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샤대학에서의 개강 풍경 ~
최홍덕
새로운 봄학기가 시작되었다.
<봄학기>라기보다는 <여름학기>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만큼 기온은 벌써 여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보다는 수강하는 학생들이 조금은 많아졌다. 대학 당국에서는 대면수업을 적극 권장하지만, 학생들은 아직도 온라인수업을 선호하는 듯하다.
마스크를 쓴 상태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전체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학생들의 선한 인상은 그대로 읽을 수 있다.
나의 클래스들은 수업태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 소문이 났는지, 오리엔테이션을 하기 전부터 학생들은 모두가 스마트폰도 꺼내지 않고, 잡담도 일절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숨죽인 상태로 수업에 임하는 것이었다.
한 한국 유학생은 코로나 때문에 이제서야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비싼 비행기삯을 내고 올 수밖에 없었지만, 캠퍼스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도의 숨을 쉬는 모양이다. 그의 동공(瞳孔)에 맺힌 기쁨의 알맹이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관동(도쿄중심) 지역에서 온 학생은 수업 후에 내게 한참 수다를 떤다. 4학년이라서 '슈카츠'(就活: 취업활동)로 바쁘게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눈치로봐서는 수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좀 잘 봐달라는 뜻임에 분명하다.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이 그 학생에게서도 배어나온다. 하지만 순수하고 진솔한 학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졸업하면 관동지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쪽에 취직하고 싶다고 한다. 관서(오사카・교토중심) 지역의 문화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해외유학을 온 기분이란다. 역시 인간에게 있어서도 귀소본능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문과 1학년 학생은 겁도없이(?) 나의 수업에 들어왔다. 선배의 추천으로 수강신청을 한 모양이다. "내 수업은 굉장히 깊은 신학적 지식을 요하는데,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나의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간바리마쓰!!"(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한 마디로 딱 잘라버린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실은 '3, 4학년이 되고나서 내 수업을 듣는 편이 좋다고, 그러므로 수강철회하는 게 어떨까?' 하는 내심으로 말을 건넨 것인데, 영 통하질 않았던 것이다. 가끔 이런 학생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나는 그들의 용기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그 긍정적 사고와 자세에 찬사를 보내기 때문이다.
5학년 상학부 학생은 솔직하게 학점이 모자라서 졸업을 못하고 있다고 자신의 신세를 털어놓는다. 나는 그 학생에게 7, 8학년 학생들에 비하면 낫지 않냐고 용기를 주는 한편, 일단 내 수업에 출석을 철저히 하고 기말 레포트를 반드시 제출하면 학점은 받을 수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라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그의 얼굴에서 금방 어둠의 그늘이 걷히고, '야루키'(遣る気: 할 수 있다는 마음, 의욕)로 충만한 광채가 솟구쳐 나오는 듯했다.
한 3학년 학생은 이름과 얼굴이 너무 익은 터라서, "작년에도 내 수업을 모두 들은 것 같은데, 금년에도 또 들어왔느냐?"고 농담조로 말했더니, "선생님의 과목을 죄다 듣고 싶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잠시 혼선이 생겼다. 분명 이 학생은 넌크리스천인데 과연 내 과목들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학점을 따기 쉬워서일까? 한편 생각해보면 일본 학생들은 학점 따기 쉬운 과목이라고 해서 몰려드는 편은 아니다. 예를 들면 봄학기에 수강했던 학생들이 그대로 가을학기에도 듣는 경우는 거의 소수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되거나 인생 및 사회생활, 나아가서는 더욱 심층적인 개인연구에 필요한 과목들을 찾아서 수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간에 그 학생의 그러한 대답에, 나도 인간인지라, 기분이 좋았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아니, 숨길 필요가 없으리라.
다음 주에는 또 다른 학생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그리고 그리스도를 자연스레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도드린다.©hd
■ 글쓴이 : 최홍덕 [목사/도시샤대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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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캠퍼스