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정된 틀로 재단할 수 없다 : 장자의 ‘소요유’를 읽고>
장자의 ‘소요유’는 이름 그대로 별다른 목적 없이 이리저리 여행다니며 노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장자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목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어슬렁거리며 노는 삶을 살았다. 장자는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 현재의 소중함을 잊어가는 사람들에게 인류 모두가 여유를 가지며 삶을 유유자적하기를 바랬다.
소요유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내편과 외편, 그리고 잡편 중 내편으로, 첫 장 제목이 소요유다. 소요유의 다섯가지 이야기 중에서 마지막 이야기는 혜시와 장자가 서로 대화하는 이야기다. 혜시가 장자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무가 쓸모가 없다는 하소연을 털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혜시가 가지고 있는 나무는 나무가 올곧지 않고 심지어 가지조차 구불구불하여 쓸모에 맞지 않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 가치가 없다고 한다. 장자는 혜시의 말을 듣고는 반박한다. 주변에 쉴 곳이 없으니 나무 자체로 쉼을 가지는 장소로 활용하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곧 나무가 오로지 지팡이나 탁자 등 뭔가를 만드는 수단이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쓸모가 없으면 다른 쓸모를 찾고, 타고난 대로 능력껏 일하고 즐기면 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주변에서 만들어준 틀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소요유의 가치관의 자세를 배운다.
처음 소요유라는 이름을 보고 반감이 들었다. 아무생각이 없이 소요하라는 그저 허무맹랑한 말들을 예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히려 장자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받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감이 잡힌다. 우리는 종종 현대 사회에서 정해진 틀을 강요받기도 하고, 부모님의 기대어린 시선에서 더 나은 자식이 되거나 자식을 낳아 자식 덕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혹은 남이 정해준 길로 따라가 무조건 성공을 해야한다고 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더욱 밀어 붙이고 가혹하게 행하는 상황 속에서 조급하지 말고 스스로를 잃지 말며,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항상 남 눈치를 보고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줏대있게 살아가려면 적당한 여유를 가지고 하고자 하는 목표를 천천히 나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경쟁력이 있는 사람은 틀에 맞춰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탄탄한 사람을 원한다. 장자의 소요유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실패하는 자신과 부족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조화를 누릴 것을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