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 - 에디 메르크스 식인종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4. 2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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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
에디 메르크스
식인종
에디 메르크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전거 선수로 꼽힌다.
에디 메르크스는 대회 때마다 모두 우승을 차지해 식인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고의 사이클 선수
에디 메르크스(Eddy Merckx)는 사이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뛰어난 선수들은 많지만 메르크스처럼 많은 대회에 출전하고 그렇게 많은 승리를 기록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메르크스는 1964년 아마추어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등장한 뒤 12년 동안 세계 사이클 계를 지배했다. 그는 1965년 프로로 전향한 뒤 1966년에 밀란-산레모 대회에서 우승했고 1967년에는 세계도로사이클 챔피언이 됐다. 투르 드 프랑스에는 1969년에 처음 출전했다. 이 해 대회에는 1965년 우승자인 펠리체 지몬디와 1967년 우승자인 호제 펭종이 버티고 있었고 프랑스의 레몽 풀리도도 있었다. 메르크스는 처음으로 투르에 출전했지만 뛰어난 실력을 과시했고 레몽 풀리도와 펠리체 지몬디 같은 몇몇 선수만 겨우 그의 바퀴를 따라갈 수 있었다.
알프스에 도착했을 때 그는 경쟁자들을 모두 따돌리고 앞서기 시작했다. 레몽 풀리도와 펠리체 지몬디는 기계 고장과 펑크 때문에 뒤처지고 말았다. 피레네의 뤼송과 무렝 구간에서는 결승선을 140km나 남겨둔 상태에서 혼자서 질주한 뒤 다른 선수보다 8분이나 앞서 도착했다.
"그는 모든 스테이지에서 우리의 머리를 단두대로 보내버렸다."
에디 메르크스의 경기에 압도된 레몽 풀리도가 이렇게 말했다. 메르크스는 일곱 개 구간에서 우승하고 세 번의 타임트라이얼에서도 모두 이겼다. 아무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는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고 너무 쉽게 이겼다. 2위와는 무려 18분이나 차이가 났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 메르크스는 종합 우승자에게 주는 엘로 저지와 가장 뛰어난 스프린터에게 주는 그린 저지뿐 아니라 산악에서 가장 우수한 선수인 산악왕에게 주는 물방울 저지까지도 다 차지해버렸다.
투르에 있는 모든 색깔의 저지가 다 그의 것이 됐다. 당시에는 스물다섯 살 이하의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주는 화이트 저지는 도입되지 않았는데 만약 화이트 저지가 있었다면 스물네 살이었던 메르크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한 선수가 모든 분야의 저지를 다 휩쓴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1969년 대회가 끝나기 며칠 전 라이벌인 푸조 팀의 크리스티앙 레몽 선수의 열두 살 된 딸이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의 일이다. 그가 딸에게 에디 메르크스에 대해 얘기하자 딸은 아버지에게 놀리듯이 말했다.
"아빠, 그 벨기에 아저씨는 아빠에게 부스러기 하나도 남기지 않았네요. 그 사람은 정말 식인종이에요."
이렇게 해서 에디 메르크스는 '식인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은 사람, 반은 자전거'
에디 메르크스는 1945년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유년기를 보냈는데 어린 시절부터 사이클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후에 나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나는 스스로 자전거를 발견했다. 열 살 때부터 나는 자전거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때는 텔레비전 이전 시대였고 나는 라디오에서 중계하는 자전거 경기를 들었다. 보베, 오커스, 코피, 앙크틸의 멋진 경기를 이때 들었다."
어릴 적 그의 영웅 중의 한 사람은 벨기에 선수 스탠 오커스(Stan Ockers)였다. 메르크스는 오커스가 아주 멋지게 이기는 선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르크스가 소년이었을 때 오커스는 벨로드롬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메르크스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 소식을 알려줬는데 메르크스는 너무 슬퍼서 한참 울었다고 말했다. 메르크스는 마침내 선수가 됐고 자신의 영웅들과 함께 경기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마침내 선수가 돼서 경기를 시작했을 때 내 어린 시절의 영웅들과 함께 경기를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에디 메르크스는 축구의 펠레, 권투의 무하마드 알리와 같은 존재다. 그의 기록은 다른 선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그는 선수 생활 중 모두 525회나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3대 투어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와 지로 디탈리아에서 다섯 번씩 우승을 차지했으며 벨타 아 에스파냐에서도 한 번 우승했다.
그는 지로와 투르를 세 번이나 동시에 우승했다. 또 세 차례나 세계도로사이클 챔피언이 됐다. 1972년에는 고지대인 멕시코시티에서 한 시간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 기록을 12년 동안이나 보유했다. 1974년 5월에서 7월 사이의 9주 동안에는 지로 디탈리아, 스위스 투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다른 선수들은 아무도 그에게 맞설 수 없었으며 메르크스가 출전한 대회에서는 우승은 생각지도 못했다. 메르크스는 단지 승리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쟁 선수의 도전을 철저히 박살내버렸다. 투르 드 프랑스의 조직위원장이었던 자크 고데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기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달렸다. 그는 단순히 승리의 영광에 만족하지 않았다."
메르크스는 경기마다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려고 했던 것은 좀더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하루짜리 경기에서는 혼자 앞서 달리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구간 경주에서는 절대로 확신할 수 없다. 항상 나쁜 날이 있을 수 있다. 많이 앞서면 앞설수록 그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관중들은 경기를 보는 데 돈을 쓰려고 일을 하는데 결코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메르크스가 만족을 모르고 승리를 추구한 것은 과도한 이기주의라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메르크스는 항상 자신의 노력으로 이겼고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다. 그는 결코 대중의 인기를 노리지도 않았으며 결코 웃지도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반은 사람 반은 동물인 스핑크스처럼 '반은 사람, 반은 자전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메르크스는 완벽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놀라운 회복력을 가졌다. 추위나 더위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떤 스프린터나 클라이머도 겁내지 않았다. 그는 어떤 지형에서도 탁월했다. 파리-루베 대회가 열리는 북쪽의 자갈길이나 곧은 길, 알프스와 피레네의 가파른 고갯길에서도 그는 혼자서 앞서 달릴 수 있었다.
위대한 벨기에인
사이클 작가인 필리페 브루넬(Philippe Brunel)은 메르크스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메르크스는 외면은 평온하게 보이지만 내면에는 고통스럽고 걱정이 많은 영혼을 감추고 있었다. 큰 클래식 대회를 앞둔 전날 밤이면 그는 잠에서 깨어나 자전거 안장을 조금 올리거나 핸들의 기울기를 조정하곤 했다."
메르크스는 무엇 하나 운에 맡기는 일이 없었다. 그의 집에 있는 차고에는 110개나 되는 여분의 바퀴와 2백 개의 타이어가 있었다. 그것은 시즌 동안 쓸 것이었다. 1970년 지로 디탈리아에 참가할 때 그는 자전거를 열여덟 대나 가져갔다. 메르크스는 항상 훈련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훈련하는 것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사이클 시즌이 끝나는 겨울에도 여름과 똑같이 훈련하고 마음을 오직 훈련에만 집중했다.
1975년 그는 투르 드 프랑스 6연승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 해 대회에서는 그에게 불운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퓌드돔의 산악 코스를 올라가고 있을 때 어떤 광적인 관중이 도로에 뛰어들어 메르크스의 배를 주먹으로 쳤다. 메르크스는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비틀거리고 토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경기 중에 넘어져서 턱뼈가 부러졌다. 의사는 호흡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기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는 음식을 거의 먹을 수도 없었고 숨 쉬는 것도 힘들었지만 경기를 계속해서 2위로 대회를 마쳤다. 파리의 시상대에서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Giscard d'Estaing) 대통령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나는 당신이 대회 중에 보여준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이 투르에서 6연승하는 날이 꼭 올 것입니다."
그러나 메르크스는 1976년 투르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1977년에는 6위로 경기를 마쳤다. 그는 1978년에 은퇴한 뒤 자전거 회사를 세웠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로 사이클 선수로 활동했다. 1996년 벨기에 왕실은 그에게 남작의 작위를 수여했다. 2005년 벨기에는 '가장 위대한 벨기에인'을 선정했는데 그 1위에 '문둥이 성자'로 불리는 다미안 신부가 선정됐고 3위에는 에디 메르크스가 뽑혔다.
메르크스는 조용하고 겸손한 인물로 재즈와 축구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제는 약간 퉁퉁한 아저씨가 된 그는 주요 대회 때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디 메르크스 - 식인종 (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 2013. 1. 20., 장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