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 10 / yeomah
우리는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기호식품 중 커피만큼 대중적인 게 또 있을까. 믹스커피로 시작해 커피전문점의 커피를 지나 이제는 집집마다 커피머신을 들여 놓는 시점에 이르렀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그 중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방법은 단연 '캡슐커피'. 쉽고 빠르게, 거기다 맛까지 좋은 커피를 만나는 방법이니까.
생긴 것도 깜찍한 각종 캡슐에는 곱게 간 커피 원두가 들어있어 이 캡슐을 머신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맛 좋은 커피가 내려진다. 원두는 일단 뜯고 나면 금방 상하기 마련인데 캡슐의 경우 진공 포장 되어 있어 유통기한도 긴 편이고 보관도 편하다.
현대인에게 꼭 맞는 머신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캡슐커피머신도 수없이 다양해졌다. 커피전문점들도 득달같이 캡슐커피머신을 만들어냈고, 해외에서 이미 유명하던 애들도 우리나라로 거진 다 들어왔다. 남은 건 현명하게 선택하는 일. 당신의 선택을 돕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섰다. 고만고만해서 제일 고민이 되는 3가지의 머신을 가지고 비교 테스트를 실시했다.
우선 테스트에 참가할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 3종 캡슐 커피 머신의 스펙
네스프레소 픽시
전원 버튼을 눌러 기계를 켜고 예열이 끝나면 손잡이를 올려 캡슐을 넣는다. 손잡이를 내리면 캡슐이 장착된다. 추출구 아래 컵을 놓고 버튼을 누른다. 물 양은 에스프레소와 룽고 두 가지로 조절 가능하다. 캡슐에 따라 맞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 추출이 끝나고 손잡이를 올리면 내부의 컨테이너로 캡슐이 떨어진다.
써보니…
손잡이를 올리면 자동으로 내부 컨테이너에 '통'하고 떨어져 캡슐을 매번 버리지 않아도 된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물 양 조절이 에스프레소와 룽고 밖에 안 된다는 것.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을 땐 버튼을 몇 번 더 누르거나 정수기로 옮겨가야 한다.
돌체구스토 지니오
전원 버튼을 눌러 예열을 하고 손잡이를 올린다. 추출구 쪽에 캡슐 홀더를 빼 캡슐을 넣고 다시 끼워 손잡이를 내리면 장착 완료. 버튼 가운데 있는 휠로 원하는만큼 물 양을 조절하고(각 캡슐마다 정해진 물 양이 표시되어 있다) 버튼을 누르면 커피가 추출된다. 물 양은 6단계로 조절된다. 녹색 불이 들어오면 캡슐을 꺼내 버리면 끝.
써보니…
휠을 굴리는 것으로 물 양을 조절하게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다만 6칸을 모두 채워 커피를 내리면 두 잔만에 물통이 텅텅 빈다.
타시모 T20
전원을 켜고 컵을 올려 놓은 뒤 뚜껑을 열어 캡슐을 뒤집어서 홀더에 넣는다. 캡슐을 넣을 땐 손잡이 방향을 잘 맞춰 넣어야 물 양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찰칵 소리를 내고 닫은 후 시작 버튼을 눌러 추출을 시작한다. 추출이 거의 다 끝나면 +모양이 그려진 커피잔에 녹색불이 들어오는데 물을 더 넣고 싶으면 이 불이 들어왔을 때 버튼을 누르면 된다. 버튼을 뗄 때까지 물이 졸졸 나온다. 추출 후엔 뚜껑을 열어 캡슐을 꺼낸다.
써보니…
바코드를 읽어 자동으로 물 양이 조절되니 편리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물을 더 추가할 순 있어도 더 적게 할 수는 없다. 방법이 있다면 추출 중간에 멈추게 하는 것 뿐. 예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때그때 물을 데우는 플로우 히팅 방식을 택해서인지 커피를 추출할 때 소음과 진동이 있다. 진동 때문인지 추출구에 컵을 가까이 대지 않으면 여기저기 튀기도 한다.
한 차례 훑어봤으니 이제 디자인부터 찬찬히 뜯어 볼 차례다. 커피 머신은 의외로 인테리어 소품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어서 주방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줄테니. 디자인만 가지고 한 평가에서는 네스프레소가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
네스프레소 픽시
가장 모던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이다. 게다가 다들 보급형 느낌이 물씬 나는 플라스틱 본체를 가지고 있는 반면, 픽시는 옆구리만큼은 은은한 빛을 내는 알루미늄 패널로 되어 있어 견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전원을 켰을 땐 더 아름답다. 내부에서 하얀 조명이 비쳐 나와 살아있음을 알린다. 사이즈도 적당하다. 세로로 길쭉해 좁은 공간에도 쏙 들어간다.
타시모 T20
사실 가장 무난하고 깔끔하게 생긴 건 이 녀석이다. 덩치가 좀 큰 듯 하지만 생김새 자체가 컴팩트해서 참을 만 하다. 하이얀 머그잔을 올려 놓으면 순수 그 자체다. 특히 사진발이 기가 막히다. 커피가 추출되면서 거뭇거뭇한 커피방울이 여기저기 튀면 가슴은 좀 쓰라릴테지만. 머신 자체는 예쁜데 캡슐의 디자인은 아무리봐도 아쉽다.
돌체구스토 지니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펭귄을 닮은 모습이 귀엽다. 너무 귀여움이 지나쳐 보이기도 하지만 포인트가 없는 주방에서라면 충분히 분위기를 업그레이드 시켜줄 만한 녀석이다. 특히 물 용량을 조절하는 스마트 휠 부분은 보기에도 좋고 쓰기도 아주 편하다.
사실 커피의 맛은 캡슐이 좌우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커피머신을 살 때 망설이는 이유도 기계 값보다는 앞으로 쓸 캡슐 값이 더 크기 때문이다. 테스트할 캡슐은 커피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에스프레소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아메리카노로 결정했다.
네스프레소 (5g, 10개 8250원)
공식 홈페이지엔 18가지 종류라지만 조금만 더 공을 들여 뒤져보면 네스프레소의 캡슐 종류는 20가지가 훌쩍 넘는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이 대부분 에스프레소, 룽고라는 것. 커피 맛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네스프레소를 선택하는 게 좋겠다.
돌체구스토 (6g, 16개 9900원)
음료의 종류 자체가 다양해 인기가 좋은 돌체구스토다. 커피만 해도 카푸치노, 라떼 마끼아또, 초코치노 등으로 다양한데 여기에 기타 음료까지 더했다. 네스퀵, 네스티, 차이티 라떼 등이 그것. 집에 어린아이가 있거나 달달한 음료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타시모 (7g, 16개 9980원)
타시모는 런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다른 두 모델에 비해 캡슐의 종류가 빈약하다. 그래도 한국 커피를 대표하는 맥심부터 프랑스, 독일, 스웨덴 브랜드들의 캡슐이 하나씩 있다. 캡슐의 브랜드들이 탄탄해(맥심을 빼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믿을 만 한 편이다. 그런데 혹자에 따르면 커피보다 코코아가 맛있다는 소문이….
자, 이제 대망의 맛을 비교해 볼 시간이다. 테스트는 당연히 블라인드다. 맛이야 선호도에 따라 다르지만 좋은 커피, 나쁜 커피를 따져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두 가지 다 따져봤다. 전문가에게는 에스프레소로 '좋은(Good)' 커피를 꼽게 하고, 일반인에게는 아메리카노로 '좋아하는(Like)' 커피를 꼽게 했다.
* 테스트에 쓰인 캡슐
네스프레소(네스프레소의 경우, 판매량이 높은 두 가지 캡슐로 정했다)
에스프레소 - 로마 | 아메리카노 - 리반토
돌체구스토
에스프레소 - 에스프레소 | 아메리카노 - 하우스블렌드 아메리카노
타시모
에스프레소 - 까르떼누아 에스프레소 인텐스 | 아메리카노 - 맥심 그랑누아 아메리카노
[전문가 테스트는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커피문화원의 도움을 받았다. 커피문화원은 바리스타 과정을 교육하는 곳으로 직접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바리스타 5인
카페에서 유니폼을 입고 커피를 내리던 바리스타 5명을 앉혀 놓고 에스프레소 3잔을 내놨다. 하루에도 10잔이 넘도록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그들에게 이쯤이야 껌이다.
한 눈에 봐도 타시모의 점수가 현저하게 낮다. 돌체와 네스프레소는 순위는 같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는 네스프레소가 조금 더 좋은 편이었다. 돌체는 향도 맛도 강하면서 부드럽다고 평가 받아 공동 1위를 차지한 반면 타시모는 원두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커피문화원 강사 6인
바리스타들을 양성하는, 그러니까 바리스타들에겐 스승쯤 되는 커피문화원의 강사 6인이 모였다. 이들은 바리스타보다 빠르고 주저 없이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테스트에선 돌체구스토가 절대 1위였다. 특히 아로마 부분은 압도적이다. 식었을 때도 맛이 잘 유지되는 점도 1위로 뽑히는 데 한 몫 했다. 1차 테스트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보인 네스프레소는 가장 대중적인 맛이지만 바디감이 가볍고 맛의 지속력이 떨어진다고 평했다. 타시모는 이번에도 역시 신선하지 않다는 평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 맛은 거의 없고 쓴 맛만 너무 강해져 3위에 그쳤다.
일반인 14인
사무실에 앉아 하루에 두세잔은 기본으로 커피를 마시고, 미팅이 있을 때도 커피를 마시고, 저녁 약속 후 또 커피를 마시는 일반 회사원들도 테스트에 참가했다. 이제는 진한 커피에도 어느 정도 이력이 나있는 그들이다.
먼저 실시한 전문가 테스트에서 분명히 전문가들이 말했다. 본인들의 테스트 결과와 일반인들의 테스트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우리나라 일반인들의 입맛이 많이 업그레이드 됐나 보다. 결과가 전문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에스프레소는 너무 진할 것 같아 아메리카노로 테스트를 진행했더니 대부분 밍밍하다는 반응이었다. 어쨌든 아메리카노 역시 돌체구스토가 1위, 근소한 차이로 네스프레소가 2위, 조금은 큰 차이로 타시모가 3위를 차지했다. 타시모에 대해선 모두 한 목소리로 '싱겁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보다 앞서 기어박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무턱대고 3가지 커피머신 중 맘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게끔 했었다. 디자인, 맛, 브랜드 이미지, 캡슐 종류를 떠나 그저 선호도를 조사해본 것. 결과는 네스프레소의 압도적 승리였다. 기어박스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네스프레소의 승리를 점쳐놓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막상 테스트 결과를 까놓고 보니 돌체구스토가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 번의 테스트에서 모두 1등을 차지했으니 말 다 했다. 세련미가 넘치는 생김새, 조지클루니가 등장하는 광고, 커피로만 20여 가지 맛을 내는 전문성 등으로 단단히 다져진 네스프레소에 비해, 귀여움만 강조하는 생김새, 잡다한 캡슐의 종류로 인해 모호해진 정체성, 보급형 이미지 등을 짊어지고 온 돌체구스토가 평가절하되고 있던 면이 없지는 않았던 것. 심지어 백화점을 가도 네스프레소는 8층의 가전 매장에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반면, 돌체구스토는 지하 식품 코너 한 켠에 서 있는 부스에서 판매되고 있었으니까.
그런가 하면 아예 인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타시모는 기대감도 적었다. 이나영을 모델로 광고도 찍었다는데 음? 그것은 어디를 가면 볼 수 있나요?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에 출고돼 있다는데 관심을 갖고 찾지 않는 이상 눈길을 끌기가 영 힘들었다. 테스트를 통해 대반전극을 보여주길 바랬지만 이미 진한 커피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입맛에 타시모는 뭔가 아쉬운 맛에 그쳤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이번 벤치마크를 통해서 각 머신마다 적임자가 따로 있다고 결론내렸다. 네스프레소는 신혼 부부나 싱글족, 돌체구스토는 어린 아이가 있는 단란한 가족, 타시모는 커피는 좋아하지만 너무 진한 커피는 부담스러워 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딱이다.
마지막으로 11명의 커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각각의 머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료를 추천한다. 네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 돌체구스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타시모는 라떼로 즐기면 맛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