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 몇밤을 더 자야 집에 가요?"
"열밤만 더 주무시면 돼요."
경기도 용인시 인보마을 구내 행복한 집. 올해 98살 이순금(보나) 할머니는 변은자(데레사) 수녀 대답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다.
이 할머니는 "얼마 전에도 열밤이라고 하더니 또 열밤이야. 여기는 아무리 좋아도 우리 집만 못해"라고 말한다. 한 할머니는 변 수녀 옷소매를 붙잡고 "대체 공사가 월메나 남었데유?"라며 보챈다.
평균 연령이 88살인 할머니 18명은 이곳 물리치료실에서 석달째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어하는 집은 성남시 수진동에 있는 무료양로원 인보의 집(인보성체수도회 운영)이다.
인보의 집은 석달째 수리공사 중.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위해 승강기를 설치하고, 옥상에 42평 공간을 증측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은 지 36년된 낡은 3층 건물이라 손을 대면 댈수록 수리할 곳이 생 겨 공사가 좀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곳을 뜯으니 고구마 줄기 딸려나오듯 손댈 곳이 늘어나 당초 예상한 공사비로는 어림도 없는 리모델링 공사가 됐다. 이미 공사비는 바닥나서 외상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옥상 증측에 기반시설부담금 1300만원까지 부과된 상태다. 변 수녀는 건설교통부까지 찾아가 "무료양로원 증측공사에 웬 기반시설부담금이냐"고 항의했지만 법규상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듣고 돌아왔다. 변 수녀는 부담금 고지서를 들고 한숨만 쉬고 있다.
수녀들의 꿈은 소박하다. 소싯적부터 손 마디마디가 뒤틀리고 옹이가 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살았는데도 말년에 노구(老軀)를 기댈 곳이 없는 할머니들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 것 뿐이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이순금 할머니는 독립심이 강하다. 식사를 방으로 갖다 드리려고 해도 굳이 불편한 다리를 끌고 2층 숙소와 1층 식당을 오르내린다. 조순형(82) 할머니는 허리가 많이 굽었다. 평생 쪼그려 앉아 쑥을 뜯어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들에게 승강기는 발이나 다름없다.
변 수녀는 "할머니들을 성탄절 전에 모셔오려고 했는데 기약없이 늦어지고 있다"며 "다음 주에 할머니들에게 가서 또 '열밤만 주무시면 된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변 수녀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손목 인대가 파열돼 수술까지 받았다.
▨ 인보의 집 원장 변은자 수녀
낡은 건물에 손을 대니까 끝이 없어요. 승강기만 하더라도 기계장비 값보다 건물에 공간을 내서 설치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요. 어르신들 방 2개당 화장실을 1개씩 넣고 있어요. 창고로 쓰던 지하에는 목욕실, 옥상에는 소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성남 수진동은 1970년대 초반, 서울 도심개발 바람에 밀려 청계천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정착한 곳입니다. 선배 수녀님들은 독일에서 원조를 받아 이곳에 성모조산소를 짓고 새 생명을 받아냈습니다. 성모조산소를 1989년 양로원으로 전환한 것이지요.
할머니들 살아오신 얘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소설에 나오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들 같아요. 저희는 평생 고생만 하시며 사신 어르신들을 편안하게 모시다가 하느님께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하늘나라 정거장'을 수리하는 저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작은 도움이라도 고개숙여 감사히 받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