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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는 심어 놓고
“자꾸 돌아봔 뭘 해, 어서 바람을 졌을 때 휭하니 걸어야지…….”
하면서 아내를 돌아보는 그도 말소리는 천연스러우나 눈에는 눈물이 다시 핑그르 돌았다. 이 고갯마루만 넘어서면 저 동리는 다시 보려야 안 보이려니 생각할 때 발도 천근이나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 고개, 집에서 오 리밖에 안 되는 고개, 나무를 해 지고 이 고개턱을 넘어설 때마다 제일 먼저 눈에 띄곤 하던 저 우리집, 집에서 연기가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허리띠를 조르고 다시 나뭇짐을 지고 일어서곤 하던 이 고개, 이 고개에선 넘어가는 햇볕에 우리집 울타리에 빨아 넌 아내의 치마까지 빤히 보이곤 했다. 이젠 이 고개에서 저 집, 저 노랗게 갓 깐 병아리처럼 새로 영을 인 저 집을 바라보는 것도 마지막이로구나!
그는 고개 마루턱에 올라서더니 질빵을 치키며, 다시 한번 돌아서서 동네를 바라보았다.
아무 델 가도 저런 동네는 없을 것이다. 읍엘 갔다 와도 성황당 턱만 내려서면 바람 한 점 없이 아늑하고, 빨래하기 좋고 먹어도 좋은 앞 개우물이며, 날이 추우면 뒷산에 올라 솔잎만 긁어도 며칠씩은 염려없이 때더니…… 이젠 모두 남의 동네 이야기로구나!
“어서 갑시다.”
하면서 이번에는 뒤에 떨어졌던 아내가 눈물 콧물을 풀어 던지며 앞을 섰다.
그들은 고개를 넘어서선 보잘것없이 달아났다. 사내는 이불보, 옷꾸러미, 솥부둥갱이, 바가지쪽 해서 한 짐 꾸역꾸역 걸머지고, 여편네는 어린애를 머리도 안 보이게 이불에 꿍쳐서 업은데다 무슨 기름병 같은 것을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도랑이면 건너뛰고 굽은 길이면 논틀밭틀로 질러가면서 귀에서 바람이 씽씽 나게 달아났다.
장날이 아니라 길에는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이따금 발밑에서 모초리가 포드득 하고 날고 밭고랑에서 꿩이 놀라서 꺽꺽거리며 산으로 달아나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길이나 잘못 들면 어째…….”
“밤낮 나무 다니던 데를 모를까…….”
조그만 갈랫길을 지날 때 이런 말을 주고받은 것뿐. 다시는 입이 붙은 듯 묵묵히 걸어 그들은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서울 가는 큰길에 들어섰다.
큰길에는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다. 전봇줄이 앵앵 울었다. 동지가 내일인가 모렌가 하는 때라 얼음같이 날카로욱 바람결에 그들의 옷깃은 다시금 떨리었다.
바람이 차서도 떨리었거니와 그보다도 길고 어마어마하게 넓은 길, 그리고 눈이 모자라게 아득하니 깔려 있는 긴 길, 그 길은 그들에게 눈에도 설거니와 발에도, 마음에도 선 길이었다. 논틀과 밭둑으로 올 때에는 그래도 그런 줄은 몰랐는데 척 신작로에 올라서니 그젠 정말 낯선 데로 가는 것 같고 허턱 살길을 찾아 떠나는 불안스러운 걱정이 와짝 치밀었던 것이다. 그래서 앵앵 하는 전봇줄 소리도 멧새나 꿩의 소리보다는 엄청나게 무서웠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어도 사내나 아내나 다 같이 그랬다.
그들은 그 길을 그저 십 리, 이십 리 걸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가 지날 때는 물론, 자전차만 때르릉 하고 와도 허둥거리고 한데 모여 길 아래로 내려서면서 서울을 향하고 타박타박 걸을 뿐이었다.
그들은 세 식구였다. 저희 내외, 방서방과 김씨와 김씨의 등에 업혀 가는 두 돌 되는 딸애 정순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방서방의 아버지 한 분까지 네 식구로서 그가 나서 서른두 해 동안 살아온, 이번에 떠나는 그 동리에서 그리운 게 없이 살았었다. 남의 땅이나마 몇 대째 눌러 부쳐 오던 김진사네 땅은 내 땅이나 다름없이 알고 마음놓고 부쳐 먹었다. 김진사 당내에는 온 동리가 텃세 한푼도 물지 않고 지냈으며 김진사가 돌아간 후에도 다른 지방에 대면 그리 심한 지주는 아니었다. 김진사의 아들 김의관도 돌아간 아버지의 덕성을 본받아 작인네가 혼상간에 큰일을 치르는 해면 으레 타작에서 두섬 석섬씩은 깎아 주었다. 이렇게 착한 김의관이 무엇에 써버리느라고 그 좋은 땅들을 잡혀 버렸는지, 작인들의 무딘 눈치로는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더러 읍엣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에 무슨 일본 사람과 금광을 했느니 회사를 했느니 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있고, 또 아닌게아니라 한동안 일본 사람과 양복쟁이 몇이 김의관네 집을 드나들어 김의관네 큰 개 두 마리가 늘 컹컹거리고 짖던 것은 지금도 어저께 같은 일이었다.
아무튼 김의관네가 안성인가 어디로 떠나가고, 지주가 일본 사람의 회사로 갈린 다음부터는 제 땅마지기나 따로 가진 사람 전에는 배겨나기가 어려웠다. 텃세가 몇 갑절이나 올라가고 논에는 금비를 써라 하고, 그것을 대어주고는 가을에 비싼 이자를 쳐서 벼는 헐값으로 따져 가고 무슨 세납 무슨 요금 하고 이름도 모르던 것을 다 물리어 나중에 따지고 보면 농사 진 품값은커녕 도리어 빚을 지게 되었다. 그들이 지는 빚은 달리 도리가 없었다. 소가 있으면 소를 팔고 집이 있으면 집을 팔아 갚는 것밖에. 그래서 한 집 떠나고 두 집 떠나고 하는 것이 삼 년 안에 오륙 호가 떠난 것이었다.
군청에서는 이것을 매우 걱정하였다. 전에는 모범촌으로 치던 동리가 폐동이 될 징조를 보이는 것은 군으로서 마땅히 대책을 세워야 될 일이었다. 그래서 지난봄에는 군으로부터 이 동리에 사쿠라나무 이백여 주가 나왔다. 집집마다 두 나무씩 나눠 주고 길에도 심고 언덕에도 심어 주었다. 그래서 그 사쿠라나무들이 꽃이 구름처럼 피면 무지한 이 동리 사람들이라도 자기 동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져서 함부로 타관으로 떠나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쿠라나무들은 몇 나무 죽지 않고 모두 잘 살아났다. 방서방네가 심은 것도 앞마당엣것 뒷동산엣것 모두 싱싱하게 잘 자랐다. 군에서 나와 보고 내년이면 모두 꽃이 피리라 했다.
그러나 떠날 사람은 자꾸 떠나고야 말았다.
방서방네도 허턱 타관으로 떠나기는 처음부터 싫었다. 동리를 사랑하는 마음,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나 모두 사쿠라를 심어 주는 그네들보다는 몇 배 더 간절한 뻣속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사쿠라나무를 심었을 때도 혹시 죽는 나무나 있을까 하여 조석으로 들여다보면서 애를 쓴 사람들이요, 그것들이 가지에 윤이 나고 싹이 트는 것을 볼 때는 자연 속에 묻혀 사는 그들로서도 그때처럼 자연의 신비, 봄의 희열을 느껴 본 적은 일찍 없었던 것이다.
“내년이면 꽃이 핀다지?”
“글쎄, 꽃이 어떤지 몰라?”
“아무튼 이눔의 꽃이 볼 만은 하다는데.”
“글쎄 그렇대…….”
그러나 떠날 사람은 자꾸 떠나고야 말았다. 올 겨울에 들어서도 방서방네가 두 집째다.
그들은 사흘 만에야 부르튼 다리를 절룩거리며 희끗희끗 나부끼는 눈밭 속으로 저녁 연기에 쌓인 서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날이 아부 어두워서야 서울 문안에 들어섰다.
서울에는 그들을 반가이 맞아 주는 사람이 없지도 않았다.
“어디서 오십니까?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우리 여관으로 가십시다.”
그러나,
“돈이 있나요, 어디…….”
하면 그 친절하던 사람들은 벌에 쏘인 것처럼 달아나곤 했다.
돈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이 몇 원은 되었다. 그러나 그 돈이 편안히 여관에 들어 밥을 사먹을 돈은 아니었다.
고달픈 다리를 끌고 교통순사들에게 핀잔을 맞으며 정처없이 거리에서 거리로 헤매던 그들은 밤이 훨씬 늦어서야 한곳에 짐을 벗어 놓았다. 아무리 찾아다니어도 그들을 위해서 눈발을 가려 주는 데는 무슨 다리인지 이름은 몰라도 이 다리 밑밖에는 없었다.
“그년을 젖을 좀 물리구려.”
“그까짓 빈 젖을 물려선 뭘 하오.”
아이가 하 우니까 지나던 사람들이 다리 아래를 기웃거려 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두움 속에서 짐을 끄르고 굳은 범벅과 삶은 달걀을 물도 없이 먹었다. 그리고 그 저리고 쑤시는 다리 오금을 한번 펴볼 데도 없이 앉아서, 정 못 견디겠으면 일어서서 어정거리며 긴 밤을 밝히었다.
이튿날은 그래도 거기를 한데보다는 낫답시고, 거적을 사다 두르고 냄비를 걸고 쌀을 사들이고 물을 길어들이고 나무도 사들였다. 그리고 세 식구가 우선 하루를 푹 쉬었다.
눈발은 이날도 멎지 않았다. 밤이 되어서는 함박송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서방은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고 이 눈이 그치고는 무서운 추위가 오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또 싸리비를 한 자루 가져왔더면 하고도 생각했다.
그는 새벽같이 일어났다. 발등이 묻히는 눈 위로 한참 찾아다녀서 다람쥐 꽁지만한 싸리비 하나를, 그것도 오 전이나 주고 사기는 했다. 그리고 큰 밑천이나 잡은 듯이 집집마다 다니며 아직 열지도 않은 대문을 두드렸다.
“댁에 눈 쳐드릴까요?”
“우리 칠 사람 있소.”
“댁에 눈 안 치시렵니까?”
“어련히 칠까 봐 걱정이오.”
방서방은 어이가 없어,
“허! 마당도 없는 녀석이 괜히 비만 샀군!”
하고 다리 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는 직업소개소도 가보았다. 행랑도 구해 보았다. 지게를 지고 삯짐도 져보려고 싸다녀 보았으나 지게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한 학생이 고리짝을 지고 정거장까지 가자고 했지만, 막상 닥뜨리고 보니 나중에 저 혼자 다리 밑으로 찾아올 수가 있을까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거기 갔다가 제가 여기까지 혼자 찾어올까요!”
하고 어름거렸더니 그 학생은 무어라고 일본말로 핀잔을 주며 가버린 것이었다.
하루는 다리 밑으로 순사가 찾아왔다. 거기로 호구조사를 온 것은 아니었다.
“다리 밑에서 불을 때면 어떻게 할 테야, 응. 날마다 이 밑에서 연기가 났어…… 다시 불을 때다가는 이 밑에서 자지도 못하게 할 터이니 그리 알어…….”
정말 그날 저녁부터는 연기가 나지 않았다. 끓일 것만 있으면 다리 밖에 나가서라도 못 끓일 바 아니었지만 그날은 아침부터 양식이 떨어진 것이다.
“어떡하우?”
아내는 맥이 풀려 울 기운도 없었다. 어린것만이 빈 젖을 물고 두어 번 빨아 보다가 울곤 울곤 하였다. 방서방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앉았다가 이따금,
“정칠 놈의 세상!”
하고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어린것은 아범의 품에서 잘 때다. 초저녁엔 어멈이 품속에 넣고 자다가 오줌을 싸면 그 다음엔 아범이 새 품을 헤치고 안고 자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궁리에 묻혀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범이 새벽녘에야 잠이 들어 어린것과 함께 쿨쿨 잘 때였다.
김씨는 남편이 한없이 불쌍해 보였다. 술 한잔 허투루 먹는 법 없고 담배도 일하는 날이나 일꾼들을 주려고만 살 줄 알던 남편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나 생각할 때 세상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굶고 앉았더라도 그 집만 팔지 말고 그냥 두었던들 하고, 고향에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김씨는 생각다 못해 바가지를 집어 든 것이다. 고향을 떠날 때 이웃집에서,
“서울 가면 이런 것도 산다는데.”
하고 짐에 달아 주던, 잘 굳고 커다란 새 바가지였다.
그는 서울 와서 다리 밑을 처음 나선 것이다. 그리고 바가지를 들고 나서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하였다. 꼭 일주야를 굶었고 어린것에게 시달린 그의 눈엔 다 밝은 하늘에서 뻔쩍뻔쩍하는 별이 보였다. 그러나 눈을 가다듬으면서 그는 부잣집을 찾았다. 보매 모두 부잣집 같았으나 모두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대문을 연 집, 그는 이것을 찾고 헤매기에 그만 뒤를 돌아다보지 못하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앞으로만 나간 것이었다. 다행히 문을 연 집이 있었고, 그런 집 중에도 다 주는 것이 아니었지만 열 집에 한 집으로 식은밥, 더운 밥 해서 한 바가지를 얻었을 때는 돌아올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길로 나가 보아도 딴 거리, 저 길로 나가 보아도 딴 세상, 어디로 가야 그 개천 그 다리가 나올는지 알 재주가 없었다. 기가 막히었다. 물어 볼 행인은 많았으나, 개천 이름이나 다리 이름을 모르고는 헛일이었다. 해가 높아 갈수록 길에는 사람이 들끓었고 그럴수록 김씨는 마음과 다리가 더욱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한 노파가 친절한 손길로 김씨의 등을 두드렸다.
“어딜 찾소?”
김씨는 울음부터 왈칵 나왔다.
“염려할 것 없소. 내 서울 장안엔 모르는 데가 없소, 내 찾아 주지…….”
그 친절한 노파는 김씨를 데리고 곧 그 앞에 있는 제 집으로 들어가 뜨끈한 승늉에 조반까지 먹으라 했다.
“염려 말고 좀 자시우. 그새 내 부엌을 좀 치고 같이 나갑시다.”
김씨는 서울도 사람 사는 데라 인정이 있구나 하고, 그 노파만 하늘같이 믿고 감격한 눈물을 밥상에 떨구며 사양하지 않고 밥술을 들었다. 그러나 굶은 남편과 어린것을 두고 제 목에만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숭늉만 두어 모금 마시고 이내 술을 놓고 노파를 따라 나섰다.
그러나 친절한 노파는 김씨를 당치 않은 곳으로만 끌고 다녔다. 진고개로 백화점으로 개천이라도 당치 않은 개천으로만 한나절을 끌고 다니고는,
“오늘은 다리가 아프니 내일 찾읍시다.”
하였다. 김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그 친절한 노파의 힘을 버리고 혼자 나설 자신은 없었다. 밤을 꼬박 앉아 새우고 은근히 재촉을 하여 이튿날 아침에도 또 일찌거니 나섰으나 노파는 그저 당치 않은 데로만 끌고 다녔다.
노파는 애초부터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김씨의 멀끔한 얼굴과 살의 젊음을 그는 삵이 살진 암탉을 본 격으로 보았던 것이다.
‘어떻게 돈냥이나 만들어 써볼 거리가 되면…….’
이것이 그 노파가 김씨를 발견하자 세운 뜻이었다.
김씨는 다시 다리 밑으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 방서방은 눈에서 불이 났다.
“쥑일 년이다! 이 어린것을 생각해선들 달아나다니! 고약한 년! 찢어 쥑일 년.”
하고 이를 갈았다.
방서방은 이틀이나 굶은 아이를 보다못해 안고 나서서, 매운 것 짠 것 할 것 없이 얻는 대로 주워 먹였다. 날은 갑자기 추워졌다. 어린애는 감기가 들고 설사까지 났다.
밤새도록 어두움 속에서 오줌똥을 받은 이불과 아범의 저고리섶, 바짓자락은 얼어서 왈가닥거리고, 그 속에서도 어린애 몸은 들여다보는 눈이 뜨겁게 펄펄 달았다.
“어찌하나! 하느님, 이렇게 무심 합니까?”
하고 중얼거려도 보았으나 새벽 찬바람만 윙 하고 뺨을 갈길 뿐이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이를 꾸려 안고 병원을 물어서 찾아갔다.
“이애 좀 살려 주십시오.”
“선생님이 아직 안 나오셨소. 그런데 왜 이렇게 되도록 두었소. 진작 데리고 오지?”
“돈이 있어야죠니까……,”
“지금은 있소?”
“없습니다. 그저 살려만 주시면 그거야 제 벌어서 갚지요. 그걸 안 갚겠습니 까!”
“다른 큰 병원에 가보시우…….”
방서방은 이렇게 병원집 문간으로만 한나절을 돌아다니다가 그냥 다리 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방서방은 또 배가 고팠다. 그러나 앓는 것을 혼자 두고 단 한 걸음이 나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저녁때가 되어서는 그냥 밤을 새울 수는 없어 보지 않으리라는 듯이, 눈을 딱 감고 일어서 나왔던 것이다.
방서방이 얼마 만에 찬밥 몇 술을 얻어먹코 부랴부랴 돌아왔을 때는 날이 아주 어두웠다. 다리 밑은 캄캄한데 한참 들여다보니 아이는 자리에서 나와 언 맨땅에 목을 늘어뜨리고 흐득흐득 느끼었다. 끌어안고 다리 밖으로 나가 보니 경련이 일어나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었다.
“죽을 테면 진작 죽어라! 고약한 년! 네년이 이걸 버리고 가 얼마나 잘 되겠니…….”
방서방은 몇 번이나,
“어서 죽어라!”
하고 아이를 밀어 던지었다가도 얼른 다시 끌어당겨 들여다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숨소리는 자꾸 가빠만 갔다.
그러나 야속한 것은 잠, 어느 때쯤 되었을까 깜박 잠이 들었다가 놀라 깨었을 제는 그 동안이 잠시 같았으나 주위에는 큰 변화가 생기었다. 날이 환하게 새고 아이에게서는 그 가쁘게 일어나던 숨소리가 똑 그쳐 있었다. 겨우 겨드랑 밑에만 미온이 남았을 뿐, 그 불덩어리 같던 얼굴과 손발은 어느 틈에 언 생선처럼 싸늘하였다.
봄이 왔다. 그렇게 방서방을 춥게 굴던 겨울은 다 지나가고 그 대신 방서방을 슬프게는 더 구는 봄이 왔다. 진달래와 개나리 꽃가지들은 전차마다 자동차마다 젊은 새악시들처럼 오락가락하고, 남산과 창경원엔 사쿠라꽂이 구름처럼 핀 때였다. 부딘 힘줄로만 얼기설기한 방서방의 가슴에도 그 고향, 그 딸, 그 아내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슬픈 시인이 되게 하는 때였다.
하루 아침, 그날따라 재수는 있어 식전 바람에 일본 사람의 짐을 지고 남산정 막바지까지 가서 어렵지 않게 오십 전 한 닢이 들어왔다. 부리나케 술집을 찾아 내려오느라니 일본집 뜰 안마다 가지가 휘어지게 열린 사쿠라 꽂송이, 그는 그림을 구경하듯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불현듯 고향 생각이 난 것이었다.
‘우리가 심은 사쿠라나무도 저렇게 피었으려니…… 동네가 온통 꽃 투성이려니…….’
그때 마침 일본 여자 하나가 꽃그늘에서 거닐다가 방서방과 눈이 마주쳤다. 방서방은 무슨 죄나 지은 듯이 움찔하고 돌아섰다. 꽃결같이 빛나는 그 젊은 여자의 얼굴! 방서방은 찌르르 하고 가슴을 진동시키는 무엇을 느끼며 내려왔다.
우선 단골집으로 가서 얼근한 술국에 곱빼기로 두어 잔 들이켰다. 그리고 늙수그레한 주모와 몇 마디 농담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다 나서니, 세상은 슬프다면 온통 슬픈 것도 같고 즐겁다면 온통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술만 깨면 역시 세상은 견딜 수 없이 슬픈 세상이었다.
“정칠 놈의 세상 같으니!”
하고 아무 데나 주저앉아 다리를 뻗고 울고 싶었다.
(『달밤』, 한성도서,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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