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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출신으로 강원도 삼척 시장과 홍천 군수, 강원도 정무부지사 등을 지내고, 강원발전연구원원장을 지냈으며, 대통령 지방자치 특보를 지내신 남동우 동문이 필생의 숙원이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통권지령 93회를 자랑하는 전통의 계간문예지 문학과 의식 사의 신인상 모집에 단편소설 -참피언-을 투고하여 당당히 당선작의 영광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남동우 동문의 당선소감의 주요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학과 의식사로부터 신인상을 받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는 순간 저는 놀라면서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린 손자를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손자가 크는 모습을 보며 늘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손자는 제 인생의 또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손자는 제 인생의 또 하나의 역사이며 거울입니다.
저는 인생의 거의 절반을 공직에서 보냈습니다.. 공직에서의 경험이 뒤늦게 소설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공직에서 겪은 일들은 행불행을 떠나, 빛과 그늘을 떠나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고 되새겨야할 사건 상황의 축적입니다. 제가 겪은 일들 또한 사사로운 신변잡사가 아닌 현대사의 일부였습니다.
저는 역사학도 출신의 공무원이었습니다. 공직에서나 그 이후의 삶에서나 늘 역사를 생각랬습니다. 지금도 낮에는 텃밭에 나가 밭일을 하고 밤에는 역사책을 읽습니다.
젊은 시절 역사학 교수가 되려던 꿈을 접고, 계획에도 없는 공무원이 됐지만, 지금도 역사책은 늘 곁에 두고 있습니다. 손자가 더 커서 나중에 역사에 관해 물어보년 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학서적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문학에 관해 지식이나 이론을 알지 못합니다.(...)-
심사위원은 두명이었는데, 김유조 문학평론가와 정소성 소설가였습니다. 두분의 심사소감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응모작 -참피온-은 우리시대의 특징 속에서도 별로 시류를 타지않고 소설문학의 본질로 되돌아가서 근본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소설의 작가가 내용 전개의 온갖 과정을 직접 혹은 간접 체험한 사정이 있는지의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따져볼 일은 여기 생생하고도 극적으로 술회되고 있는 내려티브의 주제적 가치와 기교적 가치 평가에 있다고 하겠다.
소설이 난해의 길로 들어서자 독자의 이반 현상이 광범위하게 되었는데, 미국의 경우 유태인 르네상스라는 문학사적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 소설에서 실종되어버린 이야기 그 자체를 되찾자는 운동이 생겼다. 이렇게 되자, 이탈되었던 독자들은 얼른 베스트셀러라는 현상으로 이런 노력을 보상해
주었다. 콘텐츠의 재미야말로 근새시민 사회가 탄생시컨 소설 장르의 원천이었음을 상기해볼만 하다.(...)- 김유조(문학평론가, 전건국대학교 부총장, 영문학)
-소설은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러나 아무런 실제적인 체험없이 상상력만으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슐라르같은 사람은 인간상상력의 요소로 물, 불, 공기, 흙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력 자체의 근본적인 작용을 말할 때일 것이다. 소설의 실제에서는 인간의 현실적인 삶의 구제척인 체험이 깔려 있어야 한다.
지방공무원 세계의 실상을 그린 이 작품은 우리 나라 문학에서 드문 소재이다. 고골리나 고리끼의 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소재이다. 이 소설은 소설의 제재나 소재가 실재성이 강하여 오히려 상상력의 폭이 좁은 듯한 감을 줄 정도이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선게 넣었다. - 정소성(소설가,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챔피언(단편소설 응모작)
남동우
N국장이 내무국장에서 공무원교육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누가 봐도 좌천임이 분명해 보이는 인사였다. 그는 4년 만에 두 번째로 공무원교육원장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도청직원들이 N의 인사발령을 두고 며칠 동안이나 화제에 올리고 수군거렸으며, 도청 출입기자들도 전례가 없는 인사라며 특종을 다루듯 기사를 썼다. 어떤 출입기자는 신임 도지사의 인사가 합리적인 기준을 외면한 파행 인사라고 꼬집었고, 중앙지나 지방지나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이번 인사가 부당한 인사라고 비판했다. N국장과 가까이 지내던 어떤 중앙지 기자는 도지사를 만나 인사 배경을 따져 묻기도 했다.
도청의 수석국장이자 인사의 주무국장이 승진하여 시장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며 전국적인 관행이었지만, N은 당연한 관행에서 이유로 예외가 되었다. 소위 한직으로의 좌천으로 인해 N의 공무원 경력에 또 하나의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남게 되었다. 5공 정권 당시 미국 망명유학을 마치고 공직에 복귀했을 때 그가 산림청 연수원으로 쫓겨나 3년 이상 아무런 보직 없이 유배생활을 했던 암흑시절 이후 두 번째 겪는 불명예 인사였다. 그때( 그 지난 시절) 총리실의 과장으로 있던 N은 국보위의 역사날조 압력에 항명하여 사직원을 내고 공직을 떠났었다.
N에 대한 도지사의 교육원장 발령은 N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졌으며 지방관가에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가 좌천되어야 할 뚜렷하고 객관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정작 좌천이 된 화제의 주인공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어떤 불만의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동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직원들과 기자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이제 더 이상 가까이에서 도지사의 잔소리와 지루한 자기자랑을 듣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홀가분함과 해방감을 느꼈다.
기자들이 서생원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도지사는 한 달 전에 부임했는데, 그의 도백 임용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N은 신임 도지사(사실 두 번째지만)에게 아부하거나 충성을 받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지사와 뜨악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바람처럼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N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도지사의 고향인 홍천에서 군수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해 7월 R이 도지사로 부임해왔다. N이 심신의 고단함을 마다하고 실천했던 연중 무휴근무와 마음을 비운 직무수행은 역사학도의 꿈에 부풀었던 젊은 시절의 열정을 대체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곳이 고향인 도지사 R에 대한 최소한도의 예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N은 1988년의 그 시절을 기억했다.
한 번도 하기 어려운 도지사 자리를 R이 마치 전세라도 낸 듯이 두 번이나 차지한 것은 남들에게는 없는 어떤 탁월한 능력이나 수완을 그가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5공 정권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실에서 근무했고 내무부로 자리를 옮겨 신군부 출신 장관(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밑에서 요직 국장과 기획관리실장도 거쳤다. 바로 그 신군부 출신 장관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6공 정권이 출범하자 도지사로 영전해왔던 그는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열 달 만에 다시 고향의 도백이 되었다. R의 전임인 H지사가 이임하던 날 신임 R을 겨냥하여 N에게 한 말이 있었다. ‘빽이 든든한지 줄타기를 잘 하는지 모르겠군.’
N은 도지사 R이 일 년 뒤인 1995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민선지사 선거에 출마해 세 번째로 도백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예감했다. N은 공무원교육원장으로 전출하는 날 출입기자들과 함께 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기자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었다.
“강원도엔 사람이 없나? 한 번 해먹은 사람을 또 지사에 앉히다니 정말 웃기는 인사로군.”
“인사가 만사라던 YS의 개혁인사가 겨우 이런 식인가?”
“N국장님, 차라리 잘 됐어. 내년에 아예 출마해버리라고.”
기자들은 위로의 덕담과 함께 농담을 했다. N은 기자들에게 웃으면서 가볍게 답례했다.
“기자분들, 교육원에 테니스 치러 오세요. 막걸리도 준비해 놓을 테니.”
공무원교육원 직원들은 N을 반겼다. 이십 년 전에 근무한 적이 있고, 몇 해 전에는 원장을 역임한 적도 있어 교육원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다시 원장으로 온 데 대해 직원들은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가 1990년 공무원교육원장으로 있을 때 심어놓은 소나무가 신축 청사 앞에 옮겨져 있었는데, 다섯 해 동안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춘천교외 만천리 구봉산 자락에 지은 신축청사는 마치 소규모의 대학 캠퍼스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주변 경치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N은 직원들에게 농담 삼아 공무원교육원을 만천대학이라고 부르게 했다.
N은 도지사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도지사는 아부하는 사람을 가까이에 두었고 자신의 공적과 무용담에 박수를 치는 자들을 좋아했다. 역사학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 N은 틈만 나면 역사책을 읽었다. 그의 타고난 성격과 역사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는 아첨이나 부화뇌동을 싫어했다. 도지사는 N의 고등학교 12년 선배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고교 선후배라는 어떤 공감대나 교감의 끈도 존재하지 않았다.
N은 공무원교육원으로 전보되기 며칠 전 도지사 공관에서 있었던 실국장 만찬자리에서의 일을 기억했다. 지사가 술잔을 들고 주석을 돌며 실국장들에게 술을 따르다가 N의 차례가 왔을 때 “자넨 생략하지.”하며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 광경을 지켜본 다른 실국장들은 물론 동석했던 실국장 부인들도 당황하고 놀라워했다. 그 때 N의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지사를 향해 말했다.
“지사님, 제 남편이 뭘 잘못해서 술잔을 돌리지 않으십니까? 이런 만찬자리에서 사람을 망신시키는 이유라도 있나요?”
도지사가 당황하여 N의 아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N국장이 과음했기 때문에 생략한 겁니다.”
“제 남편은 과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편이 마신 잔 수를 세고 있었습니다. 두 잔밖에 마시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심기를 누르고 침묵을 지키던 내무국장 N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지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겠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만찬 자리에 저를 부르지 마십시오.”
N은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엎어놓고 아내와 함께 만찬석상을 빠져나왔다. 그것은 N과 도지사가 건널 수 없는 악연의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지사는 생리적으로 N을 싫어했고 N은 도지사의 자기도취적 교조주의를 경멸했다.
공무원교육원 교과목에는 교양강좌의 일환으로 사회 저명인사의 특강이 마련돼 있었다. 도지사의 특강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예정되어 있었으나, 역대 지사들은 특강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 늘어놓기를 좋아하는 서생원은 특강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의 특강은 자신의 공적과 자랑을 늘어놓는 지루한 무용담이었으며 늘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반복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전형이었다. 그의 교조주의적 무용담은 수강하는 공무원들을 졸게 만들었다. 게다가 50분간의 강의시간을 초과하여 다음 시간을 담당한 강사들을 조바심 나게 만드는 일도 흔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나르시시즘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로 공무원들을 짜증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진정한 시대의 목민관이며 역대 어느 도백과도 비견해서는 안 되는 탁월한 행정가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N은 공무원교육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도지사의 특강을 사실상 없애버렸다. 그것은 그의 재량에 속하는 일이었다. 도지사 비서실장이 지사의 특강시간을 할애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N은 정중하게 거부했다. 중앙부처로부터 하달된 교과배분 기준에 따라 지역 외 강사를 더 많이 초빙해야 한다는 이유를 달아 도지사의 출강을 보류했다.
그러나 N이 도지사의 출강을 보류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도지사는 특강시간을 일 년 후 자신의 출마를 대비한 선거운동으로 이용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N은 자신의 상사가 공무원교육기관을 선거운동의 장으로 이용하도록 허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N은 자신이 기껏해야 교육원에 두세 달 정도밖에는 머물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것은 도지사 자신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일 년 후 민선지사 출마를 앞두고 도지사도 인사문제로 인해 더 이상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N은 특강 강사로 도지사 대신 전 프로복싱 챔피언을 택했다. 그는 홍수환을 강사로 초빙했다. N은 주먹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권투를 좋아했고 홍수환의 권투를 사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복싱 선수 가운데 N은 특히 서강일과 홍수환을 기억하고 좋아했다. 두 선수는 권투를 스포츠가 아닌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투사들이었다.
깨끗한 경기매너와 아름다운 몸동작, 폭발적인 펀치와 율동적인 발놀림,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날렵한 상체의 움직임,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통쾌한 스트레이트의 미학, 안광이 불꽃을 튀기는 시선의 대결은 권투가 격투기가 아닌 예술임을 증명했다. 무엇보다도 권투는 야수적인 주먹싸움이 아닌 룰의 경기였다.
N이 홍수환을 특강연사로 초청한 이유는 그의 권투선수로서의 끈질긴 감투정신과 투철한 프로선수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수환은 공무원 수강생들에게 프로정신에 대해 강의했다. N은 전 챔피언에게 스포츠맨과 공무원의 프로정신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어떤 금기나 제약도 없이 자유분방한 이야기로 폐쇄된 관료사회에서 잠자는 공무원의 마음을 일깨워주기를 부탁했다.
홍수환은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WBA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챔피언이 되었다. 경기가 끝난 뒤 먼 이역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진 모자간의 통화는 전설이 되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수환아, 대한국민 만세다.”
그 뒤 1977년 파나마에서 벌어진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매치가 홍수환의 4전5기 신화를 만들어냈다. 홍수환의 상대인 파나마의 헥토르 카라스키야는 11전 11KO승의 전적을 지닌 ‘지옥의 악마’였다. 1라운드을 간신히 버틴 홍수환은 2라운드에서 카라스키야에게 네 번이나 다운 당했다. 3라운드 공이 울리자 홍수환이 염려된 트레이너는 피투성이가 된 홍수환에게 1라운드만 더 뛴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휘두른 원투 스트레이트가 카라스키야의 몸에 적중했다. 홍수환은 휘청거리는 카라스키야를 쫓아가 바른쪽 어퍼컷으로 상대의 턱을 들어올렸다. 2라운드까지 흑표범처럼 날뛰던 카라스키야는 홍수환의 펀치에 충격을 받고 로프를 등진 채 비틀거렸다.
승기를 잡은 홍수환은 강력한 왼손 보디블로우를 상대의 복부에 작렬시켰고 한 발 두 발 물러나던 카라스키야는 그대로 무너졌다. 경기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4전5기의 전설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 전설은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섰다.
공무원 수강생들은 홍수환의 강의를 침을 삼키며 경청했다.
“네 번 다운 당하고 나니까 꿈꾸는 거 같이 멍했죠. 링 줄이 막 움직이고 링 바닥이 눈앞으로 솟아오르고...그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랄까...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데...최소한 한 방은 날려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죠.”
4전5기의 신화를 만들고 귀국한 챔피언은 가수인 아내와의 이혼 스캔들로 인해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외면당했다. 1978년 리카르도 카르도나와의 타이틀 2차 방어전이 실패로 끝난 후 홍수환은 1980년 서른 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챔피언은 링을 떠나 새로운 삶을 준비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달픈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수환의 특강은 고생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미국 알라스카로 이민을 갔죠. 거기서 택시운전을 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택시 운전대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중간에 마약 운반책이란 누명을 쓰기도 했지요. 다른 장사를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신발장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홍수환의 강의는 어수룩한 달변이었다. 그 어눌함이 수강생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10여년의 미국생활을 접고 제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지요. 제가 돌아갈 곳은 링이었습니다. 그러나 생업을 포기하고 귀국한다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대하겠습니까? 그래도 귀국한다니까 어머니가 좋아하셨습니다.”
강의 도중에 한 수강생이 질문했다.
“복싱에서 배운 교훈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홍수환이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복싱이 인생을 닮아서 재미있더군요. 질 것 같은 상대에게 이기고 이길 것 같은 상대에게 당하고...그래서 늘 이기라는 법도 없고 늘 지라는 법도 없는 게 아닌가...인생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수강생이 손을 들고 질문 겸 부탁을 했다.
“우리 공무원에게 도움이 될 말씀을 해주십시오.”
“공무원은 봉사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프로정신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공무원들 프로근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나라를 이만큼 키운 것도 공무원인데 왜 부정을 하고 욕을 먹습니까? 자기가 하는 일에 프로근성이 부족하니까 한 눈을 파는 게 아닐까...이게 제 생각입니다. 아, 누구한테서 들은 애기인데...승진에서 탈락될 때 공무원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한다고 하더군요. 그럴 때 4전5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아니 4전5기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 2전3기면 될 겁니다. 승진에서 탈락되더라도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뚝심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인생의 승리자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진정한 인생의 챔피언...공직의 챔피언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무원 수강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경청했고 아낌없는 박수를 챔피언에게 보냈다. 도지사나 그 어떤 장관의 강의보다도 더 자유분방하고 삶에 밀착된 경험담이 수강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N원장의 지시에 따라 촬영기사가 챔피언의 특강을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녹화테이프는 머지않아 전국 공무원교육원과 민간연수원에 배포될 터였다.
강의가 끝나고 N은 홍수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막국수와 녹두 빈대떡을 먹으며 둘은 한국 프로권투의 역사와 링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N이 반주를 권했지만 그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즐기던 술을 완전히 끊었다고 말했다. N은 홍수환에게 4전5기의 경험담을 각계각층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고 홍수환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권투 이야기가 N과 홍수환을 단단하게 이어주었다. 홍수환은 특강이 있던 날 이후 가끔 N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홍수환은 N보다 네 살 아래였다.
공무원교육원에서 석 달 동안 근무하던 N은 승진하여 동해출장소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동해출장소에서 두 달 동안 근무하다가 삼척 시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N은 민선 자치시대를 일 년 앞두고 마지막 임명직 시장이 되었다.
N이 시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얼마 안 된 8월초의 어느 날 밤 갑자기 집중호우가 쏟아져 삼척시내 곳곳이 침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라진 항 주변의 동네가 물바다가 되어 수십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재민을 임시 수용한 동사무소에 N시장이 들렸을 때 술 취한 이재민 한 사람이 갑자기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장에게 덤벼들었다. 곁에 있던 직원들이 미처 말릴 틈이 없었다. N시장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숙여 피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만취한 남자가 거칠게 말했다.
“씨발놈의 공무원 새끼들, 사기만 치고 있어. 시장이란 놈들도 하수도 만들어준다고 맨날 공약만 했어. 이게 벌써 몇 번째 물난린지 알아? 당신이 시장이야? 으음...이 사람 새로 온 시장이로구먼...당신 하수도, 소방도로 언제 만들어 줄 거야?”
동사무소 직원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N시장이 취객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봐요. 내가 당신한테 맞아 죽으러 여기에 온 사람으로 보입니까? 난 이 도시에 일하러 온 사람이지 싸움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피하지 않았으면 당신은 살인자가 될 뻔했다구!”
N시장은 동장, 통반장, 이재민 대표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시청으로 돌아왔다. 취객의 쇠파이프를 피하다 비스듬히 맞은 팔꿈치에 엄청난 통증이 왔다. 그는 팔꿈치에서 조금씩 흘러내리던 피가 엉겨 붙은 것을 느꼈다. 동행했던 총무과장이 민망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시장님,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잘 모시지 못해서...”
“쇠파이프에 맞았더라면 저승 갈 뻔 했네요. 피하는 법을 세계챔피언한테서 배워둔 게 액운을 막은 거겠죠. 허허, 참”
“세계챔피언이요?...”
시장이 취객에게 폭력을 당한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 퍼지면서 직원들은 시장 얼굴 보기를 무안해하고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만일 시장이 폭력에 의해 사고를 당했다면 이 사고는 큰 파문을 몰고 올 사건이 될 터였다. N시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조용히 넘어갔다. 다음 날 이재민 대표와 수해지역 주민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장본인을 데리고 시청을 찾아왔다. 취객은 시장에게 사과했고 동네 사람들은 미안해했다.
N시장이 민선자치를 일 년 앞두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쓰레기처리장과 하수처리장, 공설묘지 조성은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집단민원을 야기해온 골치 아픈 현안이었다. 무엇보다도 쓰레기처리장 조성이 당장 해결해야 할 급박한 과제였다.
쓰레기처리장 설치예정 지역의 주민들은 극열하게 반발하며 여러 차례 시청에 몰려와 농성을 했다. 그들은 동네에 붉은 현수막을 설치하고 바리케이드를 쳐 공무원과 타 지역 주민들의 출입을 감시하는 등 험악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집단반발의 중심에는 두 사람의 청년이 있었고 그들이 동네사람들을 부추겨 농성과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체도 분명하지 않은 어떤 환경단체에 적을 두고 시시때때로 시위와 농성을 주도했고 지역의 관심과 여론을 그들 쪽으로 몰고 갔다. 그들은 토론이나 협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선동자들이었다. 그들의 출생지는 삼척이 아니었다. N시장은 두 주동자들을 만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들로부터 만나는 것조차 거부당했다.
쓰레기처리장이나 하수처리장은 도시 어느 곳엔가는 반드시 설치해야하는 공익시설임이 분명하지만, 해당지역 사람들이 반대하는 혐오시설이기도 했다. 민선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혐오시설을 둘러싼 집단반발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95퍼센트의 시민을 위한 공익시설을 5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이 반대함에 따라 경향각지에서 공익시설 설치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었다. 이 문제를 분명히 해결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면 나중에는 더 큰 지역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한데도 전국의 시장 군수들은 골치만 썩이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집단민원을 다루는 공무원들의 태도와 접근방법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주민들의 반발이유와 그것을 해소할 대안을 찾는데 적극적이지 않았고 책임감도 희박했으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추진력도 부족했다. 구미 선진국들이 겪었던 이른바 공익장애를 한국에서는 지금 한창 겪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특정시기에 잠깐 유행하는 전염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번져가는 사회적 만성질환의 시작이었다.
N시장의 고민도 깊어갔다. 그는 민선시대로 향하는 시계바늘을 생각했다. 민선시대가 되면 집단민원의 해결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삼척은 600여 년 전 고려 말 우왕 때 자신의 성씨 시조인 조상 할아버지가 지군사(주: 고려 말 지역의 군사행정책임자)로 부임하여 왜구를 소탕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그 때 강무공 할아버지는 왜구 소탕의 챔피언이었다. 무관이 아닌 문관 출신의 강무공은 10여필의 말과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뛰어난 전술과 기계(奇計)로 십여 년 간 삼척 해안을 노략질 해 온 왜구를 완전히 퇴치하여 민생을 안정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N은 시조 할아버지의 25세손인 자신이 특별히 남길 업적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당장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는 불편은 덜어줘야 한다. 그게 시장이란 책임자가 해야 할 일이다. N시장은 쓰레기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공무원들을 겨냥했다.
어느 날 홍수환과 전ㆍ현역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여러 명이 시청을 방문했다. 그들은 삼척에 놀러온 것이 아니라 어떤 사유로 공식 방문을 한 것이다. N시장이 챔피언(N은 홍수환을 그렇게 불렀다)을 초청했다. 홍수환과 함께 온 챔피언들에게 시청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WBA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그의 별명은 망치주먹이었다), WBC밴텀급 챔피언 변정일, WBA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김환진, 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 WBA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 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 WBA수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등, 이들은 홍수환의 요청으로 삼척에 함께 왔다.
다들 주먹세계에서 체급을 따라 살아남은 감투정신의 화신들이다. 이들은 오직 자기의 주먹이 가지는 힘의 결과만으로 자신의 오늘을 만들었다.
권투를 알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텔레비전에서 익히 보았을 세계챔피언들의 얼굴을 시청직원들은 면전에서 한꺼번에 보았다. 직원들은 프로복싱 챔피언들을 대동한 N시장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시장이란 사람이 프로세계의 대부라도 되는 것인지, 주먹패거리의 두목이라도 된다는 것인지, 그들은 의아해하며 호기심어린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챔피언은 시청대강당에서 직원들에게 특강을 했다. 특강의 주제는 프로정신과 인생살이에 관한 것이었다. 직원들 뿐 아니라 소문을 들은 인근의 시민들도 상당수가 참석했다. 직원들은 챔피언의 어눌한 웅변과 구수한 입담 그리고 소박한 고백에 귀를 기울였다. 100분간의 강의 끝 무렵 챔피언은 공무원들이 예상치 못했던 발언을 했다.
“전국적으로 쓰레기장 문제 때문에 집단민원이 발생하고 있더군요. 이 문제로 시장군수님들이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실 몇 명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반대자들도 문제지만 공무원들도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집단민원을 해결하는데 프로정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러분, 제가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반대자는 한두 번 설득해선 안 될 겁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끈질기게 접촉하고 설득하면 그들도 지치지 않겠습니까? 이게 바로 프로정신이라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그래서 저는 전 프로복싱 챔피언으로서 공무원 여러분들도 프로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도 행정도 프로정신을 가지고 하면 이 나라가 더 잘 되지 않겠습니까?”
챔피언은 강의의 마지막 대목에서 정치와 행정도 프로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강의 내내 유지해왔던 특유의 구수한 변설을 멈추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들은 후련함과 신선함 그리고 이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대강당을 메운 일반 시민들도 진지하고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자 연단으로 올라온 N시장의 손을 잡고 챔피언이 말했다.
“N시장님은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이자 형님입니다. 저보다도 더 권투를 잘 알고 프로복싱의 역사를 훤히 꿰뚫고 계십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 복싱은 룰을 존중하는 신사적인 게임입니다. 주먹싸움이 아니에요. 권투를 사랑해주세요. 그리고...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해주세요. 한 때 저의 가정문제로 인해 세상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저는 가수인 제 아내 옥희를 지금은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직원들이 힘찬 박수로 그의 강의에 화답했다. N시장은 앞좌석에서 함께 경청하던 챔피언 일행을 연단으로 오르게 한 뒤 한사람씩 소개했다. 공무원들이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여러 명의 전 현역 챔피언을 만나는 기회는 전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그날 저녁 N시장은 챔피언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소주잔을 주고받았다. 챔피언들은 스포츠맨답게 술도 잘 마셨지만 홍수환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음식점 주인이 홍수환에게 겸연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챔피언 먹었다는 그 분이 맞죠? 홍...수환?”
“예, 제가 홍수환입니다. 제가 챔피언 먹은 사람입니다.”
홍수환은 그렇게 대답하며 씩 웃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대한국민 만세다!”
챔피언 일행의 삼척 방문은 순식간에 소문으로 번졌고 시민들 사이에 화젯거리가 되었다. 지역 언론도 챔피언의 방문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고, 지역 유지들도 이 사건을 마치 지역의 중대사라도 되는 듯 화두로 삼았다. 시민들은 챔피언 일행이 쓰레기매립 예정지를 둘러보고 권투에 입문하기를 희망하는 동네 아이들에게 스포츠 장학금을 전달했다는 소문을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쓰레기매립장 설치는 주민반발에 부딪쳐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었다. N시장은 문제의 동네를 찾아가 두 주동자들을 만나 직접 의견을 들으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시장 만나기를 피하고 동네로부터 피신해 있었다. 그 대신 시장은 지역주민 대표를 만나 주민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며칠 후 주민공청회를 열었다. 주동자들은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주동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공청회는 예상 밖으로 진지하게 진행됐고, 공청회에서는 무수한 요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N시장의 독려로 시청 공무원들이 동네를 매일 찾아가 주민들의 민원해결에 나섰다.
그런 가운데 쓰레기매립장 예정지역에 퍼진 뜻밖의 소문이 시청의 편을 들어주었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N시장이 주먹세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시장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코 다칠 뿐더러 뼈도 못 추릴 것이라는 풍문이 그 동네 반대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게다가 부풀려지긴 했지만 시장은 쇠파이프로 얻어맞고도 살아난 독종이라는 황당한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주동자 B와 C는 동네에서 달아나버렸다. 동네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대구인가 부산인가로 피신했다고 하는데, 그 동네 출신의 시청 공무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주동자들은 보따리를 싸고 아예 이사를 간 것 같다는 것이다. N시장은 그 소문을 듣고 직접 그 동네를 다녀왔고 소문의 진상을 확인했다. 그들은 완전히 삼척을 떠난 것이 분명했다.
챔피언 일행의 삼척 방문이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이것이 사실과는 다른 소문을 만들어낸 덕분에 주동자들은 지레 겁을 먹고 사라졌다(그들은 N이 시장의 임기를 마치고 삼척을 떠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주동자가 사라진 지역에서 주민들의 피해의식을 덜어주고 여론을 환기시켜 민원을 해결하는 일은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N시장은 계획대로 쓰레기매립장 공사를 진행하고 마무리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사라졌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쓰레기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안도했지만 누적돼온 집단민원이 신속하게 해결된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쓰레기매립장 뿐 아니라 공설묘지 조성공사도 착수했고,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도 집단민원의 저항 없이 계획대로 진척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6월 27일 전국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그것은 도지사, 시장군수를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선거 며칠 전 짐작했던 대로 도지사에 출마한 R이 N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N은 R이 자신을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내무국장인 자신을 좌천시켰던 전직 상관의 방문을 N은 조용히 맞았으며 깍듯이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그러나 N은 그 이상의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N은 R이 도지사에 당선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당선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N의 솔직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N이 예상한 대로 R은 낙선되고 새로운 사람이 도지사에 당선되었다.
N이 마지막 임명직 시장의 임기를 마치고 삼척을 떠나던 날 열린 이임식에서 N은 시청직원들에게 이임인사를 했다. 이임사의 끝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직원 여러분, 공무원도 프로가 돼야 합니다. 프로정신을 잊지 마십시오. 삼척을 방문했던 챔피언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시청 전 직원들이 청사 앞마당에 도열해서 떠나는 N을 환송했다. N은
그가 심어놓고 일 년 동안 가꾼 청사 주변의 야생화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깐 생각했다. 시골 도시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동서남북을 뛰어다니다보니 한 해가 지났구나.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그러나 그는 어떤 아쉬움이나 회한도 느끼지 않았다.
N은 그날 오후 아내와 함께 춘천 집으로 돌아왔다. N이 두 아들과 함께 저녁밥상을 대한 것은 일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가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서울에 사는 챔피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며칠 후에 춘천에 놀러가 찾아뵙겠습니다.”
그해 11월 삼척시는 전국 최우수 민원처리기관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국회의원 출신인 후임 시장 K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K는 민원행정의 챔피언이 되었다. 사실 해묵은 집단민원을 해결한 당사자는 K의 전임인 N이었고, N으로 하여금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게 한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챔피언 홍수환이었다. 우연과 필연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힌 세상에서 챔피언은 역시 따로 있게 마련일까?
N은 한 가지 미해결로 남기고 온 일을 떠올렸다. 찬반이 엇갈린 시민여론을 고려해 중앙정부의 압력을 뿌리치고 삼척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뒤로 미루도록 조치한 것은 잘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N자신도 인정했다.
언젠가 원전 건설은 이 지역 최대의 현안이 될 것이고 집단민원의 불씨가 될 것이다. 그것을 해결할 책임은 민선시장에게 있다. 그는 원전건설 문제해결의 챔피언이 되어야 할 것이다.
N은 챔피언 홍수환의 말을 곰곰이 되새겼다. 인생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말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 챔피언의 길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 환희와 성취보다는 고통과 좌절로 더 많은 날을 보냈던 자신의 삶에도 인생의 승리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러나 N은 생각했다. 자신이 펴놓은 캔버스 위에 챔피언을 그린다는 것은 너무도, 그리고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한 해 동안 지방도시라는 링 위에서 주심으로 잠시 머물렀던 N은 선거로 뽑힌 민선 시장에게 바통을 넘기고 도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도청에 결코 낯설지 않은 새로운 챔피언이 등장했음을 목격했다. 새로 뽑힌 민선지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나 도청의 새 챔피언 탄생이 자신의 앞날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N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인생에 일찍이 그려본 적이 없는 그림이 그려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떤 낯설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도청 공무원연수원장 시절 특강강사로 불렀던 홍수환 선수와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어어져왔다. 전혀 삶의 터전이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인연을 일생 이어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첫댓글 소설가! 왜 돈 안 생기는 고행의 길을 걸으려 하는가? 쓰지 않으면 안 될 중압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푸념이다. 그러나 늘 산고를 겪으면서도 다시 자식을 낳겠다는 심정으로 필을 잡는 자가 소설가인가 보다. 축하한다.
세계일주 여행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지...그후로 가끔식 생각이 나곤 합니다. 글, 그림, 음악등 그 재능으로 남은 여생을 좋은 작품 많이 남기면서 보람과 성공을 거두시기를 빕니다.
동우에게 그림전시회를 빨리 열라고 독촉했던 기억이나는데 이제 소설작품을 먼저 읽게되니 좀생뚱맞긴한데 그재능과 용기에 감탄하지않을 수없군. 공무원시절의 보람과 긍지에 공감도 많이가고.진심으로 축하하고
곧 만나서 막걸리 한잔 기우려보세.
동오가 이런 댓글을 달다니 참으로 놀랍다. 자신의 글은 물론이고 어떤 댓글같은 글을 달 줄 모르는 사람으로만 알았던 내가 불찰이었다. 그만큼 동오가 동우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