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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大秦)과 발해(渤海), 그리고 해동제국(海東諸國) [2편]
2020년 05월 12일
○ [제1편]에서 “대진(大秦)”과 “양잠(養蠶)” 대해 알아보았는데, 〈“대진(大秦)은 로마(Rome)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 밝혔다. “파사(波斯)” 땅과 접한 곳은, ‘동로마제국【비잔틴】’이었을 뿐이다.
역사통설(歷史通說)에서는,「‘대진국(大秦國)’은 전한(前漢) 이후(以後)에 “로마(Rome)제국(帝國)”을 부르는 한역(漢譯)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4) 後漢書 卷 88 西域傳 第 78 : 《大秦國,一名犁鞬,以在海西,亦云海西國.地方數千里,有四百餘城.小國役屬者數十.中略. : 대진국(大震國)은, 일명 리건(犁鞬)인데 해서(海西)에 있어, 또 해서국(海西國)이라고 이른다. 지방(地方)은 수천(數千)리며, 4백여(百餘)성이 있고, 소국으로 노역하는 수십 개 나라가 있다. 중략(中略). 人俗力田作,多種樹蠶桑.皆髡頭而衣文繡,乘輜軿白蓋小車,出入擊鼓,建旌旗幡幟. : 사람들은 습속이 밭 갈기에 힘쓰고, 많은 종류의 나무와 양잠(養蠶)을 한다(蠶桑). 머리는 깎고 옷엔 수와 무늬(文繡)가 있으며, 조그만 수레에 흰 휘장을 덮고 타며, 출입할 때마다 깃발을 걸고, 북을 두드린다. 其人民皆長大平正,有類中國,故謂之大秦.中略.與安息,天竺交巿於海中,利有十倍. :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장대(長大) 평정(平正)하며, 중국(中國)을 닮음이 있으며, 그런 연고로 대진(大秦)이라고 한다. 중략(中略). 안식(安息)과 천축(天竺)과 함께 바다가운데에서 물건을 사고파는데, 이문이 열배에 달한다.》고 하였다.
➊ 잠상(蠶桑) 곧 “누에치기와 뽕나무가 많았다(蠶桑)”면, 실크로드(Silk Road)란 말은 무얼까? 말 그대로 실크로드(Silk Road) 즉(卽) 비단길(Silk Road)이라고 일컫는 실크로드(Silk Road)는,
고대(古代) 중국(中國)과 서역(西域 : 西方) 사이에 비단(緋緞)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貿易)을 하면서 정치·경제·문화등 다방면(多方面)으로 영향(影響)을 준 무역로(貿易路)를 말하는 것으로, 6,400㎞에 이르는데, 중국(中國)으로부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를 경유(經由), 수출(輸出)되는 주요(主要) 물품(物品)이 비단(silk)이라는 사실을 감안(勘案)하여, 이 교역로(交易路)를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센’(Seiden strassen: Seiden=비단, strassen=길, 영어로 Silk Road)」이라고 명명했다고 전한다. 【독일인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 1905)’은, 이러한 길을 “실크로드(Silk Road)”라고 처음으로 명명했다.】
➋ 중국(中國)에서는 ‘비단·칠기·도자기·양잠·화약기술·제지기술’ 등이 서역(西域)으로 건너갔는데, 특히 종이 만드는 기술이 서역으로 건너가서 중세 유럽의 암흑기를 밝혀 인쇄술 발달과 지식 보급에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돈황(敦煌)을 비롯한 4군데에 요새를 세워 무역로(貿易路)을 보호했는데, 이때부터 서역(西域)으로 통하는 무역로(貿易路)가 뚫렸으며 1년에 5~10번씩 장사꾼들이 오갔다고 전해진다.
➌ 위 후한서(後漢書)에서 이르기를, 《其人民皆長大平正,有類中國,故謂之大秦. :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장대(長大) 평정(平正)하며, 중국(中國)과 닮음이 있으며, 그런 연고로 대진(大秦)이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중국(中國)과 닮았다는 것일까?
백성(百姓)들의 모습이 모두 장대(長大)하고, 평정(平正)한 것이 닮았다는 것일까? 그러면 “중국(中國)인들은, 모두 장대(長大)하다”는 건가? 역사통설(歷史通說)에서 말하는 중국(中國)의 백성(百姓)들은 황인종(黃人種)이다. 대진(大秦)도 황인종(黃人種)의 나라였나?
이건 아니다. 위의 글의 맥락(脈絡)으로 보면, 서방(西方)의 가장 큰 나라로 인식(認識)하고 있어, 동방(東方)의 큰 나라 중국(中國)과 닮음이 있고, 그들의 신체가 컸음으로 “大”를 붙이고, 진(秦)과 같다하여 “대진(大秦)”이라고 했을 것 같지 않나!
그러면 중원(中原) 땅에 있었다는 「진(秦)」은, “소진(小秦)”이라고 했는가? 아니면 지나(支那 : 시나 Sina, 시라 Sira)에서 “진(秦)”을 찾는가?
이런 사고(思考)를 갖고 “대진(大秦)”이라고 했다면 : 그건 중국(中國)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中國)은 신주(神州)요, 천자국(天子國)으로 사해(四海)를 다스렸다(다스린다).」는 말은, 곧 “거짓이 되고, 사기(詐欺)”가 되기 때문이다.
➍ 그런데 여기서 : 고전(古典) 기록(記錄)에 의하면 : 《당시(當時)에 “대진(大秦)의 나라에서 대규모로 양잠산업【養蠶産業 : 잠상(蠶桑)】이 이루어졌다”면, 실크로드(Silk Road)란 말이 왜 탄생(誕生)되었을까?》라는 의문(疑問)이 생기게 되는데, 이 의문(疑問)을 풀지 못한다면 “대진(大秦)”은 설명(說明)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의문(疑問)은, ‘로마(Rome)제국(帝國)’이나 ‘동로마제국(東Rome帝國)’, 또는 ‘이집트·시리아·팔레스타인·터키·이라크’등지에서도 뽕나무(桑)와 누에(蠶)가 자랄 수 있는 것일까? 또 양잠(養蠶)이 이루어졌다는 것일까?
“뽕(桑)나무와 누에(蠶)”에 대해서, “로마(Rome) 또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서(西) 아세아(亞細亞)”등지(等地)에서, 양잠(養蠶)을 했었다는 기록(記錄)이나 유물유적(遺物遺蹟), 또는 그 흔적(痕迹)등이 존재(存在)하는가? 라는 등의 많은 의문(疑問)이 뒤따르게 된다.
즉(卽) ‘로마(Rome)’ 또는 ‘동(東)로마(Rome)제국(帝國)’등지에 잠상산업(蠶桑産業)이 다량(多量)으로 행해졌다면, 중국(中國)에서 실크로드(Silk Road)를 통해 대량(大量)의 비단(緋緞)이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실크로드(Silk Road : 비단(緋緞)길)”란 말이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➎ “대진(大秦)”의 기록(記錄)에서 : ‘해중(海中)’에서 ‘천축(天竺)과 안식(安息)’과 무역(貿易)을 했다는 기록(記錄)에 따르면, ‘로마(Rome)’는 아니다. 즉(卽) 동(東)로마(Rome)제국(帝國)인 ‘이스탄불(Istanbul)=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지칭(指稱)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식(安息)【BC 250∼AD 226】이 존재(存在)해 있을 때의 일이다.
대진(大秦)의 산업(産業)중에서 잠상(蠶桑)이 대규모(大規模)로 이루어졌다면,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난트 폰 리히트호펜’가 처음 사용했다는 ‘실크로드(Silk Road)’란 말은 “사기(詐欺)”다. 사기(詐欺)가 아니라면 왜곡(歪曲)되고 조작(造作)된 것일 수 있다.
중국(中國)을 동방(東方)으로 이동(移動)시키고, 동방(東方)의 주인(主人)이었던 조선왕조(朝鮮王朝)를 반도(半島)로 이동(移動)시키기 위한 밑밥이었다? 가능(可能)한 일이다.
(5) 晉書 / 卷97 列傳 第67 / 西戎 / 大秦國 : 《大秦國一名犁鞬,在西海之西,其地東西南北各數千里.中略.其人長大,貌類中國人而胡服.中略.安息,天竺人與之交市於海中,其利百倍. : 대진국(大秦國)은 일명(一名) 리건(犂鞬)인데, 서해(西海)의 서(西)쪽에 있다. 그 땅은 동서남북 각각 수천(數千)리다. 중략(中略). 그 사람들은 길고 크며, 얼굴은 중국인 일족(一族)으로 오랑캐 옷을 입었다. 중략(中略). 안식(安息), 천축(天竺)인들과 함께 해중(海中)에서 무역을 하는데 그 이문이 백배(百倍)다.》
➤ 위의 진서(晉書)에서 중요한 점은, 〈대진(大秦) 사람들은 신체(身體)가 크다는 것이고, 종족(種族)은 중국인(中國人)의 일족(一族)이지만 오랑캐 옷을 입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위의 글 (4)과 (5)에서 말하는 공통점(共通點)은, 안식(安息)과 천축(天竺)사람들이 바다에서 대진(大秦)과 무역(貿易)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때, 「오늘날의 “로마(Rome)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을 말하는 것이다.
➨ 왜 이들 대진(大秦)인들을, 〈“중국인(中國人)과 같은 무리”라고 했고, 또 “본래(本來)의 중국인(中國人)”이라고 했으며, 또 얼굴(貌) 역시 중국인(中國人)과 동류(類)였다는 말은, 즉(卽) 이들이 중국인(中國人)이었다는 말과 같다.〉 이게 중요(重要)한 포인트(Point)다.
결과론(結果論)이지만, 만약(萬若), 〈“대진(大秦)”이 곧 “중국(中國)”이었다.〉는 말과 함께 중요(重要)한 것은, 그렇다면 〈그 동(東)쪽 땅엔 누가 있었는가?〉하는 것이다. 중국(中國)의 동(東)쪽엔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있었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는 마찬가지다. 정치체제(政治體制)만 바뀌었을 뿐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6) 太平寰宇記卷一百八十四 / 宋 樂史 撰 / 四夷十三 / 西戎五 大秦國 : 《大秦國一名犁鞬.一云漢時犁靬國又名拂菻國.後漢時始通焉.其國在西海之西亦云海西國.其王理安都城. : 대진국(大秦國)은은 일명(一名) 리건(犂鞬)이다. 한(漢) 때에 리헌국(犁軒國) 또 이름이 불름국(拂菻國)이라고 전한다. 후한(後漢)때 처음 통했는데, 그 나라는 서해(西海)의 서(西)쪽 또 이르기를 해서국(海西國)이라고 하였다. 그 왕(王)은 안도성(安都城)에서 다스렸다. 〈註〉外國圖云從隅臣北有國亦名大秦其種長大身丈五六 : 주(注) : 외국도(外國圖)에서 이르기기를, “신(臣)이 모퉁이를 따라갔는데 북(北)쪽에 대진(大秦)이란 이름의 나라가 있는데, 그 종족들은 신체가 커 5-6장(丈)이나 되었습니다.”하였다. 又杜還經行記云拂菻國在婼國西隔山數千里.亦曰大秦其人顔色紅白男子悉着素衣.中略. : 또 두환경행기에서 이르기를, 불름국(拂菻國)은 야국(婼國) 서(西)쪽의 산(山)사이 수천(數千)리에 있다. 주(注) 또한 대진(大秦)의 그 사람들은, 얼굴색이 붉고 희며(紅白) 남자들은 모두 다 색과 무늬가 없는 흰옷을 입는다. 중략(中略). 土俗物産 : 其人長大平正𩔖中國故謂之大秦或云國本中土人也. : 토속물산(土俗物産) : 그 사람들은 신체가 크고, 평정(平正)하여, 중국(中國)무리로 예로부터 대진(大秦)이라고 하는데, 혹은 나라의 근본(國本)은 중토인(中土人)이라고 하였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서는 :
➊ 대진(大秦)은, 「리건(犂鞬)=리헌(犁軒)=불름국(拂菻國)」이라고 하였다. 또 대진(大秦) 사람들은 신체가 크고, 얼굴을 붉고 백인(白人)이라고 하였으며, 흰 옷을 모두 다 입는다고 하였다. 백의(白衣)를 즐겨 입는 민족(民族)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하는데… …역사통설(歷史通說)에서는, 우릴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했다고 하지! 맞는 말일까?
➋ “대진(大秦)”은 나라의 근본(根本)이 ‘중토인(中土人)’이라고 하였는데, 중토인(中土人)이란 중국인(中國人)과 같은 의미(意味)다.【其人長大平正𩔖中國故謂之大秦或云國本中土人也.】「대진(大秦)은, 백인(白人)들이며, 백의(白衣)를 입고, 중토인(中土人)」이라고 했다. 이들이 바로 중국인(中國人)이었다?
► 이런 결과(結果)는, “중국(中國)은 백인종(白人種)들이 살았던 곳이다.”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추리(推理)는 가능(可能)하다. 「세계(世界)의 중심(中心)은 중국(中國)이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문화(文化)가 발달된 로마(羅馬 : Rome)) 역시(亦是) 서방(西方)의 중국(中國)일 수 있다.」는 견해(見解)다.
►►► 그러나 이 견해(見解)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중국(中國)은 신주(神州)요, 천자국(天子國)으로 사해(四海)를 다스렸다(다스린다).〉는 말은, 사기(詐欺)가 된다.
(7) 北史 大秦國 : 《大秦國,一名黎軒,都安都城,從條支西渡海曲一萬里,去代三萬九千四百里. : 대진국(大秦國)은, 일명(一名) 려헌(黎軒)이며, 서울은 안도성(安都城)이다. 조지(條支)의 서(西)쪽 굴곡진 바다를 따라 1만 리를 간다. 대(代)로부터 3만9천4백리 떨어져 있다. 其海滂出,猶渤海也,而東西與渤海相望,蓋自然之理.地方六千里,居兩海之間.其地平正,人居星布.中略.: 그곳에 바닷물이 질퍽하게 흘러나오는데, 발해(渤海)이다. 동(東)쪽과 서(西)쪽에서 발해(渤海)를 서로 바라볼 수 있는데, 자연(自然)의 섭리(攝理)다. 지방이 6천리로, 양(兩) 바다사이에 있다. 그 땅은 평정(平正)하며, 사람들은 별처럼 흩어져 산다. 중략(中略). 其人端正長大,衣服,車旗,擬儀中國,故外域謂之大秦. : 그곳 사람들은 단정(端正)하고 크며, 의복, 수레깃발이 중국(中國)과 비견할만하여, 외역(外域)에서 대진(大秦)이라고 하였다. 其土宜五穀,桑,麻,人務蠶,田.多璆琳,琅玕,神龜,白馬朱鬣,明珠,夜光璧. : 그 땅에서는 마땅히 오곡(五穀)이 나고, 뽕나무와 삼(麻)을 재배하여 사람들은 누에치기에 힘쓰며, 구림(璆琳)·낭간(琅玕)·신구(神龜)·백마(白馬)주렵(朱鬣)·명주(明珠)·야광벽(夜光璧)등이 있다. 東南通交趾.又水道通益州永昌郡.多出異物. : 동남(東南)으로 교지(交趾)와 통하고, 물길로는 익주(益州)와 영창군(永昌郡)으로 통하는데,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나온다.》고 하였다.
➊《其海滂出,猶渤海也,而東西與渤海相望,蓋自然之理.地方六千里,居兩海之間.其地平正,人居星布.中略.: 그곳에 바닷물이 질퍽하게 흘러나오는 곳이 있는데, 발해(渤海)이다. 동(東)쪽과 서(西)쪽에서 발해(渤海)를 서로 바라볼 수 있는데, 대략 자연(自然)의 섭리(攝理)이다.》 라고 하였다.
「동(東)쪽과 서(西)쪽에서 서로 바라본다(相望). 발해(渤海)를… …서로 바라본다(相望)… …」 대진국(大秦國)에서 이러한 곳을 찾는다면 : “동(東) 지중해(地中海)와 흑해(黑海)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스탄불(Istanbul)이다. 이스탄불(Istanbul)을 중심(中心)으로 동(東)지중해(地中海)와 흑해(黑海)로 나누어지는데, 동서(東西)에서 상망(相望)이 가능한 곳은 즉(卽) 이스탄불(Istanbul)이다. 이런 지형지세(地形地勢)를 보고 말하는 것이, 바로 자연(自然)의 이치(理致)【蓋 自 然 之 理】라고 하였다.
➋ 〈其土宜五穀,桑,麻,人務蠶,田.多璆琳,琅玕,神龜,白馬朱鬣,明珠,夜光璧. : 그 땅에서는 마땅히 오곡(五穀)이 나고, 뽕(桑)나무와 삼(麻)을 재배하여 사람들은 누에치기에 힘쓰며, 구림(璆琳)·낭간(琅玕)·신구(神龜)·백마(白馬)주렵(朱鬣)·명주(明珠)·야광벽(夜光璧)등이 있다.〉고 하였다.
마(麻) / ‘삼’은, 원산지(原産地)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 [麻, hemp, Hanf] (화학대사전, 2001. 5. 20. 세화 편집부) -
「사람들은 양잠(養蠶)에 힘쓴다(人 務 蠶).」고 하였다. 우리들이 그동안 배워온 역사(歷史)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➌ 「東南通交趾.又水道通益州永昌郡. : 동남(東南)으로 교지(交趾)와 통하고, 물길로는, 익주(益州)와 영창군(永昌郡)으로 통한다.」고 하였는데, 동남(東南)으로 교지(交趾)와 통할 수 있는 곳은, 오늘날의 이라크(Iraq)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다.
‘교지(交趾)’를 오늘날의 베트남(Vietnam) 북방지대(北方地帶)라고 한다면, “대진(大秦)”은,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이 될 수 없을뿐더러, ‘대진(大秦)’은 교지(交趾)의 서북방(西北方) ‘서장(西藏)=티베트(Tibet)’ 또는 계빈국(罽賓國 : Kashmir)이 되어야 한다.
또 ‘물길(水道)로 익주(益州)와 영창군(永昌郡)으로 통한다.’고 했을 때는, 장강(長江)상류(上流)를 이용했다는 말과 같다.【수도(水道)라고 했으니, 해도(海道)가 될 수 없다.】 익주(益州)와 영창군(永昌郡)은, 사천성(泗川省) 성도(成都)와 그에 속(屬)한 군(郡)이다.【영창군(永昌郡)은, 운남성(雲南省) 서남(西南)에 있다.】
위의 ➌에서 말하는 조건(條件)으로 “대진(大秦)”을 바라보면 : 결코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이 될 수 없다.’
► ‘대진(大秦)’이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이 되려면 : 교지(交趾)와 익주(益州)와 영창군(永昌郡)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일대(一帶)여야 하고, 물길(水道)로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이용(利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능(可能)한 일일까?
(8) 通典. 邊防 九 西戎 大秦 : 《大秦,一名犁靬,一云前漢時犁靬國也.後漢時始通焉.其國在西海之西.亦云海西國.中略.其人長大平正,有類中國,故謂之大秦,或云本中國人也. : 대진(大秦)은, 일명(一名) 리헌(犁軒)이다. 주(注) 전한(前漢) 때 리헌국(犁軒國)이다. 후한(後漢) 때 처음 통했다. 그 나라는 서해(西海)의 서(西)쪽에 있다. 또 해서국(海西國)이라고도 한다. 중략(中略). 그 사람들은 신체가 크고, 평정하다. 중국(中國)의 무리가 있어, 예로부터 대진(大秦)이라 하였는데, 혹은 본래 중국 사람이라고 하였다. 有織成細布,言用水羊毛,名曰海西布.出細布,作氍毹,毾㲪,罽帳之屬. : 곱고 가늘게 짠 직물을 만드는데, 수양취(水羊竁)용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해서포(海西包)이다. 모직담요(구유:氍毹), 탑등(毾㲪:깔개)을 만든 것인데, 계장(罽帳)에 속한다. 其色又鮮於海東諸國所作也.又常利得中國縑素,解以為胡綾紺紋,數與安息諸胡交市於海中. : 그 빛깔이 또 고운 것이 해동제국(海東諸國)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좋다. 또 중국(中國)의 겸소(縑素), 호릉(胡綾)감문(紺紋) 해 항상 이익을 얻었다. 몇 안 되는 안식(安息)등 여러 호(胡)와 해중(海中)에서 거래하였다.》고 하였다.
注釋 :《外國圖云,從隅巨北,有國名大秦.其種長大,身丈五六尺. : ‘외국도(外國圖)에서 이르기를 : 북(北)쪽의 큰 모퉁이를 따라가면, 이름이 ‘대진’이란 나라가 있는데, 그 종족(種族)들은 신체가 큰데, 키가 5-6장(丈)이다‘하였다. 杜環經行記云,拂菻國在苫國西,隔山數千里,亦曰大秦.其人顏色紅白,男子悉著素衣,婦人皆服珠錦.中略. : ’두환‘의 경행기(經行記)에서 이르기를, 불름국(拂菻國)은 점국(苫國 : 시리아) 서(西)쪽의 산(山)사이 수천(數千)리에 있다. 또한 대진(大秦)의 그 사람들은, 얼굴색이 붉고 희며(紅白) 남자들은 모두 다 색과 무늬가 없는 흰옷을 입는다. 부인(婦人)들은 모두 비단에 구슬달린 옷을 입는다. 중략(中略). 王城方八十里,四面境土各數千里.勝兵約有百萬,常與大食相禦.西枕西海,南枕南海,北接可薩,突厥. : 왕성(王城)은 80 리로, 동서남북 경토(境土)는 각각 수천(數千)리로, 뛰어난 병사 약 백만(百萬)이 있는데, 항상 대식(大食)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서쪽은 서해(西海)에 임하고, 남(南)쪽은 남해(南海)에 임하고 있는데, 북(北)쪽으로는 가살(可薩), 돌궐(突厥)과 접하고 있다.》하였다.
➊ 통전(通典) 또한 대진(大秦)인은, 「그 사람들은 신체가 크고, 평정하다. 중국(中國)의 무리(類)가 있어, 예로부터 대진(大秦)이라 하였는데, 혹은 본래 중국(中國)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한 대진(大秦)사람들은, 얼굴을 붉고 백인(白人)이며, 흰 옷을 모두 다 입고 있다」고 하였으니 유의미(有意味)한 기록(記錄)인 것이다.
➋〈其色又鮮於海東諸國所作也.數與安息諸胡交市於海中. : ‘해동제국(海東諸國)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그 빛깔이 또 곱다’ 또는 ‘그 빛깔이 또 고와서 해동제국(海東諸國)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북사(北史)편에서 보면 : “해동제국(海東諸國)”이란 ‘발해(渤海) 동(東)쪽의 여러 나라’를 뜻하는 말과 같다.
【중국(中國)이 해동제국(海東諸國)인가? 해동(海東)은, 즉(卽) 발해(渤海) 동(東)쪽의 조선왕조(朝鮮王朝)를 말하는 것이다. 원전(原典)에서는 “중국(中國)”은 없다.】
►►► 결국(結局) 〈구유(氍毹), 탑등(毾㲪), 계장(罽帳)등의 모직물(毛織物)로 만든 담요, 카페트등과 같은 모직(毛織) 제품(製品)은, 그 색깔이 선명하고 고운 것이 최상품(最上品)이었고, 모두 해동(海東)의 여러 나라(海東諸國)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더 좋았다.〉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당시(當時)의 “해동제국(海東諸國)”이란 「동(東)로마(Rome)제국(帝國)인 ‘이스탄불(Istanbul)=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비잔틴(Byzantine)」의 동(東)쪽 지방을 일컫는 말이 된다.
북사(北史)에서는 : 〈其海滂出,猶渤海也,而東西與渤海相望,蓋自然之理. : 바닷물이 질퍽하게 나오는 곳이 발해(渤海)인데, 동(東)쪽과 서(西)쪽에서 서로 바라볼 수 있다(相望) 하였는데, 이는 자연(自然)의 섭리(攝理)다.〉라고 하였으니,
곧 ‘해동(海東)’이란 : ‘발해(渤海)의 동(東)’쪽이란 뜻이다. “海東”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자. 〈해동(海東) : 우리나라의 별칭(別稱). '우리나라'를 발해(渤海)의 동쪽에 있다는 뜻으로 일컫던 이름〉이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역설(逆說)로 보자.
► 「대진(大秦)은 중국(中國)과 같다. 또는 본(本) 중국(中國)이다.」라고 했다. 「통전(通典)에서 이르기를 : 그 사람들은 신체가 크고, 평정하다. 중국(中國)의 무리가 있어, 예로부터 대진(大秦)이라 하였는데, 혹(或)은 본래(本來) 중국(中國)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설명(說明)은,
►►►〈통전(通典)의 ‘해동제국(海東諸國)’과 북사(北史)의 ‘발해(渤海)’를 합치면 : 대진국(大秦國)에 있는 발해(渤海)바다의 동(東)쪽이 바로 ‘해동(海東)’이 된다. 해동(海東)이란 발해(渤海)의 동(東)쪽이란 뜻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해(渤海)”란 「지중해(地中海) 또는 흑해(黑海)」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理解)될 수 있다. 동(東)쪽 서(西)쪽에서 발해(渤海)를 서로 바라볼 수 있다(相望)는 것에 착안(着眼)해 보면 : “지중해(地中海)와 흑해(黑海)의 바닷물이 들어가고 나오는 곳【其海滂出】에 대진(大秦)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中國)이 바로 대진(大秦)”이고, “그 동(東)쪽은 바로 해동(海東)이며,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강토(疆土)였다.”는 뜻이 된다.
➌〈대진(大秦)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가살(可薩)과 돌궐(突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곳은 바로 〈‘흑해(黑海) 북방지대(北方地帶)’로 ‘우랄산맥(Ural, 山脈)’ 서(西)쪽 땅이다.〉 즉(卽) 동구라파(東歐羅巴)와 러시아(Russia) 모스크바(Moscow) 땅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오늘날의 「감숙성(甘肅省)·섬서성(陝西省)·산서성(山西省)·하북성(河北省) 등지(等地)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돌궐(突厥)이란 종족(種族)은 없었다.”」는 뜻이다.
항상(恒常) 주장(主張)하는 것이지만 돌궐(突厥)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구라파(歐羅巴) 족속(族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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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魏略西戎傳曰 :《西域諸國,中略.今從大秦西近日所入.大秦國一號犁靬,中略.其俗人長大平正,似中國人而胡服.自云本中國一別也. :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 중략(中略). 대진(大秦)가까이에서 해가 들어가는 곳이 있다. 대진국(大秦國)은 또 리헌(犁軒)이라고 한다. 중략(中略).그 사람들은 습성은 장대(長大)평정(平正)하며, 중국인(中國人)과 같은데 오랑캐 옷을 입었다. 본시 중국(中國)의 한 갈래라고 하였다.》
► 대진(大秦)은, 곧 중국인(中國人)을 닮았는데, 옷만 오랑캐복장(胡服)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중국인(中國人)도 백인종(白人種)이었다.”는 말과 같다.
《其土地有松,柏,槐,梓,竹,葦,楊柳,梧桐,百草. : 그 나라의 땅엔 소나무·측백나무·홰나무·가래나무·대나무·갈대·버드나무·오동나무·온갖 풀이 있다. 民俗,田種五穀,畜乘有馬,騾,驢,駱駝.桑蠶.中略. : 민속(民俗)이 있고, 밭에서는 5곡이 있으며, 가축(家畜)은 말·노새·낙타(駱駝)가 있어 타고 다니며, 상잠(桑蠶)【누에와 뽕나무로 양잠(養蠶)을 말한다.】이 있다. 國出細絺.作金銀錢,金錢一當銀錢十.有織成細布,言用水羊毳,名曰海西布.此國六畜皆出水,或云非獨用羊毛也,亦用木皮或野繭絲作,織成氍毹,毾㲪,罽帳之屬皆好,其色又鮮于海東諸國所作也. : 나라에는 고운 베가 나온다. 금은(金銀)으로 돈(錢)을 만드는데, 금전(金錢) 1대(當) 은전(銀錢) 10이다. 곱고 가늘게 짠 삼베의 직물이 있는데, 수양취(水羊竁)로 만든 것인데, 해서포(海西包)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6가축(家畜)이 물에서 나오는데, 혹은 양모(羊毛)만을 쓰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나무껍질을 이용하거나 혹은 멧누에서 나온 고치(야견:野繭)로 실을 만드는 것으로, 구요(氍毹), 탑등(毾㲪:깔개)을 짠다. 계장(罽帳)의 무리로(한 종류로) 모두 좋아한다. 그 색깔이 또 곱고 뚜렷하며, 깨끗하여 해동제국(海東諸國)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낫다. 又常利得中國絲,解以爲胡綾,故數與安息諸國交市於海中. : 또 중국(中國)의 실(絲)을 얻어 이득을 취하며, 오랑캐 비단(胡綾)을 해(解)하여, 안식(安息)의 여러 나라(諸國)와 해중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다.》고 하였다.
➊ ‘상잠(桑蠶)’이란 ‘뽕나무와 누에’를 말하는 것으로 양잠(養蠶)을 말한다. 다량(多量)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또
“비단(緋緞)이나 기타 구유(氍毹), 탑등(毾㲪)”은 모두 계장(罽帳)에 속하는 것 인데, “그 제작(製作) 기법(技法)이나 색깔이 또 곱고 뚜렷하며, 깨끗하여 해동제국(海東諸國)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더 좋다.”라는 뜻이라고 보아지는, “해동제국에서 만든 것이든, 이것보다 물건(物件)이 더 좋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국(中國)이 등장(登場)해야 할 중요(重要)한 자리에, 왜 해동제국(海東諸國)이 등장하는가?」하는 거다. 이러한 결과(結果)로 보면, ‘중국(中國)’은 뭐냐? 반문(反問)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 그렇다면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으로부터 출발(出發)하여 하서회랑(河西回廊)을 거쳐 죽음의 사막지대(沙漠地帶)를 통과(通過)해 가는 실크로드(Silk Road)의 주인공(主人公)은, “해동제국(海東諸國)이었다”는 뜻이고,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말하는 ‘중국(中國)은 없었다.’는 뜻이다. ‘중국(中國)의 존재(存在)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 ‘중국(中國)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진(大秦)에서 서로 바라볼 수 있는(相望), 발해(勃海)의 동(東)쪽엔 해동(海東)의 여러 나라(海東諸國)가 있었다는 뜻이며, 이대로라면 :〈“중국(中國)”은 “대진(大秦)”이다.〉라는 뜻이다.
➋ “구유(氍毹)”를 검색(檢索)을 해보면 : 〈구유 氍毹 / 1. 명사 공예 :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모직물 깔개〉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는데, 북사(北史)를 결합(結合)시키면, 신라(新羅)는,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과 접(接)하게 되며, 그곳은 안식국(安息國)의 땅이 되고, 안식국(安息國)의 여러 나라 중에 “사라국(斯羅國)=사로국(斯盧國)”이 바로 진한(秦韓)의 12개 나라중의 하나가 되며, 〈안식(安息)은, 곧 진한(秦韓)=진한(辰韓)이 된다.〉
발해(渤海)【지중해(地中海) 또는 흑해(黑海)】의 동(東)쪽에 있는 해동(海東)의 여러 나라(諸國) 즉(卽) 해동제국(海東諸國)은, 78개 나라가 흥성(興盛)했던 구이(九夷)의 삼한(三韓)의 여러 나라들을 지칭(指稱)한다고 하면, ‘오버(Over)’일까?
【구유(氍毹)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新羅)에서 제조된 기록이 있는데, ‘오색(五色)구유(氍毹)’라고 한다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 중국(中國)은 어디에 있었는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또 나올 수밖에 없다. 대진(大秦)【동서로마제국(東西,Rome,帝國)】이 본시(本是)의 중국(中國)이라면, 해동(海東)은 곧 조선(朝鮮)이며, 해동(海東)을 기준(基準)하는 바다(海)는, “지중해(地中海)와 흑해(黑海)”가 될 수밖에 없다.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발해(渤海)’는, ‘지중해(地中海)와 흑해(黑海)’사이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말하는 것이고, 그 동(東)쪽이란 뜻인 ‘해동(海東)’지역(地域)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동쪽 땅(東域)을 뜻하는 것이 된다.
「발해(渤海) 동(東)쪽의 해동제국(海東諸國) 즉(卽) 해동(海東)의 여러 나라란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오버(Over)일까? - [3편]으로 계속(繼續) -
2020년 05월 12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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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조영이 세운 나라가 " 大震國 " 아니었나요? 후에 " 大渤海 " 라고 대부분 부르는데 바로 이부분이 수상하다는거죠. 그럼 왜? 대조영은 처음에 大震國이라했을까요? 추정하건데 그곳이 진나라땅이었기때문일거라 봅니다. 연남생묘지명에 본인이 震朝鮮人이라고 기록되있다고 했는데 대조영이 그뒤를이어서 建國했기때문에 " 대 " 씨성에다가 " 진나라 " 를붙여 大震國이라 했을것이 틀림없을겁니다.
안녕하세요. <대부여>님!
대진국(大震國)은, 대발해(大渤海)이자,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진(震)자는 많은 의미가 있지만, 東域(동역)을 뜻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니, 바로 발해의 동쪽 땅이란 뜻이라고 보아집니다. 우리 카페에서는 여러 차레에 걸쳐 발해문제를 다뤘지만, 발해가 어디에 있었던 어떤 바다 또는 호수였는지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위의 게재 글 역시 그 하나라고 보면 될 것 샅습니다.
원전속에서 바라보는 조선사(한국사)는 역사통설(반도사관과 식민사관)에서 설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땅과 위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라(新羅)만 하더라도,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느니, 사카 또는 스키타이등의 문화를 가졌다?고만 말하고 있을 뿐, 어떻게 그들의 문화를 함게 향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꿈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혹자들은 문무왕은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만 할 뿐, 김일제의 선대나라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회의 게재분에서 설명한 것처럼 김일제의 선대나라는 오늘날의 중앙아세아 아무다리강 南岸(남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럴 때, 신라의 모직물 이야기는 또 중앙아세아(中央亞細亞)에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라는 사카 또는 스키타이, 또는 로마제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됩니다.
반도 땅의 동남 모퉁이에서 오늘날의 구라파와 중앙아세아 땅에 있던 나라들과 문화교류를 했다면?
무슨 방법으로, 교통수단은.......이건 웃기는 이야깁니다.
신라(新羅)는 반도 땅에 없었다는 것이 확실한 것이죠. 이런 여러 원전속의 이야기가 조선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첨병역할을 한다고 보아집니다.
관심과 성원에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