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광팬도 아니며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열렬한 팬도 아닌 내가 광복절날에 일찍 일어나 영화관 첫 시간인 오전 8시 50분에 영화관으로 간 것은 그날이 광복절이기 때문이 아니며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이 세계적인 명감독이라는 이유도 아니였다. 벌써 보름전에 모 방송에 나온 놀란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내 아내가 엄청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날 부랴부랴 나를 졸라 관련 영화인 오펜하이머를 보자고 강요했고 인터넷 예약에 익숙하지 않는 처지에 한시간이상 공을 들여 겨우겨우 한국 개봉 첫날 그렇게 예약을 한 것이다. 그렇게 영화를 보게 되었고 이런 글도 올리게 됐다. 따지고 보면 원자폭탄은 그야말로 거대 전쟁의 시작이자 거대 전쟁의 종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너무도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다보니 이제 이 무기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의 목을 조르는 최대의 무기인 핵무기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하다하다 이제 북한에서도 이 무기를 개발하게 되고 그것을 내세워 남한을 이런저런 모습으로 목조르고 있는 형국이다. 바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은 지금 한국인에게 땔래야 땔 수 없는 너무도 긴급하게 접속되어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정치 리더들이 핵강국인 특정 나라에 굽신굽신해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물론 오펜하이머는 지금 이 세상사람이 아니다. 그가 원자핵무기를 개발했을 때 한국에서 이런 고통을 받으리라고 결코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현실이다. 현재 진행형이란 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존재이다.어둠속에서 빛을 준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라는 것은 미리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다. 미리 생각하는 것만큼 현명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 결코 미리 생각하지 못해 이런 몰골로 매일 매일 세상을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해치려 하고 조금 더 많이 가지려하다가 결국 멸망의 길로 가는 그 인간들 아닌가. 신 가운데 으뜸이라는 제우스가 인간이 불을 사용못하도록 했다. 불은 신들만이 가져야 할 최상의 물질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불 만큼 인간의 생활과 발전의 절대적인 것이 없다. 그 오래된 과거에는 오죽했겠는가. 어둠과 빛의 경계선에 있는 것이 바로 불이다. 그래서 신은 피조물 인간들이 이 불을 가지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불을 훔친 댓가는 혹독했다.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큰 곤란을 주기위해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들어 인간들에게 내려 보냈다. 판도라를 본 에피메테우스(프로메테우스의 반대 개념으로 때늦은 지혜라는 의미)는 그녀에게 반해 이성을 상실한다. 판도라라는 여자로 인해 결국 판도라상자등으로 의미되는 모든 병과 고통 그리고 정신적 갈등을 인간이 갖게 된 것이다. 지금 인간들이 가진 모든 병과 갈등 그리고 온갖 육체적 정신적 문제는 바로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 그리고 에피메테우스로 부터 출발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는 신들이 감추었던 불을, 나아가 신들이 감춰둔 우주의 원초적인 힘인 원자의 힘을 인간에게 돌려준 인물인가. 오펜하이머는 뉴욕에서 직물류 수입으로 부를 쌓은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1904년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를 다닐 때 물리학과 화학에서 탁월함을 보였고 동양철학에 심취했다. 1925년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원자구조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1927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버클리와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물리학을 가르친다. 하지만 나라 건너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오펜하이머의 인생은 바뀐다. 히틀러의 등장으로 고무된 스페인 극우파들의 득세속에 펼쳐진 스페인 내전은 오펜하이머에게 인생의 기로의 선택을 강요한다. 수많은 세계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다. 나치즘과 파시즘 등 극우파와 이른바 민주진영을 표방한 세력의 대격돌이었다. 당시 스페인 내전은 세계대전의 예고편이었다. 극우파들과 공산주의 등장으로 점철된 아주 복잡한 구도속에 놓인다. 오펜하이머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의 편에 섰다. 극우파들의 대척점에 섰던 것이다. 당시 지식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도 오펜하이머와 같은 라인에 서 있었다. 그 당시 그것이 선 (善)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공산주의자 학생들과 친숙해지게 된다. 하지만 소련 스탈린의 탄압에 의한 러시아 과학자들의 엄청난 고통을 목격한 후 그는 공산주의와 절연한다. 그는 결코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그는 그 이후 자유민주주의 철학에 몰두한다.1939년 독일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킨다. 물리학자 아인스타인은 미국정부에 대해 나치세력이 만일 핵폭탄을 제조한다면 전 인류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다. 미국 행정부는 화들짝 놀란다. 급기야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과정에 박차를 가한다.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핵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가 리더로 나서 원자탄 연구에 돌입한다. 나치보다 빨리 원자탄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미국도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다. 오펜하이머는 드디어 원자탄 개발에 성공한다. 그날이 바로 1945년 7월 16일이다. 미국은 이날을 핵실험 기념일로 정했다. 물론 히틀러는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고 저승길에 올랐다. 오펜하이머를 리더로해서 범 미국 학자들이 원자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를 이뤄냈다. 그리고 이 원자탄은 그후 한달도 되기전에 일본에 투하되어 21만명이 한꺼번에 사망하고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낸다. 오펜하이머의 원자탄이 세계 2차 대전을 종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바로 그 프로메테우스의 저주에 휩싸인다. 전쟁후인 1947년부터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미국 정부는 충성심과 신뢰도를 문제삼아 기소를 하게 된다. 이와관련해 열렸던 정부 청문회 모습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요한 광경이다. 당시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소련을 의식해서 미국은 소련과의 무기와 관련해 엄청난 긴장속에 놓인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도 그런 맥락속에 놓여있다. 소련을 의식해 과감한 군사행동을 펴지 못한 미국 아니던가. 맥아더의 만주 원폭 투하 제의를 미 대통령의 거부했다. 미국 정부는 2차대전을 종식시킨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하는 것을 의심해 그가 소련과 내통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압박한다. 온갖 그의 과거가 다 발가벗겨 진다. 오펜하이머는 미국에서 일어난 광풍인 매카시즘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청문회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한 오펜하이머는 1950년대 초반 미국의 전역을 휩쓴 공산주의 색출 열풍으로 더욱 곤욕을 겪는다. 과거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에 일시 가담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산속에서 사슬에 묶이게 되고 그의 간을 독수리들이 쪼아먹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는... 그는 프로메테우스보다 더 혹독한 형벌을 받는다. 청문회를 통해 그의 사생활이 낱낱이 까발리는 것은 물론 소련과의 내통의혹도 받게된다. 과학자이자 원폭 개발자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룬 그에게 주어진 가혹한 처벌이 그를 기다린다. 결국 그가 소련과 내통했다는 의혹은 벗게되지만 결국 보안사항 취급허가와 정부 고위층 자문역을 상실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그의 업적을 무시해버리는 조치이다. 산속에 갖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었을 것이다.
오펜하이머의 원자탄 개발은 그야말로 독일보다 개발이 뒤졌을때 독일을 제외한 타국들의 위치가 얼마나 위험했을까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 이뤄진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당시 전쟁속에서 우방국을 살린 엄청난 업적이었다. 그야말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업적과 비길만 하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을 얻으면서 어둠에서 광명을 찾았다.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원자탄 개발은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물론 가져다 준 것이 많다. 지금 미중갈등구도속에 핵무기가 없었다면 수십번 전쟁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 핵무기 덕분에 물리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로 풍부한 전기를 얻고 있기는 하다. 그의 노력과 땀의 결과가 어둠보다 빛이 더 많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전쟁가운데 가장 악랄했던 미국과 일본간의 태평양 전쟁을 마무리했다는 그 의미는 빛을 바래고 있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개발하고 난 뒤 그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은 것과 비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그에게 던져졌을 것이다.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맴도는 소리가 있다. 과연 오펜하이머는 지금 한국인에게는 어떤 인물일까 하는 것이다. 물론 핵발전소로 인해 전기 공급은 상당히 원할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오염 물질을 곧 바다로 방출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해서 남한을 향해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방어해 준다는 명목으로 이런 저런 요구를 하고 있다. 한국이 핵무기를 자체개발한다는 데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나오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오펜하이머의 희생국이다. 일본은 오펜하이머의 폭탄을 직접 맞았다면 한국은 하루 24시간 핵무기의 공포속에 살고 있다. 지구상에서 지금처럼 이렇게 원폭의 위협을 받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는가.그런 의미에서 이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그야말로 논란의 한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신들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분야를 인간의 세계로 옮겨 놓았을 그런 대업적은 결코 무시되면 안된다. 빛이 없어도 인간을 살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빛이 등장하고 호모사피언스는 얼마나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물론 오펜하이머의 원폭은 무기로 개발됐지만 그의 노력 덕분의 그 곁다리 효과를 인간은 지금 엄청나게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런 논란을 다시 한번 꺼집어내고 싶은 것이다. 과연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무엇이 빛이고 어둠인지를 말이다. 참고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든 그 위대한 업적탓에 그 이후 참으로 힘들게 나날을 보내다가 63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2023년 8월 1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