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비범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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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의 비범한 매력
단연코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아가사 크리스티는
1920년 가상의 탐정 에르큘 포와로를 세상에 소개한 그녀의 첫 번째 책
'스타일스에서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출간했고,
그 이후 그녀의 탐정 소설과 단편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20억 부 이상 팔렸다.
"범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크리스티는 또한 극장을 위해 글을 썼고,
'쥐덫'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연극으로 구별된다.
1890년에 태어난 크리스티는 비범한 매력으로 시련의 시간들을 견뎌냈다.
그렇다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매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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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범죄 작가의 삶과 작품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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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 (1890–1976)
아가사 메리 클라리사 크리스티는
1890년 9월 15일 영국 데번, 토키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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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아가사는 프레데릭과 메리 앤 밀러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 중 막내였다.
그림은 미국 예술가 더글러스 존 코나 (1871–1941)가 그린
초상화이며, 4살 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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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아가사는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녀가 4살이 되었을 때,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녀의 책에 대한 사랑은 끝없는 호기심에 의해 촉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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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음악가
그녀는 또한 피아노와 만돌린 연주를 배웠고, 글쓰기, 산수, 음악에도 뛰어났다.
18살에 크리스티는 그녀의 첫 번째 단편 소설 '미녀의 집'을 썼다.
한편, 그녀의 가족은 프랑스와 이집트와 같은 곳으로 널리 여행했다.
그녀의 첫 번째 소설 '사막의 눈'은 카이로를 배경으로 했지만,
원고는 그녀와 접촉한 모든 출판사들에 의해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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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볼드 크리스티와의 결혼
1912년 10월, 이 신생 작가는 왕립 비행단의 장교인 아치볼드 크리스티를 만났다.
그들은 아치가 프랑스에서 휴가 중이던 1914년에 결혼했다.
아가사 자신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간호사로 일했다. 아가사와 아치볼드는
1928년 이혼할 때까지 14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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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크리스티는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1919년에
로잘린드 마가렛 클라리사(훗날의 힉스)라는 외동딸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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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과 에르큘 포와로
1920년, 아가사 크리스티의 첫 번째 소설 '스타일스의 신비한 사건'이
출판되었지만, 1916년에 쓰여졌다.
그것은 문학의 가장 위대한 가상 탐정인 에르큘 포와로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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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스, 서닝데일, 버크셔
크리스티의 캐릭터에 대한 영감은 토키에 사는 벨기에 난민들에게서 나왔다.
한편 스타일스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살았던 집의 이름이었다.
그 집은 부부가 이혼을 선언한 후에 팔기위해 사진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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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와 터펜스
1922년, 이 범죄물 작가는 자신의 두 번째 소설 '비밀의 적수'에서
두 명의 다른 가상의 탐정인 토미와 터펜스를 소개했다.
포와로가 다시 등장하고 1926년에 출판된 그녀의 세 번째 소설
'링크 위의 살인'을 통해 아가사 크리스티는 주목할 만한
범죄물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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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애크로이드의 살인' (1926)
1926년 크리스티의 '로저 애크로이드의 살인' 발표도 이 사건을 다룬
포와로와 함께 출판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 영화는 후에
장르의 고전이자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사실, 그것은 나중에 영국 범죄물 작가 협회에 의해
역대 최고의 범죄 소설로 투표된다.
하지만 크리스티의 인생의 다음 장은 그녀의 소설만큼 신비롭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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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의 실종
1926년 12월, 아치와의 이혼이 보류되고
어머니 클라리사가 사망하자 아가사 크리스티는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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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1926년 12월 4일, 아가사 크리스티의 버려진 차가 써리에 주차된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전국적으로 아가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 실종은 영국에서 헤드라인 뉴스였고,
뉴욕 타임즈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천 명 이상의 경찰관들과
15,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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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 부인이 무사히 발견되다."
10일 후, 이 실종된 작가는 써닝데일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북쪽으로 296km 떨어진 요크셔의 한 호텔에서 발견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실종 이유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당시 일부 의사들은 그녀의 실종에 대해 기억 상실이라고 이야기했고,
다른 의사들은 그것이 그녀의 남편을 수치스럽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믿었고,
일부 의사들은 크리스티가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시련에서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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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말로완과의 결혼
스페인에서 요양한 후,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라크로 갔고,
고고학자 맥스 말로완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30년 에든버러에서 결혼했다.
말로완과 그의 일은 크리스티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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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플양을 소개하다
크리스티는 1932년에 '13가지 문제'로 출판된 단편집에서
또 다른 가상의 탐정 마플 양을 소개했다.
나이가 많지만 영리한 노처녀로 특징지어지는 마플 양은
크리스티의 가장 유명한 탐정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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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1934)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에르큘 포와로와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한 그의 수사를 따라간다.
크리스티는 이 책을 쓰는 동안 국제 철도 여행을 경험했는데,
그 중 일부는 이스탄불의 페라 팰리스 호텔에서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호텔은 작가를 기념하기 위해 크리스티의 방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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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크리스티는 타자기에서 벗어나 남편과 함께 중동 땅을 파는 일에 동행했다.
레반트로의 고고학적 진전은 그녀에게 가장 잘 알려진 소설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이라크 님루드에서 발굴된 아시리아 상아 조각상을 촬영하는
조수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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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에서의 죽음' (1937)
'나일강에서의 죽음'은 1937년에 출판되었다.
이번에 나일강 증기선에서 살인자를 찾아내려는 포와로와 함께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크리스티가 아스완의 올드 카타락 호텔에 머물면서
영감을 얻었으며, 1885년 이곳에서 사진이 찍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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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아무도 없었다' (1939)
1939년, 아가사 크리스티는 '그러고는 아무도 없었다'를 출판했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미스터리 소설이며,
1억 부 이상이 팔리면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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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이 소설가는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에서 일했다.
그녀는 살인자의 정신을 연구하면서, 독에 대한 그녀의 지식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그 기회를 이용했다. 그녀의 1961년 저서 '창백한 말'에는
당시 병원의 수석 약사의 제안에 기초한 살상 방법인 탈륨 중독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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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1952)
크리스티는 런던에서 세 편의 연극을
동시에 상연한 최초의 여성 극작가가 되었다.
'쥐덫', '검찰의 목격자', '거미줄'이 그 작품들이다.
그녀의 짧은 라디오 연극을 각색한 '쥐덫'은
1952년 11월 22일 앰배서더 극장(사진)에서
런던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웨스트 엔드 투어를 위해 노팅엄에서 초연되었다.
그것은 웨스트 엔드 쇼 중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연극이다.
그것은 2022년에 70주년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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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웨이 하우스
아가사 크리스티와 맥스 말로완은
데본셔의 그린웨이 하우스에 영구적인 집을 지었다
. 이 집은 'A:B:C 살인사건'(1936), '아기돼지 다섯 마리'(1942), '
죽은 사람의 어리석음'(1956) 등을 포함해 그녀의 책들이 주로
개인 주택 내에 설정되는 배경에 영감을 주었다.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 (1989–2013)의
에피소드가 2013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크리스티와 말로완은 1946년에 이곳에서 사진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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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웨스트마콧
아가사 크리스티는 메리 웨스트마콧이라는 필명으로
여섯 권의 소설을 출판했다.
첫 번째 작품인 '자이언트의 빵'은 1930년에 개봉되었다.
메리 웨스트마콧의 마지막 책은 '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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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설과 자서전
아가사 크리스티의 마지막 소설은 1973년에 출판된 '운명의 후예'였다.
그녀의 자서전 '애거사 크리스티: 자서전'은 1977년 사후에 출판되었다.
저자는 1926년의 사건들을 묘사하면서
"내 인생의 26년도는 기억하기 싫은 해"라며
"병이 난 후 슬픔, 절망, 그리고 비탄이 찾아왔다.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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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 칭호
크리스티는 1971년에 여사 칭호를 받으며 영국 여배우 시빌 손다이크 여사,
에디스 에반스 여사, 페기 애슈크로프트 여사가 포함된 존경받는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사진은 크리스티가 손다이크 여사의 90세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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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는 1976년 1월 12일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장례식은 옥스퍼드셔의 콜시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치러졌다.
그녀의 관 뒤에 남편 맥스 말로완(1978년 사망), 딸 로잘린드 힉스(2004년 사망),
꽃을 들고 있는 손자 매튜 프리차드가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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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첼시 세인트 메리 교회에 있는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무덤.
그녀의 남편 맥스 말로완은 그녀와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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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유산
크리스티의 작품은 영화와 텔레비전을 위해 여러 번 각색되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영화는
1928년에 만들어진 '퀸 선생의 죽음'이다.
포와로의 첫 영화 출연은 1931년 '알리비'였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영국 배우 데이비드 수셰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1989-2013) 벨기에 탐정 연기는 훌륭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캐릭터라는 데 동의한다. (사진: 포와로 역의 수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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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영국 여형사
영국 여배우 마거릿 러더포드의 1960년대 시리즈 영화에서의
미스 마플의 연기는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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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1974)
아가사 여사는 유명 영화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시드니 루멧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도 박수를 보냈다.
그 영화의 런던 초연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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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에서의 죽음' (2022)
케네스 브래너는 2017년 리메이크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포와로 역을 맡아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이 영국 배우는 '나일강에서의 죽음' (2022)에서
그의 역할을 반복했고, 다시 감독을 맡았다.
출처:
(The Guardian) (Guinness World Records) (Reedsy) (Broadway.com)
참조: The screen's most memorable detect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