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나라 공화국을 다녀와서
글 德田 이응철(강원수필회원)
-그대가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9C 유명한 선승 임제 선사는 기적이란 물위를 걷는 게 아니라 땅위를 걷는 것이라고 했다. 불확실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래 전의 이 말이 곱씹어지는 하루였다.
어제 수필문학회가 남이섬으로 하루 여행을 떠났다. 항상 글을 쓰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수불석권(手不釋卷)하는 문학의 숲이다. 함께 한 30여명의 수필 작가들-. 이름 한 명 한 명 마주하니 먼 곳의 안드로메다보다 위대하다. 가까이서 음성과 체취를 느낀 값진 날이야말로 진정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만나서 가식 없이 웃고 그간의 일들을 주고받고 축하하며 보낸 곳이 남이섬이기에 더욱 감칠맛이 난 하루였다.
가을 남이섬은 시(詩)가 되는 섬이다.
사랑을 노란 은행잎에 새기고 나목 뒤에서 자기를 재발견한다. 남이섬은 빛과 바람이 청정하다. 낭만을 무더기로 뒤로하고 있는 자연이 살아 숨 쉰다. 호수위로 수 십 번씩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여객선 모양 또한 차별성을 보인다. 연간 30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데 120만명이 외국인이란다.
하나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숲속에서 우리 웃음은 메아리져 퍼져 나간다. 강원의 섬이라 정이 간다.
일본인이 쓴 장수 비결에 보면 하루 15분간 웃어라. 샤워하고 금방 물기를 닦지 마라, 피부도 숨 쉴 기회를 주어라. 고기와 생선을 많이 먹어라. 오른쪽으로 누워 구부리고 자라, 그저 눈만 뜨면 나가서 서성거려라 등, 상식이 우왕좌왕해 갸우뚱하지만, 정말 어제는 15분이 아니라 몇 시간씩 배꼽을 잡고 웃은 날-. 때문이 지금 이 시간도 엔도르핀이 별처럼 무더기로 쏟아져 심신이 촉촉하다.
신발 던지지-. 놀이 중에 평생 다시 하고 싶은 것이 보물찾기와 수건돌리기라고 한다. 추억의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숲속에서 놀이를 했다. 수건돌리기를 의중에 두었지만 고령이시라 지난번 초등 동창체육대회에서 한 신발 던지기가 문득 생각이나 건의했더니, 흔쾌히 접수했다. 고마웠다.
유년기 때 장(場)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린다. 바깥마당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신발을 던지곤 했다. 텃밭을 지키던 밤나무 그늘이 발목을 간지르고, 달이 어디선가 밤을 준비할 무렵 어머니는 고개를 넘어 양푼에 나일론 사탕을 사와 노느매기하시던 그 때-. 신발을 던지던 것이 어제 신발 멀리 던지기 게임에 내가 주효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고령이시라 복잡한 과정의 놀이, 암기나 순서를 지켜 한참을 기다리는 여백보다 단순한 놀이가 좋다. 손바닥 치기는 순서가 여간 어렵지 않지만, 벌칙이 좋아 옆구리를 간질러 준 내 짝은 지금쯤 허리가 맘껏 탄력을 받아 유연히 기지개를 켤 것이다.
오후, 두 줄로 마주 보며 한껏 재미있게 한 경기는 신발 멀리 던지기-. 저마다 신발 한쪽을 걸치고 있다가 힘껏 던지면 된다. 웅크리고 있던 편백나무들과 지나는 관광객들이 배꼽을 잡으며 지켜보고 있다. 두 편으로 나누어 던진 신발은 저마다의 종신지질(終身之疾)을 내 팽개치는 기분이었으리라. 우두둑 무릎 관절이 아우성을 쳐도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일어나 신발을 던진다. 일어날 때는 괴로워도 던지고 들어가는 시간은 얼마나 상쾌했던가!
닁큼 상금까지 걸었다. 작은 듯해서 민구스러웠지만, 작은 목표가 중하다. 국제 신발던지기 심사위원이라는 멘트로 좌중을 쥐락펴락하며 놀이를 주도한다. 한없이 홈런이라도 칠 기세인 회원들이 오히려 가까이 추락한다. 멀리 던지고 싶은 욕망을 편백나무가 제어하니 어인 일인가! 매일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던 회원도 댓 걸음 앞에 떨어져 만인의 배꼽을 잡는다. 탱글탱글해 주사바늘조차 머뭇거린다는 보리란 회원이 단연 여자회원 중에서 으뜸이요, 남자는 미수(米壽)에 다다른 분이 게거품을 물고 우승을 거머쥐셨다. 단체놀이에서는 사사로운 체면, 위신, 내성적인 감정은 날려 보내고 팔푼이처럼 사회자 말 잘 들어가며 따라해야 한다. 비오는 날 화단에 물주는 정박아처럼-.
수필을 쓰는 대가(大家)들의 하루-. 수필은 체험의 서술이 아니고 체험 중심에서 대상을 새롭게 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남이섬이 또 하나의 수필 소재로 안착한다. 수상소식에 무더기로 박수를 받았다. 진정 부앙무괴(俯仰無愧)해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다.
남이섬을 떠나 가평역 광장에서 기다린다. 성에 차지 않았던지 다시 신발을 벗어 던지기를 재현하는 박회장님, 두 번째 세번째 나까지 벗어던진다. 광장에 있던 관광객들 또한 웃음을 자아낸다. 작은 여행이 준 명쾌함, 여행이 진정 삶을 새롭게 하는데 왜 집을 박차고 나오기가 그렇게 힘든지 모를 일이다.
가을여행-.한중 교류 시화전이며 예술제가 한창 열려 금상첨화인 외딴 섬-. 청평호에 비친 호명산 동쪽 바람이 불어온다. 영화 촬영장소로 더 알려진 이곳에 브레인들이 무려 500여명, 눈만 뜨면 더 좋은 섬으로 거듭나기 위하 새록새록 아이템들을 연잎에 싸온 찰밥처럼 맛있게 선보이고 실천한다는 사장님의 말씀이 새롭다.
크레이티브-. 나랏님도 그 얼마나 강조하시는 닉네임인가!
쪽제비털 같은 낙엽들이 바람에 날린다. 유순한 사랑들이 저마다 껴안고 숲을 걷는다. 평일인데도 장날같다. 황톳길을 따라 섬을 통째로 삼켜본 하루였다. 뱃길 끊어져도 좋은 섬이다. 선남선녀들이 스친다. 이국인들의 탄성이 연륜을 더한 이들에겐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곳에 찾아오면 10년은 젊어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섬이 이웃하고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 국 내외적으로 우뚝 선 나미나라 공화국에서의 일일 노선(老仙)이었다.
뱃터로 나올 때 등뒤에서 서민 가수가 애원한다. 가을엔 떠나지 마세요.(끝)
첫댓글 재미있는 그날의 영상을 보는 듯 합니다. 하기야 제일 재미있으셨지요 신발도 멀리 날아갔지, 짝궁에게 고무줄 동여 매느라 머리까지 만지작거리셨으니
푸하하 맞습니다 즐거움이 영혼을
살찌웁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