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먹고 우루루 털어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1920년대작가 김소저가 읊은 냉면 찬가다.
추운 겨울날 이가 시린 냉면을 먹고 뜨근뜨근한 아랫목 이불로 파고드는 바로 그 맛이라니!
시인 박목월은 좀 더 멋을 부려 "단맛의 용해적 황홀감은 노란빛과 통할 것 같고,
신맛의 서늘한 신선미는 청색과 통할 것 같다"고 했다.
냉면 하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먼저 떠오른다.
냉면의 원조격인 평양냉면은 국수에 메밀을 많이 넣어 면발이 거칠고 굵다.
주로 평안도 지방에서 한겨울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다.
소,돼지.꿩을 삶은 사골국물에 말기도 했다.
밍밍할 정도로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 섞은 것을 냉면이라 하며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 간장을 메밀국수에 섞은 것을 골동면이라고 하는데
그 중 평양냉면이 최고'라고 기록돼 있다.
함흥냉면은 국수에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섞어서 면발이 쫄깃하고 가늘다.
회냉면이 인기인데 함경도에서는 주로 감자 전분에 참가자미를 썼다.
그러다 월남자들을 중심으로 고구마 전분에 홍어를 쓰기 시작했다.
비빔냉면은 1960년대 서울 오장동의 한 식당에서 회 대신 수육을 올리면서 퍼졌다고 한다.
다른 이름표를 단 냉면들도 있다.
북녘에는 꿩고기를 넣은 생치냉면, 충청도에는 나박김치냉면이 있다.
풍기냉면은 이름과 달리 오지를 찾아 피란온 북녘 사람들이 이곳에서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평양냉면이다.
서울에 냉면집이 생긴 건 구한말 이후였다.
궁중 음식 책임자였던 조순환이 연 명월관을 비롯해 낙원동의 부벽루,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돈의동의 동양루 등이 이름을 떨쳤다.
지금은 서울의 평양면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우래옥, 을밀대, 평래옥, 강서면옥과 대전 사리원면옥,
동두천 평남면옥, 철원 평남면옥, 영주시 풍기 서부냉면, 대구 대동면옥 등이 전통을 잇는 곳으로 꼽힌다.
냉면 마니아들은 꼭 주방 가까이에 앉는다.
면발이 붇기 전에 맛을 보려면 일각이 아쉽다는 것이다.
또 "메밀면은 이가 아니라 목젖으로 끊어야 하므로 입안 가득 넣고 먹어야
메밀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
그 정도 미식의 경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찌는 더위에는 살얼음 동치미국처럼 시원한 냉면이 딱이다.
메밀 속 루틴이 모세혈관까지 튼튼하게 해준다니 더욱 좋다.
자, 토요일인 오늘 점심은 어느 냉면집에서 해결하나. 고두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