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나의 순교
기독교의 순교자는 많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Peter)를 비롯하여,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빌립, 도마, 마태 등 수없이 많다. 보통 사람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불교의 순교자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불교는 정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를 찬탄해 왔다. 2600여 년 전 인도 변방에서 시작된 불교가 한국에까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이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교사에 첫 등장하는 순교자는 부루나(Punna)존자다. 설법 제일로 명성이 높았던 부루나는 인도 서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수파라카 지역의 해상무역상 아들이었다. 아버지와 노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아무런 재산도 물려받지 못한 채 형제들에 의해 쫓겨났다. 하지만 상인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는 해상무역에 뛰어들었고 타고난 언변과 수완을 발휘해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이 무렵 그는 재가불자라는 이들로부터 부처님의 위대함을 전해 듣고는 그분을 찾아뵙기로 했다.
슈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도착한 부루나는 부처님의 설법을 직접 듣자 환희심이 솟았고 세상에 이런 가르침이 있나 싶었다. 곧바로 출가자의 길을 선택한 그는 부지런히 정진했고, 오래지 않아 제자들 중에서도 두드러졌다. 해상무역을 통해 익혔던 언변술이 빛을 발해 그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해 불교에 귀의하는 이들이 잇달았다.
10대 제자의 반열에 오른 부루나는 고향 수파라카로 돌아가 그곳에서 바른 법을 몰라 고통받는 이들에게 불법을 전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부루나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신의 뜻을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그곳 사람들의 심성이 사납고 흉포해 전법이 어려울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를 불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 이제 저는 멀리 서쪽의 수로나 국으로 가서 부처님의 정법을 전도하려 하오니 허락해 주소서”
“부루나여 백성들은 성격이 아주 사납고 모질고 거칠다 만일 그들이 너를 꾸짖고 조소하고 매도하여 모욕하면 어찌 하겠느냐?”
“부처님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저는 그때에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나를 주먹으로 치고 돌을 던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주먹으로 치고 돌을 던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부처님 저는 그때에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나를 칼로 해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칼로 해친다면 어찌하겠느냐?
“부처님 저는 그 때에 행자는 부처님의 행법을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이 육신을 버리기를 원하는데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나로 하여금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큰 공덕을 짓게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미련 없이 일신을 버리겠습니다.
“착하고 착하도다 부루나여 너는 잘 수행하여 인욕과 자제를 얻었도다.
너는 이제 수로나로 가라. 가서 여래의 정법을 널리 전하라. 사납고 모진 백성들을 제도하고 부처의 나라로 인도하라
부루나는 곧 수로나로 가서 남녀 오백명씩을 제도하고 흉포한 자들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이를 두고 법화경 예찬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수기받은 부루나는 감격하면서
전법하다 순교함은 최상의 행복
겸손하게 설법함이 부루나 장점
숙세 인연 부처님과 사제였다네
정법호지 신명 바쳐 이룩하고자
악한 세상 악한 중생 찾아가시네
돌맹이와 칼로 쳐서 죽이려 해도
부처 지혜 전함에는 망설임 없네
부루나의 뒤를 이은 순교자는 목건련(Moggallana)이었다. 부처님 제자 중 신통 제일이라는 목건련은 부유한 바라문 출신이었다. 불교는 목건련과 부루나 존자 등의 순교에 힘입어 인도 전역에 확산됐다. 이후에도 인도 불교사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특히 7세기 말부터 침략을 본격화한 이슬람의 광기 어린 훼불과 무차별 살육에 맞서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지는 13세기까지 수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불법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쳐야 했다.
중국 역사서에는 법난의 시대를 맞아 기꺼이 목숨을 바친 고승들의 기록이 많다. 위진남북조시대의 백원(帛遠)‧법조(法祚) 형제가 그렇다. 이때 장보(張輔)라는 인물이 진주 자사로 오면서 스님을 환속시켜 자신의 부하로 삼기를 원했다. 백성의 존경을 받는 인물을 수하에 둠으로써 정치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스님은 자신의 길이 아님을 잘 알았다. 스님이 한사코 거절하자 장보는 악감정을 품게 됐다. 백원 스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장보에 대해 원한이 아닌 다음 세상에 선지식이 되기를 발원한 것이다. 다음날 스님은 모진 채찍질에 목숨을 잃었다. 동생 법조 스님도 똑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이들 형제 스님의 죽음은 불교가 목숨을 걸어도 좋을 만큼 위대한 진리라는 점과 어떤 권력과 명예에도 좌지우지되지 않는 출가자의 높은 기개를 순교로써 보여주었다.
불교가 중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불경 번역에 힘입어서였다. 섭마등, 축법란, 지루가참, 안세고, 구마라집, 진제 등 수많은 스님들이 전법을 위해 이역만리의 길을 걸어왔다. 이들 스님은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불경을 한문으로 옮겼다. 권력자들의 환대를 받기도 했지만 때로는 온갖 강압을 견뎌야 했으며, 담무참처럼 순교도 불사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이차돈도 물론 불교 순교자다.
첫댓글 종교의 힘은 대단합니다. '목숨을 걸어도 좋을 만큼'이란 어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