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리 아파트에서 가까운 곳에 소공원이 조성되었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하천이 흐르던 곳을 복개하여 4차선의 신작로를 내고 자투리땅
을 공원으로 만드니 다니기에도 불편하던 동네가 상전벽해가 되어 밝은 동네로 변
했다.
특히 여름철이면 노인들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다.
500여 평 남직한 작은 규모지만,
100여명은 앉을 수 있는 긴 의자가 녹음 속에 설치되어서,
한쪽에는 바둑과 놀이에
빠진 할아버지 차지고 다른 쪽은 웃음소리가 정겨운 할머니들의 수다장소다.
더구나 여름철 4개월간은 시간을 정하여 내뿜는 분수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의 물장난 놀이터로
변신하여 아이들이 즐기기엔 근처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만한 장소가 없다.
수시로 주민 센터에서 주관하는 ‘장터’가 열리고, 구에서는 ‘소규모 음악회'를 열어주
어서 문화 행사를 관람하기 어려운 주민들에게 힐링 기회까지 제공한다.
오늘따라 하늘은 청명하니 높고 포근해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이곳에서는 규모가 제법 큰 오류골 어울림 문화축제가 열린다.
오류골이란 오류동과 천왕동, 항동을 아우르는 지역을 이른다. 지금도 법정 동으로
는 3개로 구분되어 있지만, 행정적으로는 오류동에서 관장하고 있다.
빈 땅이 많고 소규모 공장이나 단독주택이던 곳이 2~3년 사이에 아파트 숲으로 바
뀌어서 분동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터라 이번 행사의 의미는 남다르다.
개장을 하기 전에 250석은 돌 듯 한 간이의자는 노인들로 만석이 되었고, 메인무대
에서는 초청 가수들이 분위기를 띄운다.
뒤편에서는 봉사단체에서 나온 아주머니들의 부침개 냄새가 입맛을 돋우고, 도서관
에서는 무료로 책을 배부하여 주민들을 불러 모은다. 나는 책, 특히 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그곳부터 찾았다.
.
100여권의 책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올해 간행된 책은 안보이지만 대다수가
2~3년 지난 새 책들이다.
지은이와 출판사, 출판 년도와 뒤표지에 요약된 줄거리를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3권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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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가수들의 노래와 행사 주최 측의 인사말이 끝나자 백일장의 시제로 ‘축제’가 내
걸리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이번이 9회라는데 1회 때는 나도 일반부 백일장에 참가하였다.
‘가을’이라는 시제에 부응하여 ‘가을 운동회’라는 제목으로 산문을 제출했더니 과분
하게도 최우수상을 주었다.
수상식장에는 수상자의 가족들로 만원을 이루고 축하인사와 사진을 찍느라 시끌벅
적 했으나 60대라는 게 쑥스러워서 혼자 참석했다. 심사위원장은
“누구나 경험했을어린 시절의 운동회를 실감나게 묘사해서 최우수상을 드렸다.”는
말씀이 새삼스럽게떠오른다.
이어서 주민들을 위한 노래자랑 순서였는데, 중간 중간 경품추첨이 곁들여지면서
행사를 마칠 때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이 한 분도 보이지 않았다.
선물도 푸짐해서115번이 뽑히면 111번에서 120번까지 선물을 안기니 누군들 자리를 뜨겠냐
!
어떤 이는 두세 개의 상품을 손에 들었지만 나는 빈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느곳이나 어느 시기나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하여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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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시작하여 16시까지 진행된 행사지만,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이 된 흥겨운
축제였다. 이 축제는 운동장과 소공원을 번갈아 가면서 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처럼 소공원에서 열 때는 노래자랑으로 끝내지만 운동장을 빌릴 때는
피날레로 동별 이어달리기를 했으면 한다.
오류동은 주민수가 많으니 3구역으로 나누어서 5개 팀으로 하되,
남녀 2명씩으로 한 팀을 이루면 좋을 것이다.
대항전이 되면 경쟁심을 유도하여 응원하는 열기도 고조되고 이웃 간의 유대감도
돈독해 질것 같아서다.
이런 구상은 ‘가을 운동회’에서도 언급했듯이 남녀노소 불문
하고 온 동민이 목청껏 응원했던 추억 때문이다. (碧草. 2019.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