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로운 키워드가 뜨고, 기존에 뜬 키워드는 집니다.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바뀌면서 행동이 바뀌고,
행동의 변화는 사용하는 언어의 변화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뜨는 키워드와 지는 키워드를 살피면 사회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빅데이터를 하나하나 살피는 것은 개인에게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기술이 발전하여 조금만 노력을 하면 개인도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양한 빅데이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여 검색을 하면,
정답은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소셜 빅데이터분석 서비스 썸트렌드를 활용하여 2023년 대비 2024년 상반기 블로그에서
어떤 키워드가 뜨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2024년 새롭게 주목해야 할 블로그 키워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1.
노포
첫번째 키워드는 노포입니다. 2023년 1분기 대비 2024년 약 1.37배 언급량이 증가했습니다.
노포는 국어사전에 따르면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店鋪)'라는 뜻인데,
한마디로 쉽게 정의하면 '오래된 맛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오래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노포이죠. 하지만 오래되었다고 사람들이 찾지는 않습니다. 맛이 있어야 찾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맛집입니다.
온라인의 부상, 점차 줄어드는 인구, 경제난, 고물가, 바뀐 회식문화 등등 외식업계를 위협하는 요인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 와중에 '노포'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진다는 점은 큰 시사점을 줍니다.
바로 '특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노포가 주목받은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고유의 분위기로 '감성'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관련 데이터를 살펴보면 '분위기 좋다' '감성 느끼다' '느낌 나다'라는 언급이 제일 많죠.
주머니가 빈곤해질수록 알뜰하게 소비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알뜰하다는 말은 절약의 의미도 있지만,
쓰는 비용 대비 효과성을 키운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차피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한다면,
평범한 선택지가 아닌 최고의 선택지를 고른다는 의미이죠. 오랜만에 큰 맘을 먹은 것이니까요.
그래서 갈수록 보편성은 사라지고, 특수성만 남습니다. 초저가 브랜드, 초럭셔리 브랜드는 인기를 끌지만
이도저도 안 되는 브랜드는 죽어가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포도 일반 평범한 음식점이 가지지 못한
고유의 개성으로 사람들의 선택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또간집
두번째 주목할 키워드는 또간집입니다. 또간집의 뜻은 '맛있어서 또 방문한 집'입니다.
2023년 1분기보다 2024년 2분기에 1.6배 언급량이 증가했습니다. 또 가는 집.
또간집은 연예인 풍자로부터 시작된 말입니다.
스튜디오 수제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2022년부터 풍자 님이 맛집 탐방 콘텐츠를 시작했는데,
그 콘텐츠 이름이 '또간집'이었습니다.
조회수가 최소 100만은 나오니 "완전 핫한 콘텐츠여서 키워드가 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어떤 콘텐츠가 뜨는 것하고 일상적인 단어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또간집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확 와닿았기에 뜬 것이죠. 왜일까요?
인터넷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그 정보들이 진실되어도 고르기 힘든 판국에, 광고성 글로 인해 거짓된 정보도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짜 정보'죠. 그래서 정말 다양한 키워드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돈내산' '현지인맛집' 같은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고자 하는 니즈는 항상 있기 때문에,
새로운 키워드가 나오면 그 키워드 맞춤형으로 다시 콘텐츠를 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돈으로 내가 샀다'는 내돈내산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하게 됩니다. 인터넷이 소멸하지 않는 한, 무한히 펼쳐질 창과 방패의 싸움이죠.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등장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확산된 키워드가 '또간집'인 것입니다. 두 번 가야 진짜다.
맛집을 표현하기에 정말 정확한 말이지 않나요?
3.
콜키지프리
세번째는 콜키지 프리입니다. 2023년 1분기에 비해, 2023년 4분기 1.69배 언급량이 증가하였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콜키지란 '손님이 직접 술을 가지고 오면 식당에서 잔을 내어주고
서빙을 해주는 대가로 청구하는 서비스 비용'을 뜻합니다.
즉, 콜키지 프리라는 것은 술을 무료로 가져와서 먹어도 된다는 의미죠.
원래 식당 입장에서 콜키지 프리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손님이 외부에서 술을 가져오는 것보다 식당에서 술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매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콜키지 프리에 대한 언급량이 많아진다는 것은 콜키지 프리를 허용하는 매장이 많아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콜키지 프리는 식당 방문에 있어서 부가서비스에 가깝기 때문에, 광고성 키워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단어의 사용이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콜키지 프리' 사용이 늘어난 것일까요?
그 답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환경에 있습니다.
엔데믹 이후 시작한 고물가 시대는 2024년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기 때문에, 소비자의 지갑은 가면 갈수록 굳게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식당 입장에서는 콜키지 프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손님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비록 주류 매출은 없겠지만, 미끼 상품의 역할을 하며 소비자의 방문을 유도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와서 먹다가 술이 모자라면, 더 시킬 수도 있는 것이고요.
보통 콜키지 프리라고 했을 때 대상이 되는 술은 '와인'입니다.
그런데 와인은 2021년에 관세청 기준 수입량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쇠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콜키지프리'에 대한 언급량은 많아지고 있죠.
이런 대조되는 분위기는 현재 위스키에 밀리고 있는 와인에게 한줄기 희망을 줍니다.
와인이 비싼데다, 한 번 따면 1인 가구가 나눠 먹기 힘들어서, 수요가 감소했지만 적어도 와인이 가진 감수성 자체는
그대로 소비자에게 남아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즐기는 주류하면 무조건 와인인 것이고,
이 정체성을 굳건하게 유지해야 다시 한번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개인화되는 소비자의 니즈를 볼 때,
와인이 앞으로도 쭉 어려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4.
캐치테이블
네번째 키워드는 캐치테이블입니다. 2023년 1분기에 비해 2024년 1분기 약 1.98배, 즉 2배 언급량이 증가했습니다.
식당 예약 및 웨이팅앱인 캐치테이블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무작정 식당을 찾아가거나 혹은 웨이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약을 하고 웨이팅을 하더라도 웨이팅 순서를 체크하며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즉, 시간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시성비를 생각하는 것이며 0차 문화를 상징하는 키워드 그 자체인 것이죠.
0차 문화는 대기 시간이 필요한 장소에서 계속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웨이팅을 걸어놓고 남는 시간 동안 주위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는 문화를 뜻합니다.
유명 맛집에 이른 시간부터 오픈런을 하고,
몇 시간 동안 줄 서 있는 청년 세대를 보며 '왜 저렇게 행동하지' 의문을 가지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밖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행동일지라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실 청년 세대도 시간이 아깝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어서 오픈런하고 줄을 선 거지, 하지 않아도 되면 안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단지 그 동안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캐치테이블이 확산되며 '방법'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캐치테이블은 니즈를 타고 확산되었으며, 언급량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5.
플러팅
다섯번째 키워드는 플러팅입니다. 2023년 1분기에 비해 2024년 2분기에 무려 2.68배 언급량이 증가했습니다.
플러팅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유혹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플러팅 이전에는 플러팅 대신 보통 '끼부린다', '꼬리친다', '들이대기', '유혹하다'라는 식으로 표현했었습니다.
호감 있는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고, 또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은 시대 구분 없이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플러팅이 뜨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그동안 플러팅 대신 쓰는 단어들은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끼부린다'나 '유혹하다' 모두 대놓고 말하기 조금 애매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플러팅은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명으로 부를 때와 영어 이름으로 부를 때, 느낌이 완전 다른 것처럼
언어는 그 언어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같은 의미라고 해도 플러팅이라고 말하면
비교적 중립적,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로 들리는 것이죠.
이에 따라 플러팅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연애에 대한 니즈는 항상 있고,
또 다른 대체할 단어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플러팅은 단기간에 퍼지고 사라지는 수많은 신조어로 남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플러팅의 확산은 청년 세대가 연애를 안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상황만 된다면 아름다운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으니 대리 만족이 가능하게 해주는 연애 예능, 로맨스 소설만 뜨고
실제 현실에서는 다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되어버린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