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냉장고야, 미안해!” >
- 文霞 鄭永仁 -
집사람은 가끔 이런 말을 잘한다.
“냉장고야, 미안해!”
집사람이 냉장고 문을 혹 가다 열어 놓으면
냉장고가 어서 닫아 달라고 “삐삐!”를
내는 소리를 듣고 하는 말이다.
하여간에 집사람은 심성이 착한가 보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을 글썽이기를 잘하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보지 않거나 아예 꺼 버린다.
이런 걸 보면 맹자의 성선설(性善說)도
맞기는 맞는가 보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수챗구멍에다 뜨거운
개숫물을 버릴 때면 “지렁아, 뜨거운 물 나간다.
눈 감아라.”고 하셨다.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면 집 안팎에다
지신들에게 고시레를 한 후 먹었다.
뒤란 감나무에는 언제나 까치밥을 남겨 놓으셨다.
고시레, 부스러기는 새나 쥐들
같은 미물의 먹이가 되었고,
까치밥은 추운 겨우내 새들의 간식거리가 되었다.
옛날 나무꾼들은 나무를 베기 전에 “도끼 들어가요‘하고
고함을 질러 나무에게 아렸다고 한다.
또 옛날 할머니들은 송편을 찔 솔잎을 딸 때 어둑할 때
소나무가 잠든 틈에 땄다고 한다.
소나무가 덜 아프고 소나무에게 덜 미안하다는 뜻이다.
또 큰 소나무를 옮겨 심고서는 막걸리를 두어 말
부어 주어 나무의 아픔을 마취케 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부터 자연과 합일(合一)하는
생태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건축·정원·도자기 등은 자연 속에
스며든 예술의 경지를 지녔다.
누가 그랬다. 한국 도자기 중에 유난히 화병
구실을 하는 것이 적은 이유는
문을 모두가 꽃이요, 자연이기 때문이라고…….
|
나는 개인적으로 분재(盆栽)나 수석(壽石)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분재는 나무를 인위적으로 이리 비틀고 저리 자르고,
거기다가 굵은 철사를 칭칭 감기도 하니
어찌 보면 잔인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마치 중국인의 전족(纏足)처럼 말이다.
사람을 그렇게 한다고 생각을 해보면 끔찍하지 않을까.
수석도 그렇다. 개인의 경지라 다르겠지만 자연 속에서
풍화(風化)의 세월을 거쳐야 할 것들이
집 안 구석에 틀어 박혀 닦고 기름칠함을 당하니
오죽이나 답답할까.
물론 나와 같은 분재나 수석의 문외한(門外漢)이 알랴마는…….
예술의 관념이 다 다르니깐.
멀쩡한 나무에다 날마다 자기 등을 꼿꼿이 펴겠다고
두드리니 나무는 골병들기 십상이다.
나무에다 장식전구 휘황찬란하게 밝히니
나무는 불면증에 시달릴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강아지를 사랑한다고 별의별 염색으로
치장을 다하는 것도 일종의 학대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에서 사
랑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존재적 사랑과 소유적 사랑이다.
예를 들면 산에 가서 예쁜 꽃을 꺾어오거니
뿌리째 뽑아 자기 집에다 심으면 소유적 사랑이다.
나그네는 소유적 갈망을 물리치고 있는 그대로의
자체를 완상하면 존재론적 사랑이다.
야생화를 전문적으로 찍는 일부 사람들이
생생한 장면을 찍기 위해 광택제를
뿌리 등 별짓을 다한다고도 한다.
사실 인간의 기대 수명이 망백(望百)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야단인데,
나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나무는 수백 년을 산다. 그
래서 주목(朱木)은 살아서 천 년이요,
죽어서 천 년이라고 한다.
나무의 육신은 죽어서 천 년을 가지만,
인간의 육신은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변한다.
|
그래서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오래 된
나무에는 정령(精靈)이 깃든다고 믿었다.
나도 그렇게 믿는 축이다.
수백 년을, 천여 년을 산 나무가 그냥 살아갈 리 만무하다.
인디언들은 자기들이 싫어하는 나무는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갈 대마다 “너무 못 생겼다, 병신이다…
”라는 등 저주를 퍼붓는다고 한다.
그러면 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고 한다.
인간 지상주의, 인간 중심주의가 지나치면
세상을 멸망의 길뿐이 없다.
우리가 최고의 생산자인 식물을 홀대하면 최고의 소비자인
인간을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식물의 광합성처럼 무기물에서 유
기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날마다 두 팔을 벌려 기도하는
나무들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언어나 생각을 짐작도 못하기 때문이다.
비단은 오백년을 못 가지만 나무를 만든 종이는 천년을 간다.
지천년(紙千年) 견오백(絹五百)이라.
헤르만 헤세는 “나무는 성스러운 존재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은 진리를 안다.” 고 했다.
누가 그랬다. 인간이 만든 사자성어(四字成語) 중에 최고의
사자성어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한다.
나무에다 대못을 박고, 명패를 쇠철사를 묶어서 달고,
‘자연보호’라는 깃을 주렁주렁 달고….
이제는 수목장(樹木葬)이라고 죽어서도 나무를 못 살게 군다.
되도록 있는 그대로 두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