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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매리골드의 또 다른 이름, 부활절 꽃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매리골드, 이름 자체가 우리말로 풀이하면 ‘성모님의 황금’인 이 꽃에 얽힌 여러 일화들을 지난해 11월호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교회에는 이 꽃과 관련해서 가슴 뭉클한 이야기 하나가 또 전해 온다. 역시 성모님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이 사연으로 해서 이 꽃은 다른 한편으로 ‘부활절의 꽃’이라고도 기억된다.
저 옛날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그 부근에서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가장 먼저 이 소식을 들었다. 인류를 구원하실 분이 아기로, 사람으로 태어나셨노라고 천사들이 알려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은 즉시 길을 나섰고, 어딘지도 모르는 채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을 하늘의 별이 안내했다. 그런데 목자들의 뒤를 한 소년이 소리 없이 살짝 따라붙었다. 부모와 가족도, 돌봐주는 사람도 없는 천애고아였다. 사람들은 그 소년을 못된 아이라 단정하여 상대도 하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 소년은 손버릇이 고약한 아이였다.
어둠 속에서 목자들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가는 동안 소년의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목자들은 들뜬 기분으로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드릴 선물에 대해 소리 높여 말을 주고받느라 밤길을 걷는 발걸음조차도 가벼웠지만, 그 뒤를 따라가며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 소년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소년들은 목자들과는 달리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기 예수님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귀엽고 예쁜 아기와 아름다운 어머니를 보고 또한 천사들의 고운 노래를 듣는 순간, 소년의 얼어붙었던 작은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운이 용솟음치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아기에게, 그리고 아기의 어머니에게 무엇이든 드리고 싶다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러나 소년의 주머니에는 목자들에게서 훔친 잡동사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년은 슬픈 얼굴로 아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친 아기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얘야, 그건 안 된단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소년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쌓여 있는 희고 깨끗한 눈을 긁어모아 작은 눈덩이 하나를 만들었다. 눈덩이를 아기 어머니에게 드리고는 아기에게 무릎을 꿇어 경배하였다. 고개를 드는 순간에 놀랍게도 아기 어머니의 손에서 눈덩이가 녹아내리면서 아름다운 장미꽃으로 피어나는 광경을 소년은 목격했다. 눈을 비비며 보고 또 보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소년과 아기 어머니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소년이 성모님께 눈덩이 선물하자 아름다운 장미꽃으로 피어나
그 뒤, 소년은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다. 한동안은 소년 시절에 겪은 놀랍고 신비로운 일을 기억하며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생활은 점점 더 악에 물들어 갔다. 어느덧 기쁨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그날 밤의 신비로운 장미꽃도, 귀부인의 모습도 모두 그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는 온갖 범죄들을 저지른 끝에 체포되었고 감옥에 갇혔다. 결국에는 법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루는 그가 갇혀 있는 감옥 밖의 거리가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을 죽이고 바라빠를 놓아 주시오.” 그는 영문을 모르는 채 어리둥절해하였다. ‘아니, 사람들이 왜 내 이름을 부르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왜 나를 석방하라는 걸까?’
그때 간수가 오더니 “바라빠, 밖으로 나와라. 널 석방한다.” 하고 말했다. “예수라는 나자렛의 목수가 너 대신에 십자가형을 받기로 결정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너 대신에 그 사람을 원했단 말이야.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어서 썩 꺼져라.”
뜻하지 않게 감옥에서 풀려난 바라빠는 죄수들의 처형장인 골고타 언덕으로 몰려가는 군중의 뒤를 따라갔다. 그 순간, 참으로 오랜만에 어린 시절 어느 날 밤의 광경이 떠올랐다. ‘귀엽고 예쁜 아기와 고귀한 부인이 있었지. 난 그때 그들에게 줄 선물이 없어서 눈을 한 움큼 뭉쳐서 가져다 바쳤지. 그런데 아기 어머니가 그 눈덩이를 받아들자 그것이 녹으면서 아름다운 장미꽃으로 변했어!’
그가 상념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눈앞에는 십자기 형틀 세 개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의 십자가 밑에 웅크려 앉은 한 부인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라빠는 깜짝 놀랐다. 바로 어렸을 적 그날 밤의 귀부인이었다. 바라빠는 숨진 아들을 품에 안고 애통해 하는 어머니 곁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바라빠의 마음은 왠지 모를 슬픔과 아픔으로 찢어지는 듯했고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흘러내렸다.
그는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이 부인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은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것이 아닌가? 이젠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저 사람이 행하고 말한 모든 것을 나라도 그대로 해야겠다.”
“이 마른풀이 다시 꽃을 피운다면, 저는 제 죄들에 대해 용서를 빌겠습니다.”
바라빠는 용기를 내어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감히 용서를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러기에는 제 죄가 너무 많으니까요.” 부인이 나지막이 대답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모든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 거예요. 이제 모든 죄는 씻겨 없어졌어요.” “하지만 제가 지은 죄들은 워낙 많고 커서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없어요.”
바라빠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부인의 발치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마른풀을 뜯어 움켜쥐고서 울부짖었다. “만일 이 마른풀이 다시 꽃을 피운다면, 저는 제 죄들에 대해 용서를 빌겠습니다.” 부인이 그 풀잎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서 마른 잎은 사라졌고, 부인의 손에서는 태양처럼 빛나는 노란 꽃이, 황금색 잔처럼 생긴 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구세주의 시신 앞에서 깊숙이 고개를 숙인 바라빠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과 회오를 한껏 터뜨리며 목 놓아 울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부활절 새벽까지 이 꽃을 당신의 옷깃에 달고 계셨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천사의 말, 곧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아요. 되살아나셨어요.”(루카 24,6)라는 말을 듣고 그동안의 온갖 슬픔과 고통을 잊으실 때까지 이 꽃을 꽂고 다니셨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 꽃은 매리골드, 즉 ‘성모 마리아의 황금’이라 불리게 되었다. 온갖 죄악 속에서도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용서를 받아서 영혼을 다시 꽃피우는 부활 꽃이 된 것이다(〈가톨릭 다이제스트〉 1989년 4월호 참조).
[전례, 그 능동적 참여] 대중신심에서 성모님에 관한 권고
이번 시간부터는 우리가 늘 쉽게 접하면서고 그 역사적 의미와 실천적 가르침이 부족한, 예를 들면 첫 토요일 신심미사, 삼종기도, 성모성월, 스카플라라고 일컬어지는 성모 마리아의 갈색성의 등과 같은 대중신심에 대해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반포한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 2001년 반포’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전례와 신심에 대한 오류적 관점!
‘전례’라고 하면 예법 혹은 규정이라는 딱딱한 이성적이고 통일된 이미지로, ‘신심’이라고 하면 쉽게 변화가능하고 감성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것이 한국교회에서 통념처럼 자리 잡혀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예법인 전례는 신심보다 교회법적 상위 개념으로만 인식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혼재한다. 요즈음은 위와 같이 필자가 우려하는 부정적 경향이 한국교회 내에 더 짙어지는 듯하다.
이러한 우려의 해결을 위해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이미 18년 전인 2001년 12월17일자로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을 발표하였다. 이번 호에는 대중신심 중에 성모신심에 대한 위의 경신성사성의 지침의 내용을 확인하여 올바른 전례와 신심의 관계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 전례의 역사는 처음부터 완전한 통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부분과 변화될 수 없는 부분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의 엄격한 전례의 통일성이 확립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교회 전례의 통일에 대한 필요성이 가장 강하게 대두된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즉 1564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전례의 통일과 개혁의 산물인 통일된 가톨릭교회의 예식서 리투알레 로마눔(Rituale Romanum)의 첫 장의 교령을 살펴보면, 전례의 통일성을 요하는 시대적 요청으로 그간 민족 간 문화 간 상당한 격차를 보인 전례와 신심행위에 대해 우선적으로 전례부분에 대한 법적인 통일화 작업을 진행함을 선포하였다.
그러한 상당한 격차를 보인 다양한 전례는 긍정적 부분도 있겠으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의 형태로 진행되어 전례본연의 정신을 넘어선다는 비판이 교도권을 중심으로 지역주교들의 인식이 모아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모든 교구와 본당의 하느님을 향한 전례에 있어서 통일된 예식으로 전례를 수행하는 첫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전례의 통일성은 이렇게 진행되었지만 대중신심에 대한 교의적이고 사목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각 지역과 문화가 다르고 이것을 반영한 대중신심을 로마 교황청이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수가 아닌가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대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겸손하고도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 필자는 본다.
대중신심에 대한 경신성사성 지도서에 보면 “대중신심의 표현인 만큼 간화할 수 없는 중요한 인간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187항)라는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대중신심을 인간학적 요소인 자유로운 인간감성과 문화적 표현력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진다. 이러한 대중신심의 인간학적 의미에 대한 존중은 특별히 성모신심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메뉴별로 교황청의 언급하는 성모신심에 대한 가르침을 알아보고자 한다.
첫 토요일 신심 미사 - 지도서 188항
첫 토요일 성모 미사를 줄여서 “토요일”이라고 칭한다. 토요일은 동정마리아께 봉헌된 날들 가운데 두드러진다. 토요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기념미사와 기념일은 카롤링거 시대인 9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첫 토요일을 기념일로 지내기로 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역사적 기원을 따로 떼어 생각해 볼 때, 오늘날 복되신 동정 기념일은 “현대의 영성이 더욱 관심을 갖는” 특정가치들을 적절히 강조한다. 즉 “이날은 우리 주님께서 무덤에 누워계셨던 저 숭고한 토요일에 신앙과 희망으로 힘을 얻어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운 유일한 제자이셨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어머니다운 모범과 제자 됨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은 또한 매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거행의 전주이며 시작이고 동정 마리아께서 교회 생활에 언제나 현존하시며 활동하신다는 징표이다.”(성모성년을 위한 지침과 제안 5항)
위의 교회가 선언한 첫 토요일 미사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신앙과 희망으로 부활을 기다린 토요일 밤을 지새운 유일한 제자이며 모범이신 마리아를 기억함
2.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거행의 전주이며 시작
3. 교회 생활에 언제나 현존하시며 활동하시는 성모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표현
초대 교회 로마의 공동지하 묘지에서 생활한 시기의 지하 성당 벽화에는 가장 오래된 두 문장이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우리의 빛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신 미사(Eucaristia) 그리고 우리 신앙의 모범이며 어머니이신 마리아!”
이렇듯 교회전례의 최고봉인 미사와 교회의 모범이며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삶의 자리에서 디딤 목이었던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 어머니를 가진 유일한 종교인 가톨릭의 인간학적 의미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수도 공동체와 본당들 그리고 신자 단체들의 정관들은 첫 토요일에는 천주의 성모님께 특별한 신심을 바쳐야 한다고 규정하며 때로는 토요일에 특별히 바치는 신심행위를 할 수도 있다.
[전례 영성 - 파스카 신비] 세례성사, 파스카 신비의 입문
파스카 성야와 그리스도교 입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이 세 성사는 세트 메뉴다. 세례를 주문하면 견진과 성체까지 함께 딸려 나오는 종합 세트다. 적어도 3-4세기 교회의 모습은 그랬다. 3년 과정의 교리 교육을 마친 예비 신자들은 그해 파스카 성야에서 이 삼종 세트를 한꺼번에 받으며 그리스도교에 입문했다.
긴 예비 신자 기간을 보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신 거룩한 이 밤에”(「로마 미사 경본」, 362면)세례의 샘에서 새로 태어난 이들은(부활 감사송 2 참조) 갓난아기처럼 하얀 옷을 입고서 교회 안으로 인도되어 들어갔다.
곧이어 주교의 도유와 안수, 곧 견진(Confirmation)을 받았다. 이는 세례자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연중 주일 감사송 1)는 교회의 확인(Confirm)이었다.
끝으로 “그리스도교 입문의 절정이며 그리스도인 삶 전체의 중심”(「로마 미사 경본」, 400면)인 성찬례에서 영성체를 하였다. 파스카 성야는 고대 로마 전례의 관습이 보여 주듯 뭐니 뭐니 해도 그리스도교 입문의 밤이었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응답하는 신앙의 첫 번째 성사”(「그리스도교 입문 총지침」, 3항)이다. 복음에 응답하는 믿음이 없다면 세례를 받아도 “하늘 나라의 문”(부활 감사송 2)에 ‘입문’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세례가 실제로 죄의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하느님 나라의 입문”(「그리스도교 입문 총지침」, 3항)으로 드러나려면, 예비 신자 기간 이전에 “반드시 첫 ‘복음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어른 입교 예식 지침」, 68항).
이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개혁을 통하여 고대의 파스카 성야와 입문 성사 거행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여러 단계로 이루어지는 예비 신자 기간을 복구”하여 새로운 「어른 입교 예식」(1972년)을 마련한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른 입교 예식
「어른 입교 예식」은 “어른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해 듣고 성령께 마음을 열어, 살아 계신 하느님을 의식적으로 자유롭게 찾으며, 신앙과 회개의 여정을 시작하도록”(「어른 입교 예식 지침」, 1항)이끌어 준다.
입교 과정은 네 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기간은 교회가 처음으로 복음을 들려주고 권면하는 ‘예비 신자 이전 기간’이다. 둘째 기간은 교리 교육에 전념하는 때이며, 예비 신자로 받아들이는 예식으로 시작해서 세례 후보자 선발 예식으로 끝나는 ‘예비 신자 기간’이다. 셋째 기간은 성사들의 거행을 위해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때이며 사순 시기로 시작해서 파스카 성야의 첫영성체로 끝나는 ‘정화와 조명의 기간’이다.
끝으로 마지막 기간은 부활 시기 동안 “복음 묵상, 성찬례 참여, 사랑 실천에 힘쓰며, 파스카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고, 그 신비를 생활 실천으로 더욱더 드러내야”(「어른 입교 예식 지침」, 37항)하는 ‘신비 교육 기간’이다.
파스카 성야 중에 이루어지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거행은 이 파스카의 신비에 ‘성사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파스카 성야 예식은 제1부 빛의 예식, 제2부 말씀 전례, 제3부 세례식, 제4부 성찬 전례로 나누어 거행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입문의 파스카적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빛이 생겨라.”(창세 1,3)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와 구원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파스카 초를 들고 “그리스도 우리의 빛”(「로마 미사 경본」, 364면) 하는 부제의 외침으로 “파스카의 신비로 이루어진 주님의 위대한 업적”(연중 주일 감사송 1)이 기념되기 시작한다. 파스카 성야의 그리스도교 입문은 빛의 예식과 행렬 덕분에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들어오는 입문의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말씀 전례에서 봉독되는 아홉 개의 독서를 통해 “일찍이 선조들이 믿었던 구원이 이미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파스카 성야 제4독서 후 기도) 된 예비 신자들은 생명의 샘인 세례대로 나아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한다.
이때, “어른이 세례를 받으면 주교가, 주교가 없을 때는 세례를 베푼 신부가 주교의 위임을 받아 곧바로 제단에서 견진성사를 베푼다”(「로마 미사 경본」, 394면). 이러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의 연결은 “파스카 신비의 단일성과, 성자의 파견과 성령 강림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내기 때문에,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세례에 이어서 곧바로 견진성사를 받는다.”(「어른 입교 예식 지침」, 34항)고 말하는 것이다.
끝으로 성찬례에서 새 신자들은 첫영성체를 한다. 교회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영원한 선물인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등, 새 신자들은 이날 처음으로 완전한 권리를 지니고 성찬례에 참여하여 영성체를 하며, 이로써 “그들의 입교 과정이 완결된다”(「어른 입교 예식 지침」, 36항).
입문의 기억
신자들은 입문의 정점인 파스카 성야 때 세례 서약을 갱신하고 파스카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새 힘을 얻는다. “예비 신자들과 함께 파스카 신비의 가치를 묵상하고 자신도 새롭게 회개”(「어른 입교 예식 지침」, 4항)하는 것이다.
예비 신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동안, 신자 공동체는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며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한 세례 서약을 새롭게”(「로마 미사 경본」, 397면)할 수 있다.
사순 시기의 여정을 시작하며 교회는 예비 신자 선발 예식에서 신자 공동체를 향해 이렇게 권고한다. “이제뽑힌 이들은 우리와 함께 파스카의 성사들로 나아가며 우리에게서 새로운 삶의 본보기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비 신자들과 우리가 서로 변화되어 파스카의 은총을 합당하게 받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어른 입교 예식 지침」, 148항).
주님은 해마다 파스카 축제로 신자들의 믿음을 불타오르게 하시어(부활 제2주일 본기도 참조), 물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새로 난 모든 이가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영성체 후 기도) 하신다.
이렇게 파스카 성사로 힘을 얻고 사랑의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와 한마음이 되면(파스카 성야 영성체 후 기도 참조) 「가톨릭 성가」 1번을 온 마음으로 노래하게 될 것이다.
“나는 굳게 믿나이다, 진실하온 주님 말씀. 성세 때에 드린 맹세, 충실하게 지키리다. 주께서 나를 택하여 교회로 부르시오니 진심 감사하나이다.”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30 · 끝) ‘거행에서 선교로’
전례는 복음화의 원동력이자 그 결실
백성을 위한 기도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간과하기 쉬운 새로운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백성을 위한 기도’다. 곧 옛 전례 관습에 따라 사순 시기에 봉헌하는 모든 미사의 강복 전에 바칠 수 있는 백성을 위한 기도를 복구시켰다는 점이다. 5~6세기의 전례문을 담고 있는 「베로나 성사집」을 비롯한 옛 전례서들 안에서 이미 이러한 기도의 관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가 특별히 사순 시기에 이 기도를 바치는 이유는 모든 신앙인들이 걸어야 할 회개 여정에 힘을 북돋아 주고 다가오는 파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지향을 잘 밝혀주는 백성을 위한 기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주님, 간절히 비오니 주님 백성 위에 풍성한 복을 내리시어 고난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유혹을 받으면서도 덕행을 쌓아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사순 제1주일)
“주님,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끊임없이 파스카 성사에 참여하고 다가오는 축제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새로 태어난 그 신비를 언제나 간직하여 그 신비의 힘으로 새로운 삶에 이르게 하소서.”(성주간 수요일)
이처럼 사제는 미사를 마치면서 죄와 육신의 유혹에 맞서 영적 투쟁을 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신자들에게 특별한 축복의 말과 함께 파견함으로써 사순 시기의 중요성을 더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도는 통상적으로 미사 끝에 바치는 강복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 새 「로마 미사 경본」에는 사순 시기 외에도 여러 기회에 바칠 수 있는 백성을 위한 기도를 따로 제시해 놓았다.(「로마 미사 경본」, 657~662 참조) 이 기도들은 미사, 말씀 전례, 성무일도, 성사 거행 끝에 사제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사제가 백성을 위한 기도와 함께 강복을 주는 방법은 특별한 때에 장엄 강복을 주는 방법과 같다. 곧 “다함께 고개를 숙이고 강복을 받읍시다”라는 권고의 말 다음에 사제는 평상시와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는 말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 다음 신자들을 향하여 팔을 펴 들고 ‘백성을 위한 기도’를 바치면, 모두 “아멘”하고 응답한다. 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언제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하고 말하며 신자들에게 강복한다.
거행에서 선교로
어떻게 신앙과 삶의 일치 안에서 미사를 충만하게 거행할 수 있을까? 전례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교회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하는 더 근본적인 과제를 생각하게 한다.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삶 속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공동체 없이 전례는 결코 아름답게 거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미사를 거행하는 우리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 전례 거행에 쏟는 우리의 온갖 관심과 노력은 언제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 안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례, 특히 성찬례 거행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여정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여정에서 십자가 사건으로 절망에 빠진 제자들이 주님 말씀의 빛으로 마음이 뜨거워져 삶의 의미를 되찾고 빵을 쪼갤 때 주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였으며 종국에는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음을 보았다. ‘말씀’, ‘성찬’, ‘삶’으로 이어지는 이 점진적인 여정 속에서 전례의 거룩한 표지와 상징이 감추어진 의미를 발견하고 깨닫도록 우리를 이끈다. 미사 안에서 우리도 언제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느꼈던 뜨거운 감동과 기쁨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우리를 세상 속에 파견되어 선포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선교하는 공동체의 모습 안에서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보셨다. 전례의 아름다움은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한 공동체가 추구하는 복음화 활동의 열매이면서 동시에 그 원동력이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 또 작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곧 복음화의 활동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기뻐하며 경축합니다. 기쁨에 찬 복음화는 우리 일상의 요구 안에서 선을 키우며 전례 안에서 아름다움이 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하고 복음화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 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복음의 기쁨」, 2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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