럼 정제한 공동체를 피하려면…
’은혜로 주어진 사람과 기꺼이 같이 살고자 한다‘면,
’공동체가 우리의 이해에 제한될 수 없는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우리 자아를 부순다‘면
그럴 수 있겠네요.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저에게 떠오른 ’공동체‘란?
하나님 제국의 생활 방식
하나님 나라 살기!
샬롬~
2024.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