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젊은이의 양지 ]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유명한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 An American Tragedy>를 조지 스티븐스 감독이 1951년에 영화로 옮겼다. 스티븐스 감독은 <셰인>, <자이언트> 등(사진, 조지와 안젤라)
미국적인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이다. <젊은이의 양지>, <셰인>, <자이언트>를 스티븐스의 미국 3부작으로 불린다.
원래 소설은 계층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미국 사회의 병폐를 고발했지만 영화는 한 개인의 헛된 욕망과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야 관객의 구미를 당길 수 있다는 사실을 스티븐스 감독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스티븐스는 상업적인 수완이 탁월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이 영화 제작 당시 가장 떠오르던 두 젊은 배우인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한 번 엮어보자는, 철저히 상업적 의도에서 조성된 캐스팅이었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예술적 결과물을 낳았다. 쉘리 윈터스까지 포함해 주요 인물 셋을 연기한 배우 세 사람의 자연스런 연기가 비평가들의 큰 찬사를 받았다.(사진, 조지와 안젤라)
이 영화 출연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나이는 만 20세였다. 아름답다 못해 눈부시다.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성 상실이 이 영화의 주제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아름다움에 다른 모든 걸 빼앗길 정도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 각색, 촬영, 편집, 음악, 의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어 작품성과 상업성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영화다.
간략한 줄거리
조지 이스트맨(몽고메리 클리프트 분)은 가난하지만 잘 생기고 매력적이며 야망에 찬 인물로, 부유한 친척 찰스 이스트먼이 경영하는 공장에 취직하러 온 상태다. 외롭게 지내던 조지는 공장 여직원인 앨리스(쉘리 윈터스 분)와 만나 사귀게 된다. 몇 달 후 승진하여 찰스의 소개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조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교계의 꽃, 안젤라(엘리자베스 테일러 분)를 만나자마자 앨리스를 잊어버린다.(사진, 조지와 엘리스)
그가 사랑에 도취되어 있을 무렵, 앨리스는 조지에게 자신의 임신을 알린다. 조지는 고민 끝에 죽일 것을 결심, 앨리스를 호수로 불러낸다. 배 위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배가 뒤집혀 앨리스는 익사하고, 조지에게는 살인범의 형이 선고된다. 살의(殺意)를 품었던 조지는 사실과 다른 판정이었지만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 지적이고 우수에 찬 눈빛의 몽고메리 클리프트 ]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할리우드 50년대와 60년대에 활약했던 지적이고 우수에 찬 눈빛의 매력적인 미남배우였다. 이에 걸맞게 예민한 성격의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였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말론 브랜도나 제임스 딘처럼 반항적인 역을 맡은 적은 별로 없지만, 고심에 차 있으며 한편으로는 냉담한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에서는 이 세 사람은 유사하다.
클리프트는 1920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에서 쌍둥이 남매로 태어났다. 잘 나가던 월스트리트 증권 중개인 아버지와 귀족 태생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13살 때 연기에 대한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의 지원 하에 10년이 넘게 뉴욕 극단 소속으로 연기 경험을 쌓았다. 이후 할리우드로 간 클리프트는 존 웨인과 함께 주연한 하워드 혹스 감독의 <레드 리버>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영화는 텍사스에서 미주리까지 소떼를 이동시키는 카우보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클리프트는 대배우 존 웨인과 팽팽하게 맞서면서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이후 3년 후인 1951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출연한 <젊은이의 양지>로 할리우드 청춘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는 영화계에 클리프트가 동성애자라는 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이 두 사람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플’로 불리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클리프트의 성적 정체성을 알고 있었지만 이후부터 그가 어려운 지경에 놓일 때마다 극진히 챙겨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끝까지 웬만한 남정네들 저리 가라할 정도의 의리를 보여주었다. 클리프트는 2년 후 명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출연하면서 완전히 대스타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지난여름 갑자기>·<나는 고백한다>·<뉘른베르크의 재판>·<종착역> 등 명작영화에 출연했다.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그는 선천적으로 약골인데다가 자주 술에 쩔어 있었고 거기다가 동성연애 성향 등으로 여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30대 중반이 된 1956년, 클리프트는 엘리자베스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레인트리 카운티>를 찍고 있었다. 그러던 어는 날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차를 몰고(사진, 영화 <레드 리버>에서 존 웨인과)
가던 중 큰 사고를 냈다. 죽기 일보 직전에 끔찍한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스가 급히 사고현장으로 달려왔다. 이때 엘리자베스는 몰려든 파파라치들에게 클리프트의 끔찍한 모습을 찍지 못하게 몸으로 현장을 가리면서 사진을 찍거나 배포하는 기자는 가만 두지 않겠다고 암팡지게 소리치기도 했다.
사고 후 클리프트는 망가진 얼굴을 수술하고 정신적인 진료에 매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했다.
이제 그의 잘 생긴 외모는 영영 되찾을 수 없었다. 1962년에는 존 휴스톤 감독의 <프로이드>에 출연했지만 영화는 실패했다. 가뜩이나 예민한 성격은 더욱 괴팍해졌고 연기는 둔해졌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 자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는 1966년 7월 어느 날, 자신의 침실에서 심장의 멎은 채 발견되었다. 그의 나이 45살 때였다. 이를 두고 흔히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자살(the longest suicide in Hollywood history)’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진,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친구 마지의 죽음을 기리는 진혼곡을 부르는 몽고메리)
엘리자베스의 추천으로 <Reflections of a Golden Eye>이란 작품의 출연이 결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가 젊은 시절에 술을 멀리하고 자기 관리에 충실했었더라면 좀 더 오래 활동을 했었을 것이라는 뒷얘기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그의 삶이 술과 마약 중독을 부추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조수이자 절친이기도 했던 로렌조 제임스는 클리프트가 자신의 성 정체성 문제로 딱히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생전에 <셰인>의 앨런 래드의 배역과 <리오 부라보>의 딘 마틴의 배역을 거절한 적이 있다. <셰인>의 경우에는 시나리오가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 <리오 부라보>는 이전 <레드 리버> 촬영할 때 하워드 혹스 감독과 존 웨인이 너무 설쳐대는 꼴에 질려 거절했다고 한다. 두 작품 모두 서부극의 고전 반열에 올라있어 클리프트에게 있어 아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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