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 도심 여행을 위해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우리옛돌박물관, 길상사, 선잠단지를 찾았다.
'우리옛돌박물관'은 옛 돌조각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2015.11.11 북악산과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인 '성북동' 산자락에 문을 열었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박물관으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벅수' 등의 '석조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내부'는 환수유물관, 동자관, 벅수관, 근현대관이, 야외 전시관인 '돌의 정원'에는 일본에서 '환수된 문화재'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돌조각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물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선조들의 '수복강녕'(장수와 복을 기원함)과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우리의 소망'도 기원해 보는 공간이다.
'길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로, 1997년에 개원한 도심 속 청정 사찰이다. 본래는 고급 요정인 '대원각'이었는데, 대원각 주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감동해 자신의 요정 부지와 건물을 '시주'하여 '사찰로 재탄생'한 곳이다. 길상사는 '종교 화합의 장'으로도 의미가 깊어 천주교 신자나 기독교 신자가 출연한 조각과 석탑이 있다.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교통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통해 '마을버스'(성북02번)로 접근 가능하다.
'선잠단지'는 조선 시대의 역사적 유적지로,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한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잠신'(누에의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며 양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친잠례'라는 의식을 행하였다. 1908년에는 제사가 '사직단'으로 옮겨지면서 '선잠단'은 폐허가 되었으나, 1963.1.21 대한민국 '사적 제83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그 터와 일부 구조물이 보존되고 있다.
'투어 코스'는 전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6번 출구)에서 성북02번 마을버스를 타고 약 10분간 이동하여 종점인 우리옛돌박물관 앞에 하차하여 박물관 관람 후 → 길상사 → 선잠단지 → 한성대입구역 순으로 걸어서 내려왔다.
우리옛돌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입구
'우리옛돌박물관' 모습이다. 건물 내부에 있는 전시물 관람은 생략하고, 야외 전시관인 '돌의 정원'에 있는 전시물만 관람하였다. 전시 관람료는 내부 전시관 3천원, 외부 전시관 5천원이며, 통합 또는 전시관별 별도 구매가 가능하다.
석호(돌로 만든 호랑이)
'야외 전시관' 입구에 있는 '석호'가 인상적이다. 석호는 '돌로 만든 호랑이'로, 궁궐이나 건물의 정문에 세워 잡귀를 막아내는 '수호신'이나 '방위신'의 기능을 하였다.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십이지의 하나'로서, 신성한 영물로 여겨져 왔다. 힘과 위엄을 상징하며 악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효행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는 효와 보은의 동물이기도 하다.
환수유물 장군석과 장명등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환수된 유물'이다. 조선시대의 묘 앞에는 '무관'의 모습을 한 '장군석'을 설치하여 묘를 지키고자 하였다. 장군석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걸치고 검을 땅에 짚은 모습이 특징이다.
'장명등'은 묘 앞에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만든 석조물로, '불을 켜는' 실용적인 기능과 함께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분과 지위에 따라 장명등을 세우는 것이 제한되었기에 무덤 앞 장명등의 유무는 '피장자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함께 한 일행들이 '승승장구 길'을 걸으며 '망부석'을 지나고 있다.
마애지장보살입상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관세음보살과 함께 가장 많이 모시는 보살이다. 마애지장보살입상에서 '마애'란 뜻은 '절벽(암벽)을 갈아 새긴'이란 뜻으로 '바위 벽면에 조각된 지장보살'상을 가리킨다.
미륵불
미륵불을 범어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이다. 성인 미륵은 '자씨'(慈氏)로 번역되어 흔히 '자씨보살'로도 불린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인간의 햇수로 56억 7000만년이 지나 이 세상에 내려와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예언 속의 부처님'을 형상화 한 것이다.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세워 잡귀를 쫓던 '마을 수호신'이다. 장군의 이름을 새겨 넣어 마을의 안녕은 물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길 빌었다.
기념사진을 남겨 본다.
제주정낭
'정낭'은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 놓은 굵직한 나무'이다. 제주도만의 독특한 '대문양식'으로 나무의 갯수에 따라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림과 동시에, 소와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해 진다. '정낭 3개'가 가로로 모두 걸쳐진 것은 '좀 멀리 갔어요', '2개'가 걸쳐진 것은 '저녁 때쯤 와요', '1개'만 걸쳐진 것은 '금방 돌아와요', 1개도 걸쳐 있지 않은 것은 '사람 있어요'를 의미한다.
동자석
'동자'는 '도교'에서는 신선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나 보살을 곁에서 모시며, '유교'에서는 무덤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이다. '동자석'은 무덤이나 사찰 주변에 세워지는 돌로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며, 망자를 수호하고 영혼을 위로하며 길을 인도하는 신성한 상징물이다. 16~18세기 중반까지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왕실 가족과 사대부 묘역'에 조성된 석물이다. 쌍상투를 틀고 천의를 입고 지물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공손히 서서 '무덤 주인의 심부름'을 기다린다.
제주동자석
'제주동자석'은 육지의 동자석처럼 손을 모으거나 연꽃을 들고 서 있는 '일반적인' 형태도 있지만, '제기차기'나 '연날리기'를 하거나 '악기'를 들고 있는 모양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불교·유교·무속'이 융합된 우리나라 고유의 '장묘 신앙 조형물'이다.
벅수
마을 입구나 길가에 사람의 얼굴을 한 '벅수'(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이름)가 서 있으면,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이나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또, 재화를 막고 복을 가져다 주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 마을의 벅수에게 갖가지 크고 작은 소원을 정성스레 빌었다.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지만 그 생김새는 수더분하고 익살스럽다.
박물관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이다. 저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기우제단
'기우제단'은 "비(雨)나이다. 비(雨)나이다"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의례를 행하는 '제의 장소'이다. 농경 사회에서 '용'은 물의 신'으로서 비를 관장한다고 여겨졌기에, 기우제는 '용을 조각한 제단'이나 '용바위'(비를 주관하는 용신을 상징하는 바위) 혹은 '우물'에서 지냈다.
민불
'민불'이란 전문 불사나 사찰 중심의 조각이 아닌, '민간에서 제작한 불상'을 의미한다. 즉, 민중들이 직접 신앙적 염원을 담아 만든 불상으로, 사찰이나 국가의 후원 없이 '지역 공동체'나 '개인' 신앙의 표현으로 만들어진 석조물이다. 익살스런 모습의 '민불' 앞에서 '제자리자전거'를 타면서 개구쟁이처럼 놀아 보았다.
염화미소
'염화미소'는 '꽃을 들고 미소를 띠다'. 즉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한다.
삼층석탑(통일신라)
'삼층석탑'은 이중 기단의 '신라식' 석탑으로, 탑신부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부'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 악귀를 물리쳐 질병과 액운을 막는 도깨비 얼굴이 부조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남근석(조선 중기)
'남성숭배'는 남성의 생식기를 인위적으로 조각하여 세우거나 비슷한 형태의 자연 암석을 대상으로 하여 '임신'이나 '자손만복·풍년·풍어' 등을 기원하고, '질병이나 악신'으로 부터 자신과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 전통 신앙이다.
칠성신(조선 후기)
불교와 도교, 민간의 신앙이 혼합된 '칠성신'이다. 복두를 쓴 '문인석'의 모습으로 자손들의 '무병장수'와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문인석(조선시대)
'문인석'은 무덤 앞에 배치하는 석물의 하나로 장군석, 석수와 함께 '능묘를 수호'하는 조각이다. 공복 차림의 '문관'의 형상으로 머리에는 복두나 금량관을 쓰고 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다. 이러한 풍습은 '신라시대'(BC 57~AD 935)에 당나라의 영향으로 능묘제도가 정비된 이후 '조선시대'(AD 1392~1910)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