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신전, 그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이따금 어렴풋한 말들이 새어 나오고,
사람은 상징의 숲들을 거쳐 거기를 지나가고,
숲은 다정한 눈매로 사람을 지켜본다.
멀리서 아련히 어울리는 메아리처럼
밤처럼 광명처럼 한없이 드넓은
어둡고도 깊은 조화의 품안에서
향기와 색채와 음향은 서로 화합한다.
어린애의 살결처럼 신선스럽고
오보에처럼 보들하며, 목장처럼 푸른 향이 어리고
--- 또 한편엔 썩고 푸짐한 승리의 향기가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스런 것으로 번져 나가서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한다.
상응이란 물질 세계와 영혼의 세계가 소리와 메아리처럼 서로 화답한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물질계(자연)가 우리에게 마련해 두는 상징을 통하여 우리는 영혼계에 접근할 수 있는데 우리의 모든 감각은 자연의 신비를 드러내기 위하여 서로 합쳐서 협력한다. 그리고 자연이라는 신전이 마련해 주는 상징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을 맡아 보는 것이 바로 시인이다.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사이는 서로 상응하고 시인은 만상이 숨기고 있는 뜻을 해독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럴 때 사물은 곧 상징이며, 시인은 친근한 시선으로 그것을 지켜본다. 즉 물질과 영혼, 인간과 자연, 자연의 상징을 통한 인간(시인)과 영혼의 세계가 서로 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시인은 상징의 숲을 거쳐 미의 절대적인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본다. 이런 관점을 토대로 감상하면 작품의 의미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보들레르는 외부의 세계와 인간 사이에, 혹은 자연 세계와 정신 세계 사이에는 상응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시인이다. 이 시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자연은 '모호한 말'들을 흘러 내보내는 '사원(寺院)'처럼 나타나며, 사원이라는 상징의 숲에서 인간은 관찰하면서 동시에 관찰당하는 것을 느끼면서, 향기와 색깔과 소리가 서로 응답하는 신비의 체험을 한다. 이질적인 감각들이 상호 침투하여 섞이며 또한 동시적으로 체험되고 모든 사물들이 상호적인 유추에 의해 표현되는 세계에서 시인은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대상 뒤에 감추어져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판독한다. 보들레르가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의 선구자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이 시는 <악의 꽃>의 제1부, "우울한 이상"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서, 보들레르 시의 이론과 미학의 기초를 확립시킨 작품이다. 이 시에서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는 서로 교감을 나눈다. 정신 세계에 접근하게 해 주는 상징들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물질 세계이며, 물질 세계를 포착하는 우리의 모든 감각들은 서로 뒤섞여 자연의 신비를 밝혀 내는 데 협력한다. 이 세상의 일체는 상형 문자이고, 시인이란 다름 아닌 번역자이며 암호 해독자이다. 상상력은 시인으로 하여금 즉각적인 현실의 대상들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주어서 다른 세계, 즉 관념의 세계와 이 현실의 대상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내부로부터 느끼게 해 준다. 이렇게 구상된 예술은 일종의 마법적 기능을 지니는데 현실과 그 현실을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말과 사물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모해야 한다. 시인은 상상력을 통하여 현실 세계와 관념 세계를 접합시키는 자이며, 이것이 바로 '상응(相應)' 이론이다. 이 상응은 상징적 외관과 정신적 실재를 마술적으로 하나의 감각 기호로 결합시킨다.
첫댓글 이 세상의 일체는 상형 문자이고, 시인이란 다름 아닌 번역자이며 암호 해독자이다....마음에 쏙 드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