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하느님의 진심을 올바로 깨달아 그것은 지키고 다른 이들에 게도 그 진심에로 초대하여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복됩니다. 그렇게 복된 사람을 사람들 은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의 언행에 큰 무게감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우리 삶과 가슴 한 가운데에 비수(匕首)를 꽂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많은 신앙인들, 곧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전체가 예수님의 복음 말씀의 기준으로 볼 때 ‘언행 불일치’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그 간격(間隔)을 좁히는 일이 쉽지도 않고 멀리 느껴집니다. 뭇 사람들과 똑같이 별 일 아닌 것에 쉽게 짜증 내거나 화를 내고, 이기적이고, 밉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만나거나 마주하지도 않습니다. 뭇 사람들과 똑같이 세속의 가치를 추구하고, 귀찮고 불리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쉽고 편한 것만을 추구합니다. 더 안타깝고 마음 아픈 것은 언행 불일치에 대하여 사제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까지 ‘우리도 사람이니까, 너무 엄격한 잣대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라는 탄탄한 합리화의 방어막을 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겸손’의 또 다른 해석을 내립니다. 그 겸손이야 말로 합리화의 방어막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2코린 3,5ㄴ-6)” 처음부터 이제와 항상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그분에게서 왔으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완성됩니다. 우리는 다만 하느님이 부여해 주신 자격에 합당할 수 있도록 배우고 깨달아 알게 된 것을 실 천함으로써 주님의 일꾼으로서의 몫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 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일에는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하 느님의 일에 어떤 마음과 정성과 사랑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복음에서 예수님의 표현대로라 면 스스로 지키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크게 보이고 작게 보이 고 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바로 그 크기를 보고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과 무게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