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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인간의 삶
-학습목표
*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사회의 변화를 고찰해 본다.
* 중세에 과학혁명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과학자들의 삶을 알아본다.
* 과학과 인간의 삶에 연관된 문제들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에 밝혀본다.
로봇과 인간
(가) 인간사회에 로봇을 도입함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에는 인간자신의 입장에서도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이 나타난다. 로봇의 도입으로 우리들을 밝게 해줄 면은 첫째, 노동복지의 증진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주변의 많은 공장은 위험 속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 한 개인의 일생의 불행은 물론, 많은 재산상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으므로 로봇의 도입을 서둘러야 할 곳은 바로 산업재해가 일어날 소지가 많은 생산 현상이다. 이 점에 눈을 돌려 로봇화에 의한 노동복지 향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스위스이다. 이들은 국가차원의 프로젝트로서 노동복지의 향상을 위한 작업시스템 재설계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계획이 적극 현실화될 때 노동자는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둘째, 노동생상의 향상을 가져온다. 일본의 전기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 등은 로봇도입의 선진업종으로서 로봇의 은혜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서 IC의 (배선) 로봇은 인간작업에 비하여 노동생산성을 10배로 증대시키고, 자동차 공장의 도장작업, 땜질등은 그 생산성을 수배로 올리고 있다.
셋째, 노인이나 신체장애자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인간이 고령화되면 인간의 시력, 근력, 지구력 및 환경에 대한 적응력 등이 점차 감소해 간다. 따라서 고령자를 돕는 로봇을 활용함으로써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정형 로봇을 활용하면 근력이나 시력의 부족을 메울 수 있다. 또한 자동형과의 복합형 로봇의 의해서 어려운 곳은 스스로 조종하고 쉬운 것은 로봇에게 맡기는 작업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넷째, 로봇은 품질유지와 생산계획의 수행을 쉽게 이룩한다. 로봇은 품질유지상 인간 작업자보다 피로와 권태감을 쉽게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크 용접의 작업장에서 로봇은 경력 10년 정도의 작업자에 상당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용접 결
과는 로봇이 더욱 정확하고 양호하다. 도장의 경우, 최근 로봇의 기능이나 성능이 발전하여 승용차, 카메라, 전자제품 등의 도장 품질이 현저히 좋아지고 있다. 로봇은 품질관리면에서 정밀한 검사의 자동화를 꾀할 수 있다. G.M. 회사의 레이저 광선에 의한 검사 방법은 품질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제약 공장에서는 시각장치가 붙은 로봇에 의한 정제나 캡슐의 검사 시스템이 실용화 영역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시각, 촉각, 청각, 온도 등 센서의 소형 · 고성능화와 저가격화에 의해서 품질관리면에서 로봇의 도입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나) 로봇이 도입된 사회의 어두운 면으로서 첫째, 실업자가 생길 염려가 있다 로봇은 원래 그때까지 인간이 했던 일을 인간 대신 하기 위한 기계이므로 로봇이 도입되면 그 작업자의 일이 늘어나지 않는 한, 로봇에게 일을 양보한 작업자는 로봇 조작이나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는 다른 일터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새로운 타입의 숙련자, 즉 로봇의 도입준비나 조작을 담당하는 기술자나 기등자의 부족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실제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기업 사이의 경쟁이 격화된다. 종업원수와는 상관없이 생산능력의 집중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심각한, 이에 따른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로봇화 공장의 출현으로 기술자와 소수의 로봇을 조작하는 기능자가 있으면 종래보다 수배 또는 수십 배 규모의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기업 뿐만 아니라 국가 사이의 경쟁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격렬한 경쟁
속에서 실업문제가 가장 먼저 등장하게 된다.
셋째, 로봇의 도입은 관리자나 생산자의 교육에 대한 부담을 증대시킨다. 로봇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대부분과 전기 및 전자적인부분을 구비한 전형적인 메카트로닉 제품의 하나이다. 또 다수의 로봇을 유기적으로 조합시키고 우수한 제조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특히 고도의 시스템 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한 분야에 관한 깊은 지식과 넓은 일반 상식의 지식체계를 구비한 인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인간과 로봇의 비조화이다. 로봇의 도입 대수가 점차 증대하면서 다수의 로봇사이에서 적은 인원의 작업자가 배치됨에 따라 인간은 로봇으로부터 심리적, 육체적인 압박을 받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의 일인데, 미국 G.M.에 로즈 타운이라는 한 사건이 일어나 국제적인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G.M.사가 그린랜드의 교외에 건설한 세계 최신의 로봇화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히스테리를 일으켜 차 200대를 해머로 부수어 버렸다. 당시 신문은 대서특필하면서 인간과 로봇과의 부조화의 결과라면서 우려를 표명하였다.
다섯째, 사회의 계급구조를 크게 변화시킨다. 생산과정과 함께 전문 분야의 오토메이션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새로운 직종을 탄생시키고 화이트칼라 등을 확대시키고 있으며, 서비스업이 확산되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서 프랑스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그 결과 계급구조가 크게 변화되었다. 프랑스 사회당의 진출은 이러한 중간계층의 출현 때문이었고, 그 중간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사회당이 재건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종래 두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회구조에 커다란 수정을 가할 수박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중간계층이 많이 출현하는 것이다. 컴퓨터 네트워크라든가, 데이터 시스템 들이 크면 클수록 이용 가치가 높고 또한 가치가 있다. 컴퓨터의 기초인 반도체의 제조에는 매우 값비싼 장치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투자는 대규모화되고 거대자본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독과점 상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 결과 사회가 소수의 기업에 의해서 운영될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끝으로, 윤리, 도덕, 종교관이 변모할 것이다. 종래의 노동윤리도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종래의 인간과 인간 중심의 관계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문제시될 것이
다. 인간 중심의 관계에서 윤리, 도덕은 인조 인간의 관계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도덕, 윤리로 변형될 것이다. 그러한 문제는 인간의 무용화와 몰가치화의 반영을 야기시킨다.
현대 정보화 사회는 컴퓨터를 토대로 하고 있다. 컴퓨터는 절박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는 등장한 것이다. 우리에게 의 · 식 · 주가 꼭 필요한 것처럼 컴퓨터는 오늘날 복잡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수적인 문명의 이기로 등장하였다. 컴퓨터는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궁극적으로는 풍요와 자유가 보편화된 사회로 이끌어 갈 것이다. 컴퓨터 혁명은 산업혁명 이후처럼 새로운 후진국가를 형성하고
있으며, 컴퓨터화되지 않는 국가는 컴퓨터화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생활구조에 있어서 일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많은 시간을 가정에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가정 중심, 개인의 세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이 짙어진다.
--- 더글라스 J.포터(Douglas J.Porter) <21세기의 자동화 사회>
전통의 권위에 도전한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1514년의 마지막 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의술을 업으로 하여 살았는데, 그의 아버지도 역시 궁정 약제사 겸 의사였다.
베살리우스의 집 옆엔 죄인을 처형한 후 시체를 방치해 두는 곳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시체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17살 때 파리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해부에 익숙했던 그는 학교에서 배운 갈레노스 의학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갈레노스가 세운 해부설을 고집했고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던 베살리우스는 파리를 떠나 루뱅으로 돌아왔다. 그는 독학으로 해부학 연구에 전념했는데, 종종 인체 해부를 실시하기도 했다.
1537년, 베살리우스는 23살의 젊은 나이로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해부학 및 외과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인체 해부를 허락했던 파도바 대학에서 갈레노스의 잘못된 인체 해부설을 지적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베살리우스는 자신이 해부하면 관찰한 내용에 친구인 화가 칼카르가 그린 인체 해부도 판화 6장을 곁들여 1543년 7권으로 된 획기적인 저서,<<인체 해부에 대해 De bumanicorporis fabrica libri septem>>를 바젤에서 출판했다.
베살리우스는 이 책에서 약 1,500년 동안 유럽의 많은 사람들에게 신봉된, 인체에
관한 갈레노스 학설의 오류를 하나하나 지적해 정정하고 그동안 갈레노스가 받아온 권위가 부당했다는 것을 알렸다. 이 책은 순식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의학 근대화에 새로운 기점이 되었다. 특히 골격, 뼈, 근육, 신경, 혈관, 복부 및 생식 기관, 흉부, 뇌 등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린 그림 때문에 더욱 높이 평가받았다.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 저술에서 잘못 기술된 200여 곳을 찾아냈다. 특히 심장을 해부해 보니 우심실의 피가 심실의 벽을 통해 좌심실로 흘러간다는 갈레노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혈액 순환의 문제를 제기했다. 심실의 벽은 심장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두껍고 치밀해도 도저히 혈액이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베살리우스는 이러한 주장을 한 탓에 종교적, 정치적인 탄압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고 배를 타고 거쳐를 옮겨 다니다가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실종되고 말았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사라진 그는 근대 해부학의 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방법을 제공한 가장 위대한 해부학자였다.
베살리우스 얼굴그림 인체 해부 그림
손 영운 - (청소년을 위한 과학사)
생각해 보기
1.
2.
3.
학습활동
1. 다음글을 읽고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교회의 보호를 받았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설은 약 1,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진리로 유지되었으며 천문학과 다른 과학의 발전을 방해했습니다. 또, 중세 시대는 그리스도교 교리 중심인 스콜라 철학이 학문을 주도했습니다. 스콜라 철학은 신앙과 이성을 하나의 지성적 체계로 결합해 세상과 우주를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은 발붙일 여지가 없었습니다.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를 탈출하려는 기운은 12,3세기부터 조금씩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스 과학에 관학 책들이 라틴 어로 번역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대표적인 번역서로는 <<알마게스트>>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은 13세기부터 유럽의 각 지역에 대학이 세워지기 시작한 일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15세기에 으르러 당시 믿고 있던 천상 물체에 대한 법칙과 지상 물체에 대한 법칙이 명백하게 틀렸다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제시되면서 큰 전환점에 이르렀습니다. 그 전환점을 이루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코페르니쿠스, 브라헤, 케플러 등이며, 이들로부터 과학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기계적 철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근대적 자연관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고 주장했고, 그러므로 지구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케플러는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론을 더욱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다듬었습니다. 그가 밝혀낸 행성 운동에 관한 법칙들은 1977년 인류 최초로 태양계 외계의 탐사를 목적으로 발사한 보이저 1, 2호의 궤도 계산에 사용될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케플러의 뒤를 이어 과학혁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은 갈릴레오였습니다. 브라헤는 맨눈으로 천체를 바라보았지만 갈릴레오는 스스로 망원경을 제작해 하늘을 관측했습니다. 이제 자연이 어떤 법칙 아래서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단번에 해결한 사람이 등장했는데, 그가 바로 뉴턴입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현재의 자연 현상을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자연 현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수락을 이용한 수치 계산을 통해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뉴턴에 의해 과학혁명은 완성되었고, 인류는 근대 과학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뉴턴 과학은 과학 분양뿐만 아니라 18세기의 유럽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뉴턴 과학의 영향으로 그동안의 사변적, 독단적, 형이상학적인 면들은 배격당했고 합리적, 경험적, 실험적인 면들은 존중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자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 퍼지게 되었고, 이것은 더 나아가서 이 같은 능력을 가진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도 강제적 억압이나 구속이 없으면 제대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뉴턴의 사상은 계몽 사상가들에게 권위에 대한 회의와 자유방임의 신념을 불어 넣었고 나아가서는 프랑스의 혁명 사상을 고취하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갈릴레오에 의해 17세기 과학혁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영국에서는 인체 연구를 통해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교회의 권위에 억눌려 금기시 되었던 인체에 관한 혁명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과학혁명을 일으킨 코페르니쿠스의 책,<<천체의 회전에 관해>>가 출간되었을 무렵에 또 하나의 중요한 책이 나왔는데, 그것은 바로 베살리우스의 << 인체의 구조>>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고대 로마 시대의 의학자인 갈레노스의 인체 구조 및 작용에 관한 이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갈레노스는 모든 것이 신에 의해 특별하게 정해진 목적에 따라 생겨났다고 주장했고 그것은 중세 로마 교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가 지은 책은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가장 훌륭한 책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갈레노스의 이론에 대한 도전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고 그렇게 도전한 자는 처형당할 위험이 높았습니다. 따라서 아무도 갈레노스의 이론에 의심을 가지려 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살리우스의 책은 갈레노스의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일 때문에 베살리우스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생을 마쳤지만,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윌리엄 하비는 유명한 결찰사 실험을 통해 우리 몸에는 항상 같은 피가 순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비의 혈액 순환설은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라는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피는 생명에 중요한 물질을 운반하는 액체일뿐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고, 핏줄은 피가 흐르는 관일 뿐이었습니다. 즉, 인간의 육제는 결코 신비한 것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된 기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과학혁명으로 천상계가 더 이상 신비로운 신의 세계가 아닌 것이 밝혀진 것과 같이 하비에 의해 신성한 인간의 몸도 더 이상 신비로운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단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신이 만든 생명체들도 과학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이는 근대 생물학의 문을 여는 획기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화학이라는 학문은 금을 숭배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한 연금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이르러 상공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금속과 그 밖의 여러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화학에 관한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의 화학은 산, 염기의 제조와 의약품, 페인트, 화약, 유리 제조 등에 화학이 이용되는 화학 공업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화학이 화학 자체 현상만을 탐구하는 순수 화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보일에 의해서입니다. 보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나, 연금술사에 의해 제기된 3원소설을 모두 물질의 성질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여, 물질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실험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끝까지 의문을 제기했고 ‘원소란 화학 변화에 의해 무게가 증가하는 물질이다.’라고 주장하며 과학적 발상의 전환을 유도했습니다. 그는 연금술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그 스스로가 자신을 최후의 연금술사이며 최초의 화학자로 주장할 정도로 연금술에서 화학을 독립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후 연금술은 과학이 아니라 마술의 일종으로 전략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 보일의 생각은 플로지스톤설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플로지스톤설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의 영향으로 원소를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질로보는 것이었는데,18세기까지 신봉되다가 라부아지에에 의해 폐기되었습니다. |
손 영운 ( 청소년을 위한 과학사 )
2. 다음글을 읽고 “호킹”박사의 삶에 대해 논해보고, 거인의 어깨위에서 본 세상을
본 과학자들의 생각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혀보자.
호킹, 아인슈타인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다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꼽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스티븐 호킹 교수가 지은 이 책은 뉴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 거인들의 생애를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 세상을 놀라게 한 그들의 업적을 담은 대표 저서의 핵심 부분을 직접 소개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뉴턴이 겸손하기 보다는 동료 과학자들의 성과에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조바심 내는 모습을 알아챌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늘 낙제생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외톨이로 지냈고, 갈릴레오는 후원자인 교회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 쓰며 망원경 같은 신기한 물건으로 환심을 샀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뉴턴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거인들은 한번도 앞선 과학자들과 동료들의 연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어깨 위에 서려고 했다. 갈릴레오는 사실 종교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그 대신 누가 읽을지 모르는 장문의 글을 쓰는 수고를 택했다. 또 피사의 사탑에서 이뤄진 실험 결과로 끝내지 않고 한편의 법정 드라마와 같은 장문 논쟁 기록을 남겼다. 호킹이 굳이 난해한 원전을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턴의 운동법칙은 고교 교과서에서 단 한 줄의 수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가 쓴 원전을 보면 수식 하나 없이 오로지 도형과 기하학만으로 그 모든 얘기를 하고 있음을 할 수 있다. 세상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위풍당당함은 없었을지라도 자신들의 뒤를 이을 누군가에게 내어줄 어깨만은 튼튼하게 다지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괴테는 “코페르니쿠스의 학설만큼 인간 정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는 다시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른 거인들 또한 단순히 기존의 과학이론을 반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대 정신세계의 토대를 뒤집는 주장을 한 사람들이다. 저자인 호킹 교수는 로저 펜로즈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20세기의 또 다른 과학적 성과인 양자론과 합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 역시 ‘거인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지평을 본 셈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무도 못 본 것을 봐서인지 온몸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 병이란 혹독한 시련을 받고 있다. 한때는 손가락 두 개는 움직일 수 있어 느리지만 자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었는데 요즘엔 눈동자로 겨우 컴퓨터커서 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온 몸이 구속된 거인이 들려주는 얘기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내용도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책 군데군데 오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기록사진, 그림이 지루함을 덜어줄 것이다 |
조선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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