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뜻대로 된 만석꾼 터
▶ 장흥군 관산읍 용전마을에는 만석꾼 터라고 전하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말만 만석꾼 터지 실제 누가 집을 짓고 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동네에서 창고를 지어놓으니까 거기에 쌀가마를 보관하게 되었는데, 9천800 몇 가마가 들어갔으니 거의 만가마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곳은 실제 만석꾼터라는 말뜻대로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별 소용이 없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동네, 만석꾼 터는 지금 창고가 지어져 있거든? 그 자리가. 그란디 우리 어렸을 적엔 거가 밭이여. 그래 갖고 밭을 벌어먹곤 하는데. 어른들이 상나무 앞에서 놀면서 그 터가 만석꾼 터라고 하거든? 그니까 만석꾼 터라고 하면은 동네 사람이 사서 돈 있는 사람이 거기다 집을 짓거나 밭주인이 집을 짓고 부자가 되거나 해야 쓸 거 아니여?
- (네, 그렇죠.)
그란디 집을 안 짓는 거야. 만석꾼 턴데.
- (말만?)
터라고. 말만 만석꾼 터제. 내가 면서기가 되었어 커가지고. 면서기가 되가지고 새마을 사업을 내가 보게 되었어. 그래서 그 때 대통령 하사금 사업이 있었거든? 돈 50만 원을 주면서 무엇을 느그 마을에 해봐라, 그래서 마을 이장 지도자들한테 50만 원 하사금 사업을 줄 테니 그 무슨 사업을 하나 하시오. 마을 회의를 해. 창고를 질 란다. 그래 창고를 진 거야 50평짜리 창고를. 거기다가. 그라고 인자 세월이 흘렀지. 좀 더. 정부 양곡이 엄청 매상해가지고 넘쳐 난 거야. 농협 창고는 부족해 부려. 걍께 마을 단위 창고까지 농협에서 임차해가지고 쟁해. 거기다가 그 매상을 해. 그래 갖고 저장을 하는데. 아니사까 만 가마니가 딱 들어가는 거야 거가. 50평 창고에. 우리가 9천 8백 몇 가마니까지 잡아 였어. 매상 가마니를. 만 가마니
- (와, 만 가마니 똑같네.)
그래서 거기는 만석꾼 터라고 내려왔지만은 창고터였다. 그거는 창고터다. 그래서 창고로 정부 양곡을 여면은 보관료가 나와. 그래서 마을에서 좀 마을자산이 조끔 불기도 하고 그랬제. 만석꾼 터에서. 그런데 인자는 매상을 안 하니까 비어 있지.
- (창고가요?)
창고가. 그래서 개인한테 임대차 조금 받고 해줬는데, 마을에서는 앞으로 그 계획이, 거기다가 전부 농사꾼들이 노인들이니까 창고에다가 저온 저장 시설? 나락 말리는, 그거를 몇 개 넣고, 또 지게차도 마을 것을 하나 장만하고 해 갖고, 노인들은 어서 말리기도 힘들고 또 말리믄 지게차가 없응께 동네 사람들 트랙터 있는 사람한테 쪼끔 부탁해 갖고 하고, 이런 애로사항이 많이 있어. 그 마을 꿈은 거기서 그 저장시절을 거기서 하고, 거기서 놔뒀다가 출하하고 그럴려고 하는데 그 할려면은 동네 자산이 없으니까 힘들어. 그래서 쫌 지원을 해주라고 그랬어. 그래 갖고 친환경을 제일 먼저 장흥서 시작해갔꼬 십여 년을 했는데 뭐 안 해 줘, 그래서 친환경이 너무 힘들어. 그랑께 올해 인자 포기해불고
- (으메)
안 해부러. 각자, 각자 알아서 해라 친환경….
- (용전, 용전에?)
몇 사람 할 사람들은 남에 마을에 가서 하는데 부쳐 갖고 너무 힘들더라고 왜 힘드냐 일지작성도 못해 노인들이 글씨도 못하는 사람도 있고
- (연로, 연로해서….)
연로하고 일지작성도 못 해 그라믄 책임자가 다 써줘야 되고, 이거 뭐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 책임자들이. 그래서 포기해 부렸어
- (그러면 창고는 50평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대로 있지. 거이 만석꾼 터였다.
- (어쨌든 9천 8백 몇 가마까지 들여왔으면, 뭐 어차피 만석꾼)
만석꾼, 그래서 옛날에 풍수학적으로 그런 것이 헛소리가 아니다.
- (그라믄, 그것이 박정희 대통령이었으면 70년대 초반? 중반? 아니면….)
70년대 중반 쯤 그 뭐시기를 했어.
- (창고는 또 인제 비어 있겠네요?)
인자, 개인한테 임대해주고….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와룡마을)
출처: 장흥문화원
야운 존 동네서 태어나셨네
만석꾼이 되시게
위두량/대종회사무국장 님
덕담 감사합니다.
창고임대는 농협으로부터 1년세 100만 원씩 받다가 농협이 나락 재고가 없어지자 한동안 비어있었습니다.
여하튼 이 창고 때문에 결과적으로 마을살림은 큰 보탬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만석꾼터가 전설이 되었네요
기실 지명과 관련된 유명시설이나 특산물도
많지요(온양 온천, 개성 온정리등)
용전마을도 좀더 시간이 지나면
전설따라 삼천리의 소재가 될수도 있고
향토사학자의 좋은 채집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장흥군 관산읍 용전마을의 만석군터가 그마을의 전설이 되었군요.
어느분이 그 창고터를 매입해서 활용하면 부자될걸 같다는 예감이.....ㅋㅋ
야운대부님 고향 이야기네요.
위철량 종친의 이야기가 재미있네요.
茂谷 (무곡) 위상환 선암 위옥량 (대종회 청장년회 회장) 碧泉 위윤기 님
본 내용은 얼마 전 장흥문화원이 정남진설화 채집 일환으로 발굴한 것입니다. 위철량(판서공파) 종친께서는 관산읍에서 퇴임하셨는데 당시 문화관련 업무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창고를 임대얻어 사용한 이가 '관산원예농약사'(제 친동생)입니다. 그런데 만석꾼터와 관련이 있는지 신기하게도 하는 일마다 대박을 친다고 합니다.
야운 위이환 님
마이다스의 손,
부럽습니다.
네이버지도 위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