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과자
김 지 희
전통 찻집에서 보이 차에 곁다리로 두부과자가 나왔다. 군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그날만큼 두부과자는 구원 군이었다. 정사각형의 하얀 옷에 작은 이모티콘 눈웃음을 닮은 구멍들, 바삭바삭했다. 주인장 눈치 없이 바지런히도 만지작거렸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후에 만난 친구와의 어색한 자리에 뚜쟁이가 되어주었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더듬어 생각해도 아슴푸레하다. 두부과자의 매무새만, 눈으로 먹고, 손으로 먹고, 입으로 먹었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두부과자에 약이라도 넣었는지 심장의 쿵쾅대는 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귀에까지 들렸다.
의미 없는 이런 저런 인사말들이 오가고, 알고 싶지 않은 일상 안부들은 귓등으로 흘리며 눈은 두부과자에만 주고 있었다. 오래 전 기억들은 내내 목구멍에 막혀 있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처음 보았던 까까머리 중학생 남자아이를 찾느라 분주하게 기억의 회로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치맛바람이 심했던 엄마의 성화에 새벽과외를 다녔다. 과외를 갈 때면 아버지의 작은 오토바이가 전용 자가용이었다. 눈꺼풀도 덜 떨어진 채 아버지의 등에 잠투정을 해댔다. 과외선생님은 대학교 휴학생이었던 참 친절한 언니 같은 분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중학생이 수업을 하였다. 여학생은 나 하나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자전거를 태워다주던 남학생이 있었다. 누가 먼저 태워다 주겠다고 했는지, 태워다 달라고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하지만 내 어설픈 추측으론 새벽길을 투덜투덜 걸어가고 있으니 말없이 자전거 뒷자릴 내어주었던 것 같다. 까만 교복에 단정하게 모자를 쓰고 잘 웃지도 않던, 우수에 찬 슬픈 눈을 가진 남자아이였다.
삼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찰랑대던 단발머리는 윤기 잃은 새치머리가 되었다. 그때의 그 남학생이 아내인 듯한 여자와 함께 눈앞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얍실하니 세련되어 보였다. 그는 아저씨 티가 나는 두루뭉술한 몸에 희끗한 머리,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중년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눈인사를 하였다.
순번대기표를 뽑아 기다리는 폼이 연말정산 거래명세서를 발급 받으려는 것 같았다. 연말이면 은행창구는 북새통이었다. 요즘은 모든 게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처리되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건 창구에서 일일이 확인하고 발급해 줄 때였다. 다른 고객들 모르게 살짝 불러 먼저 처리해 주었다. 고마워서였을까? 그는 네모난 작은 명함 한 장을 내 손에 건네주고 꽁꽁 싸맨 겨울사람들의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매섭게 버티고 섰던 동장군이 지상으로 밀고 올라오는 봄기운에 밀려 후퇴하고 목련이 꽃망울을 틔우려고 용을 쓰고 있었다. 복수초가 낙엽을 이불 삼아 노랗게 꽃송이를 내밀었다.
매일이 그날이 그날인 직장생활, 책상 위 전화가 울었다.
“감사합니다.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무적인 멘트에 상대방에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정말로 친절히 모십니까?” 헛헛하게 웃었다.
명함을 받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화선으로 전해지는 목소리에 죄를 지은 사람처럼 심장이 큰북 소리를 내며 뛰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렁뚱땅 약속을 하고 말았다.
장식이라고는 하나 없이 키만 큰 늙은 나무벽시계가 배가 고픈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되었다. 잘 하지 않던 화장도 고쳐 하고 머리 매무새도 다시 만지고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을까, 거울 앞에서 오랜만에 여자 흉내를 내고 있었다.
소녀와 소년이 아닌 아줌마와 아저씨가 되어 찻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두 아들의 아빠가 되어 있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든 가장이었다. 슬퍼 보였던 눈가엔 잔주름이 달려 있었고 그때처럼 말이 없었다.
찻잔을 덥혀 보이차를 내려주는 여주인의 수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두부과자를 접시에 그득히 담아내며 오래 알고지낸 단골인 양 바람잡이를 했다. 덕분에 끊어져 죽어있던 시간의 물꼬를 열었다.
중학생이었던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덧 사회인이 되어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에 이십 년을 건너뛰어 현실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찻물이 식어가고 있었다. 하루도 갈무리를 하고 있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배시시 웃던 찻집 주인의 배웅이 마지막이었다.
사는 게 바빠서였을까? 또 한 번의 강산이 변했다. 가끔 닮은 사람을 볼 때면 생각이 났다.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박물관에 갔다.
‘천마 다시 날다’ 특별전을 통해 신라 천오백 년 새로운 천마도를 공개했다. 발굴 사십일 년 만이라고 했다. 햇살은 따사로웠다. 박물관 정문 입구의 에밀레종이 많은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았다. 여전히 쳐져 슬퍼 보이는 눈으로 웃고 있었다. 박물관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짧은 만남이 있었다. 우리의 인연도 박물관에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십여 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두부과자를 샀다. 오후가 되자 하늘도 땅도 잿빛이다. 제 멋대로 부는 바람결에 비가 묻어온다. 눈물바람을 하려나 보다.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는 바람은 내 방 창문으로는 들어올 생각이 없다.
까만 테두리의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고 두부과자 봉지를 무릎에 앉힌 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일개미 같은 글자들과 시간 죽이기 놀이를 하고 있다.
두부과자는 팔랑대던 내 중학교 시절, 자전거 뒷자리를 내어주고 허리를 허락해 주던 까까머리 남학생을 추억하게 한다.
첫댓글 캬~ 두부과자에 담긴 사연이 기가 막히네요.. 잼 납니더.ㅎㅎ
이런 사연 한자락쯤은 대부분 있지 않나요..ㅎㅎ
@터기 두부과자를 제목으로 이런 글을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글 솜씨가
부러운 1인입니더. 글고 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이런 사연도 없습니더. ㅜ
@연보라 작가의 상상력은 근원을 찾는 옛선인들의 선 문답 수준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