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65신]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이해하겠더라
20여년을 한결같이 여실如實한 친구야.
뒷산 저수지를 확장한다고 둑을 터버리는 바람에, 이제 새우 잡기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웃마을에 사는 새로 사귄 ‘자연인 친구’가 자기 동네 뒷저수지에 새우가 바글바글하다고 하더라.
새우망을 10여개 놓고 어제 이틀만에 걷으러 갔더니, 새우는 얼마 없고, 손마디만한 송사리들이 어찌나 많이 들어있던지,
사진과 함께 단톡방에 “이것을 어찌 할꼬?”문자를 보내니, 네가 곧바로 댓글을 달았구나.
“무를 큼직하게 잘라 듬성듬성 깔고, 그 위에 송사리들을 ‘도리뱅뱅이’처럼 빙둘러 놓고,
약간의 양념과 함게 묵은지를 얹어 자박자박 끓여 먹으면 죽긴다”
역시, 너는 우리 친구들의 쉐프다웠다. 흐흐. 고마웠다.
쉐프로 소문난 또다른 친구는 “회 떠먹어라”며 저다운 댓글을 보내고.
이래저래 먹방’을 방불하는 우리의 단톡방은 조용한 때가 없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6학년도 절반쯤 되니까 모두 양기陽氣가 입으로 오른 때문이기도 하겠지.
아무튼, 수백 마리 송사리의 배를 따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냥 끓이려다가 아무래도 씁쓸한 맛이 날 것같아서였다. 한동안 허리가 아파 펼 수도 없는 고생을 한 까닭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동네친구들을 부를 생각이 앞섰기 때문. 벌써 10년 전인가?
한 달에 한번 서울과 수도권 인근 산행山行을 하던 게. 거의 100회를 기록했었으니, 그 아름답던 추억을 어찌 잊겠는가?
그때마다 네가 해오던 김치찌개의 기똥찬 맛, 그게 진짜 쉐프인 것을.
찌개를 끓일 때마다 맛있게 먹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도 무척 흐뭇했겠지.
그 마음을 시골 살면서 여러 번 느꼈다. 친구들이 내가 끓여준 새우탕을 잘 먹어줄 때의 기분.
아내가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남편이 고맙다, 맛있다며 잘 먹어줄 때의 기분처럼.
조마조마, 조림을 잘 할 수 있을까? 이윽고 완성된 ‘송사리 조림’.
졸지에 호출당한 이장과 동네친구, 전주에서 메기 밥 주러 달려온 깨복쟁이 친구,
‘노치원’에서 막 퇴근하신 아버지와 시식試食을 하며 한마디씩 한다.
엄나무순보다 더 좋다는 옻순은 데치지도 않고, 계란을 풀고 고춧가루에 들기름을 부어 조물조물,
날 것으로 먹는 게 더 맛있다 한다. 두릅순은 초고추장에 찍어 한 입, 두 입, 여러 입. 흐미-.
봄은 역시 풍성한 나물의 계절. 산에만 가면 먹을 것이 천지인 것을.
취나물의 향내가 진동하는 우리산 육덕굴 골짜기. 우우우 솟아나오는 고사리,
산자락에 꽈악 깔린 머위. 연한 머위잎을 살짝 데쳐 멸치액젓에 들기름에 들들 간 들깨가루에 조물조물.
친구는 어떻게 토양土壤을 거두었으면 집 마당에서 송이버섯이 나는 걸까? 인심좋게 1개를 쑤욱 뽑아준다.
잘게 잘라 식탁에 올려놓았다. 많이 먹어서만 맛이랴? 콩 한쪽이라도 노놔먹는 게 농사꾼의 마음으로 최고인 것을.
내일은 성수산에 곰취 나는 곳을 아는 데 같이 가자고 한다. 능이버섯 나는 곳도 안다는 ‘제2의 속세 자연인’친구이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읊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고 할 것인가.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든, 산에서 나물을 뜯든, 시골생활의 별미別味는 언제나 자연自然과 함께 하는 데 있더라.
<내 벗이 몇이라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라고
하던 오우가五友歌는 또 어떠냐?
우리가 자연을 빼고, 흙과 나무를 빼고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냐?
부안촌넘인 너는 나보다 훨씬 잘 알겠지만 말이다.
일주일 전 모처럼 서울에 가 저녁을 함께 했었지. 그때 네가 그랬지.
“너희 동네와 같은 환경(친구들이 많은 것)이면 나도 당장 내려가 농사짓겠다. 물려주신 논도 많은데. 우리 고향은 아무도 없어”
전국 어디라도 생각하면 구석기 시대같은 우리 농촌과 우리 고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10년만 더 되면 젊은 농부들은 희소성稀少性으로 그들의 가치가 한없이 높아갈까? 모를 일.
“너는 인덕人德, 친구복福도 많다”며 안빈낙도安貧樂道,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나의 삶을 부러워했었지.
글쎄.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 가장 먼저,
나의 반려인 아내의 부재不在가 날이 갈수록 나를 외롭고 힘들게 하더라. 아내 역시 그럴 거야.
같이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 하게 되더라.
그런 점에선 나는 또 한 지붕 아래서 단란하게 사는 네가 부럽다.
거기에다가 못하는 요리가 없는, 어지간한 주부보다 나은 네 요리솜씨는 또 어떻고.
친구들 모임때마다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너도 복 많이 받을 거야. 아무렴.
20여년을 지켜봤지만, 너만큼 한결같이 여실如實한 친구도 드물 거야.
오늘 새벽엔 어제의 네 요리코칭에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편지를 쓴다.
어째 그런지, 지금은 도움이 안된다는 봄비가 한 달째 주말마다 오고 있다.
이 비만 그치면 곧장 고사리 꺾으러 뒷산에 오를 거다. 삶는 것도 일이고, 말리는 것도 일이더라.
가까이 살면 빼빼 말린 고사리 한 웅큼 주면 좋을텐데. 흐흐.
요즘은 물팍(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평생 좋아하던 산행도 쉽지 않다고 했지.
건강 조심하고 잘 지내길 빈다.
4월 16일 아침
임실 구경재에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