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무엇에 두었는가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 안에 한 그루 푸른 나무를 숨 쉬게 하는 일이네
때로 그대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는가
낮은 산길과 들녘 맑은 강물을 따라
사람의 마음을 걷는 길이란
그대 지금껏 살아온 발자국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네
숲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생명의 지리산을 만나는 길 그리하여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대 안의 지리산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일이네.......................................박남준 <지리산 둘레길> 부분
위태(상촌)–지네재(1.9km)–오율마을(0.6km)–궁항마을(2.2km)–양이터재(2.2km)–나본마을(2.6km)–하동호(2km) <총11.5km>
10구간 출발점
지난 달에 걸음을 멈추었던 위태마을에 다시 섰다
여러 개의 민박집 간판이 붙어있는 이정표를 따라 간다
등반대장이 사전 답사하며 매달아 놓은 우리 산악회 리본이 반겨주었다.
상촌제
10구간이 시작되는 곳엔 손바닥만 한 웅덩이가 있다. 상촌제다.
그 밑엔 삿갓만한 다랑논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하동 지리산 자락엔 ‘닷 마지기 보(洑), 열 마지기 보’라고 불리는 작은 웅덩이가 곳곳에 있다.
논을 적실 수 있는 물의 양이 다섯 마지기, 열 마지기 정도라는 뜻이다.
상수리나무 당산
위태마을 당산나무는 상수리나무이다.
위태마을 상수리나무 당산에서는 아직도 당산제를 올린다고 한다
마을 분들 이야기에 따르면 세 그루의 상수리나무 당산목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곳만 남았다고 한다
먼저 온 사람들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산나무 남근석
당산나무 아래 놓은 남근석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아들 못 낳는 사람이 이 돌을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온다.
둘레길을 걷는 아줌마들이 심심찮게 이 돌을 만지고 간다고 한다. ㅋㅋ
상촌마을(안마을)
당산나무에서 바라보는 상촌마을은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마을의 전형을 보여준다.
같은 위태마을이지만 이곳은 따로 '안마을'로 불린다.
정돌이민박
상촌마을을 지나 시멘트길을 오르다 보면 정돌이민박이 나온다
막걸리, 파전, 국수, 라면, 닭백숙을 판다고 씌여 있다
산행이 끝날 때쯤이면 쉬어가기에 딱~좋은 곳인데 아침 시간이라서 그냥 지나쳤다
돌지 않는 물레방아
민가 앞에 물레방아가 보였는데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래도 물줄기는 흐르고 있었다
물레방아는 힘차게 돌아갈 봄날을 꿈꾸며 묵언수행중이다
올라가자
10구간은 높고 낮은 세 번의 오르막 구간이 있다
물레방아를 지나 다랭이밭을 지나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서슬퍼런 산죽의 잎사귀가 섬뜩하였다
지네재 오르는 길
지네재로 올라가는 길은 여간 가파르지 않았다
주산에서 뻗어 내려온 능선의 모양이 지네 형상이라 하여 '지네재'라 한다
기력이 약한 후미그룹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주산갈림길(지네재)
이 고개는 '주산갈림길'이다.
지도에는 '지네재'라고 적혀 있다.
주산에서 뻗어 내려온 능선들이 춤을 추는듯한 형상이라 하여 무등(舞)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땀에 젖은 겉옷을 벗고, 간식을 먹으며 쉬어 갔다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에 그는 있다..............................................................유자효 <소나무> 전문
오대주산
주산은 해발 831m의 꽤 높은 산이다.
이 산의 이름 앞에 고유명사처럼 ‘오대’라는 말이 붙어 오대주산으로 불린다.
주산 주위를 여러 산들이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어서 주인스럽고 어른스러운 산이라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고 한다.
바위는...
대숲 앞에 있는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구쳐 있다
하늘을 향한 염원으로 타오르고 있는지,
더러운 욕망을 버리라는 대숲의 설교를 듣고 있는지,
욕정에 사로잡혀 몸부림 치고 있는지....................................알 수 없는 일이다 ㅠㅠ
오율마을(1)
몇 개의 작은 마을이 모여 하나의 행정마을을 이루고 있는 촌명이다.
주위에 닥나무가 많아서 일부마을에서 한지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지구본, 헌 세숫대야, 낡은 기타와 마스크를 쓴 목장승으로 만든 이정표가 재미있다
오율마을(2)
이정표에는 오율마을로 되어 있지만 둘레길을 지나는 이 마을의 정확한 이름은 ‘오대’다.
궁항저수지가 생기면서 본 마을이 수몰되고 새로 옮겨온 것이다.
지네재 아래까지 올라가 농사를 지어야 했던 산골마을의 고단한 일상을 걷기 좋은 숲길이 감싸 안았다
숭숭 하늘 향해 솟은 나무 그늘에 서 있었다
곧고 푸른 지조가 만들어낸 텅 빈 육체에서
플루트 소리가 났다
위로 뻗어가느라 아무것도 품지 못한 생애가
한 번은 꽃 피고 한 번은 꽃 지고 싶다고
우수수 잎을 날려 보냈다
나이를 숨기느라 마디진 등뼈 타고
초록을 물들이며 노랗게 솟는 대쪽의 항진(亢進),
창공을 버티느라 굵어지지 않고
다만 단단해진 울대가
무성한 잎을 떨어뜨렸다..............................................................................최영철 <대숲에서> 부분
궁항마을(1)
동네 이름인 '궁항(弓項)'은 '활목'이란 뜻이다
이 동네의 지형이 활처럼 휘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로 철광맥이 있어 쇠를 구운 흔적도 남아 있다.
궁항마을(2)
궁항마을은 새터, 뒷골, 안몰, 양이터, 빙이터, 질매재 마을 등을 합한 행정마을 명칭이다.
마을회관 앞에는 '지리산둘레길 들꽃마을'로 선정되었다는 표지판이 여러개 붙어 있었다
회관 2층에는 순례자 쉼터인 '새참사랑방'이 있다고 알리고 있는데....사람의 흔적조차 없었다
양이터재로 가는 길
궁항마을에서 도로를 건너 양이터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로 인해 땀이 흘렀다
지리산둘레길에서 가장 지루한 곳은 이러한 시멘트길이다
양이터마을
임진왜란 당시 양씨와 이씨가 피난을 와서 터를 잡은 곳이라 해서 양이터마을이다.
양씨와 이씨는 임진왜란 이후 다른 곳으로 떠났는지 적막하고 쓸쓸하다
양이터재
궁항마을에서 포장 임도를 타고 1시간쯤 오르다 보면 양이터재에 도착한다
이곳을 기점으로 낙동강과 섬진강이 나뉘어진다.
걸어온 길에서 만난 개울은 낙동강이 되고, 앞으로 만나는 개울은 섬진강으로 흐른다
점심 식사
양이터재에서 점심 식사를 하려 했으나 화장실이 방해하였다
화장실을 피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식사 자리를 찾아 앉았다
봄향기가 물씬 풍기는 반찬에 작년 가을에 담근 마가목술을 한 잔 들이키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웠어
살면서
속을 비웠더니
이렇게 되더라구.......................................................손수현 <대나무> 전문
연하고 부드럽게 올라오는 희망으로
제 속의 더러운 욕망을 모두 비워야
단단한 정신으로 울울창창 하늘을 찌르리니.
굽고 뒤틀린 삶이 맨 처음
푸르게 꿈꾸며 찾던 길이 아니었다면
그대, 폭설이 세상을 뒤덮는 날
주저말고 대숲으로 오라..............................................................................정지원 <대숲에 서면> 부분
고대사
나본마을이 가까워질 무렵 고대사란 절집이 시선을 끌었다
시골 별장처럼 지어진 집앞에 석불이 세워져 있다
절 앞에 서있는 승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본마을
나본마을이란 나동과 본촌을 합한 이름이다.
나본은 하동군 청암면에 속한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큰물을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하동호가 생겨 그 설을 입증해 주는 듯하다.
하동호를 내다보는 마을이라 풍광이 지극히 아름답다
하동호(河東湖) 1
드디어 지리산둘레길 10구간의 종점인 하동호에 도착하였다
경상남도 하동군과 사천시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묵계천(默溪川)을 가로막아 건설된 인공호수다.
1984년 착공되어 1993년 준공되었으며, 청암계곡에 산중호수를 이루고 있다.
하동호(河東湖) 2
하동호는 산중에 위치한 호수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거대함을 자랑한다.
대숲을 지나 눈앞에 펼쳐지는 하동호를 보게 되면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수이지만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10구간의 끝
10구간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와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하동호를 잇는 길이다
위태-하동호 구간은 지리산의 남쪽이며, 총 거리는 11.5km이다.
소나무숲길과 마을안길, 대숲길을 걸어 하동호 관리사무소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화창한 봄날에 좋은 분들과
트레킹 넘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둘레길 트레킹 후기 잘 읽었어요.
새로운 느낌과 많을 것을 알게 해준 글입니다.
길을 걷는것이 힘들기는 하여도 행복을 주지요
요즘 성경 말씀에 딱 맞는 것을 느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